동아시아 의학사 연구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시론: 이분법의 서사 및 저편의 “전통”을 넘어서†
Abstract
One of the main topics discussed by historians, including those of science,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is the historical introspection into “modernism,” a term based on a teleological view of the world. According to the conventional understanding of world history, the historical process to modernity that has led to the Civil Revolution, Scientific Revolution, and Capitalism is linear and universally inevitable, and this—in other words, Eurocentrism—implies that only the historical experiences of Europeans are relevant. This mainstream view of world history has spread the dichotomous analytic framework of historiography and reinforced cultural essentialism, which has eventually given a Euro- or Sino-centric hierarchical presentation of history. This type of world view rests on the assumption that there are intrinsic and incommensurable differences between cultures or localities, which a lot of commentators and scholars have constantly countered by arguing that that presumption does not comply with what historical sources say. Drawing on some trail-blazing scholarship of cultural studies and others, this essay turns away from this “conventional” framework of historiography and presents a world view that is framed in the context of trans-locality, interconnectedness, plurality, heterogeneity, polycentricity, and diversity. In recent years, in an attempt to search for new analytic frames, some endeavors have emerged in the field of cultural or science studies to go beyond just providing critical commentaries or case studies. Furthermore, researchers and scholars in the history of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in East Asia have put an effort into conceptualizing and establishing such new analytic frames. Among those approaches are attempts to shed light upon the trans-local yet global interconnectedness (emphatically in pre-modern periods), diverse historical trajectories to modernities, and polycentric as well as plural landscape of scientific enterprises over time and across the world.
On top of these new visions of world history, this essay further elaborates on and proposes some conceptive ideas: (1) “Tradition” as a set of recipes, which could replace the idea of the living yet dead tradition; (2) “Medicine 醫” as a problem-solving activity, which calls more attention to historical actors of East Asian medicine; (3) “East Asian medicines” as a family of trans-locally related practices in East Asia, which would lead to going beyond the nationalist historiography such as Sino-centrism; (4) “Problematique” as the system of questions and concepts which make up East Asian medicine, which should reveal what East Asian medicines have been about; (5) “Styles of Practice” for the historiography of East Asian medicines, as opposed to the cultural account, epistemological historiography or praxiography; and, as an illustrative example, (6) “Topological Bodies” for the history of anatomy in East Asia. Going beyond tradition and dichotomous historiography, these new methodologies or conceptual ideas will contribute to the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of East Asian medicines.
색인어: 동아시아의학사, 이분법, 유럽중심주의, 근대, 연결성, 다원성, 스타일, 해부학
Keywords: history of East Asian medicine, dichotomy, Euro-centrism, interconnection, polycentrism, plurality, styles of practice
1. 서양은 해부, 동양은 기(氣)?
요즈음 의학사 혹은 과학사 관련 학자 및 연구자들의 주제 및 논의 과정을 보건대, 동아시아 의학사 관련 논의들이 여전히 과거의 정형화된 틀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1) 그 전형적 예는 서양은 물질과 해부학에 관심을 두고 의학적 발전으로 나아간 반면, 동아시아는 해부술 및 몸의 구조와 물질에는 무관심했고 오히려 기(氣)의 흐름이나 장부의 추상적 기능에 주로 시선을 뒀다는 ‘이분법’의 서사다. 이에 대해 동아시아 지역에 해부 기술이나 물질적 구조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반문하면, 그 것은 단지 유비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혹은 이른바 해부학이라는 범주에 넣고 논할 가치가 없다거나, 아니면 단지 예외적 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곤 한다. 이외에도 연구자들이 문화사를 지향한다면서도 중세 의서의 내용을 분석할 때 미신적 행태라며 일부 치법을 소개하는 데 머물거나. 아니면 현대의학의 시각에서 볼 때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흥미로운 치법을 활용했다며 선인의 지혜를 언급하곤 한다. 또한 한의학은 중국의학의 아류라는 잠재적 인식 아래 “중의학과 한의학이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을 하곤 하는데, 이러한 상투적인 질문은 종합의서인 『의학입문(醫學入門)』(1575)과 『만병회춘(萬病回春)』(1587)을 각기 저술한 명대 의사 이천(李梴)과 공정현(龔廷賢, 1522-1619)을 일러 중국의학의 계승자라 칭하면서도 같은 성격의 『동의보감(東醫寶鑑)』(1613)을 저술한 조선의 의관 허준(許浚, 1539-1615)에 대해서는 중국의학의 수입자라는 언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글은 이항 논법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부류의 서사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 근저에 깔린 전제들을 짚어보고, 의학사 및 이를 포괄하는 과학기술사 분야의 연구 방법론에 대한 최근의 성찰적 논의들을 간략히 검토하고자 한다. 2) 여기서 나아가 동아시아 의학사의 새로운 지형들을 드러낼 수 있는 접근방법론도 시론적으로 모색할 것이다.
위 사례를 포함해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되는 여러 화법, 담론, 태도 등은 비단 의학사 뿐 아니라 과학기술사 및 문명사 전반에 대한 특정한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체로 그 특정한 관점은 이를테면 목적론적 역사인식, 발전론적 역사관, 모더니즘, 현재주의, 선형적 역사 전개론, 휘그주의 등과 깊게 연관되어 있는 ‘유럽중심주의’이다. 그 출발은 오늘날의 이른바 과학적 진리를 기준으로 삼아, 근대화 이전 시기 (특히 비유럽지역) 대부분의 과학ㆍ기술ㆍ의학 활동에 비과학과 불합리의 딱지를 붙이는 데서 시작됐으며, 근대 과학기술에 부합하거나 그 전구로 이해될 수 있는 사건만을 중심으로 한계의 극복과 과학으로의 발전이라는 서사를 만들어 냈다. 3) 그 기본적인 전제는, 근대 과학은 문화적으로 ‘보편적’이지만 기원상 ‘유럽’에 유일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단일한’ 발전과정을 밟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사상 및 문화 일반의 규범으로 확대 해석 되어 서양의 양식과는 다른 기타 지역의 문화 및 사유 형식은 거의 무의미하다고 보는 데까지 나아가, 과학혁명ㆍ시민혁명ㆍ자본주의를 이뤘던 유럽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세계의 역사는 특정한 목적을 향해 필연적으로 전개돼 왔다는 서술로 이어졌다. 4) 비유럽 지역의 학자들조차도 사실상 유럽인의 역사적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적 범주 및 연구 질문에 기대어 자신들의 역사를 해석해 왔다는 점에서 그간의 세계사는 사실상 유럽사의 일환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 이러한 점은 구미 주류 역사학계가 자신들의 역사를 세계사의 주류라고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 서양 이외의 역사와 전통에는 대체로 무관심하며, 과학사회학(STS) 분야의 학자들 역시 동아시아의 과학사에는 거의 개의치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적지 않은 동아시아 의학사 연구자들 역시 역사 행위자들의 의제와 맥락에는 주목하지 않은 채 알게 모르게 모더니즘 및 유럽중심주의의 영향 아래 역사적 사건을 해석해 왔다.
