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근대의료사의 연구동향과 전망(2010-2019): 분야의 확장과 연구 방법의 다양화
Studies on Pre-Modern Medical History in Korea, 2010-2019: Increased Study Areas and Diversified Approaches
Article information
Abstract
The goal of this article is to summarize the current status of medical history research conducted from 2010 to 2019, following Shin Dongwon's research covering 2000-2010 regarding the current status of Korean pre-modern medical history. The list of references is organized according to several principles. The representative subjects of the Korean Society for the History of Medicine and the Korean Society of Medical history are Korean Journal of Medical History and The Journal of Korean Medical History, and Yonsei Journal of Medical History of the Yonsei University Medical History Institute. Subsequently, “Reviews and Prospects” of the History Journal and “Korean History Research Report” of the National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are also summarized, and “Medical History Company Research,” which was recently published by the Medical History Research Society, is also included.
Unlike previous periods, many studies have been conducted on the topic,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system are largely classified. Most notably, the medical data related to carriers that were concentrated in the early 2010s. It is also worth noting that the research on the agenda, including Lee Soo-gi's newly discovered agenda, is also increasing. In addition, studies that combine the history of medicine with women's history and intellectual history as interdisciplinary studies have been increasing. As such, this is an opportunity for future medical history research to expand the horizon.
1. 머리말
역사학의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적어도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통용되는 대분류는 아마도 지역사로서 동·서양 및 한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사 안에 시대사로서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등으로 다시 구분된다. 또한 연구 분야별로 정치·사상·사회·경제·문화 등 다양하게 나뉘는데, 최근에는 고고학과 함께 과학사·미술사 등도 포함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학회지라고 할 수 있는 『역사학보』에서 정기적으로 게재하고 있는 ‘회고와 전망’이라는 코너를 통해서도 드러난다.1), 그런데 이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의학사2) 분야는 적어도 『역사학보』 안에서는 별도로 언급될 만큼 독립된 상태는 아니며, 대체로 문화사의 일부로서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표적 역사학회지인 『역사학보』에서 보이는 의학사에 대한 인식은 어떠할까? 이는 한국 역사학계에서 의학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2010-2018년까지 정리된 ‘회고와 전망’에서 의학사 논문이 언급된 경우는 거의 없다. 즉 고대·고려·조선전기· 조선후기까지 각 시대별로 정리된 원고와 참고문헌을 확인한 결과이다. 다만 과학사에서 극소수의 연구만이 거론될 뿐이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의학사연구자가 현저히 적기에 연구성과 자체가 적을 수 밖에 없다는 일차적인 원인과 함께 여전히 학계에서 중시하는 특정 분야사 선호의 경향이 존재한다는 이차척 원인도 작용한다.
의학사 연구에 필요한 의학이라고 하는 전문적인 지식이 일정하게 필요하다는 점이 연구자를 확대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역사학 연구의 근간은 정치·사상이나 사회·경제가 본류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은 분명한 현실이다. 가령 연구현황을 정리한 ‘회고와 전망’에서 사회경제사·정치사상사 등의 역사학 본연의 분야에서 연구가 줄어들고 반면 문화사의 연구가 늘어나고 있음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를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지만, 연구 경향성의 변화는 현실을 사는 개별 연구자들의 심각한 고민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단지 유행의 변화 정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대신 연구 분야의 다양화를 통해서 탐색하고자 하는 역사상을 보다 생생하고 깊숙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한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변화도 있는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년에 네 차례 간행하고 있는 『한국사연구휘보』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 관련 연구를 시대별로 정리하여 기본 데이터를 제공하는 『휘보』에서 의학사 관련 연구가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거론되는 학회지의 경우 역사학 관련 학회지를 넘어 현재 대표적 의학사연구 단체인 대한의사학회와 한국의사학회에서 간행하고 있는 『의사학』 한국의사학회지』에 실린 글들이 정리되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존재한다. 이제는 웹 검색으로 연구 경향을 파악하는 현실에서 『휘보』의 영향력이 급속히 줄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계의 풍토를 감안할 때,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의학사 연구의 현황을 정리하였던 2010년 대한의사학회의 기획은 매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신동원은 과거 1991년까지의 연구현황을 정리한 것을 이어서 1992-2010까지의 연구도 정리하였는데, 20여년 사이에 의학사 연구의 양적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3) 이글은 신동원의 정리 이후 2019년까지 2010년대의 의학사 연구현황에 대해서 정리하고자 한다.
다만 의학사 분야의 특성과 10여년이라는 꽤나 긴 시간을 고려하여, 참고문헌을 작성하고 논문의 내용을 소개·검토하기 위해서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참고문헌 목록의 구성은 의학사 관련 대표적 학회인 대한의사학회와 한국의사학회의 간행물인 『의사학』과 『한국의사학회지』, 그리고 연세대학교 의학사연구소의 『연세의사학』과 최근 간행된 의료역사연구회의 의료사회사연구』, 그리고 대한한의학원전학회의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를 차적 대상으로 하였다.4) 다음으로 한국과학사학회의 『과학사학회지』와 역사학회에서 발간되는 『역사학보』의 ‘회고와 전망’, 나아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연구휘보』를 토대로 목록을 작성하였다. 이는 대표적인 의학사 연구 학회와 학술지를 알리는 동시에, 역사학계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를 가급적이면 충실하게 보충하기 위함이다.
다음으로 정리의 방식이다. 신동원은 1991년까지의 연구를 정리할 때에 시대별, 주제별 분류를 진행하여 시기적으로는 10년 단위, 주제별로는 의학일반, 의학학술, 보건의료, 약, 질병, 도교양생 등의 6개 분야로 나누었다. 한편 2010년에는 전근대시기를 5세기 이전, 5~10세기, 10~14세기, 14~17세기, 17~19세기로 분절하여 정리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방식은 많은 연구를 소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효용적이지만, 연구의 경향성이나 특징 등을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기에는 어려운 면도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본 글에서는 개별 연구의 직접적인 소개는 참고문헌으로 대체하고, 대신 21세기 초반 한국의학사 연구에서 나타난 특징과 한계를 지적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형태로 전개하고자 한다.
