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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Med Hist > Volume 29(1); 2020 > Article
천연한 자연과 완전한 자연: 1970년대 중반 한국 가톨릭 가족계획 사업과 자연피임법의 경합

Abstract

This article reviews the competition of two natural family planning methods in the mid-1970s when the Catholic Natural Family Planning program was underway in Korea. The Catholic Church, emphasizing the natural law, has recommended Natural Family Planning (NFP), a method of regulating childbirth by abstinence during the fertile period, since the mid-twentieth century. However, a group of gynecologists working at St. Mary’s Hospital, a Catholic general hospital in Korea, questioned the utility of NFP. As an alternative, they proposed the method of Ovulation Regulation (OR), which regulates the menstrual cycle by inducing ovulation with steroids agents. This seemed to be no different than contraception with oral contraceptives disapproved of by the Catholic Church, but many doctors who advocated OR thought that this could be a new ‘natural’ family planning method to replace NFP.
What is noteworthy here is the fact that not only NFP advocates, but also OR advocates attempted to justify their methods based on the authority of the ‘nature.’ In the debate over natural family planning methods, nature’s legitimacy was given premise, not the object of doubt. Rather, the issue was the definition of nature. First, ‘nature’ in NFP signifies ‘innate nature,’ which excludes human intervention. According to this point of view, OR with steroids agents could not be natural. On the contrary, a group of doctors who advocated OR considered nature ‘primal completeness.’ If the natural order of the menstrual cycle could be restored, the artificial intervention of the administration of steroids was not a problem. Thus, both groups defended their arguments by redefining nature, rather than raising an issue of nature itself.
The competition between ‘innate nature’ and ‘complete nature,’ a proxy war between NFP and OR, resulted in the victory of the former as the meaning of nature became fixed. Advocates of NFP pointed out that OR inhibits other physiological functions in the process of inducing ovulation, suggesting that the idea of ‘complete nature’ could never be achieved. The meaning of nature could no longer be controversial. Since the intervention was unnatural, nature meant innateness, the absence of intervention. Accordingly, the Catholic Bishops of Korea approved the Billings Method, a kind of the NFP, as the official family planning method, and gynecologists at St. Mary’s Hospital of Korea also focused on the development and supplementation of the Billings Method. In short, the debate over the methods of natural family planning in mid1970s Korea was a clash of ‘innate nature’ and ‘complete nature.’ As a result, this confirmed the limitations of medical practice and reconfirmed the power of magisterium, the church’s authority over medical practice.

1. 들어가는 말

『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는 여성의 월경주기를 이용한 자연피임법, 즉 자연주기법만을 허용한다. 사전에는 자연주기법의 간단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후술할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을 거쳐 점액관찰법이 등장하였고, 이렇게 자연주기법에 해당하는 여러 방법이 순차적으로 개발됨으로써 자연피임법이 완성되었다는 서술이다. 여기에서 자연피임법은 자연주기법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가족계획’ 항목의 집필자는 아예 “자연적 방법”이 “한마디로 주기 금욕법”이라 단언한다[1]. 그러나 눈을 돌려 1970년대 중반으로 가면, 자연주기법과 자연피임법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가톨릭계 병원에서 근무하던 일군의 산부인과 의사가 자연주기법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자연피임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연주기법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스테로이드 제제로 배란을 유도하여 주기를 조절하는 배란조절법을 내어놓았다. 이는 일견 가톨릭 교회에서 반대하는 경구피임약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배란조절법을 옹호하던 여러 의사는 이것이 자연주기법을 대체할 새로운 자연피임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점은 자연주기법을 옹호하는 진영은 물론이거니와 배란조절법을 옹호하는 진영 역시도 ‘자연’을 근거로 자신의 방법을 정당화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자연피임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자연의 정당성은 의심의 대상이 아닌 소여(所與)의 전제였다. 오히려 쟁점은 자연을 규정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자연주기법의 ‘자연’은 인위적 개입을 배제한 ‘천연한 자연’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규정에 따르면 스테로이드 제제를 투여하는 배란조절법은 자연적일 수 없었다. 그러나 배란조절법을 옹호하던 일군의 의사는 ‘자연’을 ‘태초의 완전성’으로 상정했다. 월경의 ‘자연적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면 스테로이드 제제의 투여라는 인위적 개입은 아무래도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였다. 이처럼 양 진영은 자연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자연을 저마다의 견해에 맞게 재규정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였다.
두 진영의 논쟁은 자연 개념의 복수성과 맥락 의존성을 드러낸다. 일찍이 사상사가(思想史家) 아서 러브조이는 자연이라는 개념이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연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언가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며, 여기에 타고난 본성이나 신체 등의 의미를 한데 그러모으면 자연이 뜻하는 바만 적어도 예순여섯 가지에 달한다는 지적이었다(Lovejoy, 1973: 447–456). 과학사가 로레인 대스턴과 페르난도 비달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의미의 자연이 각각 어떠한 맥락에서 사용되었고 그를 통해 어떠한 권위가 발휘되었는지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Daston and Vidal, 2003: 1–20). 이들은 러브조이가 드러낸 복수의 자연 이면의 정치성을 읽어내려 하였다.
흄이 제기한 문제와는 다르다는 점에 주의하자. 주지하듯 흄은 도덕론을 다룬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A Treatise of Human Nature) 3편에서 당위가 존재로부터 도출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자연이 도덕의 기반이 될 수 있는지 따져 물은 바 있다[2]. 그러나 흄과 달리 대스턴과 비달은 서로 다른 의미의 자연이 권위와 접속하는 방식과 맥락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자연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자연을 재규정함으로써 권위를 획득하려던 한국의 자연피임법 논쟁에 시사점을 던지는 통찰이다. 만약 1970년대 중반의 자연피임법 논쟁이 자연의 도덕적 권위를 둘러싼 공방으로 진행되었다면 흄이 제기한 문제를 중심으로 논쟁을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모두가 자연의 권위를 인정하는 상황에서는 대스턴과 비달의 문제의식이 더욱 적절하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가족계획 사업을 다룬 글은 많지 않다. 그마저도 윤리 문제를 살펴본 글이나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던 몇몇 원로의 회고 정도가 대부분이며, 역사학의 연구는 충분치 않다[3]. 가톨릭과 가족계획 사업이라는 두 항의 조합이 어색하게 보이는 탓이다. 한국 가족계획 사업의 역사를 다룬 연구에서 가톨릭 교회는 대개 “종교적 이유에서 가족계획에 부정적”이라거나, “가족계획 사업이 국가정책화된 뒤에 여기에 대해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세력” 정도로 서술된다(조은주, 2018: 57; 배은경, 2004: 200). 그러나 이는 사실과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후술하겠지만 가톨릭 교회가 정부의 가족계획 사업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가족계획 사업의 필요성 전반을 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가톨릭 가족계획 사업의 면모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가톨릭 교회와 가족계획 사업을 양극에 두는 대립 구도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물론 예외적인 연구도 있다. 최선혜와 이원희, 김대기의 글이다. 최선혜는 수도회의 문서를 바탕으로 가족계획 사업을 향한 한국 가톨릭 교회의 대응을 살피고 이를 통해 가톨릭 교회가 추구해 온 생명권 수호의 의미를 명료하게 되새겼으며, 이원희와 김대기는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의 활동을 전반적으로 살피는 가운데 수녀회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자연주기법 교육 활동을 다루었다(최선혜, 2005; 이원희, 김대기, 2017). 두 논문은 가톨릭 교회와 가족계획 사업의 교집합을 드러내고, 그 역사적 의미를 밝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두 논문의 여러 저자는 가톨릭 교회의 자연피임법을 자연주기법과 동일시하며, 그러한 탓에 배란조절법과 자연주기법의 경쟁이나 그 속에서 벌어진 자연의 재규정과 같은 사건은 그들의 시선에서 비켜나 있다.
이러한 이론사와 연구사의 흐름 속에서 이 글은 한국 가톨릭 가족계획 사업이 진행되던 와중인 1970년대 중반에 자연주기법 진영과 배란조절법 진영이 자연을 어떻게 규정하였고 이를 통해 무엇을 의도했는지 살피려 한다. 이어지는 절에서는 먼저 가족계획 사업이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가톨릭 교회가 자연피임법을 강조하게 된 과정을 조망하고, 자연주기법과 배란조절법을 옹호하는 두 진영이 자연을 저마다의 방식에 따라 규정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추구하는 모습을 알아본다. 그런 다음에는 두 가지 기술과 개념의 경쟁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돌아보고, 마지막에서 전체 논의를 정리한다. 이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가톨릭 교회의 가족계획 사업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자연주기법과 자연피임법의 등식에 담긴 역사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2. 자연의 강조: 가족계획 사업의 부상과 가톨릭 교회의 대응