이러한 방식의 역사서술은 형식의 측면에서 유럽의 역사 대 기타 역사라는 이항 대립을 상정한 것으로 오리엔탈리즘으로 대표되는 ‘이분법’의 역사 인식으로 파생되었다. 이는 세상을 서양과 동양으로 크게 분리시켜 세계문명사를 서사하는 이른바 “대분열 담론(The Great Divide)”을 필두로 하여, 근대대 전통, 이론 대 실천, 논리 대 직관, 발명 대 모방, 정신 대 육체, 사회 대 자연, 중심 대 주변, 과학 대 유교 등의 대립적인 근대적 서사구조를 모두 포괄한다. 6) 19세기 후반 근대과학기술로 무장한 제국주의 세력의 비유럽지역으로의 침습이 강화되고, 20세기에는 근대 및 과학 중심의 역사관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면서 이른바 “과학(Science)”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높은 인식론적인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동아시아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문화 전통을 부정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서양의 “과학”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과학에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동아시아의 지적 사유를 찾아내도록 자극했다. 의학 분야의 경우 20세기 초 동서양의 특징을 전일론 대 환원론, 흐름/조화 대 물질/해부, 치본(治本) 대 치표(治標) 등 양항으로 대립시키기 시작하면서, 7) 20세기 중후반 중국 (혹은 동아시아) 의학의 정수를 예를 들면 “정체관념(整體觀念)”이나 “변증논치(辨證論治)” 등으로 규정했다( Scheid, 2016; 2002: 200-237). 이를 잇는 중의학/한의학 교과서 및 개론서 역시 동아시아 의학의 특징을 근대과학이나 생의학의 개념이나 언어로는 번역될 수 없는 고유하고 단일한 것으로 기술했다( Porkert, 1974; Kaptchuk, 2000; Sivin, 1987). 이러한 정치적 서사는 20세기 후반 “시스템이론”이나 “신과학운동”으로도 연결되는데, 중국을 대표로 하는 동아시아의 사상 이를테면 유기체적 사유양식을 서양의 환원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세계관과 대비되는 것으로 내세우면서 서구 과학 문명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점을 보 완하고자 했다( Capra, 1982; Bohm, 1980; 金觀濤ㆍ劉靑峯, 1994). 이는 잘 알려진 오리엔탈리즘의 또 다른 양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서술방식은 천문학 및 역사 분야로도 확대되어 문화 간 혹은 지역 간 본질적이고 상호 공약불가능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인식으로 일반화됐다. 8)
유럽중심주의 서사와 여기에서 파생된 이분법의 역사서술 방식은 타자로부터 주어진 규범으로 자신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역사적 사건 및 관련 행위자의 구체적인 맥락, 다양한 접근방식, 역동성을 차폐한다는 점에서 그간 동아시아 과학사/의학사를 소외시켜 왔다. 근대주의자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근대성, 과학성, 혁명성의 맹아를 찾아내고자 했던 학자들도 한 걸음 물러서서 세계를 조망하지 못한 채 여전히 타자의 규범과 시선에서 동아시아인의 공과를 논한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과학사/의학사의 소외를 유발했다. 9) 이와 반대로 동아시아 의학의 독자성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서양 과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동아시아 의학의 원형이자 정수가 고대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의학전통의 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연하게 변신하지 않고 동일한 원칙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현대 과학의 저편에 있는 ‘죽어있는’ 전통 의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10) 이러한 소외 현상은 중심-주변의 이분법 구도에서도 나타난다. 원래 제국주의-식민지 과학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됐던 중심-주변 확산모형은 중심인 중국에서 주변인 고려/조선으로 문물과 지식이 일방향으로 퍼져간다는 가정에 기초한 것으로 중국의학에 대한 한국의학의 성격을 논할 때 흔히 취하는 방식이다( Nakayama, 1999; 馬伯英ㆍ高晞ㆍ洪中立, 1997). 11) 이의 변종인 충격-대응 이론 역시 17세기 이후 특히 20세기 전환기에 서양 과학의 충격에 의해서 동양이 무지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는 서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상 이러한 서술방식은 구조적으로 동아시아/한국의 종속성, 정체성, 주변성, 수동성을 전제한 것으로 동아시아 과학사/의학사 서술에서 자기부정과 자기소외의 긴장을 유발하고 실제 역사 지형을 왜곡해 왔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럽중심주의 및 이항논법의 틀을 넘는 것이 관건이다.
2. 유럽중심주의 서사에 대한 성찰
동아시아 과학사 분야에서는 일찍부터 유럽중심주의와 근대성 찾기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진행돼 왔다. 먼저 논할 것은 “왜 중국에는 과학이 없었는가?”와 같은 “왜-아니(why-not)”류의 질문에 대한 비판이다. 20세기 전환기부터 중국 지식인 사이에서 등장한 이러한 질문은 중국과학사 연구의 선구자인 조셉 니담(J. Needham, 1900-1995)이 제기한 니담 테제 즉 “16세기까지 서구보다 월등했던 중국의 과학전통이 왜 근대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했나?”라는 연구 질문으로 정식화됐다. 12) 그간 니담의 선구적인 연구 성과는 서양인들이 비유럽지역의 발달된 과학기술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지만, 후배 학자들은 그가 근대 과학적 요소를 역사 속 중국의 과학기술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점을 비판했다( Hart, 1999; Sivin, 2005; Kim Y., 2004; O’Brian, 2009). 니담의 질문은 비유컨대 화재가 난 집이 아닌 엉뚱한 집에 가서 “왜 불이 나지 않았냐?”며 추궁하는 것과 같다. 13) 이는 결국 보편과학의 단일한 발전과정을 전제하고 서양에서 태동한 과학기술만이 역동적이고 보편적이며 학문의 대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타문명에서 어떤 결핍이나 한계를 묻거나 근대화의 걸림돌을 찾고자 한 셈이었다. 14) 이러한 시각은 온전한 서양과학이 중국이나 한국에 전해졌어야만 했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왜-아니(why-not)” 질문류는 서양-동양 관계는 물론 중국-한국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왜 서양과학 또는 텍스트 『상한론(傷寒論)』이 온전한 형태로 조선에 전해지지 않았는가? 서양의 해부학 혹은 청대의 온병학(溫病學)은 어째서 조선에서 유행하지 않았는가? 조선에는 왜 생물학/본초학 관련 이미지를 생산해내지 않았는가? 15) 하지만 정작 물어야 할 것은 ‘동아시아인들은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며 발전시켜 왔으며, 나아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사회문화적ㆍ지적 맥락은 무엇이었는가?’여야 한다. “왜-아니” 질문은 그간 당연하다고 여겼던 믿음, 태도, 시각, 인식을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유럽중심주의에 기반을 둔 역사인식 즉 보편과학은 단일한 선형적인 발전 과정을 밟으며, 유럽에서 등장한 근대과학이 바로 그 유일한 실체라는 관점은 최근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 왔다( Raj, 2007: 1-10). 전통적 인식에 따르면 이렇다. 즉 세계 다른 문화권과 달리 17세기 유럽에서는 갈릴레오, 뉴턴 등 여러 선지자적이고 합리적 과학자들이 과거의 몽매한 신학적 세계관을 깨고 근대 과학혁명을 이끌었으며, 이를 이어 19세기 유럽이 산업혁명 및 기술혁명을 이루어 냄으로써 20세기 근대문명을 성취했다. 또한 이는 세계 지성사에서 유럽만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이자 세계사의 필연적 과정 즉 보편적 문화현상으로 그 지성사적 기원은 유럽의 시원인 기원전 그리스의 합리적 과학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서양 근대 과학의 전개에 대한 최근 과학사학계의 연구는 “과학” 및 “근대”의 개념이나 역사적 궤적이 단일하지 않았다는 점을 논증하면서, 과학을 사회적 맥락과 분리되어 있는 객관적인 지식 체계로 보거나 유럽인의 사유와 경험만을 역사서술의 준거로 삼았던 그간의 편향적 시각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 예를 들어, 과학사가들은 고대 그리스과학 및 과학혁명기 유럽과학은 오리엔트 및 이슬람 등 이웃 문명에 빚진 바가 적지 않았으며, 과학혁명 과정에 마술적, 신학적, 심미적인 요소들이 많이 개입돼 있었고, 과학혁명 자체도 균일하지 않은 복수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긴 시간에 걸쳐 다양한 궤적을 밟아 왔을 뿐 아니라( Latour, 1993; Shapin, 1996; Hacking, 1983; 김영식, 2001), 18세기까지만 해도 지구에서의 주인공은 유럽이 아니었음을 지적했다. 16) 또한 이들은 패러다임의 전복 양상과는 다른 중층적인 과학 활동이 현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해 왔음을 실증적으로 논구하기도 했다( Daston & Galison, 2007). 한 마디로, 전통적 인식과 달리 유럽의 근대과학은 필연적 혹은 보편적이라기보다는 상황에 따른 우연적인 것이었으며, 단일한 과학 형태가 아니라 복수의 과학 활동이었고, 유럽 고유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주변 문명 혹은 식민세계와의 교류에 힘입어 형성된 것이었다( Raj, 2007; Pomeranz, 2012).
