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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Med Hist > Volume 29(1); 2020 > Article
종교적 신화와 역사적 유산: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안은 어떻게 외과 의학의 수호성인이 되었나? - 「검은 다리의 기적」에서 21세기 이식의학까지 -†

Abstract

This paper explores the heritage and the essential significance of worship of the twin Christian saints -St. Cosmas and St. Damian- in the history of medicine. These saints are well known in Western culture as one of the leading Christian saints to heal diseases, whose cults have spread to Europe through Byzantium, which have continued to spread widely to the present, starting from areas where Christianity had been proselytized. Although it is true that their life journeys have undergone many processes of embellishment and beautification over the course of time, the attributes that distinctively characterize the two saints exist apart from such mythical fabrications. This paper categoriz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two saints as being those of “professional doctors,” “ideal doctors,” and “holders of healing powers” as intermediaries of God, examining how these characteristics came to affect various medical organizations during the era when Medieval medicine was gradually transitioning toward a rational approach based on reason. In addition, it discusses how some of the practices of ancient temple medicine were transplanted into the Christian culture, the process by which it finally arrived at human doctors through the two saints, and how it affected the establishment of professional work ethics -albeit in nascent form- as their medical ethics came to be accepted and practiced by the Medieval guild of surgeons. Furthermore, the paper considers how the existence of the two saints has acquired symbolism in modern medicine, which has made remarkable progress in organ transplantation, and in particular, how it constitutes a significant part of the history of organ transplantation.
It is not easy to objectify and attach meaning to an era that was substantially influenced by myths, legends, or religious events. This is because it is easy to fall into the trap of simplifying and passing judgment on the past based on the realities of the present day, without making efforts to understand the unique circumstances and contexts of the past. This is especially the case when the distinction between “religious events” and “medical events” is ambiguous, or when dealing with a social culture where religious influence was paramount. From a broader perspective, the study of St. Cosmas and St. Damian is not concerned with the rights or wrongs of religious myths amid the advancement of medicine and its adherence to science and reason, but with the attempt at a deep and broad understanding of human diseases and human conditions of being prone to such diseases throughout life.

1. 서론

이 논문은 기독교의 두 쌍둥이 성인 코스마스(Cosmas)와 다미안(Damian)[1]이 어떻게 중세 외과 의사 동업조합(guild)의 수호성인이 되었는지 그 근원적 기원과 전개 과정, 그리고 두 성인을 현재로 다시금 소환하고 있는 이식의학의 모습을 차례로 살펴보고 그 의사학적 의미를 묻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그간 두 성인에 관한 연구는 다양한 학문과 관점 속에서 진행되어왔다. 고전 문헌학 혹은 종교 신화학의 연구들(Delehaye, 1906; Deubner, 1907; Harris, 1906; Price and Twombly, 1978)과 도상학 분야의 연구들(David-Danel, 1958a, 1958b; Harrold, 2007; Julien, 1980; Re′au, 1988[1958]; Theler, 2014)은 관련 연구의 토대 역할을 해왔다[2]. 특히 도상학 연구 중 David-Danel(1958a)은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는 자료를 집대성한 연구서로 후속 연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학술연구 중 하나이다. 두 성인의 연구들은 또한 종교 예술사나 종교 의학사의 관점에서 고대 혹은 중세의 기독교 성인과 치유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Csepregi, 2002, 2007, 2012; de Jong, 1998, 2013; Huisman, 1998). 아울러 「검은 다리의 기적」이 만들어 내는 육체와 정신, 종교와 인종 등의 복합적인 해석과 문제들을 종교 민속학이나 문화사회학의 시각에서 다룬 연구들도 있다(Barkan, 1996; Bynum, 1990, 2016; Fracchia, 2013, Jacquet, 1983). 그리고 이 논문의 참고문헌에 소개된 다양한 이식의학 문헌들 속에서 두 성인은 그 신화와 전설의 주요한 주인공으로 거의 언제나 서두를 장식한다. 특히 의사 출신 두 학자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혈액학자이자 의학사가인 더핀은 기독교 성인을 중심으로, 두 성인의 숭배와 ‘의료 기적’의 현상을 현대 의학의 시각에서 개진하며, 인간과 종교 그리고 의학이 맺고 있는 깊은 관계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꾀한다(Duffin, 2013). 또 외상 외과 의사 출신인 짐머맨은 오랜 세월 쌍둥이 성인과 관련된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수집하고 분류하여 도상학뿐만 아니라 의학사의 연구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Zimmerman, 1998, 2013)[3]. 의학사의 관점에서 두 성인을 이해하거나 비판하려는 일부 연구들도 눈여겨보아야 하는데, 이 연구들 대부분은 신화학이나 도상학의 연구결과들을 의학사의 틀 내에서 종합하는, 단편적인 조합에 머물러 아쉬움이 남는다(Conolly and Benanzio, 2007; Hernigou, 2014; Rutt, 1994; Schechter, 1968; Schlich, 1995; Zimmerman, 1936). 이 논문은 파편화된 일단의 연구를 종합하고 이를 의학의 역사 속에서 긴 호흡으로 짚어보려는 하나의 작업이다. 그동안 의학사의 흐름 속에서 두 성인에 대한 사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려는 시도가 부족했기에, 두 성인의 역사적 삶에 연속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신화와 전설, 혹은 종교적 신앙이 많은 영향을 미치던 시대를 객관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쉬운 일은 아니다. 서구 중세시대에 “코스마스와 다미안에 대한 숭배가 경이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것은 치유에 대한 중세적 믿음을 반영한다.”(Riddle, 1974: 166) 과거의 고유한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의 노력이 없이 오늘의 현실에서 재단하여 단순화하는 함정이 있음을 유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적 사건’과 ‘의학적 사건’의 구분이 모호하거나 혹은 종교의 영향력이 지대한 사회 문화를 다룰 때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이는 단지 중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보통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종교적 영향력이 쇠퇴했다고 믿는 17세기와 18세기의 사회 역시 여전히 뿌리 깊게 기독교적이었고, 의학에 대한 영향력도 상당했다(Belmonte, 2009). 아울러 ‘전설’이라는 설화를 통해 특정 인물의 사실적인 전기(傳記)를 살펴본다는 일도 상당히 난감한 일이다. 대략 숭배가 이루어진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세 가지 버전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두 인물의 삶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이 없다. 현재 가장 널리 수용된 내용은 아라비아 버전인데, 이것이 두 성인에 대한 서구 기독교 사회의 숭배 현상의 바탕을 이룬다(Zimmerman, 1936: 161-162; Danilevicius, 1967: 1021; Price and Twombly, 1978). 본 연구의 중심도 여기에 두고 있다. 두 성인의 생몰과 ‘의사’로서의 행적은 특히 대표적 성인집인 야코부스 데 보라기네(Jacobus de Voragine, 1230-1298)의 『황금 전설(Legenda aurea · The Golden Legend)』[4]에 실려 있는데,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두 사람은 3세기 소아시아(Asia Minor) 실리시아(Cilicia)의 에게아(Aegea) 시(市)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귀족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그리고 의사로 교육을 받고 자라 무료 의술을 펼쳤는데, 그 대상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까지 포함되었다. 그리고 디오클레티안(Diocletian, 284-305) 황제가 통치하던 287년, 기독교 박해로 순교하였다[5]. 이 간략한 요약의 핵심은 이들이 의사로 교육을 받고 의사로 살다가 순교하였다는 점이다. 두 성인의 특징 중 하나는 의사로서 그 숭배 현상이 매우 오래되고 지리적으로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해럴드에 따르면 6세기에 이미 코스마스와 다미안 쌍둥이 의사는 대중적으로 매우 알려진 치유자였고, 그 숭배는 메소포타미아, 갈리아,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이탈리아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또한, 두 성인의 유보(遺寶, relic)는 시리아 북부의 알레포(Alleppo) 근처의 키루스(Cyrrhus),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에게아, 로마 및 투르(Tours)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숭앙받는다(Harrold, 2007: 26). 그리고 특히 중세에 이르러서는 숭배 현상이 유럽 전체에 걸쳐 더 빠르게 확대되었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를 아우른다(Nebojs ˇa and Theologou, 2015: 329; Zimmerman, 1936: 164)[6]. 그리고 현재도 기독교가 전파되어 정착된 지역에서 여전히 쌍둥이 성인을 기리고 있다[7].
그런데 중세와 르네상스를 포함하는 근대이전의 의학의 일면을 살펴보는 일은 종종 부정적인 시각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해밀턴의 지적처럼 “기적과 마법의 시대”의 영향력은 중세를 거쳐 거의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특히 이식의학의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Hamilton, 2012: 9). 그렇지만 해밀턴의 지적이 의학의 역사 속 특정한 시기가 온전히 정태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술의 발전이 조직된 힘과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배태된다고 할 때, 이 ‘기적과 마법의 시대’에 인간 의사들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역동적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어둠 속에 있던 의학에 두 성인은 역설적으로 빛이 되어 주었고, 무엇보다 그 빛을 ‘빛’으로 활용한 주체는 특히 외과 의사들이었다.
본문에서 간략하게 언급하겠지만, 종교의 역사 속에서 ‘수호성인’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고 제도화가 된 시점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두 성인이 특히 외과 의학의 역사 속에서 수호성인으로 특별한 지위를 얻을 수 있었던 조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석의 다릿돌이 좀 필요하다. 아래에서 본 논문은 1장에서 3장에 걸쳐 두 성인의 특징을 세 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논의를 이끌고자 한다. 첫째, 의사 교육을 받은 ‘전업 의사’, 둘째, 역할 모델로서 ‘이상적인 의사’, 셋째, 신의 중개자로서 ‘치유의 성의(聖醫)’ 등으로 구분하고, 이러한 특성들이 당시의 의학이 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 의술로 점차 나아가려는 시점에 어떻게 다양한 의료 조직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물론 이 특성들은 마치 ‘삼위일체’마냥 쌍둥이 성인을 하나의 단위로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또 이 논문은 고대의 신전 의술의 일부가 기독교의 문화 속으로 이식되고 두 성인을 거쳐 마침내 인간 의사에게까지 이르는 과정, 또 이들의 의료 윤리가 중세 외과 의사 동업조합에 수용되고 실천되면서, 비록 초기적 형태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전문직업인의 직업적 윤리와도 결부될 수 있는지 논급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의 목적이 수호성인과 외과 의사 동업조합의 관계가 일방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래에서 살펴볼 동업조합의 역사는 ― 특히 파리 생콤(St. Côme) 동업조합의 경우 ― 외과의들이 종교적 영향력이 지대했던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하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고양하고 대학 의학부의 내과 의사(physician)들에 대항하기 위해 어떻게 두 성인을 ‘도구화’하였는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논의를 거친 후, 본 논문은 궁극적으로는 장기이식이라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현대 의학 속에서 이들의 존재가 어떻게 상징성을 획득하고 특히 (이식) 외과 의학 역사의 일부를 유의미하게 구성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본다.
의학과 신화에 대한 폴쉐드의 의견을 듣자면, 현대 의학이 인간의 오랜 신화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믿음을 줄 만큼 변혁과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학은 단순히 지식과 기술의 문제만이 아니라, 또한 ‘인간을 돌보아야 한다’라는 인간의 문제라는 점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포스트 휴먼을 꿈꾸는 우리의 욕망과 담론 그리고 행위 속에서 인간의 상상계 작용은 여전히 꿈틀거린다는 것이다(Folscheid, 2008). 코스마스와 다미안에 관한 본 연구는 과학과 이성을 표방하는 의학의 발전 속에서 종교적 신화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질병과 그 질병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깊고 폭넓은 이해를 하고자 하는 데에도 있다고 할 것이다.