‘가족계획을 허가하되, 자연적인 방법만을 인정한다.’ 가족계획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인구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비로소 정리된 결과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가족계획은 그 자체로 죄였다. 1930년에 반포된 교황 비오 11세(Pius XI, 1857–1939)의 회칙 「정결한 혼인」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이다. 여기에서 비오 11세는 “부부 행위는 일차적으로 자녀 출산을 위한 것인 만큼, 부부 행위를 하면서 부부 행위 고유의 결과와 목적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사악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고 선언했다[4]. 의도적으로 임신을 피하는 일은 모두 단죄의 대상이었다. 더 나아가 비오 11세는 “히포의 주교”, 즉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의 문장을 그대로 빌려와 이런 행위가 “참된 혼인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지 못한 만족을 위”한 것이며,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상대방의 첩이나 정부(情夫)로 전락시”킨다고 단언하였다[5].
교황청의 입장은 인구 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재부상하면서 변화하였다. 사실 인구의 증감에 따라 인류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토마스 맬서스(Thomas Malthus, 1766–1834)는 농촌의 생산량 증가율과 도시의 인구 증가율이 긴장 관계에 놓여있음을 지적하고, 인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서구 사회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으리라 경고하였다. 이런 생각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부침을 반복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였다.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 인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신맬서스주의와 공산주의의 확장으로부터 ‘자유 세계’를 수호해야 한다는 냉전의 이해관계가 결합하였고, 이는 인구 증가와 빈곤, 공산화를 한데 엮어내는 논리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1954년 휴 무어 재단(Hugh Moore Fund)에서 발행한 소책자 『인구 폭탄』에는 “수억의 사람들이 배를 곯고 있다. 절망에 빠진 그들은 조금씩 공산주의와 폭력에 귀를 기울인다”는 문장이 실렸다[6]. 인구의 증가가 빈곤으로, 빈곤은 공산화로 이어지기에,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긴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따라 개발도상국의 인구가 중요한 의제로 급부상하여, 세계 각국에서 유례없는 규모의 가족계획 사업이 진행되었다(Frey, 2011: 78–81). 사태 인식과 실천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이러한 변화는 가톨릭 교회에 크나큰 숙제를 안겨주었다. 가톨릭 교회는 급변하는 현대 세계의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어놓아야만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교황청은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견해, 즉 가족계획 자체는 불가피하나 그 방법은 자연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1951년에 이루어진 교황 비오 12세(Pius XII, 1876–1958)의 「이탈리아 가톨릭 산파조합 회의에서 한 훈화」가 시작이었다. 여기에서 비오 12세는 먼저 불임 수술과 같이 인위적으로 생식에 개입하여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로 막는 일을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의학적, 경제적, 사회적인 이유가 있을 때 비가임기를 이용하여 자연적으로 가족계획을 수행하는 일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7]. 어떠한 상황이 여기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나, 비가임기를 이용한 자연주기법의 사용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변화였다. 한 달 뒤, 비오 12세는 같은 입장을 다시 한번 반복함으로써 자연주기법의 정당성을 힘주어 강조했다(Noonan, 1986: 445–447).
이는 교황 바오로 6세(Paul VI, 1897–1978)가 공포한 회칙 「인간 생명」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비오 12세와 마찬가지로 바오로 6세는 인위적인 개입에 대한 거부를 드러냈다. “이미 시작된 출산 과정의 직접적인 중단과 무엇보다 직접적인 낙태 …… 직접적인 불임 시술 …… 부부 행위 이전이나 도중에 또는 그 자연적 결과의 발달 중에, 목적으로든 수단으로든 출산을 가로막는 모든 행위[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8].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출산 능력은 인간 생명의 탄생을 본질적으로 지향하며, 하느님께서 그 원천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몸과 출산 능력에 대해 “무제한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9].
대안은 자연주기법이었다. 바오로 6세는 “부부의 신체적 또는 심리적 상태나 외적인 상황들 때문에 출산에 간격을 두어야 할 중대한 이유가 있다면, 출산 기능에 내재된 자연적 주기를 고려하여 비가임기에만 부부 행위를 함으로써 …… 출산을 조절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썼다. “자연적 과정의 진행을 가로막는” 피임과 달리 자연주기법은 “자연적인 능력을 정당하게 이용하는 것”이기에, 자연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10]. 또한 피임이 서로를 성적이고 “이기적인 유희의 도구”로 전락시킨다면, 자연주기법은 “상호 간의 충실함을 보존”한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올바른 사랑”의 표현이기도 했다[11]. ‘자연적인 능력’ 또는 ‘출산 기능에 내재된 자연적 주기’라는 표현을 눈여겨보자. 이는 자연주기법이 창조의 순간에 신에 의해 갖추어진 방법임을 의미했다. 이렇게 자연주기법은 단죄의 대상에서 “하느님께서 …… 지혜롭게 마련”한 “자연법의 규범”에 따른 일로 고양되었다[12].
한국 가톨릭 교회의 처지와 대응 역시 교황청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먼저 인구 문제에 대한 답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가톨릭 교회는 교황청보다 더 시급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찬탈한 직후부터 가족계획 사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종결되는 1966년까지 인구성장률을 2.74%로 감소시킨다는 계획이 발표되었고,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다[13]. 특히나 여기에는 콘돔이나 루프, 정관 불임 수술과 난관 불임 수술, 낙태 등의 방법이 포함되었기에, 가톨릭 교회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입장 표명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14].
교황청과 같이 한국 가톨릭 교회는 가족계획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그 방법은 자연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어놓았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4개월이 지난 1961년 9월 26일, 한국 주교단은 「인구 문제와 산아제한」이라는 공동 교서(敎書)를 발표했다. 먼저 여기에서 주교단은 인구 증가라는 “문제 자체나 그 중요성을 무시할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이며 …… 무관심할 수도 없는 것”임을 밝히고, “현재의 [인구] 증가율이 그대로 지속된다면 …… 인구를 지탱할 만큼의 경제 성장과 식량 증가를 이룩하기는 매우 힘든 것으로 보”인다고 씀으로써 가톨릭 교회가 가족계획 사업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음을 분명히 했다[15].
다만 방법은 “자연법과 인간의 품위에 적합한 방법”이어야 했다[16]. 주교단의 입장은 분명했다. 주교단은 인간의 생식 능력을 고의로 막고 생명을 해치는 당대의 방식을 “사회적 타락과 야수적인 부도덕”이라 일축했다[17]. “정신적인 요소들을 부정하거나 멸시하고, 오직 인간의 온 행복을 현세의 쾌락 속에만 두는 일종의 유물론적 사상에 기인”한다는 진단이었다[18]. 대안은 비오 11세가 훈화를 통해 공인한 자연주기법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1964년 5월 민주공화당의 모자보건법 제정 시도에 맞서 발표된 성명서 「‘국민 우생 법안’에 대한 우리의 견해」, 1968년 9월 회칙 「인간 생명」의 반포를 기념하여 발표된 공동 교서 「우리들이 지녀야 할 올바른 인식과 자세」에서 주교단은 자연법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겼다[19].
이처럼 가톨릭 교회의 견해는 굳건했다. 자연법에 합치되지 않는 방법은 죄악이며, 따라서 오직 자연법에 어긋나지 않는 방법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가임기에 금욕함으로써 임신을 피하려면, 먼저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가임기인지 또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비가임기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수많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가임기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파악할 수 없다면 특정한 날짜에 가임기를 유도할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앞으로의 논쟁을 예고하는 지점이었다.

