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의서와 의료실천: 동의보감학파들을 통해 읽는 텍스트와 실천 그리고 동아시아의학 지식

Text and Practice in East Asian Medicine: The Structure of East Asian Medical Knowledge Examined by Donguibogam Currents in Contemporary South Korea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Med Hist. 2019;28(2):591-620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19 August 31
doi : https://doi.org/10.13081/kjmh.2019.28.591
*Department of Medical History, College of Korean Medicine, Kyung Hee University, Seoul, Korea
김태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인류학 전공
교신저자: 김태우 / 이메일: tkim77@khu.ac.kr
†이 연구는 2015학년도 경희대학교 연구비 지원에 의한 결과임 (KHU-20150837).
Received 2019 May 31; Revised 2019 June 6; Accepted 2019 August 20.

Abstract

How do classical texts, such as Hwangdi Neijing and Shanghanlun, continuously play significant roles in medical practices in the history of East Asian medicine? Although this is a significant question in interpreting the position of written texts in the medical history and even for understanding the structure of East Asian medical knowledge, it has been conspicuously underexamined in the studies of East Asian medicine. In order to explore this underrepresented question, this study focuses on currents of tradition in contemporary South Korea. Drawing on anthropological fieldwork at three Donguibogam (Treasured Mirror of Eastern Medicine) currents, it delves into the interaction of text and practice in East Asian medicine. Even though all three currents (Hyun-dong, Byeong-in, Hyung-sang) are based on Donguibogam, their ways of reading the text and organizing clinical practices are diverse. Each current sets up a keyword, such as pulse diagnosis, cause of disease, and appearance-image, and attempts to penetrate the entire Donguibogam through the keyword. This means that the classical medical text is open to plural approaches. This study found that there is a visible gap between a medical text and the reader of the text in East Asia. Masters and currents of tradition are the actors who fill up the gap, continuously interpreting and reinterpreting classical texts, and guiding medical practices of new readers. Adding the history of practice to the body of literature that have focused on the history of written texts, this study will contribute to the history of East Asian medicine.

1. 들어가며

동아시아의학에서 의서의 중요성은 더 이상의 강조가 필요하지 않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의학 원론과 『상한론(傷寒論)』이 제시하는 처방의 실제는 동아시아의학의 근간을 이룬다. 이들 고전이 부재했다면, 동아시아의학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전혀 다른 의학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황제내경』과 『상한론』에 대한 역대 의학자들의 해석과 그 해석들의 물화(物化)로서의 후대 의서들은 동아시아의학에서 의서의 중요성을 확대 심화 시켜왔다. 의서의 중요성은, 의서 관련 연구를 동아시아 의료역사 연구의 주요 주제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황제내경』과 그 주석서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료역사의 주제다(Hsu, 1999). 마찬가지로, 『상한론』과 “상한” 개념의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는 것은 동아시아 의료역사 연구의 중요한 테마가 된다(Scheid, 2007). 온병학이나 사상의학 같은 새로운 의론이 등장하는 의서들(예를 들면, 오국통의 『온병조변(溫病條辨)』이나,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등)은, 의서 연구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Hanson, 2011; 이기복, 2016). 본초, 처방, 질병관 등 의서가 다루는 다양한 주제들은 또한 의료역사 연구의 빼놓을 수 없는 주제들이다(김성수, 2010; 신동원, 2004; 오재근, 2011; 이경록, 2013; 이현숙, 2008). 각 지역의 컨텍스트 속에서 발간된 의서들에 대한 연구는 그 지역의 의료사회사를 읽는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등 한반도의 향약 관련 의서들과 그 흐름이 보여주는 향약 전통의 맥락은, 한반도 의료역사 연구의 주요 주제이다(이경록, 2010). 조선시대 관찬 의서인 『의방유취(醫方類聚)』, 『동의보감(東醫寶鑑)』, 『제중신편(濟衆新編)』의 의서들과 그 종합의서들의 맥락은 한국의 의료사 연구에서 빼놓을 수없는 주제들이다(안상우, 2000; 이경록, 2012; 지창영, 2008). 의서의 내용과 의서들의 계보뿐만 아니라, 그 의서들을 저술한 의학자들은 또한 지속적으로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김남일, 2011).