2. 치유의 성의(聖醫)

2.1. 천상의 쌍둥이 혹은 신화의 시작

전래하는 코스마스와 다미안의 이야기 속엔 많은 전설과 이교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그래서 두 성인의 숭배가 확대된 데에 기독교 이전 이교도 신화의 역할이 상당하다. 특히 두 성인이 지닌 ‘쌍둥이성’이라는 외형적 특징은 그 자체로 확장력이 강한 신화적 자질이다. 물론 기독교의 성인 중에도 많은 쌍둥이가 있지만(Re′au, 1958: IX), 대부분 두 성인이 지닌 직업적 ‘특질’과 관련이 없고 이들의 종교 신화적 비중에는 미치지 못한다. ‘천상의 쌍둥이(Heavenly Twins)’ 혹은 ‘신성한’ 쌍둥이[8]에게 치유의 능력을 부여하는 성향은 인류의 특정 문화나 문명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다. 리그베다(Rig-Veda)의 치유의 신 아슈빈스(Ashvins), 고대 그리스의 디오스쿠로이(Dioscuri) 등은 이 중 잘 알려진 쌍둥이 신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디오스쿠로이, 즉 ‘제미니(Gemini)’라 불리는 쌍둥이자리의 주인공 카스토르(Castor)와 폴룩스(Pollux)는 기독교 두 쌍둥이 성인과 빈번하게 연계된다(Delehaye, 1906: 215-216; Harris, 1906: 53-54, 96-104; Hankoff 1977 혹은 Zimmerman, 1936: 162). 이는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안의 전설이 결국 그리스의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화를 기독교적으로 전승한 것이라는 해석과 결부된다. 콘스탄티노플에 세워진 두 기독교 성인의 교회도 본래 디오스쿠로이의 신전이었으며, 기독교의 전래 이후 환자들은 전에도 늘 해왔던 그대로, 이제는 교회로 변한 곳에 와서 기도하고 치유를 기원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천상의 쌍둥이에 대한 보편적인 숭배의 전승을 두 쌍둥이 성인과 연결 짓는 시도에 반대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루이 레오는 디오스쿠로이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성격이 그 본질에서 전사(戰士)이지 의술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을 펼친다(Re′au, 1958: X). 하지만 기독교 교회가 이교의 치유 영웅들을 신전과 사람들의 마음에서 몰아내기 위해 쌍둥이 성인을 종교적 방편으로 활용했다는 해석에는 학자들 간 이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해리스의 가정을 받아들이더라도, 카스토르와 폴룩스가 구현한 수많은 능력에 비해, 코스마스와 다미안에게 유난히 두드러지는 건 무엇보다 의술적인 측면이다. 쌍둥이성은 두 성인의 특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자질이지만, 다른 천상 쌍둥이들의 경우처럼 대립적 특성들로 구분되지 않는다[9]. 아래에서 보겠지만 『황금 전설』에서 묘사하는 두 성인은 누가 누구인지 전혀 구분되지 않고 집단적 인격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이들의 모습은 때로 화가의 손에서 한 사람은 내과 의사로, 또 한 사람은 외과 의사로 묘사되는 등 서로 상호적이며 상보적인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육체적으로는 둘이지만 결국은 하나이며, 하나일 때 더욱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결합 은유(unity metaphor)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2.2. ‘의사(醫師)’로서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안

서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황금 전설』에 기록된 두 성인은 ‘의사’로 교육받고 ‘의사’로 봉사하며 살다가 순교하였다. 종교와 의학의 역사 속에서 질병의 치유와 관련한 기독교 성인들의 출현은 매우 익숙하다. 이중 사도 성 루카(St. Luke, 1세기), 코스마스와 다미안(3세기), 성 판탈레온(St. Pantaleon, 4세기) 등 4명은 특히 의료계의 수호성인으로 가장 비중 있는 인물들이다(Fitzgerald, 1948: 635; Eug‵ene-Humbert, 1958: 455). 이들은 모두 소아시아 출신으로 초기 기독교 시대, 그리스 의학의 전통 속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여기에는 다신교이던 그리스 로마의 전통 속의 그리스 의학을 기독교라는 일신교의 환경으로 수용하여 적용하는 과정이 함의되어 있다(Black, 2019: 121-122). 당시 소아시아 지역은 의술과 그 교육 쪽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던 곳이었고 일반적으로 히포크라테스 의술에 기초한 의료방식이 주를 이루었다(Peltier, 1997: 374-375; David-Danel, 1958a: 17)[10]. 그러나 이 의사 성인 중 코스마스와 다미안은 가장 극적인 치유로 영육(靈肉)의 차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특별한 존재였다. 무엇보다 ‘치유의 성인(healing saint)’ 개념은 코스마스와 다미안에서 시작된다(Retief and Cilliers, 2001: 66). 아래에서 보겠지만 중세 대학 의학부의 수호성인인 복음사가 성 루카의 경우, 기독교 성경(「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4:14) 속에서 사도 바오로에 의해 ‘사랑하는 의사’라는 호칭을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의학적 능력이나 극적인 치유의 사례는 전설로도 알려진 바 없다. 일부 도상학자들은 두 쌍둥이 성인을 종교적 인물로만 간주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지상의 존재로 그려내길 원한다. 가령 다비-다넬은 도상을 포함한 다양한 물질문화와 문헌의 연구를 통해, 두 쌍둥이 성인이 단순한 치유의 성인을 넘어 전문 의사로서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음을 논급한다(David-Danel, 1958a: 19; 1958b: 461). 그런데 성인전을 보면, 흥미롭게도 두 성인 스스로 자신들을 ‘전업 의사’로 부르고 있어 이러한 주장의 논거로 한몫한다[11].
사실 의술을 펼치다 303년경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순교한 성 판탈레온의 경우를 제외하면, 두 성인의 모습은 대부분 의사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장과 의복을 입거나, 혹은 의료 행위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순교 장면을 묘사한 그림 속에서조차 쌍둥이 성인은 의사의 모습으로 그려져, 이들의 종교적인 면뿐만 아니라 직업의 측면 또한 강조되고 있다. 키스 짐머맨(Kees Zimmerman)의 컬렉션을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Zimmerman, 2013), 두 성인은 많은 회화 작품 속에서 의학 서적이나 사혈(瀉血)용 봉, 랜싯, 외과용 메스, 도구용 상자 등의 전문 도구들을 든 모습으로, 지적이며 학구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두 성인 중의 하나가 내과 의사로 그려지면 일반적으로 요(尿) 검사(uroscopy)용 용기가 출현한다. 의사의 고유한 속성과 관련되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요검사용 도구이다. 보통 투명한 유리 재질로 된 것이지만 그 형태는 시기와 국가별로 약간씩 차이가 난다. 진단검사의학의 체외검사로 “질병만큼이나 오래된”(Eknoyan, 2007: 865) 요검사는 특히 중세에 이르러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matula’라 불리던 투명한 구형 유리병은 무엇보다 의사라는 직업과 그 지위를 상징하는 기호로 해석된다(Siraisi, 1990: 125; Wittem-Sterzel, 2000: siv13). 외과 의사인 경우엔 보통 약단지와 스패튤라를 든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경우 내과 의사는 우아한 의복을 입은 모습으로, 외과 의사는 평범한 의복의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차별적으로 묘사된다. 또는 많은 그림에서 내과 의사는 긴 가운을, 외과 의사는 짧은 가운을 입어 두 직업 종사자의 사회적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12]. 그러나 때로는 두 성인 모두 얼굴처럼 똑같이 긴 가운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구분되지 않기도 한다[13].
많은 치유의 성인들의 행적이 다양한 회화 작품으로 남아 있지만 두 쌍둥이 성인들처럼 이런 도구들을 지닌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두 성인의 도상과 치유의 기적을 묘사한 예술 작품들이 특히 그 작품이 생산된 시기의 의료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의학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들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잔틴과 후기 비잔틴 시기 두 의사 성인의 표상들은 다른 성인들과 비교하여 양적으로 단연 두드러진다. 이미지 속에 함께 담긴 여러 수술도구나 관련 물건들은 당시 비잔틴 외과술의 발전단계나 의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지위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Beldekos et al., 2015).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 작품에 나타난 두 성인의 끊임없는 정체성의 변화이다. 초기에는 순수한 성인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나, 아래의 프라 안젤리코와 암브로시우스 프랑켄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알겠지만, 의학의 발전에 따라 점점 더 인간 의사의 모습을 반영하며 그들과 닮아간다.

