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은 의학” - 둔황본 뜸치료 문헌으로 본 티벳 의학의 특징과 실크로드의 지식 교류

“Medicine beyond borders”: Tibetan moxibustion manuscripts from Dunhuang and medical exchange on the Silk Roads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Med Hist. 2025;34(2):459-499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5 August 31
doi : https://doi.org/10.13081/kjmh.2025.34.459
*Assistant professor, College of Buddhist Studies, Dongguk University
한재희*
*동국대 불교대학 조교수. 인도, 티벳불교 전공 / 이메일: hanj0405@gamil.com
†이 글은 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문화연구원이 주최한 “Buddhism as a Religion of Healing in East Asia(2024.11.15)”와 연세대 의학사연구소가 주최한 “실크로드의 종교와 의학(2025.4.28)”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 및 보완한 것입니다. 발표 기회를 주신 동국대 정덕스님과 연세대 여인석 교수님, 당시 논평을 맡아 주신 경희대 이은영 선생님, PT 1058 뜸 치료 지점에 상응하는 한의학 경혈 위치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신 연세대 나선삼 선생님, 그리고 부족한 글을 읽고 조언해주신 심사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본 연구는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NRF-2021S1A6A3A01097807).
Received 2025 June 10; Revised 2025 August 2; Accepted 2025 August 19.

Abstract

This paper explores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the Tibetan medical tradition within the context of the Silk Roads as a multicultural and multilingual network, focusing on the tenth-century Tibetan moxibustion manuscript Pelliot tibétain 1058 (PT 1058), discovered in Mogao Cave 17 at Dunhuang. The Silk Roads served as a significant venue for the exchange and synthesis of diverse tangible and intangible materials from East and West, including trade goods, religions, art, and even human genes. It was also an important site in the history of medicine, where different medical traditions interacted and evolved. Dunhuang, in particular, was a crucial point on the Silk Roads that functioned as a multicultural hub in which various ethnic groups, languages, and knowledge systems coexisted. The medical manuscripts discovered there provide valuable textual evidence for understanding the formative stage of the Tibetan medical tradition.

The main body of this paper is divided into three parts. First, to explore Tibetan medical tradition, its origin and its nature, it examines a well-known narrative about the King Songtsen Gampo (r. ca. 617–650) and the nine foreign physicians, including Indian, Chinese, and Greek. This narrative can be understood as a symbolic or “historicized” story, emphasizing Tibetan medicine not as a single tradition, but a synthesis that integrates diverse foreign elements from its early stages. Second, it investiagtes three Tibetan moxibustion manuscripts from Dunhuang, Pelliot tibétain 127, 1044, and 1058, considering their general structure and content. Particular attention is given to PT 1058, the earliest surviving example of Tibetan medical diagrams. The paper provides an English translation of the Tibetan moxibustion points and offers detailed interpretations, linking them to specific acupunture points in Korean and East Asian traditional medicine. Many of the moxibustion points in PT 1058 correspond with acupuncture points, such as Huantiao (GB30), Fengshi (GB31), Chengjin (BL56), Chengshan (BL57), and Taichong (LR3). It is also notable that PT 1058 includes the same method to locate Fengshi (GB31): “when the body is upright and the arms are naturally extended, the point where the middle finger touches the thigh.” This suggests the connection between the Dunhuang manuscript and East Asian medical traditions. It then compares PT 1058 with Chinese and Uighur moxibustion manuscripts, identifying similarities that show how medical knowledge was transmitted and systematized through visualized representations of the body combined with practical therapeutic knowledge along the Silk Roads. Finally, the paper critically examines contemporary efforts by India and China to institutionalize traditional Tibetan medicine, Sowa Rigpa, within their respective national cultural heritage agendas. Such state-driven cultural politics, I argue, risk neglecting or overshadowing the hybrid origins and multicultural dimensions of Tibetan medical tradition that is deeply rooted in the transcultural exchanges of the Silk Roads.

In conclusion, this study highlights Tibetan medical tradition not merely as a conventional medical system, but as a dynamic and living knowledge system that emerged from a pluralistic environment of intercultural transmission. Today, it stands as a symbolic heritage embodying Tibetan historical memory and cultural agency.

1. 들어가며: 중간 지대로서의 실크로드

‘실크로드(die Seidenstraße, “The Silk Road”)’라는 용어는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 1833–1905)에 의해 출판된 China: Ergebnisse eigener Reisen und darauf gegründeter Studien에서 처음으로 제안되었다. 한 나라 시기 중국의 비단이 중앙아시아로 이동하던 경로에 주목한 그는 단순한 물류 이동 경로를 넘어 실크로드가 가진 지리적, 문화적 중요성을 함께 강조하였다. 이후 이 용어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의미가 점자 발전되고 확장되어 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다층적 교류망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실크로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 비단길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이 경로를 따라 이동한 것은 무역품, 아이디어, 질병, 유전자, 문화 등 다양하며, 그 주체는 상인, 종교인, 예술가, 군인, 외교관 등이었다. 이들이 옮긴 물품은 비단 외에도, 말, 종이, 향신료, 차, 보석, 악기, 가죽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제품들 등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다양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경로를 통해 동서 간의 지적, 문화적, 사상적 교류가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실크로드를 타고 불교, 이슬람교, 동방 기독교, 마니교, 유대교 등 여러 종교가 전파되었고, 기술, 예술, 인쇄술, 화약 제조술 등 지식이 확산될 수 있었다.1)

실크로드 개념은 글로벌 히스토리(global history), 빅 히스토리(big history), 더 나아가 최근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Belt and Road Initiative) 등과 같이 거시적 관점에서 동서로 연결된 문화 전파의 핵심 경로로 주목받아왔다. 마찬가지로, 초기의 실크로드 연구 역시 중국과 유럽이라는 두 거대 문명의 접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둔황을 비롯한 실크로드의 과거 주요 거점들에서 유적과 필사본들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연구의 중심은 길의 양 끝에서 중간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간다라(Gandhāra), 쿠차(Kucha), 투르판(Turfan), 둔황(Dunhuang)과 같은 주요 거점들과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의 크고 작은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지역 기반의 소규모 무역과 지식의 교류가 이어졌으며, 이는 제국 간 큰 규모의 교역보다 실질적이고 생생한 연결망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실크로드 자체가 실제하지 않았던 개념이며, 우리가 그것을 상업적이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2)

밸러리 한센(Valerie Hansen)의 연구 The Silk Road: A New History (2012)는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면서, 과거 실크로드에서 행해졌던 무역의 양상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대규모 국제 무역이 아닌, 촘촘하게 연결된 소규모 단위 네트워크였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실크로드는 하나의 장거리 무역 경로가 아닌, 지역 기반으로 연결된 수많은 거점들 간의 복합적 상호작용의 장으로 재정의 할 수 있다.

실크로드는 단지 경제나 종교, 예술, 문화사적 측면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의학사적 관점에서도 높은 연구 가치를 가진 대상이다. 실크로드의 여러 중간 거점 지역에서 진단법, 약재와 관련된 지식, 종교적 맥락에서 정의된 혹은 목표로 설정된 치유의 개념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데, 이런 사례들은 동서 의학 전통의 융합을 보여준다. 특히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 도시였던 둔황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민족과 언어, 지식이 교차했던 다문화적 공간이었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당시 티벳 전통 의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고찰해보려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티벳 의학의 기원과 관련된 대표적 서사인 ‘송쩬감뽀왕과 아홉 명의 외국인 의사들’ 이야기를 통해 티벳 전통 의학이 가진 다문화적, 혼성적 기원을 간략히 소개한다. 이어서 둔황에서 발견된 세 가지 뜸 치료 문헌, 그 중에서도 현존하는 티벳 의학 도해들 가운데 가장 시기적으로 이른 ‘펠리오 티벳어 사본(Pelliot tibétain) 1058’을 분석하여 티벳 의학의 특징 및 다른 의학 전통과의 유사성을 살펴본다. 또한 티벳어 뜸 치료 문헌을 둔황과 투르판에서 발견된 한문 및 위구르어 뜸 치료 필사본들과 비교하여, 실크로드라는 문화적 접경지대에서 다양한 의학 전통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이루었는지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티벳 전통 의학인 소와릭빠가 최근 인도와 중국 정부의 국가 문화유산 편입 시도로 인해 문화적,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상황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티벳 의학의 실크로드적 배경, 즉 혼성적 기원과 문화적 다양성이 현재의 문화유산 논쟁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티벳 의학이 단지 과거의 역사적 유산에 그치지 않고 현대의 문화적 정체성 및 정치적 자율성을 둘러싼 복합적 논의의 장으로서도 그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2. 언어와 문화, 그리고 의학 지식의 교차점으로서 둔황

타클라마칸 사막을 기준으로 북쪽 루트와 남쪽 루트가 만나는 지역에 위치한 둔황은 중국 문화권에서 서역으로 나아가는 주요 통로일 뿐만 아니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사막을 지나 육로로 처음 진입하는 핵심 지점이기도 하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군사적, 정치적 갈등 속에서 둔황은 다양한 민족 집단 간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다. 실크로드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던 이곳은 8세기 말부터 9세기 중반(786–848)까지 약 60년간 티벳의 지배하에 있었고, 그 전후로는 주로 중국 왕조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실크로드를 오가는 다양한 국적의 상인과 승려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지배층의 변화는 곧바로 언어, 종교, 문화의 다층적 융합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둔황에서 발견된 방대한 필사본 자료에서 나타나는 다언어성(polyglossia)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오렐 스타인(Aurel Stein)과 폴 펠리오(Paul Pelliot)의 활동으로 대표되는 둔황 필사본은 한문과 티벳어를 비롯해, 산스끄리뜨, 소그드어, 코탄어, 위구르어, 토카리아어 AB 등 실로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다(Takata, 2000: 546–551). 이 언어들은 그 자체로 당시 둔황에 거주하거나 지나갔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일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들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고, 통번역되며, 융합되었던 현장임을 보여준다.3) 둔황에서 발견된 이중언어 문헌들과 번역용어집(glossaries)의 존재, 다국적 외교사절이나 상인들, 승려들과 관련된 기록 등은 실제로 이 지역에서 언어를 매개로 한 지식과 정보의 교환이 활발하게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즉, 둔황은 단순한 중계지가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장기적으로 공존하고 상호작용을 한 일종의 다문화 지식의 허브였으며, 이곳에서 상업과 외교 뿐만 아니라, 예술, 종교, 문화, 과학, 철학이 활발히 공유되었다.