동아시아의학에서 의서 관련 논의들이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지만, 여전히 본격적 논의를 기다리는 주제들이 남아있다. 네이슨 시빈(Nathan Sivin)은 앞으로 동아시아의학 연구가 다루어야 할 내용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Sivin, 1998). “사회사와 지식사의 연결(The Integration of Intellectual and Social History)”, “이론과 실천(Theory and Practice)”, “지역연구(Local Studies)”, “변화에 대한 설명(Explaining Change)”, “의료다원주의(Medical Pluralism)”, “젠더, 종족그룹, 사회계급(Gender, Ethnic Group and Social Class)”, “환자의 경험(The Experience of Patients)”, “진료현장의 협상(Negotiation in Medical Encounters)”, “의료실천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Medical Practice)”, “직능 단체(Occupational Organization)” 등이 그가 열거하는 연구 주제들이다. 그 중에서 본 논문은 “이론과 실천”에 방점을 두고 논의를 진행해 보고자 한다. 시빈은 이론과 실천의 이슈를 거론하며, 동아시아의학에서 특히 이 주제와 관련된 본격적 연구가 거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의서 텍스트의 이론적 논의와 실제 진료실천의 관계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이러한 비어있는 연구영역을 채워나가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의서에서 문자화되어 있는 이론과 실제 의료실천(medical practice)의 관계가 동아시아의학의 흥미로운 연구주제임은, 『황제내경』을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동아시아의학의 근간이 되는 고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황제내경』은 주지하다시피 임상현장에서의 직접적 실천과는 거리가 있다. 제시하고 있는 약처방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황제내경』과 의료실천의 간극을 예시한다. 구체적 실천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관점에 따라서는 인간의 몸과 질병을 논한 철학서 같기도 하고, 혹은 기상학 서적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의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 “특이한” 텍스트를 동아시아의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서로 손꼽아 왔다. 『황제내경』의 텍스트와 그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 의료실천은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가? 실제 실천과 거리가 있는 『황제내경』과 가장 권위 있는 『황제내경』이 병존하는 “모순적인” 상황은, 동아시아의학의 의서 연구에 있어 실천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의학 텍스트와 의료 실천 사이에 가시적 간극이 존재한다면, 그 사이를 메우는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의학에 대한 보다 풍부한, 그리고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아시아의학에서 『황제내경』과 같은 의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한론』같이 실제 처방을 제시하는 의서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구체적 실천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의서라고 하더라도 텍스트와 실천의 이슈는 여전히 동아시아의학 연구에 상존한다. 이것은 동아시아의학의 고전의서가 지속적으로 임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텍스트라는 사실과 깊이 연관된다. 서양의학의 역사에서 『히포크라테스 전집』과 『파브리카』는 지금의 의료실천과 유리된 채 역사 속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2천 년[1] 된 『상한론』, 4백 년이 된 『동의보감』은 지금 의료실천 속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서의 역사는 진행형이며, 그 역사를 진행형이게 하는 것은 과거 의서와 당대 의료실천 사이 교감의 지속성 때문이다.

『동의보감』이 『역시만필(歷試漫筆)』의 저자에 의해 해석되고 실천될 때, 그것은 17세기 초 발간[1613년] 된 『동의보감』과 18세기 초 『역시만필』의 시대 사이 100년을 넘어선 교감의 결과다(이기복, 2013; 전종욱, 2017a). 『경보신편(輕寶新編)』은 『동의보감』 발간 시대와 보다 거리가 있는 시대 사이 교감의 기록이다(구민석 외, 2017; 전종욱, 2017b). 동아시아 의서는 이러한 교감을 통한 해석과 재해석의 역사적 실천의 장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의서와 그 해석을 통한 교감, 그리고 교감의 결과물로서의 의료실천은 동아시아 의료사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중요 주제이다.