3. 천연한 자연: 개입이 부재한 자연과 점액관찰법

20세기 전반까지 자연주기법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되었다. 하나는 월경주기와 배란일의 관계를 바탕으로 가임기와 비가임기를 추정하는 달력주기법이었다. 일본의 오기노 규사쿠(荻野久作, 1882–1975)와 오스트리아의 헤르만 크나우스(Hermann Knaus, 1892–1970)의 연구를 바탕으로, 네덜란드의 존 스뮐더르스(John Smulders)와 미국 시카고로욜라대학교의 레오 랏츠(Leo Latz, 1903–1994) 등이 마름질한 방법이다(Fehring, 2019: 149–152). ‘오기노-크나우스법’이라고도 불린 달력주기법에 따르면, 월경 주기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으면 임신을 조절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배란은 월경에 2주 앞서서 일어나기 때문에, 다음 월경일과 배란일을 예측하여 이를 전후로 금욕한다면 임신을 피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또 다른 방법은 기초체온법이었다. 가톨릭 신부인 빌헬름 힐레브란트(Wilhelm Hillebrand, 1892–1959)가 만들고, 이후 게르하르트 되링(Gerhard Döring, 1920–1992), 루돌프 폴만(Rudolf F. Vollman), 존 마셜(John Marshcall, 1922–2014) 등이 발전시킨 방법이다(Fehring, 2019: 152–155). 기초체온법 역시 달력주기법과 마찬가지로 배란을 예측함으로써 가임기와 비가임기를 추정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차이는 배란일을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기초체온법을 주장한 여러 의사는 배란을 전후로 체온이 하강하였다가 상승하며, 따라서 기상 직후에 측정한 기초체온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배란일을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두 가지 방법은 가톨릭 교회의 견해에 온전히 부합했다.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을 주창한 이들은 감히 주기나 체온을 조작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가톨릭 교회는 “자연적 과정의 진행을 가로막는” 방법을 금하고, “출산 기능에 내재된 자연적 주기를 고려”한 방법만을 허가했다[20]. 다시 말해 가톨릭 교회에서 가능한 가족계획이란 자연에 대한 인위적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의 ‘천연한 자연’을 활용하는 방식뿐이었다. 자연을 기록하기만 해도, 즉 천연한 자연을 포착하기만 해도 가임기와 비가임기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은 여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방법이었다. 가톨릭 교회는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교황 비오 12세는 앞서 언급한 1951년의 「이탈리아 가톨릭 산파 조합 회의에서 한 훈화」에서 비가임기를 이용한 출산 조절은 정당하다고 연설했고, 실제로 많은 가톨릭 신자 가정이 자연주기법을 이용하여 가족계획을 진행하였다(Schnepp and Mundi, 1952: 44–49).
이처럼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은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자연주기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두 방법에 기여한 이들 상당수는 가톨릭과 연관이 있었다. 먼저 크나우스는 달력주기법의 개발을 인정받아 교황 비오 12세를 알현하고,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알프레도 오타비아니(Alfredo Ottaviani, 1890–1979) 추기경의 추천으로 경구피임약의 윤리성을 따져 묻는 자문위원회 위원에 위촉된 인물이었다(Clements et al., 2019: 4). 스뮐더르스와 랏츠, 폴만 역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기초체온법을 개발한 힐레브란트는 의사 집안에서 나고 자란 신부였다(Vollman, 1979: 316).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은 가톨릭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진 방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당대의 많은 이들은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의 유용성을 의심했다. 실패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가족계획 사업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두 가지 방법의 또 다른 공통점이었다. 먼저 달력주기법은 월경 주기가 일정하지 않다면 성공하기 힘든 방법이었다. 반복되는 주기를 바탕으로 배란일을 추정하는 방식이기에, 주기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면 계산의 정확도를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초체온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란을 전후로 체온이 낮아졌다가 올라간다고 하지만, 낙폭은 작고 상승 폭은 컸다. 그러한 탓에 기초체온법은 배란을 사전에 예측하기보다는 외려 사후에 알아내기 알맞은 방법이었다. 정자가 2일 이상 생존할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배란의 사후 예측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결국 사전에 배란일을 짐작하기 위해서는 기초체온법과 달력주기법을 함께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처음부터 제기된 한계이기도 했다. 산부인과학의 거장 에밀 노박(Emil Novak, 1884–1957)은 월경 주기의 불규칙성을 근거로 비가임기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오기노와 크나우스가 가정하는 바와 같이 월경 주기가 4주로 고정되어 있다면 가임기와 비가임기를 계산해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에 따라 주기가 짧거나 길 수도 있고 규칙적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비가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노박은 이러한 방법이 임신을 촉진하는 데에는 적절하나, 임신을 피하는 데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21]. 대중의 반응도 같았다. 프랑스인들은 달력주기법의 실패로 태어난 아이를 ‘베베 오기노’(bébés Ogino) 또는 ‘프티 오기노’(petits Ogino)라 부르며 이죽거리곤 했다(Rebreyend, 2005: 212).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의 한계는 새로운 자연주기법의 개발로 이어졌다. 1960년대 초반, 호주의 존 빌링스(John J. Billings, 1918–2007)와 에블린 빌링스(Evelyn L. Billings, 1918–2013) 부부가 고안한 점액관찰법이었다[22]. 맬버른의 대주교 다니엘 매닉스(Daniel Patrick Mannix, 1864–1963)의 뜻에 따라 1952년부터 가정 사목을 맡게 된 몬시뇰 모리스 카라리니히(Maurice Joseph Catarinich, 1917–2005)는 이듬해 존 빌링스에게 자연주기법의 보완을 주문하였다. 존 빌링스와 화학자 제임스 브라운(James B. Brown, 1919–2009), 그리고 이후 연구팀에 합류한 에블린 빌링스는 월경에 수반되는 신체증상에 주목하였고, 수년의 연구 끝에 점액과 배란의 연관성을 밝혀내어 이를 점액관찰법으로 정리하였다(Norris, 2010: 324–326)[23].
빌링스 부부의 주장에 따르면 점액관찰법은 기존 자연주기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용한 대안이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은 낮은 정확성과 유용성이라는 한계를 노출했다. 달력주기법은 주기가 불규칙할 경우 성공을 거두기 힘들었고, 기초체온법으로는 배란을 미리 알 수 없었다. 빌링스 부부의 전망은 달랐다. 이들은 자궁 경부의 점액 분비가 배란에 앞서 달라지기 때문에, 점액의 변화만 잘 관찰한다면 주기의 규칙성과 무관하게 배란일을 사전에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점액관찰법은 월경주기가 불규칙한 경우에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달력주기법을, 배란을 사전에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초체온법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점액관찰법은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점액관찰법 도입의 선봉에는 춘천교구의 주교 박토마(Thomas Stewart, 1925–1994)가 있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가족계획 사업이 가정과 생명의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생각했던 박토마는 1966년에 춘천교구장으로 임명받은 뒤, 자연주기법의 교육과 보급을 사목의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최선혜, 2005: 195). 박토마는 처음부터 점액관찰법을 염두에 두었다[24]. 그는 직접 호주로 찾아가 빌링스 부부를 만났고, 이후 성골롬반외방 선교수녀회에 소속된 두 명의 수녀를 보내어 빌링스 부부에게 점액관찰법을 지도받게 했다(행복한 가정 운동 협의회, 2000: 19). 이후 수녀회에서 운영하던 춘천 성골롬반병원과 삼척 성요셉의원을 중심으로, 점액관찰법의 교육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빌링스 부부를 사사한 박토마와 두 명의 수녀가 다른 수녀를 가르치고, 이들이 다시 뜻을 함께하는 평신도와 비신도를 가르쳤다(이원희, 김대기, 2017: 361–362).
이러한 흐름은 1972년을 계기로 전국 규모로 확장되었다. 박토마는 1972년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 참석하여 사목자는 “신자들의 죄스러운 행위를 단죄하며 권고하는 외에 실지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가정을 도와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 “오기노-크나우스 방법보다 더 확실한 빌링스 박사의 방법을 연구, 번역 보급”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25]. 박토마의 주장은 신속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듬해인 1973년 춘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행복한 가정’ 사업의 추진이 의결되었고, 1975년 5월에는 ‘한국 행복한 가족협회’ 창립 총회 및 세미나가 개최되었다[26]. 지금까지 자연주기법의 확산을 책임지던 춘천 성골롬반병원에 더하여 같은 수도회가 운영하던 목포 성골롬반병원, 틋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에서 운영하던 대구 파티마병원, 그리고 서울대교구의 성모병원 등에 가족계획 클리닉을 설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자연주기법의 확산을 결의하는 자리였다[27].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는 점액관찰법의 보급을 의결하는 한편, 1972년의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 직후 자연주기법의 보완과 발전을 위한 연구위원회의 결성을 주문하기도 했다[28]. 이에 가톨릭병원협회는 이듬해 2월부터 행복한 가족 사업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교회적 방법”의 연구를 진행하였다[29]. 연구위원회는 막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성모병원 산부인과의 김승조(金丞兆, 1934–) 교수를 주축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 점액관찰법의 의의와 한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였다. 1973년 봄, 연구위원회는 주교회의 정기총회에 다음과 같은 보고를 제출했다. “오기노 주기법, 체온법, 증상법, 빌링스 방법, 그로든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이용하며, 특히 그로든 방법을 좀 더 개발해 나가겠다.” 연구위원회의 보고에 대해 주교회의는 “자연법에 위배되지 않는 방법을 개발해 보겠다는 이 연구위원회의 계획을 계속 추진하도록 촉구하고, 주교회의는 그에 수반되는 윤리 문제를 검토해 나가기로”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30]. 문제의 씨앗은 연구위원회가 언급한 ‘그로든 방법’이었다. 이는 정말 ‘자연법에 위배되지 않는 방법’이었을까? 질문의 답은 자연의 정의에 달려있었다.