2.3. 이상적인 의사로서 「아나그로이(anargyroi)」

‘아나그로이(Anargyroi, 그리스어 α′να′ργυροι)’는 ‘돈이 없다(without silver)’는 뜻으로, 무료 의술을 펼친 두 성인에 부여된 별칭이었다. 두 성인이 이상적인 의사의 상을 갖고 많은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아나그로이’라는 종교 윤리적 자질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 앞서 간략하게 요약해 소개한 두 성인의 전기에서 보듯이, 『황금 전설』은 치유의 기적들뿐만 아니라, 아나그로이로서 삶도 에피소드를 통해 비중 있게 강조한다[14]. 고대의 기독교 의사들이 두 성인의 이름을 따서 지을 정도로 이미 기독교 초기부터 성인들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상당했다(Conolly and Benanzio, 2007: 6). 이러한 아나그로이 숭배 현상의 기원과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두 성인이 살았던 초기 기독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나그로이는 초기 기독교 시대, 1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는 특정한 시기에 박애의 정신으로 인술을 펼쳤던 기독교 의사들을 지칭한다. 러트에 따르면 코스마스와 다미안은 기독교 성인 중 제일 먼저 아나그로이로 호칭되었을 개연성이 높다(Rutt, 1995: 53). 본고의 논의 안에서 아나그로이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요소를 함의하는 대상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하나는 윤리(종교)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치유(의술)의 문제이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아나그로이로서 쌍둥이 성인의 삶은 성경 속 예수의 행적과 떼어낼 수 없다. 기독교는 무엇보다 ‘치유의 종교’이다. 신약은 예수와 그 제자들에 의한 병자의 치유능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덕분에 기독교는 경쟁 종교들 사이에서 우위를 점유하게 됐다(Nutton, 1984: 5)[15]. 마태복음 10장을 상기해 보면, 예수는 선교를 위한 열두 사도를 파견할 때 병자를 치료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이 하여 마귀를 쫓아내라고 명한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오 복음서」 10:8) 템킨에 따르면, 두 쌍둥이 성인이 치유한 질병들의 목록은 예수의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Temkin, 1991: 167-168). 아나그로이는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단지 육체의 질병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병으로부터 영혼을 치유하는 신의 대리자가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치유의 문제가 또한 자선 행위와 자연스럽게 결부된다는 점이다. 기독교 성경은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예수의 비유를 통해 기독교인들이라면 어떻게 병자를 돌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기독교 교회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교도인 이방인을 포함하여 그 누구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이웃으로 간주한다. “너희는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다.”(「마태오 복음서」 25:36) 펀그렌은 초기 기독교의 특징을 자선 행위에 대한 강한 실천으로 꼽는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한 예수의 죽음, 그리고 그것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놓여 있다고 해석한다(Ferngren, 1992: 13-15)[16]. 그러므로 아나그로이는 근본적으로 기독교이건 비기독교이건 신이 인간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과 구원의 실천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의 윤리와 더불어 이를 실천하는 방식은 히포크라테스 의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초기 기독교 시기 아나그로이들은 모두 히포크라테스 의술로 무장한 인물들이었다. 이 중 많은 이들이 기독교의 치유 성인으로 시성(諡聖) 되는데 코스마스와 다미안도 물론 여기에 속한다. 사실 의학의 경우는 다른 문화 요소들과는 달리 그리스 로마 문화로부터 거부감 없이 수용할 만한 보편적인 것이어서 거리낌 없이 기독교 속으로 들어갔다(Ferngren, 2009: 151). 따라서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이교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조건에서 기독교의 윤리로 흡수되었다. 특히 4세기에서 6세기 사이 아나그로이 코스마스와 다미안의 숭배는 히포크라테스 의학이 기독교 신앙 속으로 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Touwaide, 2005: 224). 여기서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히포크라테스의 의료 윤리가 크게 거부감 없이 기독교의 종교 윤리로 쉽게 수용되었고, 그것이 아나그로이의 숭배가 확대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패턴게일에 따르면 이교도와 기독교 모두 공통으로 이익보다는 인술을 펼치는 합리적인 자선 의사들을 환영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나그로이의 미덕이 오직 기독교나 히포크라테스 의학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그 이전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신전이자 의료센터, 아스클레피온(Asclepion)이라는 이교도 신전에서도 존재하는 보편적인 정신이었다(Pattengale, 2007: 145). 이렇게 해서 기독교 아나그로이 의사들은 기존의 이교가 담당하던 치유의 숭배 자리를 점차 점유하며 대신해 나갔다. 그리고 이교 치유의 영웅들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기독교 확산에 강력하고 효율적인 도구 역할을 해나갈 수 있었는데, 여기서 두 쌍둥이 성인이 가장 두드러졌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나그로이로 알려진 기독교 의사 중에서도 코스마스와 다미안은 제일 유명한 치유자로서 가장 대중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Harrold, 2007: 130). 그래서 성경에서 언급된 ‘의사’ 루카와 대등하게 의료집단의 수호자로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 복음사가 루카가 성경에 그 뿌리를 두고 종교적 명망을 얻은 존재라면 코스마스와 다미안은 전업의사로서 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대등한 힘을 발휘했다. 아래에서 살펴볼 중세의 외과의 동업조합들이 코스마스와 다미안을 수호성인으로 삼은 것은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했다.

3. 「검은 다리의 기적」

‘전업 의사’이자 ‘이상적인 의사’로서 코스마스와 다미안의 정체성은 또 다른 종교적 요소의 도움으로 규정될 수 있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는 특히나 중세의 외과의들이 두 사람을 동업조합의 수호성인으로 선택하게 되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의사이자 신의 중재자로서 두 사람은 많은 기적의 치유를 베풀었지만, 그중에서도 『황금 전설』에 실린 「검은 다리의 기적」이야기는 가장 유명한 만큼이나 코스마스와 다미안 숭배의 주된 원천이다[17].
『황금 전설』에 나오는 쌍둥이 성인의 사후 기적은 세 가지인데[18], 이 중 하나가 「검은 다리의 기적」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황금 전설』이 담은 많은 치유의 장면 중의 하나이지만 매우 특별하다.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으로 인간들 간 신체 일부가 서로 교환되는 발상은 성인의 기적과 관련된 다른 설화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David-Danel, 1958a: 44; Theler, 2014: 106). 이야기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하면 이렇다. 두 성인의 순교 후 교황 펠릭스 4세(Felix, 526-530)는 이들을 기념하는 대성당을 콘스탄티노플에 세운다. 이 교회에 있던 독실한 신앙의 한 남자는 한쪽 다리가 암에 잠식되어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그가 잠을 자는 동안 두 성인이 약과 수술 도구를 들고 나타났다. 두 성인은 치료를 위해 방금 세상을 떠난 에티오피아인(혹은 무어인)의 다리를 환자의 썩은 다리와 바꾸기로 한다.
  • 그래서 그는 급히 묘지로 가서 무어인의 다리를 가져왔다. 두 성인은 병든 남자의 다리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무어인의 것을 집어 넣었다. [...] 마지막으로 절단한 다리를 가져다 죽은 무어인의 시신에 붙였다. 깨어난 남자가 다리에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다리에 손을 대어보고 장애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 그래서 그는 자기 다리가 자기 것이 아니면 남의 몸인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모든 것을 깨닫고, 기쁨에 넘쳐 침대에서 뛰쳐나와 사람들에게 꿈속에서 본 것과 어떻게 해서 치료가 되었는지를 들려주었다. 사람들이 곧장 무어인의 무덤으로 가 보았더니 무덤 속에 있던 무어인의 다리가 정말 잘렸고, 그 자리에 앞서 말했던 남자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야코부스 데 보라기네, 2007: 907).

쌍둥이 성인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치유의 기적은 단연 「검은 다리의 기적」이지만, 『황금 전설』 어디에도 이 호칭은 나오지 않는다. 중세시대에서 르네상스에 이르는 시기, 글을 읽지 못하는 비문해자(非文解) 신자들을 위해 기적의 치유 이야기는 그림의 형태로 많이 생산된다(de Jong, 2013: 38). 아래 <그림 1>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렇게 생산된 회화 작품들의 시각적 특징을 보고 19세기와 20세기 예술사가들이 그리 부르게 된 것이다(Jacquet, 1983: 25)[19]. 예술사를 풍요롭게 수놓으면서 두 성인의 숭배 현상을 더욱 증폭시킨 데에는 무엇보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Medici)가의 역할이 지대하다. 메디치가는 두 성인을 가문의 수호성인으로 삼았는데, 이는 종교적 신앙과 메디치가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는 두 측면에서 기능한다(Jacquet, 1983: 27)[20]. 이런 이유에서 두 성인의 삶과 기적에 대한 많은 작품이 예술가들에게 주문되었고,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에서 특히 15세기 피렌체학파(Florentine School) 대가들의 작품 속에서 두 성인의 빈번한 출현을 말해준다.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의 <그림 1>도 이 중 하나이다.
<그림 1>은 작은 목판(37×45)의 템페라화이지만 「검은 다리의 기적」과 관련한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이며, 유사 회화 작품의 생산에 많은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화가는 전설의 내용 중 핵심적인 장면만을 화폭에 담아 매체의 특성을 살렸는데, 흑백이라는 색채의 대비가 치유의 극적인 효과를 보여준다.
위의 기적의 이미지 속에서는 환자의 고통도 피도, 수술 도구도 없다. 평안하게 잠든 환자의 모습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림은 고대 신전 의학의 ‘인큐베이션(incubation)’, 즉 ‘몽중신유(夢中神癒)[21]’가 기독교 시대에도 살아남아 유지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꿈은 치유를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다. 육체적인 한계를 벗어나 신들의 세계와 영적으로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Csepregi, 2002; 2007: 18; 2012: 131). 아바톤에 들어가 아스클레피오스의 치유를 받는 것처럼, 환자는 잠을 자며 꿈속에서 두 성인의 보살핌을 받는다(Temkin, 1991: 167).
종교적 관점에서 ‘검은 다리’의 존재는 무엇보다 신의 권능과 은총을 명증하기 위한 기적의 증거이다. 검고 흰 다리가 표상하는 뚜렷한 색채의 대비는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으로 치유의 기적과 부활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표지로 작용하는 것이다(Bynum, 2016: 58; Jacquet, 1983: 32-38). 두 성인의 머리를 감싸는 후광은 이 치유의 힘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잘 보여주며, 신성의 대리자인 두 성인의 성격을 함께 규정해준다. 따라서 「검은 다리의 기적」의 해석은 다른 기적의 치유들처럼 기독교의 질병관에 충실하다. ‘치유자 그리스도(Christus medicus)’는 무엇보다 “육체와 영혼의 의사”(Androutsos and Diamantis, 2008: 16)이다. 즉 인간의 생명은 신이 준 것이고 병든 몸을 치유하는 의학적 지식은 당연히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에게서 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영육의 문제이므로 당연히 죄와 병의 깊은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22].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가 몸을 치유해주고 영을 구원해준 것처럼, 아나그로이 의사들 역시 예수의 모습을 따라 영육의 치유자였다. 두 성인에 헌정된 교회에 들어와 기도하고 잠을 자며 꿈속에서 신의 대리자를 만나는 일은 무엇보다 회개를 바탕으로 한다. 아나그로이로서 두 성인과 기적의 이야기는“질병과 죄의 일치, 그리고 죄의 완화를 위한 회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Grigsby, 2004: 21)
그런데 여기서 두 성인이 환자를 치유하는 방식에 있어 ‘이식’이라는 시술을 선택한 것은 여전히 쉽게 수긍이 가질 않는다. 왜냐하면,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이라면 병든 다리를 자르고 환자가 더 살 수 있도록 치료를 해주거나, 병든 다리 자체를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방법이 훨씬 더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적인 해석을 떠나 의학적인 관심의 기점이 된다. 이 그림이 표상하는 외과적 시술 행위에는 신의 개입을 명증하는 표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매우 낮은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두 성인의 ‘행위자성’이 읽힌다. 전지전능한 신성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의 치유 방식이 이식 의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오늘날 인간의 의료 행위와 유사하다는 해석은 무리일까. 쌍둥이 성인은 “하느님에게 직접 의학의 지식을 얻었지만, 일반적으로 히포크라테스 식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했다.”(Touwaide, 2005: 224) 두 성인의 역할은 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대리자로서 묵묵히, 일종의 도구적인 역할을 행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의사라는 직업을 지닌 능동적인 존재의 특성도 함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인간 의사의 역할과 비중은 아래에서 살펴볼 암브로시우스 프랑켄의 사실주의적 작품 속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나며 의학의 역사와 만나게 된다.
두 성인의 특질을 이루는 ‘전업 의사로서’, 그리고 ‘이상적인 의사로서’의 삶은 이 기적의 치유와 더불어 완성된다. 그리고 「검은 다리의 기적」은 이야기가 담고 있는 외과적 성격 때문에,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가는 동안 외과 의사들의 관심을 받았다. 아래에서 이 논문은 동업조합의 형태로 집약된 외과의들의 열망이 어떻게 두 쌍둥이 성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합리적 의학을 향해 먼 걸음을 나서게 되었는지 4장과 5장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동업조합과 수호성인으로서 두 성인의 지위와 성격, 그리고 당시 유럽의 상황을 간략히 언급한 후, 사실상 유럽의 첫 번째 외과의 학습기관이자 두 성인의 이름을 온전히 취하여 만들어진 ‘파리 생콤 동업조합’의 역사를 통해 두 성인의 변해가는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4. 수호성인으로서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안