의학사적 관점에서 볼 때 둔황은 다언어 의학 지식의 번역과 상호작용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다문화적 실험실(multicultural laboratory)이었다. 특히 9–10세기 둔황 지역에서 만들어진 다언어 문헌들은 의학 지식이 어떻게 다양한 언어적, 문화적 층위 속에서 교차하며 형성 및 발전되었는지 보여준다.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학 문헌에서 자주 나타나는 상호 번역(translation)과 음역(transliteration)의 양상은 특정 문화권 내 지식이 타문화의 언어 체계로 어떻게 전이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예컨대, 약재 명과 치료법에서 한문, 산스끄리뜨, 소그드어, 티벳어, 위구르어, 페르시아어 등이 혼용되며 나타나는 다중 언어 구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다언어 문헌은 단순히 일대일 기계적 번역이 아니라, 문화 간 개념적 대응 및 실천적 이해를 위한 적극적인 지식 전달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둘째, 약재(materia medica)의 명칭과 기원지에 대한 언급은 당시 실크로드를 따라 이루어진 약물 유통망과 의약 지식의 물리적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실질적 단서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산 종이’, ‘호탄산 설탕’, ‘카슈미르산 비단’, ‘장뇌(Tib. ka phur, cf. Sanskrit karpūra, Arabic kāfūr, medieval Latin comphora, Old French comphore, English camphor)’ 등은 모두 둔황 티벳어 의학 필사본에 특정 질병이나 증상 치료에 사용된 물품으로 언급되며, 이들 각각은 의약품, 보조 치료제, 혹은 치료 도구로서 다양한 지역에서 수입된 외래 품목이었다.4) 이를 통해 당시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한 물품들이 단순한 일상의 소비재가 아닌 의료행위와 연관된 재료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둔황 문헌에서 나타나는 약재의 명칭은 아랍어, 페르시아어, 산스끄리뜨가 유래된 형태로 음역되어 티벳어 문헌 속에 등장한다. 이는 단지 실크로드를 통해 약재 자체만 이동했던 것이 아니라, 해당 약재에 대한 약리적 이해와 그 배경에 있는 의학적 이론이 함께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셋째, 둔황 문헌에서 확인되는 의학 지식은 치료 행위가 종교 의례, 주술, 점복, 천문학, 철학 등과 통합된 형태로 실천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방혈, 뜸, 주술적 의식, 신체에 대한 상징적 해석 등이 병행된 문헌은 의학이 단일한 실증적 체계가 아니라, 종교/철학과 결합된 총체적 인식론(epistemology)과 실천 체계로 기능했음을 선명히 드러낸다.5)

이러한 사례들은 다문화적, 다언어적 교차 공간인 실크로드에서 어떻게 의학이 유통되고 내재화되었는지 보여준다. 둔황은 단순히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었던 교역로의 거점지가 아니었다. 실크로드를 따라 형성된 다문화-다언어 지식 네트워트의 한가운데서 실제로 지식이 새로운 언어, 즉 새로운 매개체로 전달되고 새로운 종교/문화적 배경에 따라 해석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로 정착되었던 일종의 ‘지식의 전환 지대(transit zone of knowledge)’였다고 볼 수 있다.

3. 서사 속 티벳 의학의 기원: 송쩬감뽀왕과 아홉 명의 외국인 의사들

흔히 ‘치유의 지식’, ‘치유의 학문’ 등으로 번역되는 ‘소와릭빠(Sowa Rigpa, Tib. gso ba rig pa)’는 신체와 정신, 그리고 외부 환경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을 건강의 핵심으로 보는 티벳 고전 의학 체계이다.6) 이는 티벳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티벳의 영향권에 속하는 부탄, 몽골, 그리고 히말라야 지역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실천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보완 및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 영향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Hofer, 2014: 7). 소와릭빠의 기원과 특징을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서사 가운데 하나는 7세기 티벳의 실질적 건국 왕 송쩬감뽀(Songtsen Gampo, Tib. Srong btsan sgam po, r. ca. 617–650)의 병환과 관련된 일화에서 출발한다. 5대 달라이 라마 당시 섭정이었던 상계갸초(Sangye Gyatso, Tib. Sangs rgyas rgya mtsho, 1653–1705)에 의해 찬술된 “청록의 거울(Mirror of Beryl, Tib. Gso ba rig pa’i khog ’bugs vaidūrya’i me long)”과 같은 17세기 이후의 의학사 문헌에 따르면 송쩬감뽀는 병을 앓게 되었을 때 외국에서 이름난 아홉 명의 의사를 초청하여 치료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 의사들은 인도, 카슈미르, 네팔, 될뽀(Dolpo) 등 히말라야 지역, 위구르, 페르시아(Tasik), 비잔틴(Khrom), 중국 등에서 온 인물들인데, 왕은 이들을 통해 티벳의학의 기반을 정비하고자 했다. 특히 이들 중 인도, 중국, 비잔틴 출신의 의사 세 명은 서로 협력하여 “무외(無畏)의 무기(Mi ’jigs pa’i mtshon cha “Weapons of Fearlessness”)라는 7권 분량의 의학서를 공동으로 집필하여 왕에게 바쳤다(Yoeli-Tlalim, 2012: 356–356; 2019a: 595–596). 이 서사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 의사들이 단순한 민간요법이 아닌 정맥 촉진과 맥진(pulse diagnosis), 그리고 때로는 비단실(silk threads)을 이용한 진단 기법을 활용하여 왕의 상태를 진단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묘사는 소와릭빠에서 맥진을 중심으로 한 진단법의 서사적/문화적 기원을 보여준다.7)

전승에 따르면, 치료를 마친 후 인도와 중국의 의사들은 왕으로부터 보상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간 반면, 비잔틴 의사 갈레노스(Galenos)는 왕의 궁정 의사로 남아 수도 하싸(lHasa)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결혼도 하여 세 명의 아들을 두었다고 전한다. 물론 이러한 서사를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그보다는 티벳 의학의 권위와 위상을 강조하기 위해 후대에 재구성된 일종의 상징적 서사, 혹은 역사화 된 서사(historicized narrative)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갈레노스가 티벳에 왔다는 기록은 둔황 필사본을 비롯한 초기 티벳 문헌에서는 등장하지 않으며, 17세기 이후에 이르러서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와 관련하여 로닛 요엘리-트랄림(Ronit Yoeli-Tlalim)은 티벳 문헌에서 나타나는 갈레노스에 대한 두 편의 논문 “Re-visiting ‘Galen in Tibet’” (2012)과 “ Galen in Asia?” (2019a)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8세기경 티벳 의학 전통이 형성되었던 초기 단계에서 그리스 의학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전해졌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특히 소변 진단법 등에서 티벳의 가장 초기 의학서인 Sman dpyad zla ba’i rgyal po “Medical Method of the Lunar King”과 이븐 시나(Ibn Sīnā, aka. Avicenna, ca. 980–1037)의 Qānūn fī al-ṭibb “Canon of Medicine” 사이에서는 구조적 유사성이 발견된다(Yoeli-Tlalim, 2012: 356–357). 둘째, 초기 티벳 의학 문헌에는 인도와 중국의 영향이 훨씬 더 두드러지는 반면, 그리스 혹은 페르시아 전통의 영향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갈레노스를 강조하는 서사는 티벳 왕국이 번창했던 7–9세기의 실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 16세기 이후 이슬람 의학과의 접촉이 증대되던 시기에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Yoeli-Tlalim, 2012: 362–363).

따라서 여기에서 갈레노스는 단지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전통적인 티벳 서사 안에서 해외 의학 지식을 전파하고 발전시킨 인물, 혹은 집단을 의미하며, 이후 소와릭빠와 그리스-아랍 의학 전통(Graeco-Arabic medicine)과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Yoeli-Tlalim, 2019a: 597). 또한 갈레노스의 이야기를 포함한 송쩬감뽀 왕과 아홉 명의 외국인 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서양의학의 티벳 전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티벳 의학이 초기 단계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다언어적, 다문화적 요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내러티브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소와릭빠로 대표되는 티벳의 전통 의학이 단일한 기원의 산물이 아니라 인도, 중국, 이슬람권(그리스-아랍 의학)을 포함한 다양한 전통이 녹아들어 간 티벳 고유의 의학전통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서사는 단지 허구적 신화가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 형성과 의학 체계의 정통성 구축을 위한 하나의 서사적 전략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4. 둔황본 티벳어 뜸치료 필사본

1900년 둔황 인근의 막고굴(莫高窟) 제17호 석굴에서 도사 왕원록(王圓籙, d. 1931)에 의해 수만 점에 이르는 방대한 필사본과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불교 문헌을 포함한 종교적 자료들이지만, 시가(詩歌), 계약서, 점복서, 의학서 등 수천 점의 비종교적 문헌도 함께 보존되어 있어 중세 실크로드 및 중앙아시아 지역의 종교/문화적 생활과 지적 활동을 조명하는 데 핵심적인 사료로 간주된다. 이러한 둔황 문헌들은 20세기 초 이래 아시아 종교사, 문헌학, 언어학, 미술사 및 의학사 연구에 중대한 학술적 영향을 미쳐왔다.8) 둔황본 티벳의학 문헌에 대해 포괄적으로 조사한 뤄빙펀(罗秉芬)의 연구 “敦煌本吐蕃医学文献精要” (2002)에 의하면 이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된 의학과 직간적접으로 연관된 문헌은 총 24개다. 이 중 10편은 프랑스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의 폴 펠리오(Paul Pelliot) 컬렉션에, 14편은 영국도서관(British Library)의 오렐 스타인(Aurel Stein)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9) 이들은 9–10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후대의 체계적 편집을 거치지 않은 채 상대적으로 원형에 가까운 내용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초기 티벳 의학의 형성과 실천 양상을 연구하는 데 핵심적 자료로 간주된다.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에 의해 입수된 Pelliot tibétain 127, 1044, 1058(이하 PT 127, 1044, 1058로 약칭)은 모두 뜸 치료(Tib. me btsa’ “moxa-cautery”)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용과 형식 면에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룬다.10) PT 1058은 인체 도해를 포함한 시각 자료로, 의료 지식의 시각적 표상과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인식 양상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반면 PT 127과 PT 1044는 도상 없이 치료 방법의 실용적 전달에 중점을 둔 문헌으로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뜸 치료법과 관련 증상, 뜸의 횟수를 체계적으로 기술한 실용적 의료 지침서(manual)의 성격을 띤다. 이하에서는 먼저 PT 127과 PT 1044의 구성과 내용, 의학적 특징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다음 장에서 시각 자료인 PT 1058의 도상학 및 구조를 중심으로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진행하고자 한다.11)