4. 완전한 자연: 개입으로 완성되는 자연과 배란조절법

1973년 춘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 보고된 ‘그로든 방법’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던 미국의 산부인과 의사 해롤드 그로든(Harold M. Groden)이 개발한 방법이었다. 그로든은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을 신뢰하지 않았다. 배란을 예측하는 방법인 탓에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로든은 배란 유도를 답으로 내어놓았다. “주기 가운데 생리학적으로 정확한 시점에 배란이 일어나도록” 한다면 배란의 시점을 아주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그를 바탕으로 가임기와 비가임기 또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31]. 그로든은 주기를 28일로 상정하고, 15일 차부터 25일 차까지 약을 복용함으로써 14일 차에 배란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난자의 수명이 12시간이고 정자의 수명이 48시간임을 고려할 때, 11일 차부터 14일 차까지 4일간 금욕함으로써 피임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32].
문제는 무엇으로 배란을 유도하는가였다. 그로든이 선택한 방법은 경구용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제였다. 배란에 선행하는 호르몬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조성함으로써, 배란을 유도하는 방법이었다. 시험을 위해 35명의 여성이 모집되었다. 모두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다른 피임법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로든은 시험이 성공적이라고 썼다. 배란을 의미하는 여러 증거, 이를테면 기초체온의 상승이나 자궁 경부 점액 및 자궁내막의 변화 등을 바탕으로 시험 대상자 모두가 14일 차에 배란하였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33].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썼다. “약으로 보강된 자연적 황체호르몬 배출이 난포자극호르몬의 때 이른 또는 과다한 분비를 막음으로써 [난포의] 조기 성숙을 방지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시험 결과 모든 환자는 14일차에 배란했다[34].”
그로든의 연구를 접한 성모병원 산부인과 김승조 교수는 배란조절법이 자연피임법의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가톨릭대학 의학부 산부인과학교실의 주임교수로서 자연피임법 연구를 총괄하던 김승조는 그로든과 마찬가지로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의 유용성을 신뢰하지 않았다[35]. 1973년에 『한국가톨릭병원협회지』에 투고한 「가톨릭적 가족계획과 자연피임법」이라는 글에서 그는 이들 방법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배란 일자 [가] 실제로는 더 넓고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달력주기법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달력주기법을 쓸 수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고, 기초체온법의 경우 실패율이 낮지만 “정충과 난자 생존 기간과 금욕일을 어떻게 잡느냐”가 문제라는 지적은 실제 활용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였다[36].
빌링스의 점액관찰법 역시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김승조는 점액관찰법에 대해 “어디까지나 환자가 자신이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기 증상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있는 분에게는 권할 수 있고 성공률을 높일 수도 있다”고 평했다[37]. 점액관찰법의 높은 난도와 그에 따른 실패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지적하는 문장이었다. 그는 이듬해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인 『사목』에 투고한 글을 통해 자연주기법 일반에 대한 비판을 반복하는 한편, 점액관찰법을 향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월경주기가 짧은 부인과 반대로 너무 긴 부인”은 “배란일을 종잡을 수 없”고, “여러 형태의 부인과적 질환, 특히 경관염을 심히 오래 않는 부인”의 경우에는 “배란을 예민하게 예측하지 못”하며, “생활환경의 변화, 정신적, 신체적 변화”가 점액에 영향을 주기도 하므로, 점액관찰법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었다[38].
김승조의 비판을 비껴간 유일한 방법은 배란조절법이었다. “배란일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또 그 배란이 같은 부인에 있어서도 변화가 심”하여 “피임효과가 낮다”는 것이 “자연법의 가장 결정적인 결점”이라면, “배란을 조절”하는 방법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39]. 자궁내장치나 경구피임약처럼 가톨릭 교회가 허락하지 않는 피임법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가톨릭 교회가 허락하는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 점액관찰법의 유용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김승조는 배란조절법에 온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김승조가 주교회의에 “오기노 주기법, 체온법, 증상법, 빌링스 방법, 그로든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이용”하면서도, “특히 그로든 방법을 좀 더 개발해 나가겠다”고 보고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40]. 김승조 연구팀은 그로든이 제시한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제를 시험하는 한편, 배란을 유도할 수 있는 다른 후보 약물을 탐색하기도 했다[41].
그러나 기술적 가능성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배란조절법이 과연 자연적인 방법을 강조하는 가톨릭 교회의 방침과 어긋남이 없냐는 것이었다. 일견 배란조절법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합치된 것처럼 보였다. 그로든이 배란조절법을 처음으로 소개한 지면은 미국가톨릭의학협회의 기관지인 『계간 리나커』(Linacre Quarterly)였고, 한국에 배란조절법을 들여온 김승조 역시 『한국가톨릭병원협회지』나 천주교중앙협의회 『사목』과 같은 곳에서 배란조절법을 옹호하곤 했으니 말이다. 더 나아가 김승조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그로든 방법’을 연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 배란조절법은 이미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자연피임법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자연의 정의에 있었다. 만약 자연법의 ‘자연’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위적인 개입이 없는 ‘천연함’을 의미한다면, 경구용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제를 투여하는 배란조절법은 분명 자연적이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로든은 이 문제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배란 조절」이라는 글에서 배란조절법을 소개하며, 구체적인 방법의 설명을 미루어두고 “신학적인 고려”를 먼저 언급한 까닭이었다. 그로든의 전략은 자연의 권위를 인정하되,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글의 서두를 열며, 자연법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분명히 했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 생식의 도덕적 측면에 관한 견해를 바꿀 수 없고, 바꾸지 않을 것이며, 바꾸어서도 안 된다. 이를 향한 기본 원칙은 변할 수 없으니, 비자연적인 것을 금하는 자연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42].”
자연법을 향한 믿음을 강조한 다음, 그로든은 자연이란 인간 본연의 ‘완전함’을 의미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인간에게는 창조 당시의 완전한 상태가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적 상태에 해당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인간이 창조 이후 “영적일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타락했으며, 신체적 타락이 “기계적, 구조적, 기능적 결함”으로 드러난다고 주장했다[43]. 그로든이 관심을 두었던 월경 주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14일 차에 배란이 일어나는 28일의 주기가 자연적이라고 상정했다. 자연주기법의 시행을 곤란하게 만드는 짧거나 길거나 불규칙한 주기는 자연에서 벗어난 ‘타락의 결과’였다[44].
자연적 상태 또는 완전함으로부터의 괴리는 개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는 다시 창조의 순간으로 돌아갔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악과 불완전을 …… 예방하고 바로잡을 수단을 부여”받았으니, 개입을 통해 자연으로부터의 이탈을 바로잡는 일은 정당하다는 강변이었다. 따라서 “의료인의 목표는 구조와 기능 면에서 인간 본래의 생리적 완성을 복원”하는 데 있었다. 당뇨를 인슐린으로 치료하여 혈당 수치를 정상으로 되돌리고, 악성빈혈을 비타민 B12와 간 추출물 또는 엽산으로 치료하여 적혈구를 제자리로 돌리는 일은 “자연적 기능을 회복”하는 정당한 개입이었다[45]. 그로든은 배란조절법 역시 같은 의미에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약을 주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경구피임약과 유사할지 모르지만, 경구피임약이 “자연적 기능”인 배란을 억제한다면 배란조절법은 오히려 “정확한 시점에 배란이 일어나도록” 함으로써 “여성의 생식 주기를 완성”한다는 이유에서였다[46].
그로든은 이렇게 자연의 개념을 바꾸어놓았고, 이로써 두 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인위적 개입의 여부와 자연성에 대한 판단의 분리였다. 자연을 천연한 상태로 가정한다면, 천연함을 해치는 개입은 곧 비자연을 의미했다. 그로든의 구도에서는 달랐다. 그에게 자연성이란 오직 신체의 상태로 판단되는 문제, 다시 말해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완전한지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였다. 또 다른 하나는 정당한 개입의 가능성이었다. 이제 개입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었다. 자연성의 회복 또는 완전성의 복원을 목표로 하는 한, 개입은 정당할 수 있었다. 위에서 살펴본 표현, “약으로 보강된 자연적 황체호르몬 배출”이라는 말을 되돌아보자. 그로든에게 자연이란 약이라는 개입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상태,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는 약으로 보강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상태였다.
김승조 역시 배란조절법을 옹호하는 글을 내어놓았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허가 없이는 배란주기법의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가족계획 사업의 진행과 함께 자궁내장치나 경구피임약 등의 임상시험이 진행되었고, 서울대학교나 연세대학교는 여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다[47]. 물론 이는 가톨릭대학 의학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가톨릭 교회는 자연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을 금지했고, 따라서 가톨릭대학 의학부의 여러 산부인과 의사 역시 정부의 사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마침 이 시기는 김승조가 산부인과학을 시작하여 대학교원으로 임용되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덕분에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지근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가톨릭 교회의 허가가 의학적 개입의 범위를 규정하는 상황에서, 김승조는 그로든과 마찬가지로 배란조절법의 신학적 정당성을 옹호해야만 했다[48].
김승조는 그로든과 같은 논리를 반복했다. 그가 보기에도 자연이란 본연의 완전함을 의미했으며, 완전함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개입 역시 정당할 수 있었다. 점액관찰법을 포함한 여러 자연주기법을 비판하고 배란조절법을 옹호했던 「가톨릭적 가족계획과 자연 피임법」에서 그는 “인위적인 노력이 가미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일반 피임약이 배란을 억제하는 것으로 피임 효과를 내는 것에 반해서 이 방법은 배란을 일정한 기간에 유도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자연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썼다[49].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는 “신은 우리에게 창조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과학적인 두뇌도 주셨다”는 말을 덧붙였다[50]. 인간 존재의 창조로부터 개입의 정당성을 구하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옹호에도 불구하고, 배란조절법은 끝내 수용되지 못했다. 가족계획 사업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원칙을 무너뜨릴 위험성 때문이었다.