4.1. 외과 의사 동업조합

중세에 두 성인의 인기는 매우 높은 것이어서 저마다 이들을 수호성인으로 삼으려고 했다. 기독교의 수호성인의 개념은 상대적으로 오래된 것이 아니지만(Rutt, 1994: 48), 역사의 초기부터 의사들은 ‘영적 중재자’를 모색하였고, 이 전통은 기독교 시대 의사들로 이어졌다(Peltier, 1997: 374, 379)는 주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인과 집단 모두 수호성인을 지닐 수 있었지만, 특히 중세의 사회 변화에 따른 이익집단이 생겨나면서 더욱 활성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의업(醫業)을 본질로 하는 두 성인의 특성은 다양한 보건의료 집단이 다른 성인들보다 훨씬 선호하여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삼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쌍둥이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삼은 직업군은 단지 외과 의사나 혹은 약제사뿐만 아니라 미용사, 붕대 제조인, 또는 일용 잡화상인 등등 매우 다양한 집단을 포함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상한 것이지만 당시 환자를 치료하는 업무와 관련된 직업군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중세시대 기독교 성인은 사람들 간의 사회적 연대의 매체로서 기능하였다. 성인은 개인들뿐만 아니라 집단의 수호성인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모임에는 언제나 특정한 성인이 있었다. 이는 평신도들의 수많은 조직을 포함하여 길드(guild)라 불리는 동업조합까지 아우르는 것이었다. 에밀 말의 표현을 빌자면, “그 시절 성인들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끈이었다.”(Mâle, 1908: 170) 게다가 성인의 삶은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미덕을 표상하였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동업조합이 특정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삼는 이유와도 긴밀히 연관된다(Mâle, 1908: 202-203). 따라서 성인의 삶과 특성은 그 성인을 수호자로 모시는 사람들이나 집단의 행동 양식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에밀 말의 의견을 수용하자면, 두 쌍둥이 성인은 종교적 차원의 보호자로서, 가난한 환자를 돌보는 훌륭한 의사로서 좋은 모델로 기능하였다. 여기에다 두 성인은 의사로서 치유의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23]. 그리고 무엇보다 외과의 동업조합의 수호성인으로 정착된 데에는 「검은 다리 기적」의 영향이 컸다(Burnand and Burnand, 1959: 119; David-Danel, 1958a: 51)
도상학자와 의사학자들의 문헌에 따르면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두 성인에 대한 외과의들 – 이발사-외과의(barber-surgeon)들과 그 밖의 외과적 시술을 하는 다양한 집단들을 포함해서 – 의 숭배와 길드의 조직이 유럽 대부분에서 이루어졌다. 중세의 외과의들이 두 성인의 기치 아래 집단으로 조직된 현실적인 이유는 외과라는 전문직의 사회적 존중과 독립된 지위를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물론 나라마다 의학과 외과학의 발전, 그리고 사회 정치적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영국의 경우는 캔터베리(Canterbury), 솔즈베리(Salisbury) 대성당 등을 포함한 여러 곳에 두 성인의 유품 등이 남아 있지만, 상대적으로 두 성인에 대한 숭배가 유럽의 다른 곳처럼 확대되지 않았다. 물론 두 성인은 여기서도 이발사, 외과의 등의 여러 동업조합의 문장(紋章)에서 나타난다. 특히 1907년 13개의 의료 단체가 합병하여 만든 왕립의학협회(The Royal Society of Medicine)는 설립 시부터 두 성인을 협회의 문장으로 삼고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Matthews, 1968)[24]. 네덜란드의 경우는 아래에서 살펴볼 프랑스 등과 같은 국가와는 다르게 외과의 장인이 사회적 열등감으로 고통을 겪지 않은 드문 국가이다. 이발사-외과의는 다른 부르주아 시민들만큼 영예를 누렸고 전문직 종사자로 자부심과 존경을 받았다(Zimmerman, 1936: 166). 독일어권 국가들의 경우, 외과의의 전문 교육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 18세기 후반까지 외과술은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시술자들에게 맡겨졌다가 대학들이 외과학을 가르치면서 비로소 전문성을 띠게 된다. 따라서 라이프치히(Leipzig, 1415년) 대학의 의학부와 비텐베르크(Wittenberg, 1502년) 의학 아카데미, 빈(Wien) 의학교(1429) 등의 대학 의학부들이 두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삼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는 중부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프라하(Prague) 대학 의학부에서는 두 성인이 들어간 인장(印章)을 활용하였다(Decker, 2014: 51-52; Julien, 1980: 70-71; O′Reilly, 1973).
이상 간략히 살펴본 동업조합에 대한 논의는 ‘성 코스마스 동업조합(Confre′rie Saint Côme des Maîtres Chirurgiens de Paris, 이하 ‘생콤 동업조합’이라고 함)[25]'이라는 프랑스의 외과 의사 동업조합을 살펴보기 위한 예비적 논의이다. 이 동업조합의 탄생은 두 성인의 정체성이 또 다른 방식으로 규정되는 계기적 근원이다. 코스마스와 다미안은 다양한 질병을 치유하는 보편적 성의에서 외과 의사라는 특정 직업 분야로 전문화되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 외과의 동업조합의 경우는 두 성인의 정체성이 외과 쪽으로 경도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생콤 동업조합은 유럽의 다른 외과의 동업조합들과 비교해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니케즈에 따르면 생콤 동업조합은 “오랜 기간 ‘유럽에 존재하던 유일한 외과 학교였기 때문이다.’” (Nicaise, 1895: cv, 강조는 원저자의 것임).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대학이 만들어지고 내과나 외과 분야를 모두 가르쳤지만, 이러한 방식이 유럽의 다른 곳에 이식된 것은 아니었다. 파리의 생콤 동업조합은 무엇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첫 번째 외과학 학습기관이었다.

4.2. 생콤 동업조합

1) ‘생콤’ 동업조합의 설립: 자기 호명의 의미

13세기, 14세기 당시 중세의 파리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유럽에서 많은 영향력을 펼치던 곳이었다. 특히 파리 대학의 경우, 의학부를 포함하여 유럽의 다른 대학의 모델로 영향을 미칠 만큼 존재감이 있었다(Bullough, 1966: 86; 1957: 197-198). 파리 대학 의학부가 지닌 정치 종교적 배경도 대단한 것이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움직이는 힘 중의 하나는 파리 대학을 나온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이었다. 예를 들어 교황 요한 21세(Pope John XXI, 재위 1276-1277)도 파리 대학에서 의학 (안과)을 공부하였고 교황이 되어서도 출신 학교에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Blanchard, 1995; Bullough, 1966: 57; Jonsen, 2000: 25). 외과 수업이 병행되던 이탈리아 대학과는 달리 파리 대학의 외과 배타주의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같은 대학에도 영향을 미쳤다(Benedek, 1973; Talbot, 1970: 81). 이런 환경 속에 외과 의사들의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그 저항감은 상당했다. 특히 파리의 경우는 대학의 의학부 성원들과 외과의들 간의 알력은 의학의 역사 속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두 집단의 적대적 관계와 긴장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으로 앙시앵 레짐의 모든 제도가 와해하였을 때도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리 외과의들의 역사는, 부족하지만 하나의 교육체제를 갖춘 조직에서 훗날 대학 내로 제도화되는 긴 여정의 출발을 두 성인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동업조합의 설립 시기에 대해서는 문헌 부족으로 역사학자마다 의견이 갈리지만 1260년이나 1226년, 왕실 외과의였던 쟝 피타르(Jean Pitard, 1228-1315)의 요청으로 루이 9세(Louis IX, 재위 1226–1270)가 설립했다는 설이 있다[26]. 그러나 생콤 외과의 동업조합을 언급하는 최초의 공식 문건은 1311년 프랑스 왕 필립 4세 르벨의 칙령이다. 생콤 동업조합은 초기 쟝피타르와 친분이 있던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란프란코(Lanfranco of Milan, 1250-1306)를 통해 발전된 이탈리아 외과학을 접하게 된다. 필립 4세의 칙령은 외과적 처치를 할 때 반드시 공적인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외과의 후보군에 대한 시험은 쟝 피타르의 책임하에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과해야만 시술 자격을 주었다. 주목할 것은 1544년부터는 의사들처럼 외과의들의 시험도 라틴어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라틴어를 안다는 것은 전문지식의 습득이 가능한 계층이라는 의미였고 이는 자연스레 능력이 떨어지는 이발사들을 배제하고, 대학교육을 받는 의사들과 외형적인 동등함을 추구하려는 전략이었다.
생콤 동업조합의 특징은 무엇보다 조직의 정체성을 ‘생콤’이라는 자기 호명을 통해 스스로 만들고자 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두 성인을 조합의 수호성인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콤’이라 규정한 것은 가볍지 않은 의미 효과를 자아낸다. 하나는 두 성인이 지닌 자질을 동일시하려는 욕망이며, 다른 하나는 이러한 자기 호명을 통해 조합원들을 집단화하고 자의식을 갖게 하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생콤의 외과의들은 조직의 이름부터 이발사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의사들과 동등함을 내세우려 했다. 생콤 동업조합의 성원들은 의사들처럼 긴 가운을 입고 조합의 이익과 단결을 위해 두 성인의 신화를 적극적으로 선점하였고, 이를 위한 노력으로 두 성인의 물질문화 양산에도 힘썼다. <그림 2>는 기 드 숄리아크(Guy de Chauliac, 1300-1368)의 la Chirurgie 수사본(1468)에 실린 하나의 실례이다. 그럼으로써 위로는 의사들에게 대항력을 갖추고, 아래로는 짧은 가운을 입는 이발사-외과 의사에 대한 우월감을 가졌다.
의사 집단과 힘의 균형에서 불리했던 외과 의사들의 선택은 종교적 권위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생콤 동업조합은 주교 관할 종교 재판소(l’Official)의 후원을 지원한다(Nicaise, 1895: cxi). 질병에 대한 투쟁만큼이나 인간으로서의 갈등과 알력은 의학의 역사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갈등의 양상은 조직된 힘으로 나타난다. 종교의 영향력이 정치와 사회 분야에 깊이 미치는 시절에 외과의들의 선택도 비슷한 수단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의사들의 수호성인인 ‘의사’ 루카와 대적할만한 신성한 존재가 필요했다. 루카가 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기독교 성경을 근거로 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면, 코스마스와 다미안은 가톨릭교회가 두 성인을 명예의 표지인 미사 전문에 등재하여 다른 많은 치유의 성인들과 차별성이 강조되는 존재였다[27].
그런데 외과 의사들만 적극적으로 수호성인의 종교적 권위를 이용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 의학의 미래를 결정짓는 의료계 내부의 경쟁은 ‘투쟁’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 매우 치열한 것이어서, 내과의들도 적극적으로 종교적 대응을 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것이 1710년에 일어난 일종의 ‘성인전’이었다. 비달(Vidal, 1997: 41-42)에 따르면, 내과의들은 당시 의학부 학장 니콜라 오드리(Nicolas Audry)를 중심으로, 복음 사가 루카를 포함한 의사 관련 직업의 수호성인 목록을 작성하여 외과의들에 대한 자신들의 우월함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이에 외과의들은 아담의 갈비뼈를 통해 인류 최초의 ‘흉곽성형술(thoracoplasty)’을 보여준 기독교 하느님을 필두로, 외과 수술을 한 성인들의 목록을 만들어 이에 대항하였다. 이러한 도구화의 성격은 당시의 사회상황에 비추어 볼 때, 종교적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파리의 생콤 동업조합은 그 명칭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의미에서 두 쌍둥이 성인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두 성인의 유보를 동업조합의 교회에 유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2세기, 당시 뤼자르슈(Luzarches) 귀족이었던 쟝 드 보몽(Jean de Beaumont) 경이 2차 십자군 원정 중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두 성인의 유보를 파리 근교 뤼자르슈에 유치한다(Re′au, 1958: X)[28]. 두 성인의 유품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하나는 파리 근교 뤼자르슈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생 제르맹 데 프레(Saint-Germain-des-Pre′s) 수도원에 있다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어 노트르담(Notre-Dame)과 파리 생콤 다미앙교회로 나뉘어 보관된다(Julien, 1973; 1980). 두 성인의 유보는 단순히 종교적 숭배 대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동업조합에 있어 두 성인의 유품을 유치하고 있는 두 지역은 무엇보다도 특별한 ‘성소(聖所)’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 성소에서, 이제부터 살펴보겠지만, 두 쌍둥이 성인이 했던 것처럼 환자들에 대한 무료 진료가 이루어진다.