의학 및 과학 지식의 성격에 대한 최근 과학기술학 분야의 연구는 지금까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근대과학의 특징들을 매우 논쟁적인 것으로 바꿔 놓았으며, 이는 과학지식이 그것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사회문화적 환경 및 행위자인 과학자와는 독립된 객관적 진리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대중적이며 통상적인 인식에 따르면, 과학 지식은 증명할 수 있는 것으로 만고의 유일무이한 진리이며, 지식이 축적되면서 과학은 진보한다. 또한 과학 지식/이론은 객관적이고 실재하며 사회에 독립적인 것으로, 내적인 논리에 의해 결정되거나 관찰과 실험으로 확정될 수 있다. 하지만 연구 분석에 따르면, 현대의 정밀과학에서조차도 이러한 주장은 생각보다 훨씬 논쟁적이며, 17) 근대 과학이 태동한 17세기 이후 실험 과학은 이와 관련해 원천적으로 모순되고 역설적인 특성을 지닌 채 전개돼 왔다, 18) 특히 과학이 작동되는 방식 이를테면 개념이 수용되고, 이론이 검증되고, 지식이 확정되고, 기술이 선택되는 과정에 외적인 요소 이를테면 과학자 집단의 인식적 요소와 사회 문화적 요소가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Shapin & Schaffer, 1985; Latour, 1993; Collins & Pinch, 1998; Latour & Woolgar, 1986; Chang, 2004; 홍성욱, 2004: 3-67). 이러한 특징은 다층위의 복잡한 인체를 다루고 다양한 질병을 정의하고 분류하며 치료효과를 산출해 내야 하는 의약학 분야에서는 더 두드러진다. 이는 의학/과학은 실재성, 법칙성, 객관성 등의 관념으로만 해명될 수 없으며 지식 내용은 물론 행위자들의 기술적인 실행 과정 및 사회문화적 맥락을 함께 고려할 때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9)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일반 역사학계의 도전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근대가 하나가 아니라 복수인 “근대(modernities)”가 존재하고 그 근대로의 이행과정 역시 다양한 궤적을 밟아 왔다는 주장이다. 유럽 중심의 역사관에 의문을 제기했던 일단의 학자들은 정치, 경제, 문화, 문학, 예술, 과학 등 각 분야에 걸쳐서 근대로 불릴 만한 상호 유사한 문화적 과정 및 역사적 사건이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15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전지구적으로 유사한 시기에 출현했으며,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경제적, 문화적 자원이 넘나들며 상호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Pomeranz, 2012). 20) 이는 세계의 근대적 양상이 다원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근대로의 역사적 궤적 또한 하나가 아닐 뿐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근대로의 이행 과정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의 교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근대 이전 및 비서구 지역의 역사적 행적과는 확연히 달랐던) 유럽인들의 고유한 문화적 성취가 전세계적으로 확산 및 전개되어 가는 역사적 과정의 결과물로 20세기에 관찰되는 다양한 근대적 속성이 등장했다는 전통적 인식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이들 학술 논의가 (비록 단수가 아닌 복수 형태를 쓴다지만) “근대”라는 용어를 그대로 차용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근대 맹아론이나 목적론적 역사인식을 연상시키지만, 이들 학술 사업은 틀에 박힌 이분법의 역사서술이나, 유럽 중심의 세계관 그리고 문화 상대 주의를 넘어서는 세계사를 기술하는 데 일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의 서사가 여전한 까닭은 세계의 역사에 대한 상(像)이 정립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연구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세계 역사상 다시 그리기: 다중심성, 다원성, 연결성, 다양성
이 절에서는 서로 연관된 몇 가지 특성을 들어 세계 역사상을 요약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과학 활동 공간의 시공간적 ‘다중심성(polycentricity)’이다. 과학문명사의 지형을 보건대 과학의 중심지가 특정 지역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역사적으로 여러 곳에서 부침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문명사 담론에서 근대 과학의 발생지로 인식된 유럽과, 동아시아 문명의 원류로 이해되는 중국 등은 역사에서 늘 상수로 간주되는 지역 단위였지만, 과학사의 역사적 사례들은 오히려 과학 활동의 중심지가 동시대에 여럿 존재하거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동하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헬레니즘기 알렉산드리아, 11세기에는 중국의 화북지역 및 아라비아, 15세기에는 조선의 한양, 17세기에는 중국의 강남지역, 18세기에는 일본의 에도, 19세기에는 영국이 과학 활동의 중심 연결점으로 부상했었다. 이때의 지역은 근대적 개념인 ‘국민국가(nation-state)’의 단위와는 다른 것이어서, 과거에 이름으로 존재하는 대부분의 정치적 단위체는 지리적, 민족적 경계가 역사적으로 흐렸을 뿐 아니라 유동적이었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주변민족 및 타문화와 지속적으로 접촉해 왔으며 역사적으로 지리적, 정치적, 인종적 단일체가 아니었다( Rawski, 2015). 21) 동아시아 지역에서 단일한 중심국가[中國] 하나가 존재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적으로 여러 개의 문화, 지역국가, 네트워크, 상호교환이 있었을 뿐이라고 봐야 한다( Tsukahara, 2019). 22) 고정된 중심과 테두리를 상정했던 전통적 인식에 반하는 이러한 세계상은 유럽 중심의 위계적인 세계사 서술과 근대적 국가 관념을 분석 단위로 해서 역사 지형을 단순하게 구획한 일국 중심의 문화권 서술방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Duara, 2003; Tsukahara, 2019).