5. 자연의 확립: 교도권의 재확인과 개입의 한도

점액관찰법의 대안으로 제시된 배란조절법은 끝내 가톨릭 교회에 수용되지 않았다. 한국 가톨릭 주교단은 1976년 6월 25일에 발표한 사목교서 「건전한 가족계획」을 통해, 점액관찰법을 유일한 “자연적인 방법”으로 공인했다[51]. 이는 배란조절법의 폐기를 의미했다. 김승조의 제안이 발표된 1973년의 춘계 주교회의 정기총회 이후, 주교단의 이름으로 생산된 그 어떤 문서도 배란조절법을 언급하지 않았다. 사목교서 「건전한 가족계획」의 서술은 상징적이다. 여기에는 자연법에 합치되는 방법과 그렇지 않은 방법이 모두 명기되었는데, 점액관찰법이 자연피임법의 동의어로 쓰인 한편 배란조절법은 그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배란조절법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방법인 것처럼, 그대로 증발해버렸다[52].
배란조절법이 기각되고 점액관찰법이 채택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나는 점액관찰법의 의학적 권위가 확립되었다는 점이었다. 김승조가 배란조절법에 희망을 걸던 1973년 봄까지만 하더라도, 점액관찰법을 향한 의심은 의학적으로 정당했다. 점액관찰법의 유용성을 뒷받침하는 문헌이 그리 많지 않았던 탓이다. 상황은 서서히 변해갔다. 기점은 1972년이었다. 저명한 학술지 『란셋』(Lancet)에 점액관찰법의 효과를 제시하는 논문이 실리고, 미국 가톨릭교회의 주도로 자연적 가족계획의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아를리 하우스 회의’(Arlie House Conference)에서 점액관찰법이 전도유망한 방법으로 조명되면서, 미국의 여러 가톨릭계 의료기관이 본격적으로 점액관찰법을 보급하기 시작했다(Fehring, 2019: 158–160)[53]. 결과는 고무적이었고, 이러한 소식을 접한 한국 가톨릭 주교단은 사목교서 「건전한 가족계획」을 통해 “꾸준한 연구와 실험 결과로 이제는 주기법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거의 해결되었”다고 공표했다[54].
또 다른 이유는 춘천교구의 경험과 박토마 주교의 확신이었다. 상기한 바 춘천교구는 박토마를 중심으로 점액관찰법의 도입과 확산에 앞장선 곳이었다. 박토마의 입장은 확고했다. 그는 “신자 부부 약 2,000명과 비신자 부부 약 2,000명”에게 교육을 한 결과, “생리상으로는 실패하는 일이 없다”고 확언했다[55]. 물론 엄밀한 통제를 거친 경험은 아니었지만, 4,000명이라는 수는 절대 작지 않았다. 또한, 이는 성골롬반병원과 성요셉의원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 등이 생산하여 보고한 자료이기도 했다. 이로써 박토마의 발언은 종교적 권위에 더하여 의학적 권위를 갖출 수 있었다. 박토마는 확신에 찬 어조로 점액관찰법을 향한 비판을 일갈했다. 점액관찰법의 실패는 “한 두 번쯤 강의를 듣고 다 아는 체”하거나 제대로 된 “지도나 감독을 받지 않기” 때문이지, 방법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56]. 그는 정식으로 훈련받은 요원에게 교육을 받는다면 “이 방법이야말로 …… 어떤 자연적인 방법보다도 이해하기 쉽고 안전한 방법이므로 이상적”이라 단언했다[57].
점액관찰법을 향한 박토마의 확신은 주교단의 입장에 강하게 반영되었다. 점액관찰법을 공인한 1976년의 주교단 사목교서 「건전한 가족계획」은 두 달전에 발표된 박토마의 글 「혼인과 가정생활」에서 많은 문장을 가져왔다. “혼인생활과 가정생활을 함에 있어서 우리 교우들이 현대 사회의 위험한 견해와 사악한 행습에 물들거나 빠지지 않도록” 사목교서를 작성했다는 서두의 문장이나 “자녀를 낳지 말아야 할 타당한 사유가 있을 때에 주기법에 따라 한동안 금욕 생활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는 문장은 두 글이 일치하는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58].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점액관찰법에 대한 언급이다. 위에서 언급하였듯 주교단은 사목교서 「건전한 가족계획」를 통해 점액관찰법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공표하였는데, 이는 박토마의 글과 정확히 일치했다[59]. 점액관찰법을 향한 박토마의 신뢰가 주교단의 입장에 그대로 녹아들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는 배란조절법이 가톨릭 교회의 문헌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점액관찰법을 향한 확신이 곧 배란조절법의 폐기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주교회의는 배란조절법을 명시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무시하는 길을 택했고, 그러하기에 배란조절법이 기각된 이유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한 가지 단서는 1973년의 춘계 주교회의 정기총회 회의록이다. 김승조가 배란조절법의 개발을 보고한 바로 그 회의이다. 김승조와 그로든이 걱정했던 것처럼, 주교단은 배란조절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윤리적 정당성을 확신하지 않았다. 주교단은 “그로[든] 방법을 개발한 필리핀 주교단에 정보 제공을 요청”하고, 이를 바탕으로 입장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60]. 그렇다면 공은 필리핀 주교단에 던져진 셈이다.
필리핀 주교단은 배란조절법이 ‘비자연적’이라 판단했다. 월경 주기와 배란일을 고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생리적 기능의 훼손이 일어난다는 이유였다. 상기하였듯 그로든은 배란조절법이 경구피임약과 다르게 ‘자연적 기능’을 억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주교단의 의학 자문이었던 마닐라 산토토마스대학교 의과대학의 빈센테 로살레스(Vincente J. A. Rosales)는 달리 생각했다. 로살레스는 여러 연구를 바탕으로, ‘자연적’이라던 배란조절법이 기실 ‘자연을 거스르는’ 경구피임약과 다르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61]. 배란조절법에서 사용되는 약이 경구피임약과 동일하게 자궁 경부 점액을 변화 시켜 정자의 이동을 막는 한편, 배란 자체를 억제하는 때도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로살레스는 배란조절법을 ‘11일짜리 경구피임약’이라 일축하며, “주기법을 활용하여 가족계획을 시도하는 보수적인 환자는 이 방법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62].
이는 자연을 재규정함으로써 논란을 우회하려던 논리가 더는 유효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배란조절법이 기실 경구피임약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완전한 자연’의 실패를 의미했다. 그로든과 김승조는 자연을 완전한 상태로 정의하고, 자연성을 회복하는 정당한 개입의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했지만, 이는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로살레스가 드러낸 바와 같이 약을 이용한 배란의 유도가 정상적인 또는 자연적인 생리 기능의 억제를 수반한다면, 완전성이라는 목표는 결코 달성될 수 없었다. 월경 주기만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 나머지는 외려 자연에서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개입의 정당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입은 완전성의 회복을 전제할 때에만 정당했다. 복원의 가능성이 기각된 상황에서, 정당한 개입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다. 배란이 억제된 상태를, 자궁 경부가 변화된 점액으로 막힌 상태를 완전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유도하는 약물의 투여를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자연의 의미는 이제 논란의 대상이 아니었다. 개입이 곧 비자연이기에, 자연은 곧 개입의 부재 즉 ‘천연’을 의미했다.
논리의 붕괴는 곧 배란조절법의 폐기로 이어졌다. 배란조절법에 쓰이는 경구용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제가 기실 경구피임약에 지나지 않는다는 필리핀 주교단의 판단이 전해진 이후, 한국 주교단 역시 배란조절법을 기각하였다. 경구피임약을 공개적으로 금지한 상황에서, 배란조절법을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는 자칫 자연법을 강조하는 가톨릭 교회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마침 점액관찰법이라는 대안도 마련된 상황이었다. 김승조를 비롯한 성모병원의 의료진 역시 주교단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행복한 가족 사업연구위원회는 주교단의 요청으로 설치된 사실상의 산하 기관이었고, 성모병원과 가톨릭대학 의학부 역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치는 권한’인 교도권(敎導權) 아래에 있었다.
가톨릭 교회에 의해 의학적 개입의 범위가 다시 한번 규정되면서, 김승조 교수팀의 연구 경향은 확연히 달라졌다. 한 가지 변화는 점액관찰법을 향한 태도였다. 1973년과 1974년의 글에서 보이던 점액관찰법을 향한 비판은 한풀 누그러졌다. 김승조는 1976년에 발표한 글 「배란법에 의한 가족계획의 새로운 지견」에서 점액관찰법을 과거의 한계를 극복한 방법이라 소개하였다. “단점이랄까 설명이 부족하였던 점들”이 없지 않았지만 이후 빌링스 부부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면을 보완”하여 부족한 면을 채웠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정도 유용한 방법이 되었다는 설명이었다[63]. 김승조는 이렇게 과거의 주장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점액관찰법을 향한 달라진 태도를 표명했다.
물론 김승조는 점액관찰법에 머무르지 않았다. 점액관찰법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의학의 발전은 쉬지 않고 우리에게 더 손쉬운 방법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었다[64]. 김승조 교수팀이 내어놓은 대안은 ‘배란점수법’이었다. 빌링스 부부가 제시한 경관 점액의 변화에 더하여, “중간통, 성기의 점상 출혈, 유방 팽만의 유무 등을 관찰하고 각각의 평점의 합계를 지표로 하여 배란 시기를 예측”하는 방법이었다[65]. 배란점수법이라는 새로운 대안이 자연에 대한 개입이 아닌, 자연의 면밀한 관찰로만 구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자. 배란조절법이 거부된 상황에서 대안은 자연법의 테두리, 더 정확하게는 ‘천연한 자연’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연적이지 못하다고 심판된 배란조절법의 연구 성과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김승조는 이를 ‘월경장애’의 치료에 활용하였다. 자연성 여부를 떠나 약물로 배란을 유도하는 방법만큼은 이미 확립되었으므로, 무월경이나 희발월경 등을 호소하는 환자의 월경 주기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에 이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김승조 교수는 그로든이 제시한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제에 더해, 배란을 유도할 수 있는 다른 약물의 가능성을 탐구한 바 있었다. 그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배란을 유도하는 최적의 배합을 정리하였고, 여기에 ‘레귤렌 K-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66].
배란조절법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논란이 무색하게, 이번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배란조절법이 가족계획 사업에 참여하는 ‘자연’의 신체에 개입한다면, 레귤렌 K-1은 월경장애라는 명백한 ‘비자연’의 상태에 개입하기 때문이었다. 교황 바오로 6세 역시 비자연, 즉 “신체의 병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수단들의 사용은 ……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67]. ‘천연한 자연’에 대한 개입이 문제이지, ‘천연한 비자연’에 대한 개입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증명되지 않은 가정이 놓여있었다. 월경장애는 과연 비자연의 상태일까. 월경장애는 무월경이나 희발 월경뿐 아니라, 월경불순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었다. 그리고 월경불순이란 그로든과 김승조, 로살레스가 자연성과 개입의 정당성 여부를 두고 공박을 벌이던 바로 그 상태였다.
김승조는 분명 배란조절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레귤렌 K-1의 효과를 설명하는 글에서 그는 “산부인과 영역에 있어서 월경의 장애는 불임증 환자의 치료에서 문제가 되며, 월경주기의 심한 변화는 가족계획에서 자연법에 의한 피임방법의 성공률을 저하시킨다”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68]. 월경장애의 치료를 가족계획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문장이었다. 그렇다면 월경장애라는 말은 자연이라는 전장(戰場)을 떠나기 위한 눈가림용 수사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69].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천연한 자연’의 승리를 드러냈다. 구도의 재편이 가능하다면, 굳이 진의를 숨길 이유는 없었다. 이렇게 자연피임법을 둘러싼 논쟁은 완전한 자연에 대한 천연한 자연의, 배란조절법에 대한 점액관찰법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6. 나가는 말