본 논문은 지금까지의 『동의보감』 관련 의안, 의안집에 대한 연구의 연장선 위에서, 17세기 『동의보감』과 21세기 한의학 사이의 교감을 고찰하여 그 진행형의 역사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문헌조사와 함께 인류학적 방법론을 인용하였다. 본 연구가 인류학의 현지조사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의료실천의 실제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의료실천에 대한 의안과 같은 기록들은, 의서와 의료실천에 대해 소중한 자료를 제공하지만 그 역시 문자화된 자료이다. 하지만 의료실천에서 문서화가 쉽지 않은 영역도 분명히 존재한다. 문자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동아시아의학은 특히 그러하다[2,]. 본 논문은 현지조사 방법론을 인용하여 문서화된 『동의보감』이 현장의 의료실천에서는 어떻게 발현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본 논문의 연구는 동아시아의학 지식 자체에 대해서도 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동의보감』의 문자화된 이론 지식이 지금의 한의학 실천과 연결되는 방식을 고찰함으로써, 동아시아의학 지식의 구조[3]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학파 현상, 한국 한의학의 학파들, 그리고 방법론

지역과 문화를 떠나서, 지식/실천의 전달과 구체화에 있어 학파의 존재는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과학을 논하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도 학파에 대한 논의는 존재한다(쿤, 2013). 하지만, 근대 이후 학파현상이 불분명해지는 방향으로 서구에서는 지식과 실천의 역사가 전개 된다. 의학에서도 병리해부학의 탄생시기 프랑스의 임상의학은 파리학파라고 불리었지만, 그 병리해부학을 중심으로 근대서양의학이 재편되면서 지금은 더 이상 학파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동아시아의학에서는 여전히 학파가 존재한다. 본 논문에서는 동아시아의학 학파를 ‘의론(醫論)과 의료실천을 공유하는 의료사회공동체’라고 정의하며, 그 의론과 의료실천이 가시적인 차이를 보일 때 별도의 학파라고 구분한다. 통상 그 차이는, 주로 연구하는 고전의서, 스승, 진단 및 치료 방식, 각 학파에서 발간한 서적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한국의 경우 황제내경학파, 상한론학파, 동의보감학파, 사상의학학파, 의학입문학파 등 다양한 학파가 존재한다. 각각의 학파 내부에도 학파“들”이 존재하여, 복수의 황제내경학파들, 복수의 상한론학파들, 복수의 동의보감학파들이 존재한다. 어떻게 하나의 텍스트를 연구하는 복수의 학파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은 동아시아의학의 중요한 특징이며, 이러한 학파들의 나뉨은 동아시아의학에서 문자화된 의서와 실제 의료 실천 사이 관계에 대한 연구가 동아시아의학 이해를 위한 중요한 연구 주제임을 역설하고 있다.

근대 이전에 주로 사용했던 학파라는 용어를 지금 한의학에 대한 논의에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본 글에서 학파라는 용어를 견지하고자 하는 것은, 동아시아의학 지식은 서구 기원의 (특히, 근대 이후의) 의학지식과 다른 구조를 가지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다양한 학파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서구에서는 근대서양의학이 탄생하면서 학파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지식이 재구성되었지만, (이 논문의 앞으로의 논의를 통해 보다 명확해지겠지만) 역사와 사유의 방식이 상이한 동아시아의학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하지 않았으며, 이 차이가 동아시아의학에서 여전히 복수의 학파를 존재하게 한다. 동아시아의학에서는 의서와 의료실천의 관계가 학파의 다양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므로, 그러한 연결을 강조하기 위해 학파라는 용어를 본 글에서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동아시아의학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은, 현장연구를 통해 의료실천을 연구해 왔다. 미시적 현상과 거시적 조건들의 연관을 강조하는 인류학은, 현장의 (미시적) 의료행위에 대한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그 의료실천을 구성하게 하는 (거시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지식의 조건들에 주목한다. 즉, 인류학 연구에서는 현지의 실천에 체화된 거시적 조건들을 읽는 것이 중요한 작업의 하나이며, 의료 관련 연구에서는 이러한 관계성을 통해 역사, 사회, 문화, 지식의 조건 위에서의 의료 행위에 대한 독법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가능성을 구체화하며, 주디스 파쿼(Judith Farquhar, 1994)는 중국 광저우 중의학병원에서의 장기간의 현지조사를 통해 중의학이 실제 어떻게 진단하고, 변증하고, 치료하는가를 그려낸다. 포커 샤이드(Volker Scheid, 2002)는 중의사의 진료 실천을 참여관찰 하여, 하나의 처방이 어떤 역사적, 사회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는지를 보이고 있다. 얀후아 쟝(Yanhua Zhang, 2007)은 중의학병원 진료실에서 진행되는 의사 환자 사이 대화를 집중 분석하여, 동아시아의학에서 정신 및 감정 관련 문제가 현재 중의학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치료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지금까지 인류학적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본 논문에서는 인류학적 현지조사 방법론을 인용하여 의서 속에 문서화된 동아시아의학의 이론과 지식이 실제 의료실천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논해 보고자 한다.