둘째는 과학/의학 실행 체계의 ‘다원성(plurality)’ 혹은 ‘복수성’이다. 23) 토마스 쿤(T. Kuhn)이 제기한 정상과학의 개념 즉 하나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과학 활동의 상과는 달리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이른바 과학혁명조차도 복수의 과학 실행 체계가 점진적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었음은 전술한 바 있다( Kuhn, 1970). 역사적으로 보건대, 동서양 공히 과학은 역사적으로 복수의 이론 체계와 실행 방식이 파생되고 변화해 왔으며 현재의 과학도 다원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Daston & Galison, 2007; Hacking, 1983; 142-144.). 어떤 학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전체주의 및 국가주의가 이입될 수 있는 획일주의와는 다른 다원주의적 과학의 상을 전망하기도 한다( 장하석, 2014: 378-414). 24) 질병과 몸을 다루는 의학의 경우 인체 시스템의 중층성과 복잡성, 질병 정의/분류의 문화 의존성 그리고 통제 실험의 난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보편적인 하나의 접근방식이 존재한다는 근대주의자들의 신념과 달리 의학의 실행 양태는 정밀과학 분야보다도 훨씬 중층적이고 다원적이다( Noble, 2006; 2018; Collins & Pinch, 2005). 현재의 생의학 및 한의학만 보더라도 각기 다양한 형태의 실행 양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환경의 변화와 필요에 따라 외부 자원, 지식, 연결망을 포섭하고 자신을 재정의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상호 경계가 흐린 경우가 적지 않다( Lei, 1999). 이런 까닭에 단일하고 전형적인 의학 형태를 염두에 둔 질문 이를테면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혹은 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적절한 맥락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단순한 이항논법의 오류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
셋째는 ‘연결성’ 즉 지역을 가로지르는 교류 및 연결(trans-local interconnectedness)의 세계상이다. 전술했듯이, 대항해 시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인간, 사물, 도구, 지식, 관념, 텍스트 등이 국경을 포함해 지역 간 경계를 넘나들어 이동하고 지식과 경험이 변형, 재해석, 생산, 소비되면서 새로운 과학 활동이 창출돼 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보다 이른 시기부터 유럽 지역이 동방국가, 이슬람, 중국, 인도 등과 지속적으로 연결되고 상호 교류해 왔었고,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지역 등과 과학 지식 및 사물이 일방향이 아닌 여러 방향으로 교류하는 방식으로 지리적 경계를 넘어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 Zhen & Cai, 2004; 廖育群, 2001/2; 陈明, 2005; Buell, 2007; Köhle, 2016; Barnes, 2005; Mungello, 1989; 朱謙之, 2003; 라이프니츠, 2003). 이 과정에서 토착지식과 외래지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관되는데, 이때 만들어진 지식 및 실행은 대개 혼종성(heterogeneity)을 띤다. 이러한 사실은 관행적인 일국사 및 동서양 등 권역별 시야와 지리적 경계를 넘어 좀 더 확대된 지역을 하나의 분석 단위로 하는 역사서술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러한 접근법은 배타적이고 번역 불가능한 고유성이 이를테면 유럽이나 중국 문명에 존재하며 이것이 주변으로 전파됐을 뿐이라는 일면적이고 상투적인 그림과는 다른 역동적인 의학 지형을 보여줄 수 있다. 25) 이러한 다중심성, 다원성, 연결성의 세계상은 동아시아 지역의 전근대 및 근현대 의학사를 기술하는 방식 가운데 대표적이었던 비대칭적이고 위계적인 중심-주변 설명모형에서 탈피해야 함을 의미한다.
넷째는 근대/과학에 이르는 역사 궤적의 ‘다양성(diversity)’이다. 역사는 이미 정해진 하나의 정점 즉 이른바 “근대”로 수렴해가는 선형적 과정이 아니다. 앞서 논의했듯 이른바 “근대”로 지칭되는 근대적 양상도 다양할 뿐 아니라, 그 근대적 양상에 도달하는 방식과 경로도 사회문화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역사는 다단한 궤적을 밟는다. 이런 사실은 근대로의 역사적 경험이 유럽에 유일하고, 문화적으로 보편적이라는 역사관을 수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과학에도 마찬가지여서, 현대의 과학기술 및 의학에 복수의 상과 활동이 존재하고, 특히 이러한 현대 과학 활동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는 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내외의 지적, 문화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서구와는 다른 나름의 방식으로 과학 실행 체계를 만들어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김근배, 2016). 흔히 받는 질문은, 전통적으로 서양은 과학이 발전한 반면 동아시아는 과학이 아닌 기술이 발전한 것이었으며, 동아시아 문명은 사변적이고 보수적인 유교의 한계 때문에 진정한 과학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근대로의 전환기 서양 문명에 포섭될 수밖에 없었지 않았냐는 것이다. 26) 하지만 실제로는 유럽에 등장한 이른바 근대 과학적 사유는 19세기 초까지도 소수의 학자들에만 그쳤으며, 동서양 공히 과학과 기술은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서로 분리되어 있었고, 통념과 달리 서양의 신학이나 동아시아의 유학 모두 과학 발전을 촉진한 측면이 적지 않다. 또한 일본이 19세기말 일찍부터 근대화를 성취했다는 점에서 단지 이삼십 년만을 제외하고 동아시아인들도 근대 과학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오늘날의 경제적, 과학적 성취를 이뤘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동아시아 과학사에 대한 그간의 일반적 인식은 유럽에 편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근대 및 과학에 이르는 역사적 궤적은 다양하며, 그 가운데 선험적인 범례는 없다. 27)
이러한 그림의 세계상은 이항논법과 그 근저를 이루는 유럽중심주의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사건을 맥락화 하고 이에 접근할 것인지 이에 대한 논의는 더 진척돼야 한다.