2. 전통적 연구의 확대
1) 의서 및 의학론(醫學論) 연구
의학사 연구는 기본적으로 질병과 치료라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학문인 의학의 역사적 측면을 다루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를 기록하고 있는 의서는 연구의 핵심적 주제가 된다. 의서 연구는 이미 오래된 전통으로, 특히 몇몇 의서는 연구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는 해당 의서의 역사적 중요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 현재 남아 있는 의서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의서를 연구하는 까닭은 의학이라는 단어의 기본 개념에 가장 충실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질병의 원인과 제반 증상, 치료의 원리와 과정, 예측되는 결과 등이 기록된 의서는 당연히 연구의 중심이다.
한국 전근대사에서 중시되는 의서는 몇몇으로 축약된다. 고려말의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조선 초기의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의방유취(醫方 類聚)』, 중기의 『동의보감(東醫寶鑑)』, 최말기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 元)』인데, 『동의수세보원』을 제외하고 주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편찬한 의서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조선 초기에는 『태산요록(胎産要 錄)』 『창진집(瘡疹集)』, 중기에는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 『언해두창경 험방(諺解痘瘡經驗方)』 『벽역신방(辟疫神方)』 『신찬벽온방(新纂辟瘟方)』 등 허준의 저술과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 『의림촬요(醫林撮要)』, 후기에는 『주촌신방(舟寸新方)』 『의문보감(醫門寶鑑)』 『급유방(及幼方)』 『마과회통(麻 科會通)』 등을 비롯한 많은 사찬(私撰) 의서들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다섯 의서들이 주목받는 것은 한국 전근대 의학사 연구의 핵심이면서 동시에 한국 의학사의 발전단계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의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 의서 연구는 꾸준히 진행·발표되고 있다. 가령 『향약구급방』의 경우에도 치과와 안과를 중심으로 고려시기 의학의 계보를 정리한 연구(이경록, 2014)나 한국역사연구회 분과소속 연구집단의 공동연구(강병국, 2019; 이현숙, 2019; 이현주, 2019)가 최근에 있었다. 2010년대 이전의 연구들이 대체로 『향약구급방』의 전체 구성이나 등재된 약물의 파악이 중심이 되었던 반면, 이들 연구는 실제 치료상의 특징들 속에서 나타난 의학의 변화상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2010년대에 주로 나타난 새로운 연구 경향에 맞게 의안이라는 점을 주목하거나 젠더적 입장에서 의서를 다시 고찰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동아시아의 사상적 관점에서 인체와 물질을 통한 우주의 구성을 살피고자 한 연구(이기복 외, 2019)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변화는 고려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의서가 『향약구급방』 정도이고, 내용 자체도 구급방의 성격상 온전한 의학을 구성하기에 부족함이 있다는 점에서 분석 시각의 다변화를 꾀한 결과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연구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에 반하여 조선전기부터는 연구의 양적 분량이 급격히 증가하는데, 그것은 앞서 언급한 거질의 종합 의서들이 현전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각각의 의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데 어려움도 존재한다. 즉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각 의서에 대한 종합적이면서 총체적인 안목이 필요한데, 개별 연구자 혼자서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함에도 2011년의 두 연구를 통해 『향약집성방』의 의학 이론이 갖는 성격과 함께 그 편찬에서 드러난 중국의 전통의학이 조선에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낸 이경록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동시에 감초에 관한 연구(2015)를 통해서 의학 이론의 현실화에 필요한 조건을 감초라는 약물을 통해 분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전근대 한국의 의학발전의 단계를 그려보려는 시도(2019)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한편 『향약집성방』과 함께 조선전기 의학을 대변하는 의서라고 할 『의방유취』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이경록의 연구(2019)에서도 『의방유취』를 일부 거론하고 있지만, 이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는 아니었다. 아울러 안과학과 관련하여 의사학적 의의를 분석한 연구(강성용·김성수, 2013)도 있지만, 이 역시 『의방유취』에 대한 본격 연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이는 『의방유취』가 무려 266권이라는 거질(巨帙)의 의서이면서 동시에 자료의 수집과 분류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 때문인데, 같은 이유로 『의방유취』 관련 연구는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도인도(導引圖)에 관한 연구(김동율·정지훈·한봉재, 2014), 의안(醫案)의 분포와 인용서를 분석한 연구(김남일·차웅석· 구민석 외, 2017), 오장문(五臟門)에 한정되지만 처방을 분석한 연구(정지훈, 2018)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 『의방유취』가 동아시아 고대부터 명대 초기까지의 의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안에 포함된 개별 의서의 연구나 동아시아 의학사의 전반적 흐름을 살펴보려는 연구도 있다. 『상한론주해(傷寒論注解)』에 관한 것이 전자의 연구라고 한다면(장우창·류정아, 2014), 허로(虛勞)·간질(癎疾)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의학의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정지훈, 2019; 강연석·이상섭·박희수 외, 2011)는 후자에 해당한다. 최근 『의방유취』의 번역이 진행되어 몇권의 역서가 나오는 상황에서 앞으로 연구가 더 활성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의방유취』 관련한 연구 현황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안상우 외, 2016)가 있어서 연구자에게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 중기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한(韓)’의학의 경전으로 자리매김한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5), 특히 2013년 『동의보감』 간행 400주년을 기념하여 20여명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내놓은 연구 결과는 그동안 이루어진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성과 및 앞으로의 전망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김남일 외, 2016). 한의학·역사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의보감』을 연구해온 학자들이 그간의 연구를 종합하 여 낸 두 권의 책에서는 『동의보감』의 의학적 특성 이외에도 철학적·역사적 배경과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 등이 체계적으로 서술되었다. 특히 저술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김남일의 연구는 『동의보감』 전체에 대한 조망과 특징을 잘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가 갖는 한계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선 참여한 연구자들이 『동의보감』과 관련한 연구를 과거 진행하였지만, 많은 수의 연구자가 『동의보감』 연구를 연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기획이 끝난 이후 참여 연구자들에 의한 『동의보감』 연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한 까닭에 각 연구자들 고유의 시각이 반영되어 통일성 있는 종합을 이루어내기 어려웠다는 점도 있다. 물론 다양한 분석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동의보감』 자체에 대한 보다 정리된 기술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으로 작용할 수 있는 문제이다.