동아시아의학 텍스트와 의료실천의 상호작용을 읽기 위해, 본 논문이 주목하는 것은 복수의 동의보감학파다. 현동학당, 병인론학회, 형상학회라는 한국 한의학의 대표적 동의보감학파들을 통해 『동의보감』이라는 400년 전 의서가 지금 실천되고 있는 방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당대 한국의 한의학에는, 이들 세 학파 외에도 『동의보감』을 통해 처방하는 한의사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세 학파를 선택한 이유는, 이들 동의보감학파에서 한의학적 접근 방식을 견지하려는 경향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적 지식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세 학파 소속 한의사들은 실제 진단과 치료에서 『동의보감』의 논리를 통한 한의학적 접근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동의보감』을 활용하는 방식이 다양한 상황에서[4], 이들 학파들의 이러한 경향성은 동아시아의서(여기서는 『동의보감』)와 의료실천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위한 고무적인 현지를 제공한다.

현지조사를 위해서 필자는 현동학당, 병인론학회, 그리고 형상학회 소속 한의원에서의 참여관찰 및 한의사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각 학파가 주최하는 한의사회원 대상 강의, 한의대생 캠프 등 지식전달의 장에서도 현지조사를 진행하였다. 필자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한의학에 대한 현지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본 논문의 현동학당에 대한 논의는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에 진행된 현지조사 자료에 주로 바탕한다. 병인론학회에 대해서는 2018년에서 2019년 봄까지 진행된 현지조사 자료가 사용되었다. 형상학회에 대한 논의는 2008년에서 2011년 사이에 진행한 현지조사 자료가 주로 인용되었다. 필자가 진행한 동의보감학파 밖, 황제내경학파, 사상의학학파, 상한론학파, 의학입문학파, 사암침학파들에 대한 현지조사들도, 비교의 관점으로 동의보감학파들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본 논문의 논의를 위해 의미 있는 기여를 하였다[5].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각 학파의 의료실천의 특징에 대한 기술과 함께 현장연구를 통해 조사한 실제 진료케이스를 제시하였다. 진료케이스들은 각 학파의 의료실천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기여할 것이다.

3. 동의보감학파들과 의료실천들

<현동학당>

현동학당은 한의사 김공빈을 중심으로 1993년에 시작된 동의보감독회모임에서 시작되었다. 현동 김공빈 선생은[6,] 동의보감과 함께 풍수, 명리, 태극권을 포괄적으로 공부한 것으로 유명하다[7,]. 1997년에 현동학당이 설립되어, 구체적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한의사 및 한의대생들과 『동의보감』의 지식과 실천을 공유하고 있다[8,]. 현동학당에서 발간한 저서로는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2005), 『하늘기운을 닮아가는 우리 몸: 도인(導引)으로 풀어쓴 동의보감』(2012), 『현동의감(玄同醫鑑)』(2017) 등이 있다[9].