4. 동아시아 의학사 서술 방법론 탐색
그 접근방법론으로는 우선 행위자를 역사 무대에 복귀시키고 동아시아 과학/의학 전통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앞서 비판적으로 검토한 외재자의 분석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의 주체를 논의의 장에 복원시켜, 당시 이들이 인식한 현안과 설정한 의제는 무엇이었고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나갔는지, 그리고 해법으로서 그러한 활동의 실질적인 기능, 사회문화적 맥락 그리고 역사적 의미 등에 대해서 좀 더 주목해야 한다. 28) 예를 들면, 18세기 수학 저술인 『주해수용(籌解需用)』의 경우, 저자인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이 당시 최신 서양 수학 이론을 제대로 소화해서 소개하지 못했다는 현재주의적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서양 수학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홍대용이 우주의 물리적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수학적 기초를 다지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자신이 전망했던 “무한우주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저술한 것이었다( Hong, 2019). 다시 말하면 당시 세계관과는 질적으로 달랐던 “무한우주론”을 구체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천체 관측 및 계산과 관련된 수학적 접근법이 요구됐고, 홍대용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당시 동서양의 산법, 기기, 측정술, 수학 등을 동원해 이러한 문제를 풀어내고자 한 것이 『주해수용』이었다. 고려/조선에서 출현한 “향약(鄕藥)” 및 “동의(東醫)” 관련 의학 문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심-주변 확산모형에 뿌리를 둔 통상적 인식은 이들 의서가 중국과는 다른 의학을 지향했다거나 아니면 외려 중국 의학을 수용해 중화를 구현코자 한 것이었다는 논의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은 중국 의학을 토착화하거나 혹은 고유한 의학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부상한 윤리적, 정책적, 학술적, 의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했던 것으로 오히려 확산모형에 전제된 주변성이나 수동성과는 상반되는 다른 층위의 목표와 의제를 갖고 있었다( Yi, 2019). 29)
이처럼 역사 주체를 복원시키는 데서 나아가, 근대의 타자로만 소환됐던 “전통”이 실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연하며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비유컨대 전통은 구성원이 따르고 전수해야 하는 고정된 규범이나 신념의 집합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이나 공동체가 자신을 구성할 때 필요한 일종의 “조리법(recipe)”과 같다고 할 수 있다( Harris, 2005: 14-17). 조리법은 현실적 조건의 변화나 구성원의 취향에 따라 재료, 양념, 풍미를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이들 사이에서 시비나 위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30) 사례가 보여주듯이, 어떤 집단이 자신들의 의학을 구성하기 위해 선택한 조리법으로서의 “의학전통”은 역사적 우연성에 따라 계속 변신하며 다른 조합과의 타협, 교환 혹은 융합이 가능한 것이었다( Scheid, 2007).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의학은 역사가들에 의해 아직도 “전통의학”으로 지칭되며 흔히 근대전환기 과학으로 대체된 과거의 의학으로만 서술되거나, 31) 아니면 앞서 언급했듯이 여전히 정형화되고 화석화된 의학으로 표상함으로써 사실상 죽어있는 의학으로 기술해 왔다. 32) 이러한 서술과 달리, 동아시아 의학의 학자 및 의사들은 타자와도 교섭하면서 고전의 원칙과 선학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현실의 경험을 접목시킴으로써 지속적으로 의학혁신을 이뤄 왔다. 예를 들면, 16-17세기 이후 고증학의 출현 등 동아시아 지성사의 내재적 맥락 아래 전래의 문화적 유산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학혁신 이를테면 명청대 명문학설(命門學說) 및 온병학(溫病學), 청대 해부학에 대한 연구, 조선후기 사상의학(四象醫學) 및 부양론(扶陽論), 에도시대 고방파(古方派)의학 등의 새로운 의학 사상 및 실행을 등장시켰다( Scheid, 2013; 2017; Trambaiolo, 2015; Wu, 2015; de Vries, 2012; 신규환, 2012). 또한 19세기 후반 이후 현재까지도 동아시아 의학은 전래의 문헌전통은 물론이고 임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생의학 및 과학적 접근법 등과 지속적으로 교섭하고 결합함으로써 유연하게 변신해 왔다( Lei, 2012; 2014; Scheid, 2002; Kim J., 2005; Kim T., 2016; Lee, 2016). 의학전통에 대한 이러한 재인식은 그 동안 중심-주변 틀에 내재된 주변성, 충격-대응 모형에 전제된 수동성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동아시아 의학 전통을 제대로 살피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동아시아 의학사 서술 대상의 범위 및 범주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우선 동아시아 의학의 흐름과 전체적인 양상을 살피려면 특정한 시공간에 한정된 사례 연구뿐 아니라 비교적 긴 시간을 포괄하며 여러 지역의 사건을 함께 조망해볼 수 있는 연구도 요구된다. 특히 동아시아 의학을 하나의 역사서술 단위로 부상시킬 필요가 있다. 33) 그간의 동아시아 관련 의학사는 대개 중국의학사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고, 한국이나 일본 관련 사건도 함께 다룬 연구가 없지는 않지만 전근대 시기 동아시아 의학사를 다룬 글 대부분은 지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각 지역은 크게는 의학고전을 공유할 뿐 아니라, 의학 관련 지식, 담론, 실행이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체 지역을 포괄해서 상호 조명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임에도, 그동안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지식의 기원 및 전파란 관점에서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다뤘을 뿐이다. 34) 이런 까닭에, “동아시아 의학”을 중국의학, 티베트 의학, 베트남의학, 일본의학, 한국의학 등으로 구성된 의학 활동의 총체 다시 말하면 지역 경계를 넘나들며 상호 연계된 의학 실행들로 구성된 일족으로 정의하고 이를 토대로 동아시아 의학사를 서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35) 이러한 접근법은 그간 중국사 중심의 혹은 일국사 시야의 한정된 의학사 서술을 넘어 서사의 구조 및 내용을 풍부하게 할 수 있어서 동아시아 의학사의 다양한 지형을 더욱 잘 드러내는 데 유효하다. 36) 이러한 효과는 역사서술의 대상과 범위를 제도, 이론, 학파, 기원, 계보 등에서 나아가 최근 학계의 주목을 끄는 쓰임, 실행, 도구, 약물, 행위자 등으로까지 확장할 때 더 잘 드러날 것이다. 37) 이러한 확장은 그간의 위계적이고 이분법적인 서사를 넘어 동아시아 의학사의 다른 지형에 도달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이상 제시한 (어떤 의미에서) 원칙론적인 접근방식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실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동아시아 의학사의 지형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선 이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동아시아 의학을 초역사적인 요체를 들어 규정하지 말고, 열린 형태 즉 여러 질문과 개념으로 구성된 어떤 실행 체계라고 보고 그 구체적인 질문들을 검토해 봄으로써 동아시아 의학의 특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38) 동아시아 의학 관련 문헌 및 사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대개 의학[醫], 몸[身], 질병[病], 처치[治], 지식[知], 인간[人] 등의 범주에 상호 걸쳐있는 것으로, 그 질문들을 대략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의(醫): 의학/의료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의학/의료에서 요항은 무엇인가? 의술의 한계는 있는가? 의사의 전문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람직한 의사는 어떤 이를 말하는가? 의학의 문화적 지위는?39)
•몸[身]: 몸/세계를 이루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 요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연계되어 작동하고 변화하는가? 몸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상적인 의학적 몸은 어떤 것인가?40)
•병(病): 질병은 무엇인가? 질병은 왜 생기는가? 질병을 어떻게 분류하는가? 질병을 진단하는 기법/도구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기후, 풍토, 체질과 질병과의 관계는 어떠한가?41)
•치(治): 질병을 다스리기 위한 방식은? 치료의 목적은 무엇인가? 의학적 효과를 내는 것은 무엇인가? 구체적 개입을 위한 전략, 기술, 도구, 논리는 무엇인가? 이의 역사적 전개 과정은? 약물이 의료와 만나는 방식은 어떠한가?42)