PT 127의 구체적인 구조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문헌은 총 107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앞의 92행은 46개의 치료 단위(섹션)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섹션은 치료 부위, 뜸의 수, 관련 증상군 등 유사한 구조를 반복하며, 척추, 다리, 머리, 발 등 신체 부위에 따라 나열된다. 반면, 나머지 15행은 비교적 자유로운 서술로 구성되어 있다. PT 127은 병인으로서의 ‘바람(Tib. rlung, Chi. 風氣)’에 특히 높은 비중을 두며, 텍스트 전반에서 25회 이상 언급된다. 여기서 언급된 바람 관련 병증은 마비(paralysis), 운동 기능 상실(loss of motor function), 안면 경련(facial distortion), 현기증(dizziness), 급성 또는 복합 통증(sudden or combined pain) 등으로, 이는 현대의 신경계 질환(neurological disorders) 또는 전신 기능 조절 이상(systemic dysregulation)과 유사한 양상을 띤다(Lo & Yoeli-Tlalim, 2010: 274–275). 또한 PT 127은 ‘황색 액체(Tib. chu ser “Yellow Fluid”)’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포함하고 있다. chu ser는 만성적이거나 급성일 수 있으며, 외상 후 체내에 침입하여 척추, 관절, 심장, 신장 등으로 퍼져 열성 질환(febrile illness), 관절 및 장기의 강직(stiffness), 눈과 피부의 황변(yellowing) 등을 유발하는 병리 개념이다. 이러한 증상은 전염성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며, 현대적으로는 장티푸스(typhoid), 황열병(yellow fever) 등과 유사한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치료는 주로 특정 부위에 뜸을 놓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병의 중증도에 따라 출혈요법(bloodletting)과 식이요법(dietary therapy)이 병행된다.12)

PT 1044 역시 PT 127과 유사한 형식 구조를 갖는다. 전반적으로 증상군별 치료 지점을 제시하고, 각 지점에 적용할 뜸의 횟수, 치료 효과를 명시하는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는 PT 127이 취하고 있는 병증 분류 방식과 일관된 구조로, 두통, 마비, 통증과 같은 바람(rlung) 계통의 병증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도 유사한 치료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두 텍스트 모두 특정한 해부학적 부위, 병증, 치료법을 결합한 체계적 대응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신체의 상, 하반신을 구분하고 특정 부위에 따라 병인론적 분류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공통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PT 1044의 말미에 나타나는 간기(colophon) 구절이다. 여기서 이 치료법은 “인도 왕의 땅에서 전해진 것”이라 기술되며, 그 지역을 ‘Ha-ta-na-bye (‘코탄’을 지칭하는 구 코탄어(Old-Khotanese) hvatana의 티벳어 음역)’로 명시하고 있다.13)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외곽을 따라 이어지는 실크로드 남로(南路)의 주요 거점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던 코탄은 민족/문화적 요소에서 인도, 이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복합적 불교문화의 요충지였다. 코탄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도에서 찾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자신들의 국가가 인도의 첫 번째 통일왕조인 마우리아 왕조 아쇼카 왕의 아들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전설적 기원을 공유한다는 점, 그리고 10세기에 이르기까지 코탄 왕들이 인도식 이름을 사용했다는 점 등에서 확인된다(Yoeli-Tlalim, 2021: 90–91). 따라서 PT 1044의 간기에 나타나는 ‘인도 왕의 땅’ 기원 서사는, 진단 및 처방 지식 이상의 정치적·문화적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당대 의학 문헌의 서술 전략을 반영하며, 더 나아가 티벳 전통 의학이 어떻게 초기 단계에서부터 외래 지식을 받아들이고 이를 수용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기원 서사는 단순한 지리적 기원에 대한 기술을 넘어 해당 의학 지식이 중앙아시아 불교 문화권, 특히 다언어, 다문화적 성격을 지닌 코탄이라는 권위 있는 외래지로부터 유래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문화적 서사 전략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14)

그림 1.

Pelliot tibétain 127 (좌) 1044 (우)

Figure 1. Pelliot tibétain 127 (left) 1044 (right)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https://gallica.bnf.fr. 검색일: 2025.8.30.)

PT 127과 PT 1044는 이론적 논의를 거의 포함하지 않으며, 각 신체 부위별 증상군, 뜸의 지점과 횟수를 반복적으로 배열한 일관된 편찬 체계를 갖춘 실용 중심의 매뉴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단순한 치료 지침서를 넘어, 둔황이라는 다문화적 교차지대에서 형성된 초기 티벳 의학의 실천 양상과 지식 수용의 다층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들 문헌은 비록 초기 단계라 할지라도 일관된 치료 지침 형식과 체계적 증상 분류, 해부학적 인식에 기반한 실용 중심의 매뉴얼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는 정형화된 이론보다는 현장 중심의 실천 지식을 전승하고자 한 의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PT 127과 PT 1044에 나타나는 뜸 치료법은 동시대 중국의 전통적인 뜸 치료와 유사성과 차이점을 모두 지닌다. 뤄빙펀(罗秉芬)의 분석에 따르면 티벳 문헌에서 나타나는 뜸 치료는 ‘중국식 뜸 치료’(Tib. rgya nag gi me btsa’)라는 표현 대신 일관되게 ‘위구르식 뜸 치료’(hor gyi me btsa’)으로 명명되며, 이는 당대 치료 기법의 기원에 대한 인식과 문화적 위계가 반영된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비비안 로(Vivienne Lo)와 로닛 요엘리-트랄림의 연구에 따르면 둔황에서 출토된 한문 뜸 치료 문헌들과 티벳어 문헌들은 모두 의학 이론과 분리된 실용적 지침서로서 공통된 성격을 지닌다(Lo & Yoeli-Tlalim, 2018). 이러한 특징은 높은 수준의 의학 지식이 없는 이도 위급한 상황에서 따라할 수 있도록 고안된 사용자 친화적 의료 문헌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특히 티벳어 필사본 PT 1044와 한문 필사본 S.6168 모두에서 ‘얼굴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풍병’에 대해 거의 동일한 표현과 치료 지점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증상 목록, 뜸 위치, 치료 횟수 등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 또한 두 전통 모두 병증과 치료법 외에도 시간 계산 및 점성술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인체 안에서 순환하는 월령 기반의 생명 에너지—중국에서는 人神, 티벳에서는 bla 혹은 brla—의 주기를 따라 특정 날짜의 치료를 금했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이러한 시간적 주기와 의료 행위의 결합은 당시 둔황에서 형성된 중국-티베트 의료 문화(Sino-Tibetan medical culture)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으며, 당대 의학의 우주론적 세계관과 생리학적 실천이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보여준다.15) 다음 장에서는 티벳 의학 뜸 치료의 시각적 표현이라 할 수 있는 PT 1058을 분석함으로써, 문헌과 도상 간 상호 작용 및 의학 지식의 시각적 전승 양상에 대해 살펴보겠다.

5. 펠리오 티벳어 사본(Pelliot tibétain) 1058

PT 1058은 현재까지 알려진 티벳 전통의학 도해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예로 간주된다. 이 필사본은 인체 시각화와 치료 지점의 연결 방식이라는 점에서 티벳 의학 전통의 시각적 지식 전달 방식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특히 이 도해는 당시의 실용 의학 지식이 어떻게 시각적 형태로 구성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후대의 도해 및 의학적 표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16)

그림 2.

Pelliot tibétain 1058 (알파벳 및 번호 표기는 저자)

Figure 2. Pelliot tibétain 1058 (numbering and alphabetization by the author)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https://gallica.bnf.fr. 검색일: 2025.8.30.)

PT 1058에는 두 개의 인체 도상이 그려져 있다. 왼쪽 인물 Ⓐ는 정적인 자세로 서 있으며, 오른쪽 인물Ⓑ는 왼 다리를 들고 걷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걷는 동작이라기 보다는 발바닥을 포함한 왼 다리 안쪽과 오른 팔에 위치한 뜸 치료 지점(me dmigs “moxa-points”)을 보여주기 위해 그려진 자세로 볼 수 있다. 각 인물에는 동그랗게 표시된 검은 점, 즉 뜸 치료 지점과 이를 연결하는 지시선이 존재하며, 각각의 선 끝에 짧은 설명 문구가 덧붙여져 있다. 설명은 우짼(dbu can “headed script”)체로 쓰였으며, 둔황 필사본에서 자주 발견되는 구 티벳어 표기법(Old Tibetan orthography)이 다수 나타난다.17) 또한 필사본 좌측에 일부분만 남아 있는 설명을 볼 때, 현재는 훼손되어 원형을 파악할 수 없지만 최소한 왼쪽에 하나 이상의 인물 도상이 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물 Ⓐ에 연결된 12개 지점은 모두 하체에 집중되어 있으며, 발목, 무릎, 정강이, 발가락, 엉덩이 관절 등 뼈의 돌출부와 관절, 혹은 오목한 부위를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도해 내의 여러 구절에서는 손가락을 단위로 한 거리 측정법(예를 들어, ‘손가락 네 개 위’, ‘세 손가락 아래’)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고정된 경혈 체계가 아닌, 개인의 신체 크기와 체형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치료 방식이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측정법은 체화된 진단 행위에 기반한 실천적 지식의 산물이며, 치료 행위를 하는 이가 직접 환자의 몸을 탐색하며 뜸 치료 위치를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좌측에 위치했을 또 다른 인물에 연결된 네 개의 지점(13~17)은 척추뼈(Tib. tshigs “vertebra”)를 기준으로 정렬된 치료 좌표들이며, 이를 통해 현재는 보이지 않는 인물Ⓒ 도상이 인체의 후면이었음을 알 수 있다.18)

이하에서는 PT 1058에 나타나는 뜸 치료 지점 17곳에 17곳에 해당하는 지점에 대한 분석을 정리해 보았다. 각 항목은 사본에 기록된 티벳어 구절의 로마자전사(transliteration) 및 번역, 해당 구절이 지시하는 신체 부위에 대한 해석과 한의학에서 상응하는 것으로 보이는 혈명을 포함한다.19)

① Tib. dpyi myig gi gshong bu “outer depression of the hip socket”20)

필사본에서 제시되는 ‘엉덩이뼈의 바깥쪽 오목한 부분’은 볼기뼈 절구(acetabulum) 바깥쪽, 즉 고관절 외측의 함몰 부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의학에서 담경(GB)의 혈위인 환도혈(環跳穴, GB30) 위치와 유사하다. WHO 표준경혈위치에 따르면, 환도혈은 둔부에서 큰돌기의 융기(prominence of the greater trochanter)와 엉치뼈틈새(sacral hiatus)를 연결한 선에서 외측 1/3과 내측 2/3의 지점에 위치한다 (World Health Organization/Regional Office for the Western Pacific (이하 WHO/WPRO). 2008: 197).