현동학당 진료실천의 특징은 진단의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동아시아의학 진단의 사진(四診, 즉, 망(望)진(보아서 아는 진단), 문(聞)진(들어서 아는 진단), 문(問)진(물어서 아는 진단), 절(切)진(촉감해서 아는 진단)) 중에서 현동학당에서는 절진, 즉, 맥진이 강조된다. 맥진이 “강조”될 뿐, 맥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망진, 문진, 문진도 두루 진단을 위해서 사용된다. 하지만, 그 중에서 맥진에 방점이 있다. 현동 선생의 한의원이나 학파 소속 한의원의 진료현장에서는 맥진 강조가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특히, 진료실 상담의 처음 순간에 잘 드러난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환자가 자리를 잡으면, 한의사는 바로 “진맥 먼저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한다. 다양한 학파에서의 필자의 현장연구는 이러한 장면이 중요한 대목임을 드러내 주었다. 학파에 따라 망진을 강조하기도 하고, 묻고 답하는 문진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현동학당에서는 그 중에서 맥진을 강조한다는 것을 이러한 “선언”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의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진맥 먼저 하겠습니다”라고 먼저 말하고 진단을 시작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문진(問診)을 먼저 하게 되면, 묻고 답해서 아는 정보들을 통해 환자의 병증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러한 생각이 맥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진맥 먼저 하겠다”는 선언은 정확한 맥진을 위해 선입관을 방지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맥진을 마치고 나면 문진(問診) 세션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한의사는 맥진에서 알게 된 환자의 상태와 문진에서 알게 된 정보를 종합하여 진단을 하게 된다.

현동학당에서 맥진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바로 “『동의보감』에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의 맥진 강조는 그 구성에서 드러난다. 『동의보감』은 「내경편(內景篇)」, 「외형편(外形篇)」, 「잡병편(雜病篇)」, 「탕액편(湯液篇)」, 「침구편(針灸篇)」의 다섯 편(篇)으로 되어 있다. 각 편은 다시 다수의 문(門)으로 나뉘어져 있다. 예를 들면, 「내경편」은 신형문, 정문, 기문, 신문, 혈문, 몽문, 성음문, 언어문, 진액문, 담음문... 등으로 구성된다. 「잡병편」의 경우 천지운기문, 심병문, 변증문, 진맥문... 풍문, 한문, 서문, 습문, 조문, 화문, 내상문, 허로문, 곽란문, 구토문, 해수문, 적취문... 등으로 되어있다. 제목이 명시하는 것과 같이 각 문에서는 『동의보감』이 바라보는 몸에 대한 관점과 구체적인 의료 이슈를 다루고 있다. 각 문은 다시 논의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소제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현동학당의 의료실천 특징 측면에서 주목할 부분은, 대부분의 문에 “맥법”이라는 소제목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경편」 정(精)문의 경우 “정위신본(精爲身本, 정은 몸의 근본이 된다),” “정위지보(精爲至寶, 정은 지극한 보배다),” “오장개유정(五藏皆有精, 오장에 모두 정이 있다)”의 소제목과 그 내용들이 있고, 그 다음에 “맥법(脈法)”이 뒤따른다[10]. 그리고 “맥법” 뒤로 “정의비밀(精宜秘密, 정은 굳게 지켜져야 한다),” “절욕저정(節慾儲精, 욕망을 줄여서 정을 모은다)” 등이 이어져 있다. 인터뷰에서 현동 선생은, 그 구조를 살펴보면 『동의보감』이 강조하는 내용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맥법”이라는 섹션의 배치가 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즉, 『동의보감』 각 문에서는 “맥법” 이전에는 총론, 그 이후에는 구체적 병증과 처방이 뒤따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위 정문의 경우 “정위신본,” “정위지보,” “오장개유정”까지는 정에 대한 전반적 설명 부분에 해당한다. 즉, 우리 몸의 구성체로서의 정의 중요성, 오장의 정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맥법” 이후 “정의비밀”과 “절욕저정”에서는 정이 지켜지지 못할 때, 정이 병적으로 소모될 때의 문제점들을 거론하면서 정과 관련된 질병현상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잡병편」의 각 질병에 대한 논의에서, “맥법”을 사이에 두고 총론이 앞에 있고 각론이 뒤따르는 『동의보감』의 체계는 더욱 가시화된다. 소갈(消渴)문은 “소갈지원(消渴之源, 소갈의 원인),” “소갈형증(消渴形證, 소갈의 형증),” “맥법(脈法),” “소갈유삼(消渴有三, 소갈에는 세 가지가 있다),” “식역증(食㑊證)” 등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토문은 “구토지인(嘔吐之因, 구토의 원인),” “맥법(脈法),” “구토치법(嘔吐治法, 구토의 치료법),” “오심건구(惡心乾嘔, 오심과 헛구역질)”... 등으로 되어 있다. 내상(內傷)문의 경우 “식약료병(食藥療病, 음식과 약으로 병을 치료한다),” “수곡위양명지본(水穀爲養命之本, 수곡은 생명을 기르는 근본이다),” “수곡지정화음양행영위(水穀之精化陰陽行榮衛, 수곡의 정은 음양으로 변화되어 영위를 운행한다),” “내상유음식상노권상이인(內傷有飮食傷勞倦傷二因, 내상에는 음식상과 노권상이 있다),” “맥법(脈法),” “식상증(食傷證),” “식상치법(食傷治法, 식상의 치료법)”... 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맥법”을 중심으로 그 질병에 대한 총론과 구체적 병증·치료법으로 나누어져 있는 구조가 「잡병편」에서도 드러난다. 『동의보감』의 각 문의 이러한 구조는, 진단을 통한 치료법의 결정에 있어 맥진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의미한다고 현동학당에서는 강조한다. 이와 같이, 구조에서 파악한 『동의보감』 저자의 뜻을 받아들여 맥진을 강조하는 현동학당의 진단 체계가 갖추어진 것이다[11].