•지(知): 의학 지식의 원천은 어디서 오는가?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지식은 어떻게 검증하는가? 지식의 정당화 기제는? 지적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지식의 전수가 이뤄지는 방식은? 텍스트의 지적 지위, 해석 전략 그리고 임상실천과의 관계는? 의학전통은 어떻게 이어지는가?43)
•인(人): 환자-의사의 대면 양상은 어떠한가? 이들 사이의 권력 관계는? 환자-의사 간 행동 규범과 이때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는 무엇인가? 의사의 사회적 지위는?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는 기준은? 의약(醫藥)을 매개로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망의 양상은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들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실행 체계로 동아시아 의학을 다시 정의하고 이에 더하여 사회문화적, 시대적 맥락을 함께 본다면, 이분법의 서사가 그렸던 것과는 다른 동아시아 의학사의 다양한 지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위의 각 질문에 대한 행위자들의 풀이 방식은 대개 서너 가지 해법들 사이의 어디에 속한다. 질병 원인과 관련해서는 환경과의 조화가 깨졌거나, 외부의 어떤 것이 침입하거나, 물리화학적 외상을 입거나, 인간관계 및 감정의 편착 때문이라고 설명하거나 아니면 병인은 전혀 따질 필요가 없다고 보는 등 여러 설명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 치료 양식의 경우도 이를테면 물질 빼내기, 깨진 것 고치기, 어떤 것 넣기, 조절하기, 통하게 하기 등 다양한 개입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시는 소위 ‘기(氣) 일원론’이나 ‘변증논치’로 단순화할 수 없는 동아시아 의학의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준다. 또한 위의 질문들은 타 의학 체계에도 적용될 수 있어서 서양의학과 생의학을 포함해 세계 다른 지역의 의학을 대상으로 동아시아 의학과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함께 논의하는 데도 유용하다. 위의 질문들은 역사적으로 늘 균일한 관심도를 갖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문화적, 경제적 국면 속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앞 시대와는 다른 의학 실행 방식을 낳곤 한다. 동아시아 의학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면 이를 출현시켰던 사회문화적 조건과 역사적 맥락 그리고 의사학적 의미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좀 더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실행 방식은 특정한 사조 즉 문화적이고 이념적인 시대적 조류 속에서 배태된 경우가 많다. 44)
그렇다면 동아시아 의학사의 지형 즉 개별 실행 양상들을 구체적으로 포착하고 이들을 구조화해서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분석틀로는 무엇이 적당한가? 이를 논하기 위해서는 과학 활동의 특성을 분석하고 조망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했던 선행 연구들을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문화사적 설명법이다. 예를 들면, 고대 중국과 고대 그리스의 과학/의학 활동의 특성과 차이점을 기술하고, 그 특성이 특정한 사회문화적ㆍ지적 환경에서 배태된 것이었음을 보이는 방식이다( Lloyd & Sivin, 2002; Kuriyama, 2002). 문화사를 내세운 이러한 설명법은 유럽인들이 경험했던 역사가 문화적으로 보편적이라는 유럽중심주의를 불식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종종 상호 소통 불가능한 본질이 존재한다는 문화적 본질주의를 지지한다며 비판받기도 한다. 45) 또 하나는 인식론적 서사방식으로 이를테면 과학/의학이 작동되는 방식을 개념화하고 그 변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46)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쿤의 패러다임 이론의 경우, 과학 활동에서 형식논리나 이론 자체보다도 과학자 집단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근대과학의 진보성과 합리성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그가 제시한 패러다임 간 공약불가능성 및 혁명적 대체 그리고 그에 따라 부상한 혁명 중심의 단절적 역사관에는 이론의 여지가 적지 않다. 과학사 특히 동아시아 의학사의 사례는 이에 반하기 때문이다. 47) 다른 하나는 실행을 중심으로 인간 행위자는 물론 사물이나 연결망 등 비인간 행위자의 시선에서 과학 활동을 기술하는 것이다. 48) 이와 같은 서술방식은 실행, 도구 등으로 연구자의 시야를 확대시켜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포함해 현대 과학 활동을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접근법을 제공하지만, 동아시아 의학의 구조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이점이 있는지는 과제로 남는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문화상대주의, 문화본질주의, 혁명/단절 중심의 역사관을 넘어 역동적인 동아시아 의학의 특징을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어떤 것일까?
이들 선행 연구자들의 논의에 영감을 얻어 동아시아 의학이 실행되는 여러 방식 및 그 방식들의 흥미로운 전개 과정을 거시적으로 논하기 위한 하나의 분석틀을 구상해 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서, 개념, 인식 혹은 기법의 변화 과정을 살펴본 선행 연구 중 몇 가지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과학사가 대스턴과 갤리슨은 과거 400여 년간 서양 과학 실행을 추적해서 과학의 대표적 표지인 ‘객관성’이라는 개념을 역사화 하면서 과학 실행 양상의 중층성과 복수성을 논증했다( Daston & Galison, 2007). 주로 도상을 중심으로 분석했던 이들은 과학적 자아를 중심으로 산출된 화상(畫像), 실천 양상, 관찰자의 시선 등을 비교 범주로 삼아, 시기별로 새로운 과학 실행 방식이 출현해서 현재는 복수의 과학 실행 체계가 공존한다는 것을 보였다. 49) 서양과학 외에도 중국의학이나 서양의학을 유사한 접근방식을 동원해 분석한 연구도 찾아볼 수 있다. 50) 이들의 논의 방식이 흥미로운 것은 과학 활동을 특징지을 수 있는 요소 몇 가지를 표지로 삼아 그 실행 방식을 종합해 내고 그 변화 과정을 흥미롭게 기술해냈다는 점이다. 이처럼 구상화된 실행 방식을 동아시아 의학사에서도 포착해낼 수 있는데, 이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나는 ‘실행 스타일(Styles of Practice)’이 적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스타일(Style)’이란 용어는 이미 미술사와 과학사 분야에서 일부 쓰이고 있던 용어다. 51) 인상파 혹은 입체파 화가들이 선험적 규범을 전제하지 않고 풍경 속의 나무를 나름의 스타일로 그려내듯이, 용어 ‘스타일’은 자연의 진리를 지시한다기보다는 자연을 표상하고 이해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최근에는 선형적, 발전론적 역사관을 불식시키기 위해 시기별 혹은 분야별로 나눠 과학의 역사를 서사했던 그간의 관행을 벗어나 이를 ‘스타일’ 중심으로 나눠 서술하기도 했다. 52) 결론적으로, ‘실행 스타일’은 그간의 목적론적, 선형적, 위계적, 단절적, 본질주의적, 상대주의적, 이분법의 역사관을 지양하며, 앞서 언급한 실행 체계로서 동아시아 의학을 구성하는 질문들 및 개념들 그리고 그 상호관계 속에서 동아시아 의학의 구조적 특징을 읽어내어 서술하는 기반이자 분석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53)
이상 제시한 접근방식은 역동적인 동아시아 의학의 새로운 지형들을 탐색하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이로써 의학사의 지평을 넓히고 미래 의학을 전망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질병을 파악할 때 어느 곳에 주안점을 둬야 하는지에 따라 분류해보자면 아마도 우주론적인 조화, 인간의 체질적 특성, 관찰 가능한 증후, 검사실/연구실의 데이터, 물질/체액의 동역학 등에 시선을 두는 실행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의학을 정당화는 방식을 중심으로 보자면, 고전 텍스트, 특정한 성현, 경험의 역사, 과학적 객관성, 의사의 배경 등등에 지적 권위의 원천을 두는 각기 다른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학적 몸 또한 감응하는 몸, 감정의 몸, 내장이 없는 몸, 독(毒)으로서의 몸, 분석 가능한 계량의 몸, 체액이 순환하는 몸, 기계의 몸으로 나눠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구체적으로 구조화하고 논증하는 것은 연구자의 몫으로 남지만, 이러한 다양한 실행 스타일의 사례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등장한 것으로 역동적으로 변신해 왔던 동아시아 의학사의 지형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여러 갈래를 이룬 지형은 그간의 유교/유의(儒醫), 학파/이론, 계보학, 단절/혁명, 모더니즘 중심의 서사가 보여줬던 그림과는 다르다. 지금까지도 조선시대 의학적 몸이나 질병에 대한 복잡하고 중층적인 관념과 치유방식을 유교라는 사상 혹은 이른바 “전통적” 치유문화로 단순하게 포괄한 후, 이들이 (역시 단일한 것으로 상상하고 있는) 근대적인 신체관 및 질병관 혹은 “과학”으로 20세기 초에 대체됐다는 서사가 일반적이었다. 54) 마찬가지로, 같은 학파에 속하거나 이른바 유의라는 부류에 귀속시키더라도 개별 학자나 의사의 지적 태도, 의(醫)에 대한 관점, 지적 태도 등 실행 스타일이 적지 않게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특히 중국의학사의 경우) 계보 중심의 평면적인 학술사를 쓰는 데 그쳤다.