즉 『동의보감』에 대한 전체적인 상을 그려내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공동연구가 공통으로 갖는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나의 텍스트를 함께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면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최종 결과물을 묶어내는 형식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매우 치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거나 아니면 종합적인 안목을 제시할 수 있는 개인 연구를 기대해야 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오랫동안의 『동의보감』 연구를 집약하여 발표한 신동원의 연구(2015)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또한 『동의보감』의 단방(單方), 임상(臨床), 본초(本草)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오재근의 연구(2011;2013;2015)가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조선후기 내지 말기를 대표하는 의서는 논자들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크게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와 『동의수세보원』을 빼놓지 않을 것이다. 『임원경제지』의 번역이 최근 간행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후기 의학지식에 미친 영향을 파악한 연구(전종욱 외, 2012; 오재근, 2012)가 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서유구(徐有榘)의 사상적 경향을 통해 『임원경제지』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연구들(서유구, 2019; 김문식 외, 2014)이 발표되는 가운데 외과학의 수용과 함께 경험방을 적극적으로 수집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김호는 평가하였다. 한편 이제마와 『동의수세보원』에 대해서는 주로 철학과 한의학 분야에서 연구가 집중되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사상의학을 단순히 유학 혹은 성리학과의 관련성에서 분석하지 않고 이제마가 갖고 있었던 의학·의사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이기복의 연구(2016)가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개별적인 의서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한국원전의학회지』를 통해 발표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연구는 이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전과 다른 연구의 경향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의서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잠잡저(愚岑雜著)』(박상영, 2011)나 『경보신편(輕寶新編)』(전종욱, 2017)과 같은 의서들이 새로이 학계에 소개되었는데, 이들을 통해 이전의 알려지지 않았던 의원들의 활동과 그 안에서 드러나는 조선후기 의학계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한편 의서의 내용이 아닌 책으로써의 의서에 집중하는 연구들도 상당히 존재한다. 서지학 혹은 문헌정보학적 입장에서 의서를 분석하는 작업들로, 『동의보감』(강순애, 2011; 박훈평, 2015; 김소희, 2017 등), 『제중신편(濟衆新編)』(이정화, 2010) 등에 대한 연구들도 참고할 수 있다.
2) 의료환경 관련 연구
의학사에서 다루는 영역은 단순히 의서와 의학이론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김두종 선생이 의도했던 것처럼 기술사가 아닌 역사적·문화적인 해석이 동반된 의학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학의 구성요소라고 할, 제도·의료인(병원)·기술·질병·환자 등 다양한 요소들도 언급·연구될 필요가 있다. 특히 전근대 한국사에서 의료체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운영되었는지에 대한 제도사적 접근이 있는데, 과거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고 또한 전근대 국가의 운영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향성을 띠고 있는 까닭에 현재로써는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제생원(김성수, 2015)이나 혜민서(박훈평, 2014) 등의 실제 운영과 조선 의료계에 미친 영향을 살핀 연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의서에 내재하고 있거나 의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연구는 2010년대에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데, 무엇보다 철학 전공자들이 갖고 있었던 의학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든 탓으로 보이기도 한다. 대신 국가의 제도적 운영과 사상적인 측면을 서로 결합시켜 파악하고자 하려는 연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한국 전근대사에서 불교와 유학(성리학)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에서, 종교와 사상이 의학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불교는 사회사상적인 요소가 적다는 점에서 주로 성리학과 의학과의 관계가 집중 연구되었다. 무엇보다 성리학을 건국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다양한 의학적 성과를 이루었다는 역사적 사실과도 관계가 있는데, 성리학적 인정론(仁政論)을 조선전기 향약론(鄕藥論)과 연결시켜 파악한 이태진의 연구6),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사상과 의학의 연결을 일반론적으로 설명하거나 직접적 연관성의 결여라는 면에서 한계가 있었는데, 최근 할고(割股)의 풍습을 주제로 한 연구(이경록, 2019)는 조선의 성리학적 인정론 이외에도 윤리의식이 의학에 투영되는 측면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또 의학의 실행에 참여하는 의료인에 대한 사회적 분석도 크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는 무엇보다 대상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의료인에 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먼저 언급할 것은 의료인 집단에 관한 연구이다. 조선에서 의원이 주로 중인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여 그들의 사회적 지위 및 학문의 가계 전승 등이 주로 탐구되었다. 이는 대체로 사회사 혹은 조선의 신분제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진행되었던 까닭에 의학사적 관심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반면 최근에 발표된 조선전기 유력한 의인들을 많이 배출하였던 양성 이씨 가계에 대한 분석(박훈평·오준호, 2018)은 의학사적 관점에서 중인과 의료인 집단, 가계를 연구하는데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의료인 전반이 아닌 당대에 이름이 있거나 의서를 저술한 개별 의원들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과거 허준(許浚)이나 이제마(李濟馬) 등 몇몇에게 집중되었던 연구와 달리 대상 의학자의 폭이 넓어진 것이 특징이다. 황자후(黃子厚: 고대원·차웅석·김남일, 2010), 전순의(全循義: 이종봉, 2011), 허준(김호, 2014; 2015), 허임(許任: 임선빈, 2014), 신만(申晩: 양승률, 2011), 이형익(李馨益: 김성수, 2014), 백광현(白光玹: 김남일·차웅석·방성혜 외, 2013), 유의태(柳義泰: 구현희·안상우, 2009), 이규준(李圭晙: 김승룡·채한, 2018), 황도연(黃度淵: 오재근, 2017) 등이 있고, 의약동참(議藥同參)에 참여한 이공윤(李公胤: 김동율·차웅석, 2016)에 대한 연구도 있다.
특히 조선후기 의료계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상업화의 물결 속에서 의료인의 자아형성에 관련한 김성수와 이기복의 연구는 주목할 만한다. 김성수(2011)는 조광일(趙光一)이라는 의원이 제시한 직업관 속에 기술인에 의한 새로운 주체의식 형성을 추적하였고, 이기복(2013)은 내의(內醫)를 지냈던 이수기(李壽祺)의 『역시만필(歷試漫筆)』과 함께 중인으로 치부되었던 의인들이 사대부 문인들과 조직을 만들어 교류하는 등 의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는 점을 세밀하게 밝히고 있다. 의료인에 대한 자료가 매우 적다는 측면에서 자료의 발굴과 함께 의인들에 대한 사회사적 분석이 앞으로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이외에 조선의 의료정책에 포함되어 있던 다른 형태의 의료인인 의생(醫生: 박훈평, 2016), 심약(審藥: 박훈평, 2015) 등의 연구도 진행되고 있는데, 해당 연구자가 이들을 종합하여 내놓을 결과물 역시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이다.