② Tib. lus drang por ’greng la lag pa gnyis rla la brkyang ba’i sor mo gung mos slebs pa’ “When the body is upright and both arms are stretched out, [the location where] the middle fingers reach”21)

손가락을 벌렸을 때 엄지와 중지 사이의 거리로 재는 척(尺) 단위처럼, 둔황본에서는 개인의 신체 비율에 기반한 측정 및 진단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필사본에서 지시하는 ‘몸을 곧게 세운 상태에서, 양팔을 쭉 뻗었을 때 중지가 허벅지에 닿는 지점’은 허벅지의 외측, 즉 대퇴골의 대전자(greater trochanter)나 허벅지 중간 부위로 해석되며, 이는 한의학에서 풍시혈(風市穴, GB31)과 거의 일치한다. WHO 기준에 따르면 풍시혈은 ‘허벅지의 외측면에서, 일어선 자세로 팔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렸을 때 중지 끝이 닿는 부위로, 장경인대(iliotibial band) 뒤쪽의 함몰 지점’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점은, 전통 한의학의 골도법(骨度法)에서도 같은 방식(팔을 늘어뜨렸을 때 중지가 닿는 부위)로 풍시혈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둔황 필사본과 한의학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 혹은 연속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WHO/WPRO, 2008: 187).

그림 3.

WHO 표준경혈위치에서 설명하는 풍시혈의 위치 및 측정 방법

Figure 3. Location and measurement method for Fengshi (GB31) as described in the WHO Standard Acupuncture Point Locations

(WHO/WPRO, 2008: 187)

③ Tib. pus mo’i lha nga’i dmyig “the eye (dmyig) of the kneecap”22)

필사본에서 지시하는 ‘슬개골의 눈’은 슬개골의 아래 모서리, 무릎인대(ligamentum patellae)의 안쪽 오목한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경외기혈(經外奇穴) 혹은 별혈(別穴, extra points) 중 하나인 슬안(膝眼, EX-LE4/5)에 해당한다.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슬안, 즉 ‘무릎(뼈)의 눈’과 동일한 표현이 PT 1058에 나타나는 점이 주목할 만 하며, 이는 앞 풍시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둔황 필사본과 한의학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④ Tib. byin snying du gdab pa’ “to apply on the claf of the leg”23)

해당 항목과 도해에서 가리키는 뜸 치료 지점은 종아리, 그 중에서도 근육이 가장 두드러진 곳이다. 이는 비복근(gastrocnemius muscle)의 중앙, 즉 슬와에서 아킬레스건 사이의 중간 지점으로, 방광경(BL) 혈위인 승근혈(承筋穴, BL56)에 가까워 보인다. 승근혈은 종아리 뒤쪽, 비복근의 두 힘살 사이에 위치하며, 오금주름(popliteal crease)에서 아래쪽으로 5촌 떨어진 지점이자, 합양혈(BL55)과 승산혈(BL57)을 연결하는 선의 중간 지점이다(WHO/WPRO, 2008: 127).

⑤ Tib. ngar gdong gi lus pa cog cog po “the prominent point of the anterior crest of the shin bone”24)

정강이뼈의 앞면에 돌출된 부위, 경골 결절(tibial tuberosity)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⑥ Tib. byin snying nas mar sor gsum gzhal ba’ “to measure three finger-widths downward from the calf of the leg”25)

필사본에서 가리키는 지점은 비복근에서 3지폭(약 2-3cm) 아래에 해당하는 곳으로, 한의학에서는 승산혈(承山穴, BL57)에 가까워 보인다. 승산혈은 종아리 뒤쪽면에서 장딴지근의 두 힘살과 발꿈치 힘줄(calcaneal tendon)이 만나는 지점으로 설명된다(WHO/WPRO, 2008: 128).

⑦ Tib. long bu cog cog po nas yar sor bzhir gzhal ba’ “to measure four-finger-widths upward from the prominent point of the ankle”26)

필사본에서 언급되는 ‘발목의 돌출된 부위(Tib. long bu cog cog po)’는 외측 복사뼈(lateral malleolus)를 가리킨다. 그곳에서 위쪽 4지폭(약 3-4cm) 떨어진 부위로, 현종혈(懸鐘穴, GB39) 또는 양보혈(陽輔穴, GB38)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WHO 기준에 따르면, 현종혈은 종아리의 종아리뼈(fibula) 쪽, 외측 복사뼈의 돌출 끝에서 몸 쪽으로 3촌 떨어진 부위이며, 종아리뼈 앞쪽에 위치한다. 양보혈은 이보다 1촌 더 위쪽, 마찬가지로 종아리뼈의 앞쪽에 위치한다(WHO/WPRO, 2008: 190–191).

⑧ Tib. long bu rgyab kyi gshong bu “posterior cavity of the ankle”27)

발목 뒤의 오목한 부위는 아킬레스건(calcaneal tendon)과 외측 복사뼈(lateral malleolus) 사이의 함몰된 지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곤륜혈(崑崙穴, BL60)에 해당한다. WHO 기준에 따르면 곤륜혈은 발목의 뒤 가쪽면(posterolateral aspect of the ankle)에 위치하며, 가쪽 복사끝과 발꿈치힘줄 사이의 오목한 곳에 자리한다(WHO/WPRO, 2008: 129).

⑨ Tib. rkang pa’i mthe mo nas yar sor bzhir gzhal ba’ “to measure four finger-widths upward from the big toe (hallux) of the foot”28)

티벳어에서 mthe mothe bo는 모두 엄지(thumb)를 의미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주로 엄지 자체를, 후자의 경우는 엄지의 표면이나 특정 부위를 가리키는 용도에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필사본에서 가리키는 지점은 엄지발가락에서 위쪽으로 약 4지폭(약 3–4cm) 떨어진 곳으로, 이는 간경(LR)의 태충혈(太衝穴, LR3)에 가까워 보인다. 태충혈은 발등(dorsum of the foot)에서 첫째와 둘째 발허리뼈(metatarsal bones) 사이, 두 뼈뿌리의 결합부에서 먼 쪽에 위치한 오목한 곳이며, 발등동맥(dorsalis pedis artery) 위에 자리한다(WHO/WPRO, 2008: 197).

⑩ Tib. rkang pa’i the bo dang ’dzub mo □+i bar “between the big toe (the bo) and the second toe (’dzub bo) of the foot”29)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한의학에서 행간혈(行間穴, LR2)에 해당한다. 행간혈은 발살 가장자리에서 몸 쪽, 적백육제(赤白肉際), 즉 붉은 살과 흰 살의 경계선에 해당하는 부위에 위치한다(WHO/WPRO 2008: 196).

⑪ Tib. rkang pa’i bol gi gong chu ba ched “the upper part of the dorsum (top) of the foot”30)

발등(dorsum of foot)의 상단부로, 주로 발목과 발등 사이에 위치한 인대, 혹은 상부 족부인대(extensor retinaculum)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⑫ Tib. rkang pa’i rus cog cog po’i gshong □ “the depression of the prominent bone of the foot”31)

필사본의 설명과 선이 가리키는 지점을 종합해 봤을 때, ‘발목 관절의 오목한 곳’은 외측 복사뼈 주변의 오목한 부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곳은 한의학에서 신맥혈(申脈穴, BL62)에 해당한다. WHO 기준에 따르면, 신맥혈은 발의 가쪽면(lateral aspect of the foot), 외측 복사뼈 돌출부의 바로 아래쪽, 즉 외측 복사뼈의 아래쪽 경계선과 발꿈치뼈(calcaneus) 사이의 오목한 곳에 위치한다.

⑬ Tib. thal gong gi gshong bu “the depression of the shoulder blade (scapular recess)”32)

필사본이 훼손되어 선이 이어지는 뜸 위치를 이미지에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견갑골에서 오목하게 들어간 부위는 견갑골의 관절와(glenoid cavity) 주변 함몰 부위이거나, 상완골(head of humerus)과 맞닿는 어깨 관절의 오목한 부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⑭ Tib. tshigs gsum pa’i og tshigs “the vertebra below the third vertebra”33)

위와 같은 이유로 이미지 상에서 뜸의 위치를 정확히 추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필사본에서는 해당 지점을 세 번째 척추뼈 아래의 척추뼈로 언급하고 있으나, 시작 지점을 특정할 수 없어 정확한 위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⑮ Tib. tshigs pa bco brgyad pa’ “the eighteenth vertebra”34)

⑯ Tib. tshigs pa nyi shu pa’ “twentieth vertebra”35)

⑰ Tib. tshigs pa nyi shu cig pā “twenty-first vertebra”36)

해당 지점들은 순서대로 열여덟 번째, 스무 번째, 스물한 번째 척추뼈를 가리킨다. 그러나 ⑭번과 마찬가지로 필사본의 훼손 및 시작부분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 판단이 불가능하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TP1058에서 나타나는 뜸 치료 위치는 현재 통용되는 한의학 경혈 체계와 해부학적 관점은 물론, 측정 방법에 있어서도 일정 부분 유사성을 보인다. 엉덩이뼈 바깥쪽의 오목한 부위①는 환도혈(GB30), 몸을 곧게 세우고 팔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렸을 때 중지 끝이 닿는 허벅지 외측 부위②는 풍시혈(GB31), 슬개골 하단의 오목한 부위③는 경외기혈인 슬안혈(EX-LE4/5), 종아리 중심부④는 승근혈(BL56), 종아리 근육 하단에서 3지폭 아래⑥는 승산혈(BL57)에 각각 대응한다. 외측 복사뼈에서 위쪽 4지폭 지점⑦은 현종혈(GB39) 또는 양보혈(GB38), 복사뼈와 발꿈치힘줄 사이의 오목한 부위⑧는 곤륜혈(BL60), 엄지발가락에서 위쪽 4지폭⑨은 태충혈(LR3),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의 부위⑩는 행간혈(LR2), 복사뼈 아래 오목한 곳⑫은 신맥혈(BL62)에 각각 대응된다. 뿐만 아니라, 측정 방법과 관련해서도 한의학과 유사성이 발견되는데 ②, ⑥, ⑦, ⑨ 등에서 나타나는 지폭(指幅) 기반 측정법은 한의학의 동신촌법(同身寸法) 혹은 지촌법(指寸法)과 유사하다. 특히 ②번은 오늘날 한의학 골도법에서 사용하는 신체 비례 측정 방식과 설명이 정확히 일치하고, ③번은 해당 지점을 가리키는 비유적 방식(‘무릎의 눈’)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외에 견갑골의 오목한 부위⑬ 및 척추 관련 지점들⑭–⑰은 필사본의 훼손으로 인해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티벳 의학 역시 일정부분 해부학에 기반한 체계적 접근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동일하게 둔황에서 발견된 한문 도해(S. 6168, S. 6262)나 유럽 중세 의학 도해와는 달리, PT 1058에서는 대상 질병이나 증상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료 절차에 대한 기술 역시 부재하며, 오로지 뜸 치료 지점의 시각적 지시 및 신체 표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제한적인 정보 구성은 이 도해가 독립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문헌과 함께 시각 정보를 전달하는 보조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PT 127과 PT 1044는 소화기 장애, 설사, 손발의 부종, 신장 통증, 토혈, 지속적인 코피와 같은 다양한 질병군에 대한 증상과 그에 따른 뜸 치료 지점을 기술하는데, 상당부분 PT 1058과 상응한다(Lo & Yoeli-Tlalim, 2010: 279–281).