다음 마지막 절에서는 모두에서 제시했던 “서양은 해부, 동양은 기(氣)”라는 상투적 언설을 넘어 동아시아 의학사의 지형에서 이른바 해부학을 어떻게 위치 지워야 정당한 것인지 논의하고자 한다. 이는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지금까지 제시한 주장들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해부를 든 이유는, 의학사에 한정할 때, 뿌리 깊은 이항 논법의 대표적 사례로 여전히 거론되는 것이 서양의 해부학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독자는 지금까지의 논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문할지도 모른다. “19세기 이전 동아시아에 해부학 전통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근대 이후의 상황은 이와 다른 것이 아닌가? 근대라는 시기에 의학적 몸이 과학적 몸과 기타 철학적, 윤리적 몸 등으로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서양의 근대의학은 과학적 몸 즉 공간과 물질에 시선을 집약한 반면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은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는 바로 동서양 이분법의 해석틀이 작동하는 지점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식의 기술 역시 근현대 의학사의 그림을 지극히 단순화시킨 것으로, 이제 다음 절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듯이 역사적 사실에 반한다. 여러 지역/국가 및 다양한 역사 행위자의 관점에서 그리고 담론 층위를 넘어 실행 층위에서 역사를 살펴보면, 동서양 공히 이분법의 서사와는 달랐던 복수의 의학 지형, 여러 갈래의 역사 궤적, 그리고 다양한 교섭 양상이 드러난다. 55)
5. 동아시아 해부학 위치 짓기
우선, 해부학과 관련된 일반적 인식 역시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편향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태도의 변화가 필요함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종종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인체도 이를테면 내경도(內經圖)를 일러 유비에 지나지 않는 상징이라고 일축하면서, 기계나 공장으로 묘사한 서양의 인체도에 대해서는 외려 과학이란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비슷한 인체 유비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모더니즘과 유럽중심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다. 56) 일본 해부학의 선구로 알려진 『장지(藏志)』(1759)를 저술한 야마와키도요(山脇東洋, 1706-1762)와 역시 인체 해부도를 다룬 『의림개착(醫林改錯)』(1830)을 지은 청대 왕청임(王清任, 1768-1831)은 서양 해부학의 영향을 받아 당시 주류였던 동아시아 의학을 비판했다거나 혹은 특히 왕청임의 업적은 단지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라고 치부돼 왔다. 하지만 『장지』의 경우 난학이 일본에 들어 오기 이전 고증학(考證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사상사의 내재적 맥락 속에서 이뤄진 의학혁신의 결과물이었고( Trambaiolo, 2015), 『의림개착』 같은 저작물이 평지돌출한 듯 보이지만, 고증학의 지적 분위기 속에서 서학의 영향을 받아 인체의 구조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집단이 19세기 전반 중국에 이미 형성돼 있었던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Wu, 2015). 또한 널리 회자되는 해부학 번역서 『해체신서(解體新書)』(1774)를 냈던 스기타겐파쿠(杉田玄白, 1733-1817)는 한방의학을 비판하고 난학을 소개하고 보급하는 데 앞장선 인물로만 알려져 있지만, 말년에는 서양의 해부학이 치료나 임상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며 다시 한방의학 즉 동아시아 의학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57) 이는 두 의학을 대립적이고 단순한 혁명적 전환 관계였다고 보는 근대주의자의 관점과 달리, 그 상호 작용은 역사 행위자들이 가용한 신구 정보와 문화적 자원을 전용하거나 융합하여 의학전통을 재구성함으로써 자신들의 현안 문제를 풀어나가는 복잡다기한 과정이었음을 시사한다. 모든 의학은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통해 작동하는 것으로 몸을 구성하는 실질 및 구조에 대한 일반적 경험, 관심, 연구 활동은 유럽만이 아니라 어느 문명권에서나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면 르네상스기 이후 유럽에서 새로 부상한 해부학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두드러진 의학 활동에 대해선 이를 필연적 역사 전개 과정에서 유럽인들만이 성취한 규범적 사건으로 기술되곤 했다. 그러한 의학 활동은 사실 유럽의 우연적인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출현한 방식의 하나일 뿐이었다. 58) 한마디로 해부학은 몸에 대한 하나의 시선이자 질병 치료를 위한 하나의 접근법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지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역사적 전개 과정은 앞서 논의한 대로 의학 실행 스타일 혹은 다원적 역사 궤적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제 예시로써 독본 형태로 해부학 관련 동아시아 자료 및 문헌을 분류해서 배치하고 이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동아시아 의학사의 지형에 해부학을 자리매김해 볼 것이다. 59) 구체적으로는 먼저 논의 범주를 ‘해부학’에서 ‘의학적 몸’으로 확장하고 동아시아 의학사의 특성에 맞도록 하위 범주와 관련 용어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인의 중심 문제 혹은 동서양의 역사적 경험을 포괄하고 이를 멀리서 조망하기 위해서는 해부학보다 상위의 개념적 범주인 의학적 몸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의학적 몸은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세부 주제 혹은 특정 시각에 따라 더 다양한 의학적 몸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이는 독립된 다른 지면을 요하는 독립된 논제이다. 여기서는 대신 독본에서 다룰 만한 간략한 분류방식을 취해, 의학적 몸을 “공간지형학의 몸”, “우주론적 몸”, “감정의 몸” 그리고 기타로 간단히 나눠보고자 한다. 60) 여기서 해부학과 직접 관련 있는 항목은 “공간지형학의 몸”이다. 동아시아 의학문헌을 살펴보면 인체 구성물의 형상적 특징, 공간적 배치, 구조적 관계, 그리고 물질 변화 및 이동 등을 다룬 내용이 많은데, 이를 포괄하기 위한 용어로 나는 ‘해부학’ 대신 ‘공간지형학(Topology)’이란 말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61) 그 까닭은 서양의 문화적 색조가 강하게 배어있는 개념적 용어인 ‘해부학’이나 ‘구조와 기능’이란 말의 간섭을 피해 동아시아 의학을 서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62) 이는 규범으로서 ‘해부학’과 관련된 근대적 맹아를 동아시아 의학에서 찾고자 했던 근대주의자의 접근법과 달리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이른바 ‘해부학’을 역사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아래 목록은 의학적 몸의 유형을 ‘공간지형학의 몸’, ‘우주론적인 몸’, ‘감정의 몸’ 및 ‘기타’로 분류하고, 각각 이를 예시할 수 있는 관련 자료를 제시한 것이다. 전체적인 그림을 조망하기 위해서 다루는 기간은 근현대를 포함해서 넓게 잡고 지역 역시 가능하면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다 포함하고자 했다. 근현대를 포함한 이유는 죽어있는 ‘전통의학’이 아닌 역동적인 ‘의학전통’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또한 “동양은 문화/철학, 서양은 과학”이라는 인식을 효과적으로 불식시키고 논의의 초점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가급적 의학 관련 문헌을 중심으로 예시를 골랐다. 63)
■ 공간지형학의 몸 『黃帝內經』「靈樞」(기원 전후) (骨度/平人絶穀: 장기 계측); 楊介, 미상(12C) (내부 장기 도해, 「存眞環中圖」); 미상, 「九想圖」 (13C) (不淨觀: 人體屍身의 변화); 朱橚(1361-1425), 『普濟方』(1390) (骨孔穴法); 미상, 『治腫指南』(16C) (外科/治腫); 張介賓(1563- 1642), 『類經附翼』(1624) (命門, 三焦, 心包); 柯琴(17C), 『傷寒來蘇集』(1669) (치료의 토대로서 인체의 물리적 구획 공간); 葉桂 (1667-1746), 『臨證指南醫案』 (醫案: 구조물로서 經隨의 폐색); 吳謙 외, 『醫宗金鑑』(1742) (正骨心法要旨); 高志鳳翼, 『骨繼療治重寶記』(1746) (手技法); 山脇東洋, 『蔵志』(1759) (解剖學); 多紀元德(1755-1810), 『廣惠濟急方』(1790) (手技法/傷科); 加古良玄, 『折肱要訣』(1810) (整骨術); 胡廷光, 『傷科彙纂』(1815) (傷科/接骨); 王清任, 『醫林改錯』(1830) (해부학: 癱痿論/補陽還五湯); 王士雄(1808-1866), 미상 (兪正燮의 고환); 朱費元(18-19C), 『瘍醫探源論』 (外科); 周學海(1856-1906), 『讀醫隨筆』(1891) (形氣類: 생리적 과정의 근거로서 구조물); 李濟馬, 『東醫壽世保元』「臟腑論」(1894) (四焦: 구획, 물질, 흐름); 이학로, 『한의학 순환구조론』 (1999) (물리적 공간 내 물질의 순환).