의료인·의학지식과 함께 의학의 기본 속성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질병에 대한 연구는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중풍(中風)을 통해 고려와 조선의 의학이 갖는 속성을 구분한 연구(이경록, 2013)나 홍역(紅疫: 박훈평, 2018) 창진(瘡疹: 방성혜, 2012)을 종합적으로 다룬 연구 정도만 거론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전근대의 질병이 현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한 질병으로 발생한 사회적 상황의 변화를 찾아내기 어려운 현실에서도 기인한다. 그러한 점에서 수의학 분야이기는 하지만, 우역(牛疫)과 관련한 김동진의 일련의 연구(김동진, 2013; 2014; 2016)는 주목 할 만하다. 농업이 경제의 기반이었던 전근대 사회에서 우역의 발생은 전사회적 문제였다는 점에서,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기존의 역사학에서 미처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른바 소빙기(小氷期)와 의약에 관한 연구(김문기, 2010; 김덕진, 2012; 전제훈, 2017)들도 있지만, 조선 후기 경제의 침체를 우역을 통해 더 세심하게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는데, 환경사에 대한 관심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연구로 보인다.
일반 질병과는 달리 전염병에 대한 연구는 다시 제고될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들어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의 사례처럼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과거 전염병과 관련한 연구도 다시 활기를 띠는 상황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대한의사학회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지만, 특집호로 발간되지는 못하고 개별적으로 발표된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전염병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여전히 주요 연구 소재인데, 역병을 통해 한국고대사 전반을 서술한 이현숙(2013)이나, 고려시대의 사회를 재조명한 연구(김영미 외, 2010), 16세기 온역(溫疫)의 창궐을 다룬 이경록(2014)의 연구 등이 계속 발표되었다. 특히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홍열(猩紅熱)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유명한 허준의 『신찬벽온방(新纂辟溫方)』에 대한 김호의 연구(2015)도 주목된다. 무엇보다 최근 『신찬벽온방』 『벽역신방(辟疫新方)』 『두창경험방(痘瘡經驗方)』 등 전염병 의서를 본격적으로 연구 발표하고 있는 김상현의 연구가 ‘조선에서의 전염병학’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편 많은 수의 전염병이 인수공통전염병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 수의학적 관점에서 이를 추적한 연구(김동진 외, 2014)도 의의가 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기술의 발전상에 대한 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전근대시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탕제 연구는 주로 방제학(方劑學) 분야에서 임상적 유효성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주도되었다고 한다면, 이와 다르게 의학사 분야에서는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의 침법(오준호, 2011; 2014)이나 백광현의 치종술(治腫術: 방성혜, 2010), 이형익의 번침술(燔鍼術: 김성수, 2014) 등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나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조선의 독특한 치료술이 갖는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다. 또한 본격적인 의료시술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증요법과 관련한 연구(박상영, 2011; 김성수, 2016)도 보인다.
3. 새로운 경향의 대두
1) 분야의 확장
이처럼 전통적인 연구 분야인 제도나 사상 등이 침체하고 있는 사이에 새롭게 각광을 받고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인 주제들도 보인다. 2010년대 초반에 집중되었던 통신사(通信使) 관련 의학자료 연구를 먼저 언급할 수 있다.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조선후기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에 포함되었던 의원들이 일본의 의원들과 나눴던 대화를 기록한 창화록(唱和錄)을 중심으로 한 연구이다. 연구책임자였던 허경진을 비롯하여 국문학 전공자인 구지현(2014), 김형태(2014) 등이 일본에서 간행된 자료를 번역함과 동시에 그 안에 나타난 조선과 일본 의학의 특성을 일부 밝히고 있다. 문학이 아닌 한의학을 전공한 함정식의 연구(2018)도 있는데, 통신사 기록을 통한 연구는 대략 2014년까지 결과들이 계속 발표되었다. 당시까지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기록물인 필담집(筆談集)에 대한 연구였다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었으며, 또한 조선과 일본의 의원들 사이에서 진행된 대화를 통해 각기의 학문적 특성과 입장이 드러난다는 점에서도 시사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통신사 관련 의학필담 연구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은 우선 연구의 연속성에 있다. 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시작된 연구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이지만, 지원이 완료된 이후에는 연구자들이 다른 연구지원에 전념하느라 연구가 계속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국문학 연구자들의 결과가 2014년 이후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의학, 특히 전통의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연구가 연속성을 갖기란 무척 어렵다는 현실도 작용하고 있다. 한편 한의학 전공자들은 많은 경우 현장에서의 임상을 겸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연구에만 집중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어쩌면 개별 연구자들에게만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겠지만, 동시에 연구 지원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통신사 연구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다르게 의학사 연구 전반에 있어서 의안(醫案)의 연구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이다. 실제로 중국의 경우 의안의 연구가 활성화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의안이 많이 존재한다는 이유도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의안이 많지 않아서 그동안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못하였고,7), 그나마 정부의 연대기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통해 왕실의 질병과 치료의 과정을 다룬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었다.8), 이 경향은 계속되어 국왕 개인과 왕실의 진료행태를 살펴본 연구(방성혜·안상우·차웅석 외, 2014; 박주영·차웅석·김남일, 2016; 박주영·국수호·김남일 외, 2019) 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으며, 또한 『의방유취』(김남일·차웅석·구민석 외, 2017) 『동의보감』(오재근, 2015)과 같은 의서에 수록된 의안을 분석하는 연구도 있다.