또 다른 특징은, 신체의 뜸 치료 지점과 그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선으로 연결되는 PT 1058의 전반적인 구조는 오늘날에도 특별한 배경지식 없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는 시각적 요소(인체 묘사)와 의학 정보(뜸 위치 설명)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티벳 의학 지식이 시각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유사한 사례로는 둔황에서 발견된 한문 뜸 치료 관련 필사본<그림 4. Pelliot Chinois 2675>, <그림 5. Or.8210/S.6168>이나, 투르판 지역에서 발견된 위구르(Uighur)어 필사본<그림 6. Mainz 0725>이 있다. 특히 Pelliot chinois 2675은 증상, 뜸의 위치, 뜸의 개수와 같은 치료 방법이 PT 1058과 동일한 구조로 쓰여 있어, 이 두 문헌자료가 공통된 의학정보에 기반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과 정보의 통합 구조는 도해에 나타난 인물 도상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실제로 PT 1058에 등장하는 인체 도상은 단순한 배경 이미지가 아니라, 치료 지점의 위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도식적 장치로 볼 수 있다.

그림 4.

Pelliot chinois 2675

Figure 4. Pelliot chinois 2675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https://gallica.bnf.fr. 검색일: 2025.8.30.)

그림 5.

Or.8210/S.6168 (부분)

Figure 5. Or.8210/S.6168 (detail)

(런던국립영국도서관, https://idp.bl.uk. 검색일: 2025.8.30.)

그림 6.

Mainz 0725 (부분)

Figure 6. Mainz 0725 (detail)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과학 및 인문학 아카데미(Berlin-Brandenburg Academy of Sciences and Humanities), https://www.bbaw.de. 검색일: 2025.8.30.)

마지막으로, PT 1058에 나타나는 인물 도상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두 인물 모두 머리카락을 위로 묶고 리본으로 고정한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티벳의 풍습과 연결될 수 있으나, 동시에 상체를 노출시켜 치료 지점의 드러내기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은 후대 정형화된 티벳 의학 도해에서 잘 나타나지 않으며, PT 1058의 실용적 성격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근거로 이해될 수 있다. 둘째, 인물의 자세와 관련하여, 투르판 출토 위구르어 도해 <그림6. Mainz 0725>에서 나타나는 인물이 불교와 관련된 자세, 즉 연화좌(Skt. padmāsana)나 선정인(Skt. dhyānamudrā)을 취하는 것과 명확히 구분된다. 또한 한자 필사본 <그림 5. S.6168, PC 2675>에 그려진 도상들이 동일한 인물, 혹은 정형화된 인물의 정면과 후면을 배열한 데 비해, PT 1058은 완성된 전신 도상이라기보다는 특정 치료 지점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하기 위해 구성된 일종의 ‘시각적 치료 지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PT 1058은 신체의 주요 근육, 관절 구조를 비교적 정밀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해당 그림이 단순한 상징적 이미지가 아닌 실제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물론 손가락, 발가락의 형태나 얼굴 측면의 묘사 등에서는 표현상 한계가 드러나지만, 정보 전달이라는 도해의 주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필사본에서 나타나는 시각적 표현 방식은 의학적 정보의 기억, 전달, 실천에 있어 효과적이었을 것이며, 당시 문해력이 제한적이었던 사람들에게도 일정수준 이상의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종교적인 상징성을 주로 포함하는 후대 티벳 불교회화와 달리 실용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적 이미지라 할 수 있는데, 시각적인 요소를 상징이나 장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과 치료 행위를 위한 도식적 매뉴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37)

흥미로운 점은 둔황 필사본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도해 양식이 후대 티벳의 의학 전통에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1687년부터 12년간 상계갸초(Desi Sangye Gyatso)의 주도하에 제작된 Blue Beryl (Tib. Vaiḍūrya sngon po) 계열의 의학 도상 체계는 문자 자료와 함께 시각자료를 조직화하여 티벳의학의 체계화 및 질적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그림 7].38) 하지만 이 과정에서 PT 1058에서 볼 수 있는 초기의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도해 양식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심지어 상계갸초는 그의 저작에서 이전 시대에는 의학 도해 전통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서술했기 때문에, 자신이 구상한 의학도는 사실상 새로운 전통의 창출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Yoeli-Tlalim, 2021: 101).39)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PT 1058은 비록 티벳의 후대 도상 전통으로 계승되지는 않았더라도, 9~10세기 티벳의 실용 의학 지식이 둔황에서 어떻게 시각화되었는지, 그리고 다언어적/다문화적 맥락 속에서 지식이 어떻게 구현되고 확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독창적 사례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티벳어로 제작된 이 도해가 중국, 위구르 등의 도해들과 연속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실크로드라는 문화 교류의 장이 지식의 시각적 전개 방식에도 깊이 영향을 미쳤음을 잘 보여준다.

그림 7.

Blue Beryl을 쓰는 샹계갸쵸와 그것에 따라 도해를 그리고 있는 작가들(좌)과 딴뜨릭 수행에서의 경맥(channels)을 보여주는 도해 일부(우)

Figure 7. Sangye Gyatso writing the Blue Beryl with artists illustrating accordingly (left) and detail of a diagram showing subtle channels in tantric practice (right)

(포탈라궁 벽화(좌), 부랴티아 판본(우), (Gyatso, 2015: 43, 273))

6. 마치며: 경계를 넘은 의학, 경계에 갇힌 정체성

티벳 의학 전통 소와릭빠는 최근 인도와 중국 양쪽 정부 모두에서 그 기원과 현대적 실천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문화유산 논쟁의 중심에 선 바 있다.40) 2019년 11월, 인도 정부는 공식적으로 소와릭빠를 인도 정부의 전통 및 보완의학 정책 부처인 AYUSH (Ayurveda, Yoga & Naturopathy, Unani, Siddha, and Homeopathy)에 편입시키고 이를 인도 국가 의학 유산의 핵심 일부로 주장했다. 소와릭빠가 고대로부터 아유르베다(Ayurveda)와 뿌리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이 의학 전통을 인도 문화 및 의학 유산의 확장된 서사 안으로 통합하려는 것이다. AYUSH의 2022–2023년 연례보고서는 소와릭 빠를 포함한 티벳 전통 의학 체계의 표준화, 홍보, 제도화를 통해 이를 인도 문화유산의 구성 요소로 발전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41) 이러한 조치는 소와릭빠를 인도 의학 전통이라는 범주 내에 포함하려는 명확한 목적을 담고 있으며, 이는 라다크 레(Leh, Ladakh)에 소와릭빠 국립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Sowa Rigpa, https://www.sowarigpainstitute.in)를 설립함으로써 더욱 구체화되었다.42) 동시에 중국 정부 또한 티벳 의학을 자국의 국가 문화유산으로 편입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왔다. 2018년 11월, 중국은 ‘Lum Medicinal Bathing of Sowa Rigpa’를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소와릭빠를 중국 문화유산의 맥락 안에서 설명하였다.43) 이는 티베트 문화 실천을 중국 전통 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 TCM)의 범주 안으로 통합하려는 중국 정부의 광범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티벳 전통 의학이 역사적으로 중국 내에서 발생하고 발전해 왔다는 중국 학계의 주장과도 연결된다.44)

티벳인들, 보다 정확히는 티벳의 망명 공동체는 인도 및 중국 정부가 각각 소와릭빠를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문화적 주권 상실의 위협으로 인식하며 강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특히 티벳 망명 공동체의 의료인, 암치(amchi)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티벳 의학의 정당한 계승자이며, 그 이론적·전통적 기반을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에는 의학이 단순한 의료 지식체계를 넘어, 집단적 정체성과 문화적 기억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있다.45) 따라서 소와릭빠를 보존하려는 시도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인 동시에, 디아스포라 상황 속에서 문화주권을 지키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소와릭빠는 단순한 전통적 의료체계의 총합이 아니라, 티벳인의 역사적 기억과 집단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상징적인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소와릭빠를 둘러싼 논쟁은 의학의 형태를 띤 문화 정치의 장이기도 하며, 동시에 티벳인이 자신들의 존재를 세계사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46)

지금까지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인 둔황에서 발견된 뜸 치료 문헌들, 그 중에서도 Pelliot tibétain 1058를 중심으로 티벳 의학 전통 초기의 일면을 살펴보았다. PT 1058에서 나타나는 뜸 치료 관련 서술은 당시의 의학 지식이 단순한 설명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실용적인 시각 정보 형태로 구현된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구현된 의학지식은 형식과 구조적인 면에서 둔황에서 발견된 다른 티벳어 뜸 치료 문헌 뿐만 아니라, 한문, 위구르어로 쓰인 문헌과도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티벳 의학 전통이 형성 초기부터 실크로드라는 초국적 지식교류의 장에서 다양한 의학 전통과 접촉하고 교류하며 발전한 ‘혼성적 지식체계(hybrid knowledge system)’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현대에 이르러 인도와 중국 정부가 소와릭빠를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편입하려는 정치적 시도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실크로드적 배경’ 즉 혼성적 기원과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기저에 위치한 타 문화에 대한 개방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오늘날 소와릭빠를 둘러싼 문화유산 논쟁은 단지 과거의 전통을 둘러싼 담론에 그치지 않고, 티벳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과 정치적 자율성에 대한 실질적인 쟁점으로 이어진다. 둔황에서 발견된 티벳 의학 관련 문헌들은 티벳 전통 의학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근거인 동시에, 현대의 문화 정치적 논의 속에서 ‘경계 너머의 의학’이 다시금 어떻게 경계 속에 포섭되려 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티벳 의학은 단지 과거의 지식 유산이 아닌, 현재도 살아 있는 정체성과 문화적 연속성의 상징으로, 아시아 의학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

Notes

1)