현동학당 회강(會講)에 대한 현지조사는, 그 학파의 맥진에 대한 강조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일 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학회 소속 한의사와 한의대생들이 함께 자리하는 전체 회강은 1박 2일로 진행된다[12,]. 회강의 전체 프로그램은 맥진을 위한 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맥에 대한 현동 선생의 강의가 진행된다. 다음, 맥을 직접 짚어보는 실습 시간이 뒤따른다. 실습을 하는 조는 통상 4-5명으로 구성된다. 각 조는 임상 경험이 풍부한 한의사 한 명과 나머지 신참자들로 구성되며, 다음의 순서에 따라 맥을 직접 경험하는 실습을 한다. 먼저 조원 중 한 명의 맥을 조원들이 모두 짚어 본다. 그리고 그 맥이 어떻게 뛰는지를 각자 표현 해 본다. 그리고 그것이 『동의보감』에서 논하는 맥상(脈象) [13] 중 어떤 맥상인지를 같이 찾아가는 과정으로 실습은 진행된다. 여기서 경험 많은 한의사의 가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동학당의 맥에 대한 강조와 맥 공부는 임상현장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면 “진맥 먼저” 한다. 진맥을 통해 한의사는 환자의 몸이 드러내는 맥상을 인지한다. 뒤따르는 문진(묻고 답하는 진단)은 진맥과 환자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망진의 결과에 따라 그 방향이 정해진다[14,]. 맥진이 끝나면, 비로소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라고 묻는다. 필자가 현장 연구를 통해 현동학당 소속 한의원에서 접한 진료 케이스가 있다[15,]. 맥진 뒤 “어디 불편해서 오셨습니까?”라는 질문에, 20대 여성 환자는 “허리요”라고 대답을 했다. 한의사는 이미 진행한 맥진을 바탕으로 요통의 원인에 대해 어느 정도 방향성을 잡고 문진을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요통을 열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16], 각각의 요통에 따라 맥의 경향이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이 환자는 식적(食積)요통과 관련된 맥이 잡힌 경우다. 그래서 식적과 관련된 질문이 문진 시간 질문의 주를 이룬다. ‘식습관 괜찮으세요?’ ‘하루에 드시는 것 좀 말씀해 주세요. 아침 드세요?’ ‘점심, 저녁은요?’ 이 질문들에 대하여, 환자는 ‘(아침) 안 먹을때가 더 많아요’ ‘(점심, 저녁도) 안먹을 때가 많아요’라고 답한다. 환자의 답변을 통해 한의사는 식적요통이라는 것을 확정한다. 식적요통과 관련된 맥이 잡힐 때와 신허(腎虛)요통과 관련된 맥이 잡힐 경우에는 문진에서 물어보는 질문이 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이, 현동학당에서는 맥이 진단과 치료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위 식적요통 환자는 침치료를 원하였으므로, 진단 후 치료를 통해 비위의 문제를 조절할 수 있는 침치료가 진행되었다.