그러던 차에 새롭게 발굴된 의안인 이수기의 『역시만필』은 매우 특별한 사례였고, 이후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9), 먼저 저자인 이수기의 자기 인식과 치료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차례로 언급한 연구(이기복, 2013;2019)에서부터 여성의 질병과 치료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다루거나(이꽃메, 2015; 하여주, 2018), 온병 치료에서 나타나는 특징(김상현, 2017)을 파악하는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물론 『역시만필』이 매우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의안 연구의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이론과 함께 임상이 의학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실행이라는 측면에서 의학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게 해주는 의안에 대한 관심은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의안의 발굴이 절실한데, 그나마 지방에서 소규모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의안들에 대한 연구가 지속된다는 점은 매우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이 남긴 일기 자료도 의미가 있다. 일기자료의 속성상 질병에 관한 기록이 상당히 남아 있고 치료를 위한 흔적이 있으므로, 현실에서의 질병과 치료의 과정을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이유로 『묵재일기(默齋日記)』(김성수, 2013), 『미암일기(眉巖日記)』(홍세영, 2011), 『흠영(欽英)』(김성수, 2014)과 같은 일기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일기자료의 한계, 무엇보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의료기록이라는 점에서 당시 사회상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다. 가령 『묵재일기』를 저술한 이문건(李文楗)은 생애 후반을 주로 성주에서 보냈으며, 『흠영』의 저자인 유만주(兪晩柱)는 한양에 거주한 인물이다. 즉 일기는 저자가 갖고 있는 공간적 배경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일기를 통해서 조선사회 전반의 의료상황을 파악하고자 할 때에는 뒷받침 할 수 있는 제반 자료들을 충분히 이용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묵재일기』에 나타난 의료관련 자료를 통해 지방민의 일상과 질병을 상세하게 그려내면서도, 조선시기 의학의 전반적 상황을 결합시키고 있는 연구가 주목받기도 하였다(신동원, 2014).
통신사와 의안 연구에 이어서 주목할 만한 주제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여성사적 관점에서의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통신사·의안 연구는 새롭게 발굴되는 사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라면, 이는 여성학 혹은 여성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나타난 시각의 전환에서 파생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문학 분야에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동안 전근대 여성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많은 여성관련 자료들이 수집, 번역되었던 사정으로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다수의 연구가 어쩔 수 없이 의학적으로는 산부인과 분야에 한정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주로 언급되는 자료가 『규합총서(閨閤叢書)』 『태교신기(胎敎新記)』와 같은 극소수 자료에 국한된다는 점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정해은, 2018 등). 또한 현재까지 여성사·여성문학 연구자들과 의학연구자들 사이의 협업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도 연구의 깊이에 한계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학문간 공동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진다. 이러한 사정임을 감안할 때 『동의보감』에서 제시된 여성의학 이론이 실제의 임상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진단과 치료의 과정에서 구현되는지를 『역시만필』에서 찾으려는 연구는 의의가 있다(이꽃메, 2015; 하여주, 2018).
2) 연구방법의 다양화
역사의 연구는 무엇보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다. 적어도 한국 전근대사의 연구를 보면, 다양한 텍스트 가운데에서도 연대기가 우선 검토대상이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본적인 연대기를 들 수 있는데, 최근 조선시대에는 『승정원일기』와 같은 일차사료에 가까운 연대기가 주목받고 있다. 이는 의학사 연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음으로 개인의 문집류도 있는데, 불행하게도 사대부의 문집에는 의학·의료관련 주제가 매우 한정된다는 점에서 연구의 중심에 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받게 된 자료가 바로 일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묵재일기』 『미암일기』 『쇄미록(瑣尾錄)』 『흠영』 등은 많은 의약기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발표된 논문들10),에 이어서 계속되고 있는 미시사적 접근에 기반한 일기자료 연구는 한 개인의 생활상을 면밀하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제도사적인 관점에서의 연구와는 결을 달리한다. 실제로 의학은 사회의 제도적인 측면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생활적인 요소도 빠질 수 없기 때문인데, 같은 이유로 생활사 연구라는 측면에서 한국사의 양상을 풍부하게 해준다. 역사학이 학문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반 대중과 함께해야 한다는 당위 속에서 20세기 후반 민중사·생활사가 전면에 등장한 이래,11), 한국사의 기술에서 의학사 분야가 계속 언급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기조는 21세기에도 계속 유지되어, 이미 대한의사학회에서는 의학사의 미시적 접근에 대한 특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12) 다만 일기류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 생활 속에서 실행된 의학의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자료에 대한 부족과 미시사 혹은 생활사를 사회·국가의 역사와 면밀하게 연결시킬 방법론적인 고찰에 대해 논의가 진척될 필요가 있다.
미시사의 한 방법이면서 또한 텍스트로 구현되지 않은 자료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구술사를 들 수 있다. 의료인에 관한 기록이 매우 드문 한국의 상황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약업사를 중심으로 19세기 후반 한의학계의 움직임을 살핀 박경용의 연구(2009)가 대표적이다. 다만 구술이 기억과 전승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구술로 소급할 수 있는 시간적인 제약과 정확도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그나마 기억이 소환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집중해서 검토할 방법론으로 보인다. 전승이라는 면에서 또한 검토할 수 있는 것이 민속학적인 방법론일 것이다. 최근 민속학계에서 의학사 관련 논문(원보영, 2009; 박경용, 2012 등)이 심심치 않게 나올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한데, 이 역시 구술사가 갖는 한계를 마찬가지로 갖고 있다.
다음으로 미시사 혹은 구술사와 궤를 같이하는 인류학적인 접근법도 들 수 있다. 사회의 구조 속에서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의학의 방식이 갖는 특성을 찾고자 하는 이러한 방법론은 개인과 사회·국가를 일대일 혹은 직접적인 관계로 설정하여 설명하는 일반적 역사연구 방법론에서 간과하기 쉬운 구조적인 모습을 재발견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이와 관련한 김태우의 연구는 참고할 만하다. 그러나 인류학적 연구가 특정 공동체 및 사회의 구성, 혹은 이론의 형성 등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공시성을 중시하는 연구에서 역사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추출해 나갈 것인지는 역사학계와 계속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연구방법론은 고고학적인 방법론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고고학은 인류학적 방법론의 채용이 아닌, 텍스트를 제외한 유물을 통해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반론적인 고고학의 방법이다. 신라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인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 기반한 연구(하대룡, 2011)나 연길에서 발견된 유물로 침구의 기원을 밝히고 있는 연구(강인욱·차응석, 2017)가 대표적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소수의 고고학적 연구는 의학과 고고학 연구자가 협업으로 진행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는데, 같은 이유로 연구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어서 앞으로 연구자간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다.