실크로드의 역사 및 의미에 대해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 중 비교적 최근 이루어졌고, 주요하다 판단되는 것들 몇 가지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니얼 워(Daniel Waugh)는 논문 “Richthofen’s ‘Silk Roads’: Toward the Archaeology of a Concept (2007)”에서 리히트호펜이 1877년 제안한 ‘실크로드’ 개념의 형성 과정을 고고학적으로 추적하며, 그가 한나라 시기에 국한하여 사용했던 이 용어가 후대에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분석했다(Waugh, 2007). 밸러리 한센(Valerie Hansen)의 The Silk Road: A New History (2012)는 둔황, 투르판 등지의 고고학적 발견과 그곳에서 출토된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실크로드가 단일한 연속적 무역로가 아닌, ‘시장들로 연결된 체인(chain of markets)’과 같았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실크로드 신화’를 실증적으로 재검토했다(Hansen, 2012). 피터 프랑코판(Peter Frankopan)은 The Silk Roads: A New History of the World (2015)에서, 지금까지 서구, 특히 유럽 중심적 역사관을 탈피하여 동서 문명 교류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했다(Frankopan, 2015). 리처드 폴츠(Richard Foltz)의 Religions of the Silk Road: Overland Trade and Cultural Exchange from Antiquity to the Fifteenth Century (1999)는 불교,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교,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등이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되고 변용된 과정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종교 간 상호작용과 혼합주의적 특성을 살펴보았다(Foltz, 1999). 드 라 바시에르(De la Vaissière)의 Sogdian Traders: A History (2018)는 기원전 1세기부터 10세기까지 사마르칸트, 부하라, 타슈켄트와 같은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들에서 활동한 소그드 상인들이 어떻게 동서 문화와 경제적 교류의 주요 매개자로 기여했는지, 고고학적, 문헌사적 근거를 통해 분석했다(Vaissière, 2018). 수잔 휫필드(Susan Whitfield)가 편집하고 전 세계 80여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Silk Roads: Peoples, Cultures, Landscapes (2019)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 후 15세기까지 아프로-유라시아(Afro-Eurasia)를 가로지른 복합적인 무역망을 다양한 지형(초원, 산맥, 사막, 강, 바다)과 그곳에서 이루어진 문화적 교류에 대해 포괄적으로 설명했다(Whitfiel ed., 2019).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실크로드가, 오히려 다양한 문화들이 차이점 때문에 번영할 수 있었고, 다양한 상품과 사상, 종교와 기술의 교류가 풍부한 문화적 상호작용과 경제활동을 통해 어떻게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했는지, 풍부한 이미지 자료와 함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독일 보훔대 카르멘 마이너트(Carmen Meinert)가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주도한 프로젝트 BuddhistRoad(https://buddhistroad.ceres.rub.de)의 연구 목표 및 성과 역시 언급할 만 하다. 이 프로젝트는 6-14세기 동중앙아시아(Eastern Central Asia)와 인접한 티벳과 중국을 하나의 상호 연결된 불교 네트워크로 파악하고, 불교의 전파와 토착화가 지역사회와 지식체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교차역사(histoire croisée)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둔황과 투르판 같은 특정 거점 중심의 단편적 지역학을 넘어 중국/인도/티벳 전통과 각 지역 불교(토카리/코탄/위구르/탕굿)의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이들 연구는 실크로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단순한 고대 무역로에서 문명 교류의 네트워크로,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사, 인류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가운데 하나로 발전시키는 데 유의미한 기여를 했다.

2)

대표적으로 호다다드 레자카니(Khodadad Rezakhani)의 논문 “The Road That Never Was: The Silk Road and Trans Eurasian Exchange”(2010)를 들 수 있다(Rezakhani, 2010). 물론 이러한 실크로드라는 용어를 폐기해야 된다는 조금은 급진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간 축적된 학문적 성과를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 역시 가능하다.

3)

예를 들면, 티벳어로 번역된 중국 고전 텍스트(PT 1228, PT 1239), 티벳어로 번역된 샹슝(Zhang Zhung) 지역의 의학 문헌(IOL Tib J 755), 한문에서 번역된 소그드어 불교 경전, 그리고 한문으로 쓰여진 마니교 문헌 등이 있다. 또한 티벳어에서 신체 측정 단위 ‘쵠(tshon)’과 중국어 村의 사례처럼, 티벳 의학 용어에서 중국어의 음차 차용이 발견되기도 한다.

4)

이들 품목은 전통적인 의미의 약재라기보다는 일종의 의료, 치료를 위한 자재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산 종이는 코피를 멈추기 위한 특수 치료 도구로 언급되며, 카슈미르산 비단은 목에 이물질이 걸렸을 때 사용되는 고급 천으로 언급된다. 또한 코탄산 설탕은 약물 복용 시 완화제 또는 약물의 전달체로 사용된 사례가 문헌에서 나타난다(Yoeli-Tlalim, 2021: 11).

5)

고대 유라시아 세계에서 의학은 주술, 의례, 점성술, 종교적 치료법과 연속된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 있었다. 바빌로니아 의학사 연구자 마크 겔러(Markham J. Geller)는 Ancient Babylonian Medicine: Theory and Practice에서 마법(magic)과 의학(medicine)을 구분하는 것이 오히려 역사적 이해를 방해하며, 둘 다 치유를 위한 테라피로 기능했음을 언급한다(Geller, 2010: 8–10). 실크로드를 따라 이루어진 의학적 실천은 이러한 경계를 더욱 흐리게 만들며, 치료 효과에 대한 해석 또한 환자의 믿음, 공동체의 문화, 경제적 배경과 얽힌 다층적 경험이었다. 둔황 문헌에서 발견된 사례를 기반한 논의는 Yoeli-Tlalim의 연구 “Tibetan Medical Astrology” (2008), “Between medicine and ritual: Tibetan ‘medical rituals’ from Dunhuang ”(2015), 그리고 “Of dice and medicine Interactions in Central Asian ‘contact zones’” (2021)을 참고할 것(Yoeli-Tlalim, 2008; 2015; 2021).

6)

소와릭빠는 ‘돌보다’, ‘간호하다’, ‘치유하다’와 같은 뜻을 가진 gso ba와 ‘앎’, ‘지식’을 뜻하는 rig pa의 복합어로, 흔히 ‘치유의 지식’, ‘치유의 학문’ 등으로 번역된다. 이는 13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저명한 학승 샤캬 빤디따(Sakya Paṇḍita Kunga Gyeltsen, 1182-1251)에 의해 체계화되었다고 알려진 티벳의 ‘열 가지 학문분야(rig gnas bcu)’ 가운데 내전, 즉 불교학(nang don rig pa), 예술/공예(bzo rig pa), 논리/인명학(gtan tshigs rig pa), 문법학(sgra rig pa)와 함께 ‘다섯가지 주요한 지식의 영역(rig gnas chen po lnga)’에 포함된다. 나머지 ‘다섯가지 부수적인 지식의 영역(rig gnas chung ba lnga)’에는 동의어학(mngon brjod), 수학/점성술(skar rtsis), 연기/희곡(skar rtsis), 시학(snyan ngag), 작문(sdeb sbyor)으로 이루어진다. 전통적인 맥락에서 rig pa라는 개념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 대한 비판적이고, 동시에 경험적으로 뒷받침된 탐구와 이해의 방식을 함축한다. 특히 불교적 맥락 안에서는 초월적인 진리에 이르게 하는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앎의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이런 맥락에서, 소와릭빠는 단지 치료의 기술적 측면만이 아니라 티벳불교라는 특정한 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된 존재론적·인식론적 전제를 담고 있는 의학체계라 할 수 있다. 그 치료법과 진단 방식 역시 오랜 시간 철학적, 종교적 가치들과 깊이 연결되어 발전해 왔고, 동시에 그 의학적 실천 역시 불교적 관점이 반영되어 신체와 정신적 치유를 불교 수행적 관점에서 이해되어 온 측면이 있다. 소와릭빠의 의미에 대해서는 (Gyatso, 2015: 5) 참고. 소와릭빠의 이론과 수행체계의 근간을 형성하는 문헌은 12세기 유톡 왼뗀 괸뽀(Yuthog Yonten Gonpo, Tib. G.yu thog Yon tan mgon po, 1126–1202)의 저작으로 알려진 ‘네 가지 딴뜨라(Tib. rGyud bzhi “Four Tantras”, Chi. 四部醫典)’다. 이 문헌의 구조와 체계, 내용을 살펴보면, 티벳의학전통이 가진 고유한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문헌은 크게 내 개의 독립적인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첫 번째 챕터인 근본딴뜨라(rTsa rgyud “Root Tantra”)는 문헌 전체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며, 생리학, 건강과 질병의 원리, 진단과 치료의 기본 개념을 소개한다. 두 번째 챕터인 설명탄트라(bShad rgyud “Explanatory Tantra”)는 질병의 예방, 요소 간 균형 회복을 위한 식이 및 행동 요법, 의사의 자질 등 광범위한 주제를 포함한다. 세 번째 챕터인 수행 탄트라(Man ngag rgyud “[Oral] Instructional Tantra”)는 가장 분량이 많으며, 다양한 질병의 원인과 증상, 체질별 질환 구분, 냉/열성 구분, 장기별 병증의 분류 등 상세한 의학 정보를 제공한다. 마지막 탄트라(Phyi ma rgyud “Last Tantra”)는 맥진과 소변 진단, 약물 처방, 관장, 배출 요법 등 임상 치료법을 중심으로 실용적인 내용을 다룬다. (Gerke, 2014: 19–24) 이러한 네 가지 챕터 구성은 인체 이해에서부터 병리 분석, 진단 기법, 치료 방법에 이르기까지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rGyud bzhi가 단순한 의학 이론서가 아니라 종합적이고 실천적인 티벳 의학의 총서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정교하게 구성된 조직 체계는 문헌의 학문적, 실천적 가치뿐 아니라, 티벳 지식 전통의 전승 방식 및 종교적 수행과의 통합성을 반영하는 핵심 구조로 작용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소와릭빠 체계가 성립되기 이전, 둔황에서 발견된 소수의 필사본에서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티벳의학의 초기 모습을 다루기 때문에 소와릭빠 자체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겠다. 이에 대한 연구, 특히 소와릭빠의 기원과 특징에 대한 중요한 문제는 Yang Ga의 연구 “The Sources for the Writing of the Rgyud bzhi, Tibetan Medical Classic” (2010)과 “The Origins of the Four Tantras and an Account of Its Author, Yuthog Yonten Gonpo” (2014)를, 티벳의학전통의 시각적 표현전통에 있어서는 Janet Gyatso의 Being Human in a Buddhist World: An Intellectual History of Medicine in Early Modern Tibet (2015)를 참고할 것(Yang, 2010; 2014; Gyatso, 2015).