자연피임법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어떤 기술이 더 나은가를 비교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 쟁점은 무엇을 허용할 수 있는지, 즉 무엇을 논의의 장으로 들여올 수 있는지였다. 공론장의 안팎은 자연법이라는 담장으로 구분되었고, 그러하기에 논쟁은 여느 기술 경쟁과 달리 기술적 우월성이나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자연성 또는 윤리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기술 자체에 대한 논의가 부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윤리성에 대한 논의에 복속되었다. 기술의 의학적 측면에 대한 언급은 그것의 자연성을 증명하거나 부정하기 위해 이루어질 뿐이었다. 그로든이 의학적 설명보다 ‘신학적 고려’를 먼저 설명한 까닭이, 그리고 로살레스가 배란조절법의 의학적 효과를 문제 삼기보다는 자연성 여부만을 집요하게 따져 물었던 까닭이었다. 기술적 우월성 또는 의학적 효용성은 기술이 공론장 내부에 들어간 이후에야 논의될 수 있는 차후의 사안이었다.
자연법이라는 굳건한 담장을 넘기 위해, 배란조절법을 옹호하던 이들은 자연을 재규정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가톨릭 교회의 울타리 내에서 ‘자연’은 부정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당연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전제였다. 점액관찰법을 내세우던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배란조절법을 내건 이들 역시 자연의 윤리적 권위를 의심하지 않았고, 의심할 수도 없었다. 쟁점은 자연의 정의에 있었다. 자연이 인간의 개입이 없는 천연한 상태라면 점액관찰법만이 허용될 터였고, 자연이 태초의 완전한 상태라면 배란조절법이 보다 유력할 터였다. 물론 배란조절법이 월경장애의 치료로 탈바꿈한 것처럼, 자연을 둘러싼 논쟁을 에둘러 피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전장을 재편하기보다는 그저 벗어나는 방법일 뿐이었다.
천연한 자연과 완전한 자연의 경쟁이 대리한 점액관찰법과 배란조절법의 경합은 자연의 의미가 확정되면서 전자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정당한 개입의 가능성은 철저히 부정당했다. 완전성이라는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개입은 어떠한 자연적 기능도 저하하거나 억제하지 않아야 했다. 만약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이미 완전함과 거리가 있었다. 배란조절법 진영의 그로든과 김승조는 배란의 유도가 태초의 완전성에서 벗어난 월경 주기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릴 뿐, 그 어떠한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점액관찰법 진영의 로살레스는 배란조절법이 가져오는 부수적인 영향을 거론하며, 개입에 수반되는 부작용의 필연성을 지적했다. 이렇게 개입은 비자연이 되고, 자연은 천연이 되었다. 자연의 의미가 확정되는, 그리하여 배란조절법의 정당성이 기각되는 지점이었다.
자연의 정당성과 의미가 확립된 이후에도, 논란은 없지 않았다. 자연주기법을 향한 의심의 시선은 그리 쉽게 걷히지 않았다. 가톨릭 교회 바깥뿐만이 아니었다. 내부에서도 도전이 제기되었다. 사목교서 「건전한 가족계획」이 반포되고 3년이 지난 1979년 6월, 가톨릭 교회의 기관지나 다름없었던 『경향잡지』에 「가톨릭의 멍에」라는 글이 게재되었다. ‘생명수’라는 가명을 쓴 익명의 투고자는 “인공피임법은 자연법을 거스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몇십 년 후에 태어날 후손들이 우리를 비웃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것만 같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뒤이어 그는 “무엇이 ‘자연스러운가’ 묻기보다는 무엇이 ‘인간적인가’ 물어야 한다”고 썼다. “그리스도인은 아리송한 자연법을 따라 사는 사람이기보다 …… 이웃 사랑에 메인 사람”일진대, “가족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불가불 인공피임법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 없다고는 못” 한다는 이유였다[70].
논리는 투박했지만, 파급은 적지 않았다. 자연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가톨릭 윤리의 토대인 자연법 자체를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무모하면서도 강력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박토마 주교가 빠른 반박을 내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두 달 뒤에 출간된 『경향잡지』 1979년 8월호에서 박토마는 ‘생명수’의 「가톨릭의 멍에」가 “교회의 공식 가르침과 교도권을 반대”하는 글이라 선언했다[71]. 살인이나 자살과 같이 “인공적인 모든 일이 윤리적인 행위가 될 수[는] 없”음에도, 그것을 근거로 “하느님이 세우신 자연 질서”인 “자연법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그릇된 논리를 내세웠다는 이유에서였다[72].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이미 확립된 자연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했다. 동일한 논리의 반복은 곧 입장의 불가변성을 의미했다.
가톨릭 가족계획 사업은 이후 교회가 인정한 ‘천연한 자연’의 틀 속에서 진행되었다. 다른 가능성이 제거된 상황에서 점액관찰법은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유일한 자연피임법이나 다름없었고, 이는 전국 규모로 확장된 행복한 가정 운동을 통해 보급되고 확산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기념하기 위해, 1983년에는 점액관찰법을 개발한 빌링스 부부가 내한하여 행복한가정운동본부와 가톨릭병원협회가 주최한 ‘크리스찬 가정과 인간성장’이라는 특별 세미나에서 강연하기도 했다[73]. 다시 서두에서 소개한 『가톨릭대사전』의 「가족계획」 항목으로 돌아가자. 여기에서 “자연적 방법”은 “한마디로 주기 금욕법”이라 규정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자연의 의미를 고정하고 자연피임법의 방법을 확정하는, 그리고 의료 행위에 대한 교도권을 재확인하고 의학적 개입의 범위를 한정 짓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자연주기법과 자연피임법은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Notes

1) 「가족계획」,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엮음, 『한국가톨릭대사전』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

2) 흄은 자신이 “지금까지 접한 모든 도덕 체계들”이 충분한 근거와 설명 없이 “명제의 일반적계사인 ‘이다’와 ‘아니다’ 대신에 ‘해야 한다’와 ‘해서는 안 된다’”를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존재에서 당위를 도출하는 양식의 도덕 판단이 그르다고 썼다. 『도덕에 관하여: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제3권』, 이준호 옮김 (파주: 서광사, 1998), 44.

3) 한국 가톨릭 교회의 가족계획 사업을 회고한 글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맹광호, 「한국 행복한 가정 운동: 연혁, 현황 및 반성과 전망」, 『신학전망』 67 (1984), 15–23쪽; 맹광호, 조규상, 「현대 한국천주교회와 행복한 가정 운동」, 한국천주교회창설이백주년기념한국교회사논문 집간행위원회, 『한국교회사논문집』 2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1093–1123쪽; 박윤재, 「원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기억하는 가족계획사업」, 『연세의사학』 12-2 (2009), 19–28쪽; 김승조, 「구술: 김승조」, 황진주 외, 『출산과 여성건강, 한국 산부인과의 역사』, 구술사료선집 25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2018), 269–297쪽.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가족계획 사업의 윤리적 측면을 살펴본 연구로는 다음이 대표적이다. 구인회, 「출산조절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가톨릭 신학과 사상』 70 (2012), 94–124쪽.

4) 비오 11세, 「정결한 혼인」; 이창영, 『생명윤리: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616–167쪽에서 재인용. 다만 여기에는 “시기 또는 어떠한 결함과 같은 자연적 이유”가 있다면 임신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정당하다는 단서가 있으며, ‘시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를 비가임기로 해석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이를 폐경 이후로 해석하였다. 만약 전자가 옳다면, 비오 11세의 「정결한 혼인」은 자연주기법을 허락한 가톨릭 교회 최초의 문헌이 된다. 피임을 향한 가톨릭 교회의 견해를 역사적으로 정리한 존 누넌(John T. Noonan, Jr., 1926–2017)은 두 가지 가능성 모두를 부정했다. 해당 부분은 애초에 쟁점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는 회칙이 반포될 때만 해도 자연주기법의 기술적 가능성이 뚜렷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있을 수 없었으며, 따라서 과도한 해석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John T. Noonan, Jr., Contraception: A History of Its Treatment by the Catholic Theologians and Canonists, enlarged edit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86), pp. 438–443.

5) 비오 11세, 「정결한 혼인」; 이창영, 『생명윤리: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147–148쪽에서 재인용.

6) Hugh Everett Moore, The Population Bomb (New York: Hugh Moore Fund, 1959), p. 4.

7) Piux XII, “To Midwives” in The Human Body: Papal Teachings, eds. by Monks of Solesmes (Boston, MA: Daughters of St. Paul, 1960), p. 165.

8) 바오로 6세, 『인간 생명』, 박은호, 정재우 옮김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8), 14항, 21–22쪽.

9) 바오로 6세, 『인간 생명』, 13항, 20–21쪽.

10) 바오로 6세, 『인간 생명』, 16항, 23–25쪽.