2) 무료 진료와 직업윤리

중세시대 프랑스인들은 두 성인을 ‘두 무상의 구원자(les deux gratuits secoureurs)’라고 불렀다(Re′au, 1988[1958]: 332). 종교적인 관점에서 두 성인의 삶은 ‘자선’이나 ‘순교’라는 종교적 순명의 가치로 규정되겠지만, 의학의 역사 속에서는 삶의 실천 과정에서 보여준 다양한 치유의 행위와 정신이 어떻게 의료집단에 들어가 의학의 발전 과정으로 들어갔으며 어떤 모습으로 이바지했는지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두 성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큰 부분인 아나그로이는 중세에 이르러 외과의 동업조합이라는 다른 실천 환경 속에서 조우하게 된다. 패턴게일은 아나그로이의 사례가 신앙과 이성, 종교와 과학의 상보적이며 긴장된 관계를 잘 보여주는 실례라고 한다(Pattengale, 2007: 127).
생콤 동업조합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빈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동업조합의 성원들이 조합의 아나그로이 수호성인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였다. 이미 조합의 설립 시 마련된 정관부터 조합원들이 수행해야 할 자선 무료 진료와 관련된 사항을 명시해 놓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세의 동업조합들은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자선 행위는 조합의 주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아래에서 보겠지만 외과의들의 경우 사회적 참여가 그 정도에 있어 상당히 강했고 빈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를 점차 확대해 나갔다는 특징을 갖는다. 게다가 이러한 사회적 참여에 국가의 공권력도 가세하면서 의료 권력 통제의 초기 모습도 읽히기도 한다.
니케즈의 의견에 따르면 생콤 조합의 정관 작성에는 설립자인 장 피타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개연성이 높다(Nicaise, 1895: cxi). 매달 첫 번째 월요일엔 조합원 전원이 파리 생콤 생다미앙 교회에 의무적으로 참석을 하였는데, 종교의식을 치른 후 이곳에 온 가난한 환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제공하였다. 특히 도제들은 이 무료 진료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만 했다. 줄리앙에 따르면 1320년에는 파리에서만 이루어지던 무료 진료가 뤼자르슈까지 확대되어 매년 2번 로마 교회와 동방 교회의 두 성인의 축일인 9월 27일과 10월 28일, 두 명에서 네 명의 외과의들을 파견하여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고 동업조합원들에게는 자선 기부도 받았다(Julien, 1973: 510). 생콤 동업조합의 무료 진료는 이후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제도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샤를르 5세(Charles V, 재위 1364-1380)의 1370년 7월 21일 헌장은 외과의 장인들의 야경, 파수 등의 국가 의무를 면제해주는 대신에 병원이 거부한 가난한 환자들을 방문하여 무료로 진료하게 했다(Nicaise, 1895: cxv). 동업조합 설립 당시의 규정은 변한 것이 없었지만, 이것은 초기와 비교해 명백히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 헌장은 1544년 1월 프랑스와 1세의 칙허장으로 더욱 강화된다. 그런데 이 칙허장이 나온 1544년 1월은 파리 외과의들의 역사에서 중요한 날이다. 이 칙허장의 목적이 외과 동업조합[29]과 외과의 공동체의 성원들에 대한 지위를 대학의 구성원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칙허장은 동업조합의 위계 상 성원들에게 대학의 성원들과 같은 자율성을 부여하고, 동일한 특혜와 면제 등의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조건이 있었다. 연중 매달 첫 번째 월요일, 조합 성원들은 생콤 다미앙 교회에 의무적으로 출석하여, 10시부터 12시까지, 교회에 온 모든 가난한 환자들을 진료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De Lespinasse, 1897: 630; Nicaise, 1895: cxxix). 이 헌장이 주는 의미는 그때까지 외과의들이 누리지 못했던 특권을 왕실의 권위가 인정하고 외과의 조합 성원들을 대학의 성원으로 공인하는 것이었다.
생콤 다미앙 교회에서 매달 첫 번째 월요일 무료 진료를 규정하는 1544년 칙허장 이후,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무료 진료는 대규모로 확대되게 된다. 동업조합의 무료 진료라는 사회 윤리적 행위가 사실상 국가의 간섭과는 상관없이 계속되었다는 의미이다. 처음엔 교회나 대성당의 마당에서 진료가 이루어졌지만, 더 많은 가난한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더 큰 건물이 필요했다. 1554년 생콤 외과의들은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부속건물을 건설하기로 하고, 교구의 허락을 받아 이 건물을 세우게 된다(David-Danel, 1958a: 110; De Lespinasse, 1897: 630; Hahn, 1886: 955). 훗날 루이 13세는 이곳에 외과학을 위한 강좌 개설을 허락했는데, 이는 생콤 공동체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규모 있는 첫 번째 교육이었다. 공동체는 1615년에 이르러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콤 묘지 일부를 더 매입하고 여기에 외과 교육과 해부학 시연을 위한 건물을 짓게 된다(Julien, 1980: 64-65). 작고 보잘것없는 소규모 건물에서 무료 진료를 시작한 곳이 17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생콤 해부학 강의실로 변모하게 되고, 이곳에서 외과의들은 마침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시연’을 할 수 있게 된다[30].
동업조합의 설립 당시부터 규정으로 만들어져 관례와 의무로 유지 시켜온 무료 진료는 왕의 칙허장을 통해 마침내 사회적 차원의 규범이자 계약의 형태로 변화된다는 의미가 있다. 외과의들의 자선 치유의 의무는 전문 직업의 사회적 역할 표지로 기능한다. 생콤 동업조합은 조합이 와해하는 시점까지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 실천을 통해 자선과 구제의 중요성을 드러내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공공 서비스(service public)의 개념에 근접한다는 의의가 있다[31]. 의학의 역사 속에서 생콤 동업조합 설립과 무료 진료 등의 실천이 가져온 큰 기여는 아마도 외과의의 의료 행위가 사람의 병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비록 초기적인 조직과 진료 형태였지만 외과라는 의학의 영역을 대중과 환자에게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