또한 앞서 잠깐 언급하였던 여성사적 접근법도 크게 등장하고 있다. 이는 의학뿐만 아니라 형정(刑政)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이 형성되고 관철되는지를 밝히는 연구(박소현, 2013; 2017 등)와 같이, 여성사적 접근으로서의 의학사는 조선사회의 다양한 국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하겠다. 이꽃메·하여주 등에 의해 『역시만필』 기록 속에 보이는 차별적 여성의 인체 이해가 언급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의학사 영역에서 여성사적 접근법은 부족한 편이다. 가령 태교(胎敎)와 관련한 김성수의 연구(2014)를 살펴보면 철저히 의학적 관점만 반영되었을 뿐, 그 안에 담겨진 젠더적 입장에서의 성 이해에 대한 관심은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여성학적 이해에 근거한 의학사 연구는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이 잘 보여주듯이, 질병의 전파와 의학의 교류는 의학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른바 국가간 혹은 문화간 교류사(交流史)라고 불리는 관점은 의학사 영역에서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물과 『의방유취』나 『동의보감』 같은 서적을 중심으로 의학교류가 다루어지긴 했지만 대부분 서적 그 자체의 전파와 유통 상황 등을 추적하였을 뿐, 교류를 토한 의학지식의 변화과정이나 사회에 미친 영향과 같은 실제 의학사에서 찾고자 하는 내용들은 검토되지 못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일국사(一國史)적 관점의 탈피 이외에도 다(多) 국가에 대한 역사적 인식도 동시에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구가 어렵겠지만, 앞으로 더욱 주목해야 할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동아시아 3국에서 진행된 근대화와 의학의 관계를 살펴본 이종찬의 연구13)나 해부학을 통해 한·중·일 사이의 의학지식의 교류와 국내적 발전 상황을 추적한 김성수·신규환의 기획 등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3. 한계와 전망
1) 특수사의 한계
2010년대에 진행된 의학사 연구에서 주된 분야와 함께 새로운 주제나 연구방법으로 대두되고 있는 몇몇 부분에 대한 간략한 검토를 마쳤다. 이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연구동향도 많기에 모든 글을 소개하는데 지면을 할애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연구경향을 정리하면서 느끼게 된 몇 가지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보인다. 이는 최근에 그나마 활성화되고 있는 의학사 연구를 단속 없이 계속해서 진행하기 위함이다. 김두종 선생을 필두로 한 한국의학사 연구의 전통은 매우 깊지만, 오랫동안의 침체기가 있었다는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 굳이 한계를 지적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첫째로 들 수 있는 문제는 연구자의 한정성이다. 의학사라는 분야의 특성으로 인하여 의학과 역사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새로운 연구자가 배출되는데 있어서 일종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전근대사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하여, 꾸준히 연구를 발표하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들을 대별하면 역사학전공자인 김성수, 김호, 이경록, 이현숙 정도이며, 한의학을 전공한 연구자로는 김상현, 박훈평, 오재근, 이기복, 전종욱 정도에 해당한다. 물론 한국의학사 연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김남일, 신동원, 여인석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사실상 이들의 연구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신진 연구자를 발굴하여 연구영역을 확장시킬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로 자료의 제한성이다. 의학사 영역에서 주 대상으로 하는 연구 자료는 의서 혹은 의학자의 저술 등이 될 테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 필요하다. 이는 앞서 『역시만필』의 등장이 의안 연구를 촉발하는데 기여했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온전히 새 자료를 발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던 자료들에 관심을 갖는 일도 절실히 필요하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보더라도 일기자료는 좋은 소재인데, 조선시기의 남아 있는 일기는 매우 많은 편이다. 그 밖에도 연구영역을 넓히게 된다면, 의학사적 견지에서 검토할 수 있는 자료 역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셋째로 연구의 연속성이다. 극히 소수의 연구자만이 의학사를 전공하는 상황에서 특정 주제만의 연구를 계속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국내의 연구지원도 대부분 지속적 연구에 박한 편이며, 그 결과 연구자들이 항상 새로운 연구주제를 다루도록 강제 받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발적인 연구는 결국 질적 수준의 제고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임은 틀림없다. 가령 2010년대 초반 반짝했던 통신사 관련 연구의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할 것이다. 어렵더라도 연구자들의 각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넷째로 글쓰기의 한계를 들 수 있다. 한국은 철저히 자본주의 사회이며, 학문적 글쓰기 역시 그 전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순수한 형태로써 학문적 글쓰기인 논문생산이 일차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겠지만, 동시에 주변의 다양한 독자들을 위한 글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몇 해 전 우연히 방송에서 『동의보감』을 소재로 한 인문학강좌를 잠깐 볼 기회가 있었다. 강좌의 내용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보다 시청하는 내내 든 생각은 나의 글쓰기가 너무 학문적인 측면에만 쏠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다. 논문이 되기 위한 주제만을 찾다보면, 어느 새인가 의학사에서 찾고자 했던 목표에서 점차 멀어지는 자신을 종종 발견하기 때문이다. 학문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나의 글을 읽어줄 독자가 무엇을 생각하고, 우리들에게 요청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뛰어난 글쓰기로 읽는 즐거움을 주고 있는 의학사 분야의 선배와 동학의 글쓰기를 항상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섯째로 연구방법론과 지평을 넓히는 작업의 부족이다. 역사학 분야 가운데에는 사학사 혹은 역사학 연구방법에 대한 논의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마찬가지로 의학사 연구에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연구가 갖고 있는 특성-의학이라는 과학적 혹은 기술적 요소의 결합-을 감안할 때 방법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의철학회처럼 의학사와의 상관도가 높은 분야의 학회나 단체와 논의의 장을 넓히는 방법도 가능하며, 이는 학문간 공동연구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소속 기관의 특성상 문학·철학 전공자들과 공동연구를 하면서 결론을 도출하는 다양한 접근방식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공동연구의 활성화는 개인 연구자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동시에 의학사가 한국사를 비롯하여 타학문 연구에 있어서 일조를 한다는 인식을 명확하게 심어주는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가령 제언한다면, 여성사학회의 경우 여성의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에 공동연구를 기획해보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여성학이 국내에 도입되기 전에 학창시절을 보낸 까닭에 젠더적 관점이 익숙하지 않은 필자 같은 사람에게도 혜안이 주어질지도 모른다.