7)

티벳 의학 전통 내 갈레노스(Galenic) 의학의 유입과 의미를 둘러싼 학계의 주요 논의는(Beckwith, 1979; Yoeli-Tlalim 2012, 2019a)를 참고. 크리스토퍼 벡윗(Christopher Beckwith)은 “The Introduction of Greek Medicine into Tibet in the Seventh and Eighth Centuries (1979)”에서 ‘갈레노스(Galenos)’라는 이름을 단서로 그리스 의학 전통이 비잔틴-페르시아를 경유해 티벳 왕실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Beckwith, 1979). 그의 주장은 Blue Beryl을 비롯한 후대 티벳 의학 전통에서 전승되어 온 기술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인도 의학의 영향이 본격화 되기 이전인 티벳 제국기(7-8세기)에 그리스와 이슬람 의학이 주요한 위치를 점했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로닛 요엘리-트랄림(Ronit Yoeli-Tlalim)은 “Re-visiting ‘Galen in Tibet’” (2012)에서 벡윗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Yoeli-Tlalim, 2012). 즉, 갈레노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문헌이 후대에 작성된 것들 뿐이기 때문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둔황 의학 필사본(PT 127, 1044 등)과 같은 초기 문헌을 분석할 때 갈레노스 이론보다는, 바람(rlung) 중심의 병인론, 요분석 등 실용적, 경험적 지식에 집중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다만 일부 티벳 의학 용어가 페르시아 의학 전통, 혹은 아랍어에서 유래했음을 지적하며, 이슬람권을 통한 일부 서방 의학 요소의 간접적 유입 가능성은 인정한다. 요엘리-트랄림은 더 나아가 “Galen in Asia?” (2019a)에서 이 논의를 실크로드 의학사 차원으로 확장했다(Yoeli-Tlalim, 2019a). 그녀는 갈레노스 서사가 단순히 티벳에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중앙아시아, 둔황, 인도, 이슬람을 아우르는 의학적 융합의 상징적 사례라고 주장한다. 13세기 몽골 제국 전성기 동방기독교 의사 이사(Īsā)의 활동, 16세기 무굴 인도 유나니(Yūnānī) 의학의 갈레노스 수용, 중국 원대(元代) ‘회회약방(回回藥方)’의 갈레노스 언급 등을 비교하며, 갈레노스가 초국적 의학 권위의 상징으로 다양한 전통에서 언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엘리-트랄린의 연구는 티벳 의학 전통 내 갈레노스 의학의 전파와 수용을 둘러싼 담론의 성격이 다양한 시기와 문화적 맥락에서 재구성된 ‘정체성과 연관된 서사’임을 보여준다. 벡윗은 티벳의 문헌학의 기술을 직접적인 근거로 해석한 반면, 요엘리-트랄린은 후대 문헌의 서사가 당대의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서 재구성된 결과임을 실증적인 근거를 통해 보여준다. 이와 같은 일련의 논의는 티벳 의학사에서 외래 지식의 수용과 변용, 그리고 의학사 서술의 문화적,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 의미를 성찰하는 데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8)

이 문헌들은 중앙아시아 및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중세 물질문화(material culture) 자료들 가운데 가장 방대한 규모로 평가된다. 이 문헌들 가운데 상당수가 낡거나 파편화된 상태였다는 점은, 이들이 체계적인 보존을 위해 수장된 것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다양한 종류의 문헌 다수가 이렇게 하나의 작은 공간에 보관되어 온 이유에 대해 그간 학계에서 다양한 가설들이 제시되어 왔다. 먼저 오럴 스타인(Aurel Stein)은 이곳을 낡아서 실용성은 사라졌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그대로 버릴 수 없는 ‘종교적 폐기물(sacred waste)’의 저장소로 보았다. 룽신장(荣新江)은 1006년경 카라한 왕조의 코탄 침공을 계기로 승려들이 문헌을 보호하기 위해 급히 봉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마에다 요시로(Imaeda Yoshirō)는 11세기 중반까지 150여 년에 걸쳐 문헌들이 점진적으로 동굴에 축적되었고, 12~13세기 서하(西夏, Tangut) 시대에 제16굴의 벽화 공사와 함께 제17굴이 봉인되었다는 점진적 축적설을 제안하였다. 샘 반 쉐익(Sam van Schaik)과 임레 갈람보스(Imre Galambos)은 이 굴이 본래 승려 홍변(洪辯, aka. 吳三藏, d. 862)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승려들의 개인 유물, 필사본, 의례용품 등이 지속적으로 수장되어 온, 일종의 ‘유품 보관소(mortuary reliquary)’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van Schaik & Galambos, 2011: 25). 더 나아가 최근 멜러디 두미(Mélodie Doumy)와 샘반 쉐잌(Sam van Schaik)은 최근 연구 “The Funerary Context of Mogao Cave 17” (2023)에서 17호굴의 문헌과 유물들이 이차성물(contact relics)로 간주될 수 있는지 살펴보며, 궁극적으로 이 공간 자체를 장례/의례적 맥락에서 기능한 사원(Buddhist funerary shrine)로 보아야 그 성격을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다 자세한 논의는 (Doumy & van Schaik, 2023) 참고.

9)

PT 127, 1044, 1057, 1058, 1059A, 1059B, 1059C, 1059D, 1059E, 1061, 1062, 1063, 1064, 1066; ST 401. I, 756, 757, 758, 759, 760, 761. I/II, 762. I, 763, 1100, 1101, 1254, 1278. (罗秉芬, 2002: 307).

10)

둔황에서 발견된 티벳의학 필사본을 포함한, 티벳 문헌사에 대한 포괄적이고 상세한 정보는(Kapstein, 2024: 97–110)를 참고.

11)

PT 127, 1044, 1058 외에도 둔황 막고굴 17호굴에서 발견된 다른 티벳 의학 필사본들에는 British Library Indian Office Library (IOL) Tib J 1246, IOL Tib J 756, PT 1057가 있다. 이들 문헌은 사혈(bloodletting), 훈증(fumigation), 구토(emetics), 마사지(massage), 부항(horn-cupping), 식이요법(dietary prescriptions), 민간 의례(ritual treatment) 등 다양한 치료 기술을 망라하고 있으며, 초기 티벳 의학의 폭넓은 치료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특히 이 문헌들은 주술적 요소, 천문학, 점성술 등과 결합된 다층적이고 혼성적인 의학 전통의 성격을 반영하며, 불교의례와 민간 신앙이 의학적 실천 속에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적 근거들이다. 이에 대한 분석과 관련 논의는 후속 연구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12)

티벳 의학 체계에서 rlung은 단순한 생리적 요소를 넘어 심리적, 종교적 차원까지 포괄하는 복합적인 의학 개념이다. Yoeli-Tlalim은 자신의 논문 “Tibetan ‘Wind’and ‘Wind’ Illnesses: Towards a Multicultural Approach to Health and Illness” (2010)에서 일반적으로 ‘바람(wind)’으로 번역되는 rlung 개념이 고대 그리스의 프네우마(pneuma) 또는 중국의 기(氣) 개념과 비교될 수 있는, 일종의 생명 에너지이자 감각/의식/정서 활동의 핵심 매개로 보았다. 티벳 의학 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문헌 ‘네 가지 딴뜨라(rGyud bzhi)’에 의하면, rlung은 다섯 가지 주요 형태로 구분되며, 각각은 특정한 신체적 기능(예를 들어, 호흡, 소화, 운동)과 정신적 기능(사고, 감정, 기억 등)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의 불균형은 소화불량, 불면, 두통과 같은 신체 질환은 물론, 환각, 우울, 불안 등 심리·정신 질환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더 나아가 rlung의 조절은 단순한 건강 유지 수단을 넘어 딴뜨라 수행과 일정 부분 접점을 가진다. 궁극적으로 Yoeli-Tlalim은 rlung 개념이 문화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해석되는 질병 이론의 사례임을 보여주며, 의학사/의철학의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제안한다. 이와 함께 티벳 전통 의학이 제공하는 예방 중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통합적 건강 모델이 오늘날 세계 보건 논의에서 주목받아야 할 가치가 있음을 역설한다. 티벳 의학 체계에서 rlung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앞서 인용한 (Yoeli-Tlalim, 2010)와 (Bauer-Wu et al., 2014)을 참고.

13)

(Lo & Yoeli-Tlalim, 2010: 283), 같은 페이지 각주 52번, 그리고 (Yoeli-Tlalim, 2021: 89–91) 참고. PT 1044, line nr. 52: rgya gar gi rgyal po’i yul nas byung ba’i dpyod rnam gchig las… “인도 왕의 땅에서 기원한 방법...” (Yoeli-Tlalim, 2021: 176)의 각주 34 참고.

14)

이와 달리 PT 127의 간기에는 그 기원에 대한 명확한 기술이 언급되진 않는다. 다만, 이러한 지식이 “문헌 보관소(Tib. phyag sbal)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모든 전통의 의학 지식을 종합한 것(dpyad yig thams cad)”이며, 티벳 서쪽에 위치한 “샹슝(Zhang Zhung) 지역의 토착 의술(phugs pa)을 바탕으로 편찬된 것”임을 주장한다. 이는 후대 티벳 의학사에서 강조되는 다문화적 기원 인식의 초기 사례로 간주될 수 있으며, 티벳 의학의 형성에 있어 외래 지식의 영향과 그에 대한 자각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드러내는 근거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PT 1044 간기에서 나타나는 ‘기원 서사(origin narrative)’와 어느정도 일맥상통한다. (Yoeli-Tlalim, 2021: 36–37) 참고.

15)

PT 1044는 한 달 가운데 특정한 날짜(Tib. tshes grangs)에 따라 bla의 위치를 산출하고, 이 에너지가 체내 특정 지점에 머물 때에는 뜸, 사혈, 금침과 같은 침습적 치료를 피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티벳과 중국 전통 모두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월령에 기반한 신체의 생명 에너지의 순환 개념은, 후대 중국 의학 체계에서는 점차 소멸된 반면, 티벳에서는 17세기 샹계갸쵸의 Blue Beryl에 이르러 체계화 된 후 “네 가지 딴뜨라(rGyud bzhi)” 안에 온전히 통합되어 계승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뜸 치료와 관련하여 티벳과 중국 의학 전통에 대한 비교에 대한 기존 연구로는 (Lo & Yoeli-Tlalim, 2010: 281–282; Yoeli-Tlalim, 2014: 99–100; Yoeli-Tlalim, 2021: 93–95; van der Kuijp, 2015: 80–81)를 참고.

16)

이 도해의 후면에는 티벳 의학과는 무관한 텍스트가 역방향으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필사본이 재활용되거나 혼합적으로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면 기록은 둔황 출토 필사본에서 자주 나타난다. 불교, 의학, 점성술 등 서로 다른 성격의 텍스트들이, 때로는 서로 다른 언어(한자-산스끄리뜨)로, 한 장의 필사본 앞뒤에 나타난다(Yan, 2007: 299). 이는 종이의 부족과 실용적 정보 활용이라는 현실적 조건 뿐 아니라, 중세 둔황의 지식 문화가 지닌 융합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후면 이미지는 https://gallica.bnf.fr/ark:/12148/btv1b8305595k/f2.item. 검색일: 2025.5.7. 참고.