11) 바오로 6세, 『인간 생명』, 17항, 16항, 23–26쪽.

12) 바오로 6세, 『인간 생명』, 11항, 19쪽.

13) 대한민국정부,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1961–1966』 (서울: 대한민국정부, 1962), 40–41쪽.

14) 한국 정부와 가톨릭 교회는 가족계획 사업의 방향성을 두고 자주 갈등을 빚곤 했다. 이를테면 서울대교구의 노기남(盧基南, 1902–1984) 대주교는 지면 등을 통해 가족계획 사업을 비판하였으며, 사업의 경로를 수정하기 위해 이효상(李孝祥, 1906–1989) 등 가톨릭 신자인 국회의원을 규합하기도 하였다. 박태균, 「한국 현대사 속의 노기남 대주교」, 『교회사연구』 35 (2010), 113–117쪽.

15) 한국 주교단 공동 교서, 「인구 문제와 산아제한」, 『경향잡지』 53-11 (1961.11), 4쪽.

16) 한국 주교단 공동 교서, 「인구 문제와 산아제한」, 5쪽.

17) 한국 주교단 공동 교서, 「인구 문제와 산아제한」, 6쪽.

18) 한국 주교단 공동 교서, 「인구 문제와 산아제한」, 6쪽. 주교단은 그 외에도 “결혼 적령의 자유로운 연장”, “축첩 폐습의 단호한 시정”, “인구 밀도가 낮은 더 광대한 외국으로의 이민”, “외국 원조의 요청 및 그 실효적인 사용”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한국 주교단 공동 교서, 「인구 문제와 산아제한」, 8쪽.

19) 한국 주교단 성명서, 「‘국민 우생 법안’에 대한 우리의 견해」, 『경향잡지』 56-6 (1964.6), 4–5쪽; 한국 주교단 공동 교서, 「우리들이 지녀야 할 올바른 인식과 자세」, 『경향잡지』 60-10(1968.10), 6–13쪽.

20) 바오로 6세, 『인간 생명』, 16항, 23–25쪽.

21) Emil Novak, “Two Important Biologic Factors in Fertility and Sterility: (a) Is There a “Safe Period?,” (b) Anovulatory Menstruation as a Possible Cause of Sterility,”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102-6 (1934), pp. 452–454.

22) 점액관찰법은 빌링스 부부에 의해 ‘배란법’(ovulation method)이라고도 불리었다. 여기에서는 후술할 배란조절법과의 혼란을 피하고자 점액관찰법으로 통일하여 표기하였다.

23) Evelyn L. Billings, et al., “Symptoms and Hormonal Changes Accompanying Ovulation,” Lancet 299-7745 (1972), pp. 282–284. 빌링스 부부는 학술지에 연구 성과를 싣기 전, 결과를 정리하여 『배란법』이라는 이름의 단행본으로 먼저 배포하였다. John J. Billings, The Ovulation Method (Melbourne: Advocate Press, 1964). 존 빌링스와 에블린 빌링스는 각각 1969년과 2003년, 점액관찰법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 훈장을 받았다(Norris, 2010: 326–327). 이는 점액관찰법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인을 의미했다.

24) 박토마 주교는 달력주기법과 기초체온법의 한계와 점액관찰법의 의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1975년에 『한국가톨릭병원협회지』에 기고한 글에서 박토마는 달력주기법의 경우 “전월경과 상관없이 다음 월경이 언제인지를 확실히 알기가 어려워서 방법 자체[가] 어려”우며, 기초체온법은 “남자의 정자가 여자의 몸 안에서 며칠 동안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체온이 올라가기 며칠 전부터 주의하여야 할 것”이나 “체온이 언제 올라갈지 미리 알 수 없”기에 활용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하였다. 빌링스 부부를 만나고 온 박토마가 점액관찰법을 한국에 확산하는 지적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토마, 「가톨릭 가족계획사업과 신앙생활」, 『한국가톨릭병원협회지』 6-1 (1975), 17–20쪽.

25)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 결정 사항」, 『경향잡지』 64-11 (1972.11), 11쪽.

26)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 결정 사항」, 『경향잡지』 65-5 (1973.5), 20쪽; 「교회의 이모저모」, 『경향잡지』 67-7 (1975.7), 64쪽.

27) 조규상, 「행복한 가정운동의 국내외동향」, 『한국가톨릭병원협회지』 7-1 (1976), 7–9쪽.

28) 맹광호, 「한국에 있어서의 가톨릭 가족 계획 현황과 그 전망」, 『한국가톨릭병원협회지』 5-2 (1974), 31쪽.

29) 「‘행복한 가족’ 사업연구위원회설치와 운영경위」, 『한국가톨릭병원협회지』 4-2 (1973), 10쪽.

30)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 결정 사항」, 『경향잡지』 65-5 (1973.5), 20쪽.

31) Harold M. Groden, “Ovulation Regulation”, Linacre Quarterly 32-1 (1965), p. 67.

32) Harold M. Groden, “Ovulation Regulation”, p. 69.

33) Harold M. Groden, “Ovulation Regulation”, pp. 70–72.

34) Harold M. Groden, “Ovulation Regulation”, p.71.

35) 오늘날 부인종양학의 연구로 이름이 높은 그가 부인과학이 아닌 산과학 문제의 연구를 맡았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197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세부 전공 체계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승조의 연구는 산과학과 부인과학 영역 모두를 다루던 시기를 지나,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비로소 부인과학에 해당하는 부인종양학으로 좁혀졌다. 또 다른 이유는 연구위원회가 조직되던 당시 김승조가 차기 주임교수 물망에 오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앞으로의 연구를 총괄할 위치에 오를 것임을 의미했고, 실제로 김승조는 본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73년부터 주임교수로 재직했다. 여러 편의 산과학 연구를 발표한 연구자이자 연구를 총괄하는 수장으로서, 김승조는 논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가톨릭대학 의학부 산부인과학교실의 세부 전공 체계의 확립 과정은 다음을 참고하라. 김승조, 「구술: 김승조」, 황진주 외, 『출산과 여성건강, 한국 산부인과의 역사』, 284–285쪽.

36) 김승조, 「가톨릭적 가족계획과 자연피임법」, 『한국가톨릭병원협회지』 4-2 (1973), 8–9쪽.

37) 김승조, 「가톨릭적 가족계획과 자연피임법」, 9쪽.

38) 김승조, 「인구문제와 가족계획: 빌링스법을 중심으로 한 자연피임법」, 『사목』 36 (1974), 32쪽.

39) 김승조, 「가톨릭적 가족계획과 자연피임법」, 10쪽.

40)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 결정 사항」, 『경향잡지』 65-5 (1973.5), 20쪽.

41) 김승조 연구팀은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제에 더하여 클로미펜, 시클로페닐, 에피메스트롤,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 에르고크립틴 등을 추가로 시험하였다. 김승조, 최성기, 「성선기능자극제에 의한 배란유발」, 『녹십자의보』 3-5 (1975), 216–223쪽.

42) Harold M. Groden, “Ovulation Regulation,” p. 66.

43) Harold M. Groden, “Ovulation Regulation,” p. 66.

44) 원죄 이전의 상태를 ‘완전한 자연’으로 간주하는 그로든의 논리는 인간의 상태에 대한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21–1274)의 이해를 연상케 한다. 보나벤투라에 따르면, 인간은 본디 신에 의해 죽을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원죄에 대한 형벌로 말미암아(propter poenam peccati) 불가사(不可死)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현재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삶을 누리는 인간의 본성에는 변화가 없으며, 인간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 다시 죽음이라는 형벌에서 벗어나게 된다. 보나벤투라에게 이는 영혼과 신체, 인간 존재의 통일성을 설명하는 전제가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정현석, 「보나벤투라의 인간학에서 영혼의 자립가능성과 인간의 통일성의 관계」, 『가톨릭 철학』 15 (2010), 35–66. 한편 이러한 이해는 로망의 윔베르(Humbert de Romans, 1190– 1277)가 전한 강론에서도 반복된다. 『의학부 구성원들에게』(Ad studentes in medicina)라는 이름의 강론에서 그는 법학은 타락 이후 상실한 정의를, 철학(artes liberalis)은 타락 이후 상실한 지혜를, 의학은 타락 이후 상실한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는 수단이라 말했다. Humbert de Romans, “Ad studentes in medicina LXVI” in Joseph Ziegler, Medicine and Religion c. 1300: The Case of Arnan de Vilanov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pp. 314–315.

45) Harold M. Groden, “Ovulation Regulation,” p. 67.

46) Harold M. Groden, “Ovulation Regulation,” pp. 67, 69, 70. 그로든은 이와 같은 주장의 신학적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매사추세츠주 웨스턴 교구의 존 린치(John J. Lynch) 신부에게 자문하기도 했다. “New Drug Will Make Rhythm Practicable, Physician Claims,” National Catholic Reporter 1-15 (1965), p. 10. 존 린치 신부는 가톨릭계 학교인 웨스턴대학에서 도덕 신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던 교수이자, 『계간 리나커』에 의료 윤리에 대한 글을 기고하던 인물이었다. 특히 여러 피임법의 신학적 정당성과 부당성을 정치하게 제시한 인물로 이름이 높았으며, 그로든이 그에게 자문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47) 연세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각각 양재모(梁在謨, 1919–2018)와 권이혁(權彛赫, 1923–)의 주도로 1962년과 1964년부터 농촌형 가족계획 시범사업과 도시형 가족 계획 시범사업을 진행하였다. 이는 콘돔이나 다이아프람(diaphragm), 살정제와 같은 ‘재래식 피임법’ 그리고 자궁내장치와 경구피임약의 효과를 시험하는 거대한 임상시험의 장이었다. Jae Mo Yang, “Studies in Family Planning and Related Programs in Rural Korea” in Social Evaluation of Family Planning Programs and Research Activities in Korea (Seoul: Korea Sociological Association, 1972), pp. 1–25 (양재모, 『우인 양재모 박사 정년퇴임기념 연구논문집』 (서울: 연세대학교 인구및가족계획연구소, 1985), 181–205쪽에 재수록); E. Hyock Kwon, Ten Years of Urban Population Studies in Korea (Seoul: Seoul National University Press, 1974).