5. 외과 의사로서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안

코스마스와 다미안에 대한 숭배 현상은 다양한 물질문화의 생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동업조합을 위해 두 성인에 대한 숭배를 강화하면 할수록 그 숭배 현상은 더 멀리 퍼지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으므로, 성인 숭배 현상의 파급에는 외과 의사 동업조합들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검은 다리의 기적」이 있었다. 기독교의 성인들이 특정한 병의 치유와 관련됐지만, 본래 두 성인의 경우는 특정하지 못할 만큼 그 범위가 폭넓었다. 그러나 외과학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두 성인의 정체성도 유의미하게 변화하게 된다. 예술가의 붓으로 탄생한 많은 「검은 다리의 기적」의 모습은 이들의 능력이 필요했던 본래의 주인을 떠나 새로운 주인들이 나타나면서 변화하게 된다. 사실상 이 두 쌍둥이 성인은 점점 더 ‘지상’의 외과 의사들과 동일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 3>은 암브로시우스 프랑켄(Ambrosius Francken, 1544-1618)의 작품으로, 16세기 말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en) ‘이발사-외과의사 동업조합’이 주문한 것이다. 여기서 암브로시우스 프랑켄의 작품을 다루는 이유는 그것이 이전의 그림들과는 여러 면에서 매우 다르며, 이 그림 이후의 사회 변화로 두 성인의 숭배 현상도 많은 영향을 받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32]. 앞서 보았던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을 포함한 많은 회화 작품들은 무엇보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주문 생산된 것들이었다. 이 그림은 무엇보다 사실주의적 특성으로 더욱 현실에 다가선다. 프랑켄 그림에서 환자는 이제 꿈을 꾸지 않는다. 피와 톱이라는 외과적 수술 도구의 존재감과 더불어, 그림의 중심에 놓은 환자의 표정은 그것이 온전히 현실의 고통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옆에서 두 성인은 의사로서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16세기 당시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습이다. 그림은 여러 정맥/혈관들과 함께 넓적다리뼈, 경골과 비골 등 잘린 다리의 내부구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검은 다리는 성인 중 하나가 들고 있으나 흑백의 대비가 만들어 내는 시각적 효과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두 성인의 머리를 감싸던 후광도 더는 나타나지 않는다.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에서 두 성인은 신의 대리자로서 의례를 집전하는 신성한 성직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프랑켄 작품 속에서는 자신의 의료 행위를 수행하는 현실의 외과의사 모습에 다가선다.
이 그림은 의학적 현실을 통한 하나의 독특한 미학적 경험이다. 예술적 표현을 통해 사실에 기초한 해부학적 객관성, 인간의 몸에 대한 사고와 지식 변화의 징후 등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당시 의료기술의 발전 상황을 엿보는 것은 아마도 이 그림의 탄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외과적 기법 -특히 절단과 관련하여- 이 정착되었고 앙브루아즈 파레(Ambroise Paré) 이후 널리 퍼지게 되었다. 따라서 그림은 단순히 수호성인으로서 두 성인에 대한 공경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자랑스러울 만한 외과적 기술이나 외과의사로서 사회적 자존감 등을 그림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de Jong, 2013: 43; Huisman, 1998: 59-60; Jacquet, 1983: 28-29)[33].
더욱 주목할 만한 사안은 무엇보다 자신을 두 성인에게 투영하고 있는 외과 의사들의 모습이다. 디오스쿠로이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의 폐허 위에 세워진 교회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두 쌍둥이 성인은 이제 16세기 병원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환자를 치유하고 있다. 그러나 장소만 변했을 뿐 그곳에서 일어나는 본질적인 행위가 변화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주인이 바뀐 것만은 확실한 듯 보인다. 이미지는 두 성인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동업조합의 구성원인 외과 의사들과 그들의 지식, 그리고 술기이다. 조합의 쌍둥이 수호성인은 직접 환자의 신체를 절개하고 외과적 시술을 하고 있다. 그림은 두 성인에게 인간의 옷을 입히고, 이들을 신의 단순한 도구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자로 변화시켰다. 이는 자신들의 이상적인 자아를 투영하면서도 스스로 두 성인이 표상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즉 그림은 두 성인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은 그 모습에 투영된 외과 의사들의 숨겨진 욕망과 희망이다. 이 이미지는 당시의 외과의들에게 두 성인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되고 싶은 존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6. 21세기 이식의학의 소환

해부학을 비롯한 의학의 점진적인 발전과 더불어 종교적인 차원과 사회 문화적인 차원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프로테스탄트들의 종교개혁과 함께,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545-1564)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인들뿐만 아니라 이들과 연관된 수많은 전설을 세밀하게 검토하게 된다(de Jong, 2013: 47). 게다가 세속적인 학습과 인본주의가 부상하면서 주술이나 마술에 의지한 치유의 기적은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Hamilton, 2012: 5). 그러므로 신과 인간 간의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16세기 말, 「검은 다리의 기적」을 비롯한 여타 기적의 표상들은 서구의 도상 목록에서 거의 사라진다. 짐머맨의 컬렉션을 살펴보면, 1650년 이후의 그림들 속에서 자주 목격되는 것은 천상을 배경으로 한 성모마리아나 천사들의 출현이다. 그리고 이 그림들에서도 수술은 여전히 진행된다. 천상의 쌍둥이 성 코스마스와 다미안은 다시 신의 대리자로서 기적을 수행하는 존재이자, 초월적 힘에 감사하는 신의 종으로 회귀하게 된다. 두 성인이 머물렀던 지상의 자리는 이제 인간 의사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의 발전된 의학의 기술 속에서 “이제 두 성인의 기적적인 치유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없다.”(Nebojša and Theologou, 2015: 341).
그러나 흥미롭게도 발전된 현대 의학은, 특히 이식의학은 오늘날 다시금 두 성인을 소환하고 있다. 이식의학의 수많은 저술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기적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34]. 하지만 이번엔 자신들이 이룩한 발전이 얼마나 눈부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양, 현대 이식의학은 인류의 오랜 꿈, 열망을 실현하고 있는 신화의 계승자로서, 그리고 신화 그 자체로서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두 성인의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의학의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의 논쟁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가령 토마스 슐리히(Thomas Schlich)는 두 쌍둥이 성인 이야기와 같은 신화와 전설을 동원하여 역사를 계보학처럼 서술하는 이식 의학(transplantation medicine) 분야의 글쓰기 방식을 의아하게 바라본다[35]. 슐리히가 이식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의사 역사가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식외과의 분야는 의학의 역사 속에서 가장 짧은 연륜을 갖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 그에게 의사들의 역사 서술은 ‘창조(invention)’와 ‘발견(discovery)’ 사이에서, 과학적 사실을 다루는 과학자들의 글쓰기처럼 ‘발견’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Schlich, 1995: 313). 슐리히의 이러한 생각은 ‘신화’를 배제한 이식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서술한 저서 Schlich(2010)를 통해서 구체화한다. 그에게 이식은 인류의 오랜 꿈에서 시작되어 의학의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얻어진 논리적인 결과로 해석되지 않는다. 슐리히는 여기서 장기이식의 개념과 이 개념의 현실화는 1880년과 1930년 사이 50년에 걸쳐 이루어진 갑상샘과 부신, 췌장, 난소 및 고환 등의 장기와 관련된 수백 건의 이식 수술을 통해 마침내 ‘만들어진(invented)’ 것이라고 주장한다(Schlich, 1995: 2010). “고대와 그 모든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도, 이식이 인간을 위한 새로운 의료기술의 역사로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Carbais, 2000: 27)는 주장은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해준다. 여기서 이식은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의 근간에는 신화적 요소들이 일종의 ‘오염된’ 사료이기 때문에 이식의학의 진정한 역사를 기술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시각이 놓여 있다.
반면 또 다른 역사가들에게 손상된 몸 일부를 건강한 조직이나 장기로 교체하고자 하는 바람은 예부터 인간의 오랜 욕망 중의 하나였다. 현대의 이식의학은 아마도 이 오래된 정신적 동경을 실현해줄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되는 것이다[36]. 따라서 이식의학의 발전은 “근대성의 원형”(Moulin, 2015: 27)으로 간주할 만큼 매우 눈부신 것이어서 “마치 요정의 이야기 같은 것”이자 “한편의 아름다운 서사”(Dausset, 2001, Foreword)로 다가온다. 이들에게 이식과 관련한 ‘개념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이며, 현대 이식의학의 모든 기술은 이미 “이천 년 전 상상력 속에 있었던 것”(Hernigou, 2014: 2631)이다. 인간의 신화와 전설을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을지라도 그 중 ‘개념적으로’ 유의미한 발상을 담고 있는 신화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다(Bhandari and Tewari, 1997: 497-498). 스토라같은 의사 역사가는 여기에 허구 소설 작가의 상상력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식의 역사는 신화나 기적의 이야기를 역사의 발전단계로 기록하면서도, 허구 소설 작가의 “정신 작업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고 있다.”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Stora, 2005: 16). 오랜 신화와 이식의학의 발전 양상이 ‘현실적으로’ 아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치 신화가 앞서 나가고 현실이 뒤따라오는 것처럼, 인간의 상상계와 현실은 마치 깊은 소통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앙리 크레스에 따르면 인간의 신화와 전설, 혹은 기적들 -기독교의 성경을 포함해서- 속에서 인간의 상상계가 보여주는 양상은 이종이식(異種移植)으로 시작해서 자가이식(自家移植)을 거친 다음 동종이식(同種移植) 순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현실계인 의학의 이식 역사 속에서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밟고 있다(Kreis, 2013: 23-24, 27-30).
이러한 관점의 연장 선상에서, 「검은 다리의 기적」의 이미지가 당시의 외과적 수술을 보여주는 사실적 자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념적인 차원에서’ 유의미한 해석을 끄집어내는 현대 의학의 모습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코스마스와 다미안은 필수적인 혈관 봉합술이나 면역 억제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이 전설은 적어도 그 아이디어가 오랫동안 존재했다는 증거로서 [...] 이식의학에 통합된다.”(Conolly and Benanzio, 2007: 10) 인간 몸의 일부나 전체를 ‘생물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bioavailable)’(Cohen, 2005: 83)[37]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두 성인의 전설은 현대이식의학에서 제기된 이식 공여자와 수혜자의 개념적 토대를 마련해 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Donati et al., 2007 : 21). 특히 「검은 다리의 기적」은 이식의학의 관점에서 사체의 활용 가능성을 담아낸다. 적어도 두 성인의 전설은 “처음으로” 사체신이식(cadaveric transplantation), 즉 죽은 사람의 몸, 혹은 그 일부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해 주고 있다(Brandacher et al., 2015 : 4; Davis, 2014: 6). 일부 학자들은 이 기적의 치유 이야기 속에서, 수족을 절단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환상지 (幻想肢, phantom limb) 증상이나 심리적 거부반응을 찾아내기도 한다(Price and Twombly, 1978; Theler, 2015: 7)[38].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오히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과 인간 의사들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 기술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우리가 두 성인을 통해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를 다시 만난다. 이 모순어법만큼이나 과학이 진일보한 현재 속에 여전히 우리가 이들을 소환해 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7. 결론: 신화, 역사 그리고 다시 신화