■ 우주론적인 몸 『黃帝內經』「素問」(기원 전후) (감응하는 몸); 許浚(1539-1615), 『東醫寶鑑』「人身之說」(1613) (대우주-소우주 상관관계); 錢乙 (1032-1113), 미상 (우주론적인 몸); 趙獻可(1573-1664), 『醫貫』 (1617); 惲鐵樵(1878-1935), 미상, (四時五行과 인체; 서양은 해부학); 黎有晫(1720-1791), 『海上醫宗心領』(18C) (八卦, 臟腑); 張顯光(1554-1637), 『易學圖說』「人身之圖」.
■ 감정의 몸 및 기타 李濟馬(1837-1900), 『東醫壽世保元』(1894) (感情/性情의 몸); 祝味菊(1884-1951), 『病理發揮』(1931) (器質의 몸과 官能의 몸); 許浚(1539-1615), 『東醫寶鑑』(1613) 「人身之說」 (形象의 몸); 미상, 「內經圖」 (內觀의 몸).
‘공간지형학의 몸’에 대한 위의 예시에 간단한 설명을 붙이면 이렇다. 물질로서의 몸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었을 테지만, 진한대 이전 동아시아인의 의학적 사유 및 경험이 담겨있는 『황제내경』「영추(靈樞)」에는 (서양의 경우와 비교해 보건대) 일찍부터 내부 장기에 대한 ‘계량적’ 접근을 시도했던 의학전통을 찾아볼 수 있다. 64) 손발로 직접 대처할 수밖에 없었던 침구(鍼灸), 상과(傷科), 치종(治腫), 정골(整骨), 추나(推拿), 검시(檢屍), 구급(救急), 태산(胎産), 군진(軍陣) 등의 의학 분야는 몸의 물리적 구조와 배치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요하는 분야다. 예를 들면, 조선 중기의 『치종지남(治腫指南)』(16세기), 에도시대의 『광혜제급방(廣惠濟急方)』(1790), 청대의 『상과휘찬(傷科彙纂)』(1815) 등에 등장하는 도판, 묘사, 도구, 기법 등은 당시 의학 전문가들이 인체 구성물의 형상적 특징, 구조적 관계, 공간적 배치, 정성적 변화 등에 정통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65) 청대 가금(柯琴)이 저술한 『상한내소집(傷寒來蘇集)』(1669)에서도 인체의 장기를 물리적 공간으로 구획하고, 각 구획 간 공간적 배치와 구조적 관계에 대한 탐구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고전 『상한론』에 등장하는 삼음삼양병(三陰三陽病)을 십이경맥(十二經脈)이나 우주론적 원리가 아닌 인체의 물리적 부위로 재해석해서 치방(治方)을 이해한 것으로 명말ㆍ청초 의학 혁신의 대표적 사례다(Scheid, 2013). 해부술을 본격적으로 다룬 『장지』나 『의림개착』 그리고 왕사웅(王士雄, 1808-1868)의 활동에서는 물질로서의 인체에 대한 관찰 및 분석, 그리고 이에 따른 의론(醫論)의 조정 과정을 볼 수 있다. 20세기 전환기에는 서양 해부학 지식과 동아시아의 의학적 몸을 접목시키기 시작했으며( Wu, 2015; 김성수, 2012; Lei, 2012), 알려져 있듯이 20세기 전반기에는 중의학 및 한의학 종사자들은 근대 해부학의 지식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했다. 20세기 중후반에는 (침구학 관련) 중의학/한의학 교과서에 근대 해부학의 성과를 편입시켰다. 66) 20세기 말에는 육안해부학을 넘어 미시해부학 및 인체생리학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자 이를 동아시아 의학의 네트워크로 끌어들여 동아시아의 실행 지식 전반을 재해석하고 이를 임상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67) 『한의학 순환구조론』(1999)은 고대부터 이어진 동아시아 의학전통은 사실 ‘해부’와 ‘순환’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폐쇄된 인체 공간 안에서의 구조물 및 순환로의 위치 관계, 물질의 변환과 이동/출입을 중심으로 표적 물질을 처리하고 체액을 움직이는 전략이란 관점에서 동아시아 의학의 여러 이론적 개념, 처치 방식, 방제의 의미, 약물의 기전을 물질의 언어로 번역하고자 했다. 68)
이상의 예시가 보여주듯이 ‘공간지형학의 몸’은 인체의 물리적 구조, 공간적 배치, 구성물질의 변환 및 움직임 등에 초점을 둔 것으로 ‘우주론적인 몸’ 및 ‘감정의 몸’ 등과 더불어 동아시아 의학을 이루는 대표적 지형 가운데 하나다. 현재도 ‘공간지형학의 몸’ 전통은 살아있으며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간지형학의 몸’을 예시하는 사료 중 어떤 것은 우주론과 관련이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관련이 없기도 하다. 실제 의료를 담당했던 전문 의원들은 대체로 유학자들의 논리 이를테면 음양오행의 조화와 삼강오륜의 질서를 회복함으로써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언설보다는 보다 실질적인 해법에 골몰했다. 또한 학자나 의사가 우주론적 사유를 언급한다고 해서 물질로서 인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위의 사례를 보건대 의료 환경이 변함에 따라 동아시아 의학에 뿌리를 둔 여러 의학적 몸과 때로는 과학/생의학에서 유래한 몸이 공존하는 가운데 특정한 것이 더 두드러지는가 하면, 이들 의학적 몸이 서로를 전용하거나 혹은 융합하는 방식으로 상호 교섭함으로써 혁신적인 의학적 몸이 탄생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사실은 동아시아 의학이 역동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변신해 왔음을 보여준다.
위에 든 예시나 설명 가운데는 이미 관련 연구가 진행된 것도 있고 향후 구체적으로 논증돼야 할 것도 있지만, 논제의 범위 및 제한된 지면을 고려해 여기서는 일단 동서양 이분법 이를테면 “서양은 해부, 동양은 기(氣)”라는 전형적인 인식과는 다른 동아시아 의학 지형의 일단을 보여주는 선에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된 논의와 연구가 향후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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