48) 김승조는 같은 이유에서 1970년대 중반에 실시되었던 존스홉킨스 산부인과 국제교육 프로그램(JHPIEGO, Johns Hopkins Program for International Education in Gynecology and Obstetrics)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이는 미국 국제개발청(USAID)의 지원 아래 복강경을 이용한 난관 불임 수술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전 과정이 별도의 참가비 없이 진행되었고, 특히 수료한 이에게 복강경 세트를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덕분에 여러 의과대학 교수진을 비롯한 많은 산부인과 의사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가톨릭대학 의학부의 의료진은 여기에 참여할 수 없었다. “난관 결찰하는 건 가톨릭 정신으로 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승조, 「구술: 김승조」, 황진주 외, 『출산과 여성건강, 한국 산부인과의 역사』, 285–287쪽.

49) 김승조, 「가톨릭적 가족계획과 자연피임법」, 8쪽.

50) 김승조, 「가톨릭적 가족계획과 자연피임법」, 10쪽.

51) 한국 주교단 사목교서, 「건전한 가족계획」, 『경향잡지』 68-8 (1976.8), 24쪽.

52) 배란조절법의 증발은 김승조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김승조는 1983년 『사목』에 발표한 「자연적 피임법과 비자연적 피임법」에서 당시까지의 피임법을 총망라하였다. 비자연적 피임법으로는 “경구용 피임제”, “주사용 피임제”, “자궁내장치”, “국소 물리적 및 화학적 장애법”, “인공임신중절술”, “영구적 피임법” 등이, 자연적 피임법으로는 “주기법 및 달력계산법”, “ 기초체온법”, “증상체온법”, “배란법(Billings씨 점액관찰법)” 등이 언급되었으나, 그 어디에도 자신이 한국에 들여온 배란조절법은 포함되지 않았다. 김승조, 「자연적 피임법과 비자연적 피임법」, 『사목』 86 (1983), 3–10쪽.

53) Evelyn Billings, et al., “Symptoms and Hormonal Changes Accompanying Ovulation,” Lancet 299-7745 (1972), pp. 282–284. 미국에서 점액관찰법의 보급에 앞장선 대표적인 인물은 가톨릭 청소년 성교육 프로그램 틴스타(TeenSTAR)의 창립자로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이자 수녀인 한나 클라우스(Hanna Klaus, 1928–)이다. 당시 세인트프랜시스 병원(Saint Francis Hopital)에 근무하던 한나 클라우스는 미국의 가톨릭계 의료기관 여섯 곳에서 진행된 점액관찰법 보급 프로그램을 주도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밝혀진 점액 관찰법의 유용성은 다음의 논문으로 정리되어 발표되었다. Hanna Klaus, et al., “Use-Effectiveness and Client Satisfaction in Six Centers Teaching the Billings Ovulation Method,” Contraception 19-6 (1979), pp. 613–629.

54) 한국 주교단 사목교서, 「건전한 가족계획」, 24쪽.

55) 박토마, 「가톨릭 가족계획사업과 신앙생활」, 18–19쪽.

56) 박토마, 「가톨릭 가족계획사업과 신앙생활」, 18쪽.

57) 박토마, 「가톨릭 가족계획사업과 신앙생활」, 19쪽.

58) 한국 주교단 사목교서, 「건전한 가족계획」, 21, 24쪽; 박토마, 「혼인과 가정생활」, 『한국가톨릭병원협회지』 7-1 (1976), 3, 5쪽. 물론 단어 수준의 차이는 있다. 이를테면 박토마 주교의 글에서 “혼인과 가정생활”이라고 쓰인 부분은 사목교서에서 “혼인생활과 가정생활”로 바뀌었고, 박토마 주교의 글에서 “부부행위를 피하는 것”이라 표현된 부분은 사목교서에서 “금욕 생활을 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59) 해당하는 문장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전에는 주기법을 이행하는 데에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꾸준한 연구와 실험 결과로 이제 주기법의 여러 가지 문제점은 거의 해결되었습니다. …… 새로운 방법도 잘 배우지 않고 사용하면 다시 실패할 것입니다.” 한국 주교단 사목교서, 「건전한 가족계획」, 24–25쪽; 박토마, 「혼인과 가정생활」, 5쪽.

60)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 결정 사항」, 『경향잡지』 65-5 (1973.5), 20쪽.

61) Vincente J. A. Rosales, “The Groden Method of Family Limitation,” Boletin Eclesiastico de Filipinas 50-563 (1976), pp. 720–722. 로살레스가 참고한 연구는 다음과 같다. Conrado LL. Lorenzo, Jr. and Somers H. Sturgis, “Controlled Rhythm: An Analysis of 88 Cycles,” Fertility and Sterility 19-4 (1968), pp. 490–499; John G. Boutselis et al., “Control of Ovulation Time with Steroid and Nonsteroid Compounds,”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and Gynecology 112-2 (1972), pp. 171–177.

62) Vincente J. A. Rosales, “The Groden Method of Family Limitation,” pp. 721–722. 같은 이유로 로살레스는 배란조절법에서 이용되는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제를 ‘pill’이라 불렀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pill’은 경구피임약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배란조절법과 경구피임약을 구분하고자 했던 그로든은 ‘pill’이라는 말 대신 ‘tablet’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Harold M. Groden, “Ovulation Regulation,” p. 69.

63) 김승조, 「배란법에 의한 가족계획의 새로운 지견」, 『한국가톨릭병원협회지』 7-1 (1976), 10쪽.

64) 김승조, 「배란주기법에 의한 자연 피임법」, 『교회와 인구문제』, 서울대교구 사목연수원 1976년도 제2차 월례연수회 자료집 (서울: 서울대교구 사목연수원, 1976), 22쪽.

65) 김기원 외, 「자연피임법을 위한 배란점수 산출법」, 『대한산부인과학회잡지』 20-5 (1977), 326쪽. 김승조 연구팀은 이후 배란점수법의 신뢰도를 증명하기 위해, 배란점수법에 사용되는 지표와 혈중 황체형성호르몬의 농도를 비교한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장봉림 외, 「증상체온법에 의한 배란점수와 혈중 Luteinizing Hormone 값에 관한 관찰」, 『대한산부인과학회잡지』 22-3 (1979), 211–220쪽.

66) 김승조 외, 「Steroid 복합제(Regulen K-1) 투여에 의한 월경주기 및 배란조절」, 『대한산부인과학회잡지』 20-7 (1977), 431–439쪽. 이는 교내에서 발표된 다음 연구를 재수록한 것이다. 김경태, 김승조, 「월경장애 환자에 있어서 Regulen K-1 투여에 의한 월경주기 및 배란조절」, 『가톨릭대학 의학부 논문집』 29-1 (1976), 207–215쪽

67) 바오로 6세, 『인간 생명』, 15항, 23쪽.

68) 김승조 외, 「Steroid 복합제(Regulen K-1) 투여에 의한 월경주기 및 배란조절」, 432쪽.

69) 실제로 김승조는 월경불순에 해당하는 “불규칙한 월경주기 환자”에게 레귤렌 K-1을 투여하였다. 레귤렌 K-1의 시험 대상 31명 가운데 월경불순 환자는 15명에 달했고, 희발월경과 무월경을 호소하는 이는 각각 9명과 7명이었다. 이는 전체 시험 대상의 절반 정도가 ‘자연’과 ‘비자연’의 경계에 있었음을 의미했다. 같은 상태를 ‘비자연’이라 선언함으로써 논란을 피해 가는 월경장애라는 수사가 성공적으로 작동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레귤렌 K-1은 같은 해 키아리-프롬멜 증후군이라는 또 다른 월경장애 질환에 쓰인 이후, 더는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김승조가 이후 부인종양학의 연구에 집중했다는 점 그리고 197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가족계획 사업 자체의 동력이 약화되어 레귤렌 K-1의 대상이 되는 환자군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유력한 요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김승조 외, 「Steroid 복합제(Regulen K-1) 투여에 의한 월경주기 및 배란조절」, 432–433쪽; 허필형 외, 「Chiari-Frommel 증후군 치료 1례」, 『대한산부인과학회잡지』 19-11 (1976), 837–841쪽.

70) 생명수, 「가톨릭의 멍에」, 『경향잡지』 71-6 (1979.6), 87쪽.

71) 박토마, 「비자연적 피임은 죄다: ‘가톨릭의 멍에’를 읽고」, 『경향잡지』 71-8 (1979.8), 78쪽.

72) 박토마, 「비자연적 피임은 죄다: ‘가톨릭의 멍에’를 읽고」, 79쪽.

73) ⟨자연피임법 부작용 없어 각광⟩, ⟪동아일보⟫, 1983년 11월 9일,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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