신화는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하나로 묶는다. 두 성인에 대한 숭배는 서구 기독교 사회가 공유한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이었다. 이들의 삶의 여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윤색과 미화의 과정을 거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성인을 변별적으로 특징짓는 속성들은 이러한 신화적 가공과는 별개로 여전히 유의미하다. 동업조합을 포함한 당시의 다양한 의료 집단들에게 두 성인의 행적과 「검은 다리의 기적」은 직업으로서 의사의 삶의 가치와 이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현실의 직업적 삶 속에서 이 가치와 이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무사무욕(無私無慾)의 정신으로 당시의 의학적 수단을 활용하여 환자들을 돌보았다는 점이고, 이는 빈번하게 환자 옆에 함께 머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대 의학과 현대인들에게 두 성인과 관련된 종교적 사건들은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질병에 무력한 인간들에 의한 신화 속 의술 신들의 숭배에서 보듯이, 영웅을 기대하는 심리를 반영한 부분이 지대하다. 중요한 것은 이 신화나 전설 자체가 아니라, 동업조합의 실례에서 보듯이 이것이 의학의 역사 속에 어떠한 방식으로 통합되고 ‘의학적 사건’이 되었는가이다. 초월적 존재나 주술이 아닌 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 의술로 점차 나아가는 시점에 외과 의학은 역설적으로 두 성인을 도구화하여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의학계 내부의 권리 진작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았다. 두 성인을 중심으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은 의학의 발전 속에서 중요한 시기를 관통하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에서 시작된 두 성인에 대한 숭배는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를 통과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두 성인에 대한 숭배가 이처럼 광범위하고 빠르게 전파된 이유는 무엇보다 신의 중계자로서 이들이 남겨 놓은 수많은 치유의 기적들과 그 믿음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의학의 발전이 급격한 도약을 향해 가는 여명의 시기, 의료계의 성원들은 주어진 목적과 이익에 따라 연대하고 조직화하면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물질문화의 생산과 단절이 보여주듯, 이는 역설적으로 두 성인에 대한 숭배가 일정 시기에 급격히 확장되었다가 동시에 점차 사라져간 이유 중의 하나이다. 두 성인에 대한 숭배와 공경, 그리고 신뢰감은 이제 의사들의 자리로 넘어왔다. 많은 환자는 오늘날 자신의 몸을 치유해주는 의사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지니고 몸을 맡긴다. 여전히 남아 있는, 두 성인과 관련된 물질문화는 의학의 역사를 만들어 가던 의사들의 자화상이다. 그들의 삶과 그들이 만든 역사가, 그리고 그 변화와 발전의 과정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의학의 본질을 이루는 인간적 가치들에 대해서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Kemp, 1997: 22) 우리는 관람자로서 그 역사를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검은 다리 기적」의 그림들은 의사들의 치열한 자기 응시의 간단없고 지난한 과정들을 담고 있다.
두 성인에 관한 의사학적 연구는 다양한 인접 학문과의 교차연구를 요구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방향에서 작성된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다루지 못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어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아울러 두 성인에 대한 사적 흐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과정에서 소홀히 취급된 부분들도 천착할 필요성도 있다. 따라서 제한된 범위에서 본 논문과 관련한 후속 연구의 필요성과 제언을 두 가지로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도상학의 연구 결과를 의사학의 틀 내에서 재구성하는 일이다. 특히 중세 후기에서 르네상스에 이르는 시기, 도상들을 비롯한 풍부한 물질문화는 당시의 의료사를 살펴보는데 훌륭한 사료로 활용되며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는 단지 두 성인만 관련된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을 의학 역사의 렌즈로 천착하려는 종합적인 노력은 현재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다른 하나는, 이 시기 동업조합을 포함하는 의료 단체들과 국가나 종교 등의 권력 기관 간의 관계가 의사학적으로 어떤 성격과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두 성인의 숭배 역사와 의학의 역사가 만나는 지점에는 종교, 정치 그리고 사회 등의 인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 쌍둥이 성인의 도구화가 보여주는 것은 내과의건 외과의건 간에 의사들의 노력이 의학적 지식의 창출과 술기의 발전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당시의 지배적인 힘이었던 종교와 정치 영역을 중요시하고 이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거나 혹은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이는 단지 의료계 내부의 투쟁이라는 좁은 시각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의사라는 전문 직업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해 왔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며, 또 현재 상황에서도 보건의료 권력과 국가 권력의 관계, 그리고 그 다양한 교류 양상을 살펴보는데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Notes

1) 두 성인의 이름은 언어에 따라 다양하게 불린다. 이 논문에서는 별도의 제안이 없다면 두 성인의 명칭을 포함하여, 지명, 도시명 등 고유명사의 호칭을 원칙적으로 영어식을 따르기로 한다.

2) 두 성인에 대한 발자취를 좇아 의학의 역사 속에 그 의미를 두는 작업은 학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난감한 부분이 존재한다. 고대에서 시작하는 두 성인의 유의미한 흔적을 문헌 속에서 찾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의학사의 연구들이 종종 종교학과 신화학 혹은 도상학 영역의 연구 결과들을 인용하기도 하지만, 이 분야들 역시 이론의 상호모순과 의견의 불일치가 난립한다. 이에 대한 논의는 Duffin(2013: 33-46)을 참조하길 바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중세와 르네상스의 경우 두 성인에 대한 물질문화는 풍요롭다. 본문에서 보겠지만, 그만큼 숭배 현상과 선전전이 활발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외과 의학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큰 장애는 문헌 자료의 손실로 인한 것이나, 브로슈어나 팸플릿 등의 부차적 자료들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맥락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준다(Nicaise, 1895: cv). 본 논문의 일차적인 관심은 도상학 분야에 있는 것은 아니나, 세 개의 이미지를 들여와 논급하는 데 활용하였다.

3) Zimmerman(2013)은 「검은 다리의 기적」의 회화를 중심으로 80개 이상의 주요 예술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체계적인 분류를 시도하고 시대적인 변천사를 개관해볼 수 있게 하였는데, 이 논문의 작성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4) 『황금 전설』은 1260년경 이탈리아 도미니크 수도회의 야코부스 데 보라기네가 편저자로, 초대교회부터 1200년대까지 기독교 성인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종교적 기적 등을 담은 집록(集錄)이다. 여기서 ‘legend’는 라틴어 ‘legendum’에서 온 것으로 그 어원적인 의미는 ‘전설’이 아니라 ‘[성인들에 대해 신자들에게] 꼭 읽혀야만 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황금 전설』은 그 내용이 황금만큼이나 매우 값진 것이라는 뜻이다(Dessain, 2009: 151; 서종석, 2017). 림스에 따르면, 이 저작은 당시엔 “거의 문화적 제도”와 같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성경을 제외한 그 어느 서적보다 많이 읽혔다는 일각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지만, 유럽에 인쇄술이 보급되기 이전 이백 년 가까이 최고의 대중적 서적으로 인기를 끌었다(Reames, 1985:3). 이 저작은 본래 라틴어로 간행되었으나 인쇄술의 발전과 번역에 힘입어 중세 후기에는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이 논문에서 『황금 전설』 저자인 ‘Jacobus de Voragine’의 우리말 표기는 김준한・김지은(2015: 182-183)의 호칭 논의를 참조하여 ‘야코부스 데 보라기네’로 하였다.

5) 두 성인의 순교는 초기 기독교 시대 로마제국에 의한 기독교 박해 때 일어난 일이다. 『황금전설』에는 이들의 순교 장면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로마 총독은 명성이 자자한 두 쌍둥이 성인과 세 명의 형제들을 호출하여 심문한 후 배교를 명하였고 이를 거부한 형제 모두를 죽였다. 두 성인의 축일은 로마 교회의 경우 9월 27일인데 다비-다넬에 따르면 이들이 순교한 날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David-Danel, 1958a: 19).

6) 동업조합을 다루면서 언급하겠지만, 두 성인이 특히 로마 가톨릭 내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미사 전문(典文, Canon)의 등재 여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 논문 각주 27)과 함께 관련된 본문 참조 바람.

7) 서구 열강의 식민지 개척이나 대규모 이민 등도 두 성인의 숭배가 전파되는 주요 인자 중 하나였다. 가령 남미지역은 물론이고, 미국 역시 1926년 유럽인들의 대규모 이민이 이루어지던 시기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Cambridge)와 서머빌(Somerville) 등에 두 성인을 기념하는 조직이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Conolly and Benanzio, 2007: 9; 또한 Duffin, 2013; Julien, 1980 등도 참조).

8) 신화 속 쌍둥이들의 초월적인 힘은 남다른 탄생의 기원에 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인간 어머니의 수태에 신성한 힘이 작용하여 쌍둥이가 태어나는 게 그 주요한 방식 중 하나이다. 쌍둥이는 부모 한쪽의 신성한 힘을 취하여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행위들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병든 사람을 살리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와 관련하여 자세한 점은 Hankoff(1977) 혹은 서종석(2017) 참조.

9) 신화 속 쌍둥이들은 함께 태어나지만 상반된 조건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경우처럼 부계인 신과 모계인 인간의 자질이 만들어 내는 대립적 특성은 두 쌍둥이의 삶을 서로 다른 결말로 이끈다.

10) 『황금 전설』을 보면, 로마 총독에 불리어 간 두 성인은 자신들의 고국을 ‘아라비아’라고 밝히는 대목이 나온다. 다비-다넬에 따르면 의학의 역사 속에서 ‘아랍인’이라는 자질은 발달한 의학과 지식을 함의하는 것이어서, 이들의 태생은 이미 의사로서의 자연적인 조건을 갖고 있었다고 해석된다. 또한, 당시 소아시아라는 지역은 엄청난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과 교육환경이 마련된 곳이었고, 두 사람이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이 중심이 된 의학 교육을 받기에 최상의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론된다(David-Danel, 1958a: 17).

11) 이 장면은 『성인행전(Acta Sanctorum)』 「악타 프리마(Acta Prima)」에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 순교 장면에서 코스마스는 재판관 앞에서 자신과 다미안을 소개한 후 “우리는 명망가 출신이고 전업의사(médecins par profession)이다.”(David-Danel, 1958a: 16-17에서 재인용)라고 신분을 밝히는 대목이 나온다. 『성인행전』은 벨기에 예수회 학자 장 볼랑(Jean Bolland: 1596–1665)과 그 후계 수도자들인 볼랑디스트(Bollandiste)가 편집한 백과사전식 성인집이다(서종석, 2017: 25). 이 성인집은 성인들의 축일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1643 년에서 1940년까지 68권의 폴리오판이 제작, 출판되었다.

12) 물론 두 성인이 약사의 수호성인이기도 해서, 약사의 모습으로 그려질 때면 두 성인 중의 하나는 약 항아리나 약용 식물통 등을 지참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13) Re′au(1958: XII)의 주장에 따르면 코스마스는 거의 언제나 다미안보다 키가 조금 더 큰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적어도 짐머맨의 컬렉션을 관찰해보면 이는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인 것처럼 보인다.

14) 『황금 전설』은 재산을 탕진한 가난한 한 귀부인이 치료를 받은 후 다미안에게 사례를 하는 이야기 하나를 담고 있다.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동생의 행태에 분노한 코스마스는 자신이 죽더라도 동생 다미안과 함께 묻지 말아 달라고 명령한다. 순교 후 함께 장례를 치르기 주저하는 사람들 앞에 사람의 말을 하는 낙타가 나타나 두 사람을 한 곳에 묻으라는 명한다. 이 이야기는 앞서 본 것처럼, 대립적인 자질로 구성되는 쌍둥이성의 느슨한 투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두 성인의 특질 중의 하나인 아나그로이를 오히려 더욱 강조하면서 기독교의 본질적 가치를 드러낸다. 다만 아나그로이로서 타협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진 코스마스가 다미안보다 윤리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간주되는 건 사실이다.

15)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치유사례는 매우 많다. 대부분이 예수 자신에 의한 것이지만, 제자에 의한 치유사례 19건을 합하면 115건에 이른다(여인석, 2017: 11).