여섯째로 학회의 내실화와 외연확장이다. 현재 의학사 관련 학회는 세 군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억지로 폭을 넓힌다고 할지라도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따라서 연구자 회원이 소수이고 학회를 확장하고 내실을 기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지속적인 학술발표 및 대외적 홍보의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령 필자의 연구나 다른 연구자의 노력들이 『한국사연구휘보』에 게재되지 않는 것은 매우 불편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국사편찬위원회를 찾아갈 필요는 없다. 대신 의학사 연구의 현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기획이 정기적으로 마련되고, 그것이 학술지를 통해 계속 알려지게 하는 방법도 가능한 일이다. 특히 연구의 누적 성과가 점차 확대되는 상황에서 10년 단위로 연구사를 정리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역사학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5년에 한번 정도는 꾸준히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도 방법으로 보인다. 이와 별개로 외연 확장을 위한 학문 분야 간 공동연구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2) 미래를 기대하며
참고문헌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대상은 『한국사연구휘보』라고 하는 국가기관에서 제공하는 공식적인 한국사 정보 데이터였다. 그 속에서 나타난 전망은 의학사 분야가 점차 한국사의 한 연구 분야로 점차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2010년대 이후로 나타난 변화이고 때로는 의학사 관련 연구의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고 있지 못한 한계가 있지만, 이전과 다르게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변화의 양상이다. 사실 김두종 선생에서 시작된 한국의학사 연구가 침체기를 거쳐 연구역량을 넓히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과거와 같은 침체를 겪지는 않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여전히 의학사는 문화사에 비해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작은 분야로 여겨지고, 학회의 구성원 역시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전문연구자로 살아남기 힘든 한국사회에서 의학사연구를 통해 직장을 구하는 길은 요원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희망적인 요소도 있다. 그것은 의학사의 약점이면서 동시에 강점인 전문성과 외연의 확장성에 있다. 적어도 전근대사의 경우 전문성은 학문적 접근의 장벽으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외연을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앞서 미시사·생활사적 접근처럼 인간의 삶과 밀접하면서도 또한 이론적·철학적 요소가 깊게 반영되어 있는 자연·인체의 이해에 근거한 전통의학은 표면적인 이해를 넘어 전근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내면과 사회의 운영원리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의학사 연구의 편의를 주는 환경도 점차 확대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의학사 연구의 일차 대상이 되는 의서가 계속해서 번역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특히 21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는데 2010년대에만 하더라도 『한약구급방』·『의림촬요』·『의방유취』 등의 번역이 완결 혹은 진행되고 있다. 과거 『향약집성방』·『동의보감』 등에만 집중되었던 번역이 다른 중요 의서들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구나 세종대 의학의 집대성이며 총 266권에 달하는 『의방유취』의 번역 사업은 조선시대 의학사 연구에 큰 획을 그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책 권수가 워낙 많아서 현재 구성된 10인의 번역 참여자들로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아쉽지만, 『의방유취』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의학사의 연구가 활성화되리라 기대한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의림촬요』 및 『의방유취』 등이 번역되는 것과 함께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한의학서적을 발굴하고 총서로써 번역작업을 하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2000년대 초반 전통의학국역총서를 20권 발간한 적도 있으며, 무엇보다 한의학 전문연구기관이라는 점에서 신뢰도 높은 자료 제공은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들 자료들이 인터넷을 통해 웹서비스 된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번역자료는 고전번역원에서 운영하는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를 통해서 볼 수 있으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별도로 운영하는 한의학고전DB(https://mediclassics.kr/)를 통해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과거 운영했던 한의고전명저총서(http://jisik.kiom.re.kr/index.jsp) 사이트를 이제는 이용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큰데,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기관의 협조로 해당 사이트가 재개되기를 기대한다.
의학사 연구자료의 확대와 더불어 고민할 것은 연구의 대상 및 관점의 확대라는 측면이다. 앞서 연구 경향에서도 일부 언급한 바와 같이 미시사 혹은 생활사적인 접근법은 이제 의학사 연구에 있어서 기본적인 방법이 되었지만, 한편 고고학·인류학 등은 여전히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료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며 의미부여 방식 또한 다양화해야 한다. 그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공동연구가 효과적이며, 개인 간 혹은 학회 간의 교류를 활성화할 필요가 크다. 또한 역사학적 접근이라고 하더라도 영역을 넓혀서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혹은 서양사와의 결합도 꾀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러한 점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동서양, 의학과 역사·철학을 넘나드는 넓은 연구행보를 보여주는 여인석, 동아시아의학의 지정학과 해부학의 결합을 다룬 이종찬의 연구는 개인에 의한 영역확대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중국의학사와 인도고전학의 대표적 연구자인 신규환, 강성용과 공동연구를 진행함으로써 동아시아 해부학의 역사와 『의방유취』 내 안과의학의 세계사적 의미를 확인한 김성수의 공동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한국 의학사에 대한 관심은 북한에서도 동일하고 나타나며, 관련 연구가 『력사과학』이라는 대표적 학술기관지를 통해 꾸준히 발표되고 있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학술지 성격상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용에 어려움이 존재하며, 북한의 정치적 색채가 학술에 크게 작용한다는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북한에서의 발굴 자료는 연구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으며, 경직된 학술관이라 하더라도 그 비판의 과정에서 관점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북한에서의 의학사 연구 현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이며, 기회가 된다면 학술교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편 독자를 위한 글쓰기 방식의 다양화도 필요하다. 요령 있으면서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명확한 논리의 전개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 그리고 정확한 해석에 근거한 커다란 안목이 우선 필수적이다. 역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는 매우 높은 편이며, 이를 반영하듯 의학사와 관련된 다양한 교양서들이 출판되고 있다. 한국의학사를 통사적으로 서술한 『한국의학사』(여인석 외, 2018), 홍역·종기·천연두 등의 질병으로 구성한 조선시대 의학사 연구(박훈평, 2018; 방성혜, 2012; 신동원, 2013), 명의들을 소개한 저술(김호, 2012) 이외에도 특히 조선의 명약으로 유명한 인삼의 역사를 다룬 저서(장일무, 2018)도 있다.