17)

예를 들어, (1) ma 에 첨족자로 덧붙은 ya (ma ya btags “the ya attached to ma”), (2) 음절의 끝에서 후접자로 붙어 보조하는 ’a (’a rten “the supporting ’a”), (3) 후접자 ma 대신 쓰이는 아누스와라()와 비슷한 표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a rten은 둔황 필사본에서 주로 행이 끝나거나, 문장이 끝날 때, 혹은 비사르가(:)와 같은 쌍점(the double tsheg)과 함께 사용 됨. 예시: IOL Tib J 53, IOL Tib J 297등 (Apple, 2021: 17–18). 이와 같은 전형적인 구 표기법 외에도 rla (= brla), dmyig (= mig)을 비롯한 구 표기법이 곳곳에서 나타남. 주요 키워드와 의미는 아래의 해당 각주 참고.

18)

척추뼈를 기준으로 정렬된 치료 지점들이 후대 티벳 의학에서 발전한 인체 에너지의 순환 개념, 그 중에서도 특히 rtsa “pulse, channels”와 관련된 이론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도 있음. 둔황 티벳 의학 필사본에서 나타나는 rtsa에 대한 개념은 (Yan, 2007) 참고.

19)

PT 1058에 대한 선행 연구는 Marcelle Lalou의 “Texte médical tibétain (1941–1942)”에서 이루어졌으나, 해당 논문을 구하지 못해 참고할 수 없었다. 이 논문이 수록된 Journal Asiatique 233호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실제 출판이 1945년으로 연기되는 등 서지상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의 디지털 아카이브 Gallica (https://gallica.bnf.fr/)에서도 1822–1940년 호수만 온라인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실제 논문에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 □ : an illegible letter.

20)

Key words (Tib/Eng): dpyi myig (hip bone socket, acetabulum)/ gshong bu (joint cavitiy or bony depression).

21)

lus drang po (the erect body)/ lag pa gnyis (both arms)/ rla (=brla “thigh”)/ brkyang ba (to stretch)/ sor mo (finger)/ gung mo (middle finger)/ slebs pa (to reach)

22)

pus mo’i lha nga (kneecap)/ dmyig (= myig, mig “eye”)

23)

byin snying (the calf of the leg)/ gdab pa (to apply)

24)

ngar gdong (shin, tibia)/ cog cog po (prominent, anterior crest)

25)

byin snying (the calf of the leg)/ mar (downward)/ sor gsum (three finger[-widths])/ gzhal ba (to measure)

26)

long bu (ankle)/ cog cog po (prominent part)/ yar (upward)/ sor bzhi (four finger[-widths])

27)

rgyab (behind)

28)

rkang pa (foot)/ mthe mo (thumb). mthe mothe bo 모두 엄지(thumb)를 의미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주로 엄지 자체를, 후자의 경우는 엄지의 표면이나 특정 부위를 가리키는 용도에서 사용되는 경향이 있음. 티벳어 사전에서는 모두 엄지를 가리키는 동의어로 나타남(Hopkins & Hackett, 2016, s.v. mthe mo).

29)

the bo (thumb)/ ’dzub bo (forefinger)

30)

rkang pa’i bol (the upper part of the foot)/ gong (upper)/ chu be (ligament)

31)

rkang pa (foot)/ rus (bone)/ cog cog po (prominent)/ gshong (socket)

32)

thal gong (shoulder blades)/ gshong bu (joint cavitiy or bony depression)

33)

tshigs (vertebra)/ gsum pa (the third)/ og (lower)

34)

bco brgyad pa (the eighteenth)

35)

nyi shu pa (the twentieth)

36)

nyi shu cig pa (the twenty-first)

37)

이 논문은 티벳 의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보다 상세한 도상학적 분석은 별도의 연구에서 다뤄져야 한다. (Lo & Yoeli-Tlalim, 2010: 284-285; Yoeli-Tlalim, 2021: 95–100) 참고.

38)

Blue Beryl은 상계갸초의 rGyud bzhi에 대한 포괄적 주석서로, 1685년에 저술이 시작되어 1786년에 완성되었다. 상계갸초는 이 주석서와 함께 79점의 의학 도해를 제작하도록 했으며, 이는 이후 티벳 의학지식의 시각적 구현 전통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에도 티벳 전통 의학 교육의 핵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79점의 도해는 1703년에 완성되었다.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지만, 유리 파르피오노비치(Yuri Parfionovitch) 등이 러시아 부랴티야(Ulan Ude)에서 발견된 1920년대 판본으로 만든 Tibetan Medical Paintings: Illustrations to the Blue Beryl Treatise of Sangye Gyamtso (1653-1705) (1992)이 연구에서 많이 활용된다(Parfionovitch et al, 1992). 이를 기반으로 한 티벳의학전통에 대한 상세한 연구가 쟈넷 갸초(Janet Gyatso)에 의해 Being Human in a Buddhist World: An Intellectual History of Medicine in Early Modern Tibet (2015)에서 이루어졌다(Gyatso, 2015).

39)

17세기 말에 이루어진 상계갸초의 도상 제작에 대해서는 (Gyatso, 2015: 40–47) 참고.

40)

다음과 같은 예를 온라인 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1) “Both India and China nominate Tibetan medicine system for UNESCO honour,” The Indian Express, April 17, 2017. https://indianexpress.com/article/india/both-india-and-china-nominate-tibetan-medicinesystem-for-unesco-honour-4609698/ (2) “India, China now spar over legacy of medicinal system,” The Times of India, November 25, 2019. https://timesofindia.indiatimes.com/india/india-china-now-spar-over-legacy-of-medicinal-system/articleshow/72215285.cms. 검색일: 2024.4.16.

41)

Annual Report 2022–2023, Ministry of AYUSH, Government of India. https://ayush.gov.in/resources/pdf/annualReport/Annual_Report_2022-2023_English.pdf. 검색일: 2025.8.30. AUSH와 관련된 인도정부의 정책과 방향성, 더 나아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노선의 과도한 개입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양영순, 2022) 참고.

42)

“National Institute of Sowa-Rigpa to be set up in Leh,” Press Information Bureau, October 19, 2020. https://pib.gov.in/PressReleaseIframePage.aspx?PRID=1672557. 검색일: 2024.4.16.

43)

“Lum medicinal bathing of Sowa Rigpa, knowledge and practices concerning life, health and illness prevention and treatment among the Tibetan people in China”, UNESCO, https://ich.unesco.org/en/RL/lum-medicinal-bathing-of-sowa-rigpa-knowledge-and-practices-concerning-life-health-and-illness-prevention-and-treatment-among-the-tibetan-people-in-china-01386. 검색일: 2024.4.16.

44)

“National List of Representative Elements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https://www.mct.gov.cn/preview/special/7573,. 검색일: 2024.4.16.

45)

보다 자세한 입장은 Stephan Kloos의 2017년 논문 “The Politics of Preservation and Loss”에서 명확히 다루어지고 있다. “Exile Tibetan doctors regard themselves as the ultimate authority over Tibetan medical knowledge outside Tibet, and their calls for the regulation of Tibetan medicine were attempts to claim—or, in their words, preserve—their ownership and control over it in an increasingly competitive context” (Kloos, 2017: 151–152).

46)

오늘날 티벳 전통의학은 단순한 전통의 계승을 넘어, 문화적 주권과 정치적 정체성과 연관된 복합적 현상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로랑 프로디에(Laurent Pordié)는 이를 ‘신전통주의(neotraditionalism)’ 개념으로 분석하며, 티벳 의학이 전통적 지식과 근대적, 글로벌 의료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전략적 제도화를 추구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티벳 전통의학 의료인, 암치(amchi)들에게서 두드러지는 이러한 현상은 생약 산업의 표준화, NGO와의 협력, 환경 보호 담론, 종교적 상징성 등을 결합해 의료적 권위와 문화적 정당성을 동시에 구축한다(Pordié, 2008). 프로디에의 또 다른 연구 “Hijacking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Identities and Social Power in the Indian Himalayas (2012)”에서는 이런 티벳 의학의 새로운 흐름이 지역 정치·권력 역학과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라다크 지역의 소외 암치 엘리트 그룹은 인도의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을 집단적 지식의 보호를 위한 장치이자 동시에, 자신들의 사회적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생물해적(biopiracy) 담론을 활용해 외국 기업의 상업적 착취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전통 지식의 표준화를 통해 자신들의 권위를 강화한다. 이 과정에서 지적재산권은 단순한 법적 장치가 아닌, 일종의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되며, 생물 다양성(biological diversity) 개념과 결합하여 디아스포라 티벳인들의 문화적 주권을 주장하는데 근거로 사용된다. 또한 라다크 암치들은 집단적 지식재산(collective intellectual property) 개념을 통해 공동체 내보의 결속을 강화하고, 국제 기구와의 협상을 통해 외부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등, 글로벌 보건 체제 안에서 티벳 의학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현상은 티벳 전통의학이 단순한 의료 지식체계를 넘어, 문화적 정체성 확립과 발전의 상징으로 일정부분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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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Pelliot tibétain 127 (좌) 1044 (우)

Figure 1. Pelliot tibétain 127 (left) 1044 (right)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https://gallica.bnf.fr. 검색일: 2025.8.30.)

그림 2.

Pelliot tibétain 1058 (알파벳 및 번호 표기는 저자)

Figure 2. Pelliot tibétain 1058 (numbering and alphabetization by the author)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https://gallica.bnf.fr. 검색일: 2025.8.30.)

그림 3.

WHO 표준경혈위치에서 설명하는 풍시혈의 위치 및 측정 방법

Figure 3. Location and measurement method for Fengshi (GB31) as described in the WHO Standard Acupuncture Point Locations

(WHO/WPRO, 2008: 187)

그림 4.

Pelliot chinois 2675

Figure 4. Pelliot chinois 2675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https://gallica.bnf.fr. 검색일: 2025.8.30.)

그림 5.

Or.8210/S.6168 (부분)

Figure 5. Or.8210/S.6168 (detail)

(런던국립영국도서관, https://idp.bl.uk. 검색일: 2025.8.30.)

그림 6.

Mainz 0725 (부분)

Figure 6. Mainz 0725 (detail)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과학 및 인문학 아카데미(Berlin-Brandenburg Academy of Sciences and Humanities), https://www.bbaw.de. 검색일: 2025.8.30.)

그림 7.

Blue Beryl을 쓰는 샹계갸쵸와 그것에 따라 도해를 그리고 있는 작가들(좌)과 딴뜨릭 수행에서의 경맥(channels)을 보여주는 도해 일부(우)

Figure 7. Sangye Gyatso writing the Blue Beryl with artists illustrating accordingly (left) and detail of a diagram showing subtle channels in tantric practice (right)

(포탈라궁 벽화(좌), 부랴티아 판본(우), (Gyatso, 2015: 43, 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