16) 펀그랜은 여기서 그리스 로마 이교(異敎)에는 자선에 대한 종교적 혹은 철학적 토대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여인석(2017)은 병원의 기원을 논급하면서, 고등종교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자선의 개념과 실천이 기독교에만 있다는 주장은 과하다며 반론을 편다.

17) 기독교 성경이 수많은 병자와 치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황금 전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황금 전설』은 의학 역사의 관점에서 많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뷔지엘에 따르면, 환자를 치료하는 수많은 의사의 모습과 더불어 신체와 정신의 병리적 증상에 속하는 아흔여 개의 질병 유형이 『황금 전설』에서 관찰된다. 치료법의 상당 부분은 기적에 의지하지만, 또한 13세기 당시 의료의 개념을 반영해주고 있다(Bugiel, 1923: 320). 환자에게 성인전을 큰소리로 읽어주는 것도 중세시대에 정착되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라블레(François Rabelais, 1494-1553)의 가르강튀아(Gargantua) 6장, 가르가멜의 출산을 앞둔 장면에서 언급되는 성녀 마르그리트(Margurite) 생애 읽기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인전을 읽는다는 것은 순례와 동등한 것이어서 그 자체로 치유의 효과가 물리적으로 발생한다고 믿었다(Rapp, 2007: 222). 마찬가지로 두 쌍둥이 성인의 이야기도 성경을 읽으며 명상하고 신의 자비를 구하는 것처럼 환자에게 읽어주기도 하였다(Julien, 1980: 48).

18) 『황금 전설』은 두 성인의 순교 전후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는 두 성인이 신의 중재자로서 생과 사를 초월한 존재라는 것을 더욱 강조한다. 위에서 살펴본 아나그로이 의사의 특성이기도 하다.

19) 가장 오래된 그리스 버전(5세기)의 경우 다리 공여자의 인종은 특정되지 않는다(Nebojs ˇa and Theologou, 2015: 333-334). 검은 피부색은 에티오피아인이라는 인종성에서 오는 것이지만, 『황금 전설』에서 ‘에티오피아인’이 맨 처음 한 번, 그리고 그 이후엔 ‘무어인’이 반복되어 사용된다. 무어인이 일반적으로 흑인이 아니라는 사실로 비추어 이 텍스트는 인종문제를 포함하여 신체와 관련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초래한다. 노예무역의 번성과 이슬람 문화와의 충돌로 역사적 변혁을 겪은 스페인의 경우는 특히 「검은 다리의 기적」을 표상한 예술 매체의 성격이 달랐다. 이에 대해서는 Fracchia(2013), Simpson(2014) 혹은 서종석(2017) 등을 참조 바람. 또한, 기독교인의 병든 ‘흰’ 다리와 무슬림 공여자의 ‘검은’ 다리의 상호교환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많은 상징적 해석을 낳는다. 가령 「검은 다리의 기적」은 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증거이지만, 최후의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기독교인에게는 훼손된 신체와 복원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Jacquet(1983), Bynum(1990) 또는 서종석(2017) 참조 바람.

20) ‘Cosimo de Medici’가 ‘Cosmas’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는 설과 이름의 유사성 때문에 코스미오 자신과 가계의 성인으로 선택하였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메디치가는 두 성인과 깊은 인연이 있다(Zimmerman, 1936: 164-165).

21) 역어 ‘몽중신유(夢中神癒)’는 여인석(2017: 10)에서 가져온 것이다. 두 쌍둥이 성인을 앞서 살펴본 디오스쿠로이뿐만 아니라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연결하기도 한다. 이 경우 쌍둥이 성인에 헌정된 기독교 교회가 결국은 이교도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을 대신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아스클레피오스의 자질 일부는 기독교 예수로 흡수되었다는 추정도 함께 한다(Delehaye, 1906: 172-173; Lawrence, 1978: 137; Réau, 1988[1958]: 333)

22) 이와 연관된 신학적 입장은 3세기와 6세기에 걸쳐 성립되었으며, 영과 육의 의학 간의 일치라는 기독교적 질병관을 촉진하게 된다(Grigsby, 2004: 20; Jeffrey, 1992: 614). 구약과 신약에서 질병은 종종 하느님의 법을 어긴 사람들에 대한 처벌의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가령 루카 복음(5,17-26)에 나오는 중풍 환자 치유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가 환자에게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할 때 이는 곧 병이 나았다는 걸 의미한다.

23) 두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삼는 주체가 반드시 사람은 아니었다. 많은 도시가 이 치유의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삼았는데, 이탈리아의 피렌체, 스페인의 살라망카, 체코의 프라하 등의 도시와 보헤미아 지역 등이 그 일례다(Conolly and Benanzio, 2007: 6).

24) 학회의 홈페이지(http://www.rsm.ac.uk/about-us/)에서 이 문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 의사 코스마스(오른쪽)는 약제상의 약병을 쥐고 있고, 외과의 다미안(왼쪽)은 수술용 도구를 쥐고 있다.

25) 동업 조합명 ‘Saint Côme’은 ‘Saint Côme et Saint Damien’의 약칭이지만 언제나 이 이름으로 불렸다. 동업조합을 나타낸 이미지 등에서는 물론 온전한 명칭이 나타난다(David-Danel, 1958a: 107, 각주 1). 프랑스의 중세 외과 길드를 언급할 때 ‘콩프레리(confre ′rie)’와 ‘코르포라시옹(corporation)’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콩프레리는 그 자체로 종교적 성격이 본질을 이루기 때문이다. 두 어휘는 상호 규정되기에 깊은 관련이 있다. 다비-다넬에 따르면, ‘코르포라시옹’은 장인이나 상인들의 물질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지만, ‘콩프레리’는 무엇보다 영적이거나 정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보통 ‘코르포라시옹’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서 그 조직의 성격에 따라 적합한 수호성인을 선택하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콩프레리’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David-Danel, 1958a: 107). 외과의 길드(corporation)도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26) 쟝 피타르는 루이 9세뿐만 아니라, 필립 3세(Philippe III le Hardi, 재위 1270-1285)와 그 아들 필립 르벨(Philippe IV Le Bel, 재위 1285-1314)의 왕실 외과 주치의였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십자군 전쟁에서 외과적 시술이 필요한 수많은 부상자와 낙후된 치료환경을 목격한 루이 9세가 의료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1226년 쟝 피타르에게 파리 외과의들을 조직하고 체계적인 교육과 의료환경을 개선하도록 지시하게 되었다고 한다(Schechter, 1968: 1004; Peltier, 1997: 377).

27) 싱어에 따르면 미사 전문이 5세기 이래 변하지 않은 사실에 비추어, 두 성인에 대한 숭배가 로마에서 시작된 시기는 매우 이른 것으로 추정한다(Singer and Singer, 1919: 168). 또는 David-Danel(1958b: 461)도 참조.

28) 파리와 파리 근교 발드와즈(Vald’Oise) 지역 뤼자르슈는 생콤 동업조합의 두 소재지이며 1320년 하나로 합병되었다. 줄리앙에 따르면, 특히 뤼자르슈 지역은 신자들의 순례 대상지이며, 프랑스 나머지 지역에 두 성인의 숭배가 확산해 가는 데 큰 일조를 한 곳이기도 하다(Julien, 1973: 506).

29) 1533년 생콤 동업조합(Confre ′rie Saint Côme)의 명칭은 공식적으로 ‘Coll‵ege de Chirurgie’(외과 동업조합)로 불리게 된다. 여기서 ‘Coll‵ege’라는 어휘의 의미는 현재에 사용되는 교육적인 의미는 아니며 길드의 성격을 갖는다. 다만 이 조합이 점차 ‘학교’와 닮아가면서 18세기 왕립외과학교(Acade ′mie Royale de Chirurgie)로 탄생하는 과정을 거친 후 현재의 의미와 가까워지는 역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공식적인 명칭이 바뀌었어도 ‘생콤’이라는 호명은 17세기까지 지속하였다.

30) 이 해부학 교실은 현재도 프랑스 파리 중심부 생 미셸 가(Boulevard Saint Michel) 의학부 거리(rue de l’Ecole de Me ′decine)에 현존한다.

31) 한희진(2014)에 따르면 현대 프랑스의 의료체계는 18세기 카바니스의 ‘의학적 인간학(anthropologie me ′dicale)’ 이념이 현실화한 것이라고 한다. 생콤 동업조합의 아나그로이 실천이라는 직업윤리는 무엇보다 이러한 의(醫)의 본질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듯 보인다.

32) 지면 관계상, 이 논문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지 못하지만, 시기별로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하는 「검은 다리의 기적」의 모습을 참조하려면 Zimmerman(2013)을 볼 것.

33) 쟈케에 따르면, 종교적인 해석도 부가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17세기 초에는 금욕과 육체적인 고행을 통한 단련이 만연했던 시기였는데, 아마도 이러한 종교적인 측면도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Jacquet, 1983: 28-29).

34) 가령 David Hamilton(2012)의 저서(A History of Organ Transplantation. Ancient Legends to Modern Practice)는 로스 발바세스 경공(Master of Los Balbases, active c.1480–1500)이 1495년 그린 「검은 다리의 기적」(Wellcome Library, London)을 표지로 사용하고 있다. 짐머맨의 목록을 보면 18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4점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데, 20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순수히 예술적인 성격을 띤다. 20세기 이후 작품의 경우 Zimmerman(1998)에는 5점이, Zimmerman(2013)에는 이를 보충하여 20점이 수록되어 있어 조사에 따라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두 성인과 「검은 다리의 기적」에 대한 현대적 관심의 증가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5) “문제는 왜 이식 외과 의사같이 지적이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많은 역사학자의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하는가이다.”(Schlich, 1995: 311)

36) 슐리히는 이러한 주장이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Schlich, 2010: 6).

37) 여기서 ‘bioavailable’이란 용어는 코헨이 약리학에서 가져와 세포나 조직 교환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사용하는 것임.

38) “그는 자기 다리가 자기 것이 아니면 남의 몸인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Figure 1.
그림 1. 프라 안젤리코, 부제 유스티니안의 치유, 템페라화 37 x 45 cm (1442, 피렌체 산 마르코 박물관)
Fra Angelico, The Healing of Deacon Justinian, Tempera on wood, 37 x 45 cm (1442, San Marco Museum, 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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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그림 2.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안의 도움을 받는 외과의사
The surgeon assisted by Saints Cosmas and Da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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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그림 3. 암브로시우스 프랑켄 1세,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안의 자애」, 패널 유채 236.4 x 88 cm (1590,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
Ambrosius Francken I, The Charity of Saints Cosmas and Damian, oil on panel 236.4 x 88 cm (1590, Royal Museum of Fine Arts Antwe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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