무엇보다 전문연구는 아니지만 보다 읽기 편한 개설서나 교양서가 등장하는 것은 독자를 확보하고, 이를 배경으로 학문의 기반을 다진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고전평론가인 고미숙의 『동의보감』 안내(2011)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삶이 인류의 보편적인 소망인 것처럼, 그에 대한 관심은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들 사이에서도 항상 충만해 있다. 많은 독자들이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이지만 한편 낯선 『동의보감』에 애정을 표시한 이유이다. 문제는 소비자인 독자와 공급자인 연구자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현실에 있다. 현재 한국의 학계는 소비를 위한 공급보다는 공급을 위한 공급, 즉 논문을 위한 글쓰기에 속박당한 상태이다. 모든 연구자가 독자와 벌어진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실현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개별 연구자의 몫으로 의료 현실에 기여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과감한 글쓰기에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4. 맺음말
2010-2019년까지의 한국 전근대 의학사 연구를 개괄하려는 이글은 분석의 대상이 빠짐없는가에 대해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가급적이면 전문 의학사 연구 이외에 관련이 되는 분야도 포함시키려고 했지만 의도만큼 소개한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참고문헌에 제시된 개별 글들에 대해 충분한 소개를 하지도 못하였는데, 연구자들의 넓은 양해를 구한다. 이는 필자의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애초의 목표를 한국의학사 연구의 전반적인 현황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스케치하겠다고 설정한 때문이다. 그 속에서 연구자는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설정하고, 독자는 현재까지의 연구가 그래왔구나 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의학사의 시작을 알린 김두종 선생은 의학사를 단지 기술사가 아닌 보다 큰 역사학으로 기획했지만, 애초의 의도를 전부 실행에 옮기기란 힘에 겨운 일이었다. 이제 시간이 흘러 많은 연구가 축적되고, 의학의 제 요소들을 설명할 다양한 분야가 논의되고 있는 현시점이다. 간략하게 정리한 것처럼 의서·의학론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 역시 꾸준하게 세밀한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또한 의학사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자료의 발굴 및 해석에 대한 노력도 경주되고 있다. 미시사·구술사, 민속학·인류학·고고학뿐만 아니라, 문학·건축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접근이 시도되고 있음은 참고문헌을 대충 살펴보더라도 간파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의학이 갖는 독특성에 기인한다. 의학은 철저하게 학문적인 영역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에서 뗄 수 없는, 또한 개인적이면서도 사회·국가적인 측면과도 밀접하게 연관되는 분야이다. 또 인간의 신체와 더불어 심성, 그리고 의학이 존재하기 위한 물적 토대도 필요하다. 같은 이유로 의학사 연구는 역사학 연구에서 놓치기 쉬운 제반 요소들을 일깨우기 때문에, 한국사 전반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2010년대의 연구가 풍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그와 같은 연구자들의 인식과 노력의 결과이며,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처음 의학사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너무나 막연했다. 어떤 연구자나 학회가 있으며, 의학사 관련 연구가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연구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활동할 수 있었던 데에는 대한의사학회, 한국의사학회, 의료역사연구회, 연세대 의학사연구소 등 의학사 연구 학회와 연구소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부족한 정리이지만 이 글이 의학사 연구를 시작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동료 학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Notes
또한 매년 개최되고 있는 전국역사학대회의 분과를 보더라도 의학사는 여전히 역사학의 한 분야로써 인정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2018년 역사학대회에 대한의사학회가 참여한 것은 매우 중요한 기점이라고 본다.
medical history 혹은 history of medicine이라고 불리는 ‘의학사’를 ‘의사학’ ‘의료사’ 등 논자에 따라 다양하게 부른다. 본 글의 제목은 게재된 다른 글과의 연계성을 위해 ‘의료사’로 표기하였으나, 본문에서는 ‘의학사’로 명명한다. 명칭의 사용과 관련된 논의와 상관없이, 이 분야의 선구라고 할 수 있는 김두종의 『한국의학사』가 갖는 역사적 의의가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는 필자의 견해 때문이다.
신동원에 따르면 1991년 이전에는 미키 사카에, 김두종, 손홍렬, 이영택 4인에 의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후 연구자의 폭이 급격히 성장하였는데, 1991년 이전의 150여 편에서, 이후 20여 년간의 연구가 대략 300편을 상회하게 되었다.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의 경우 한국의사학회가 독립한 이후 주로 원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근대시기 의학사 연구가 다수 소개되고 있기에 포함시킨다.
2010년 이전까지의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현황은 권오민·박상영·안상영 외(2009)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태진, 『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 조선 유교국가의 경제발전모델』 (태학사, 2002)
이러한 이유로 김남일이 2004년부터 『민족의학신문』에 「歷代名醫醫案」이라는 칼럼으로 의안을 꾸준히 소개해왔던 것은 학계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조선후기 국왕의 질병과 치료를 집중적으로 다룬 김훈의 연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선아, 「19세기 고창지방 의원 은수룡이 남긴 경험의안」, 『한국의사학회지』 18-2 (2005)와 같은 연구에서 보듯 간혹 의안이 소개되었지만, 『역시만필』은 풍부한 임상경험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성수, 김호, 신동원에 의한 일련의 연구가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신동원, 「한국 전근대 의학사 연구 동향」, 『의사학』 19-1 (2010)을 참고하시오.
이러한 기조는 한국역사연구회에서 1997년 간행하였던 『조선시대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2에서 잘 보인다. 거시사와 미시사, 그리고 생활사의 접목이라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던 이 기획을 통해서, 조선의 역사 전반을 다루면서 의약은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5년 발간된 『의사학』 24-2호에 실린 논문은 다음과 같다. 설혜심, 「미시사 연구의 이론과 동향: 의사학의 시각」; Xinzhong Yu, Yumeng Wang, 「Microhistory and Chinese Medical History: A Review」; 신동원, 「미시사 연구의 방법과 실제: 이문건의 유의일기(儒醫日記)」
이종찬, 『동아시아 의학의 전통과 근대』 (문학과 지성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