『동의보감』은 종합의서이다. 『동의보감』 출간 시기까지의 동아시아의학의 주요 내용들을 포괄하고 있어서 분량도 상당하다. 진단을 바탕으로, 『동의보감』이 제시하고 있는 수많은 치료법 중 최선의 치료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동학당의 진료는 『동의보감』이라는 의학지식의 바다에서 치료라는 목적지로 가는 하나의 방식을 예시한다. 학파의 분류는 여기서 갈린다. 앞으로 살펴볼 병인론학회, 형상학회는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다.

<병인론학회>

병인론학회는 1999년에 만들어진 동의보감연구회 활동에서부터 시작된 학회이다[17,]. 병인론학회를 이끈 사람은 한의사 김구영 선생이다. 그는 본인이 바라본 『동의보감』에 대한 관점을 통해, 학회 결성 이전부터 정평이 나있는 강의를 하였고 그 관점에서 병인론(病因論)을 주창한다. 2004년 대한병인학회를 창립하여 병인론의 관점을 전파하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 2014년 김구영 선생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에 학회가 위축된 경향이 있지만, 기존 학회 회원들과 제자들을 중심으로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 병인론학회에서 출간한 책으로 『병인론(病因論)』(2001)과 『화론(火論)』(2007)이 있다[18]. 병인론학회는 말 그대로 병의 원인을 중심에 둔다. 흥미로운 것은, 병인론학회에서 병인을 강조하는 것은 현동학당에서의 맥진 강조와 이유가 같다는 것이다. 즉, 병인론학회에서는 『동의보감』에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병인을 강조한다고 한다. 『동의보감』의 병인 강조는 「잡병편」의 구성에서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잡병편」 적취(積聚)문의 경우, “적취지(積聚之, 적취의 원인)”, “논오적육취(論五積六聚, 오적과 육취를 논함)”, “복량유이증(伏梁有二證, 복량[병명]에는 두 가지 증이 있다)”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종(浮腫)문은 “부종지(浮腫之, 부종의 원인)”, “부종지조(浮腫之兆, 부종의 징조)”, “부종형증(浮腫形證, 부종의 형증)”...으로, 창만(脹滿)문은 “창만지(脹滿之, 창만의 원인)”, “창만형증(脹滿形證, 창만의 형증)”, “맥법(脈法)”...으로, 소갈문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갈지(소갈의 원인)”, “소갈형증(소갈의 형증)”, “맥법”...으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각각의 질병 문에 “인(因)”이나 “원(源)”을 앞에 내세워 그 원인을 논의의 시작점으로 삼고 있다. 잡병편이 아니더라도 『동의보감』의 병인 강조는 두드러진다. 앞에서 언급한 열 가지 요통도 원인을 구체적으로 분류하여 열거한 것이다. 즉 신허요통은 요통의 원인을 신허(腎虛)로, 식적요통은 요통의 원인을 식적(食積)으로 본 것이다. 병인론학파는 『동의보감』의 이러한 병인 강조를 체계화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현동학당과 병인론학회 공히 『동의보감』의 강조점을 취하여 그 학파의 방향성을 잡고 있지만, 그 구체적 방식을 짚어 보면 가시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현동학당이 맥진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동의보감』이 제시하고 있는 진단과 치료의 방식을 따라 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와는 다르게, 병인론은 『동의보감』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동의보감』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나의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복잡하지 않고, 한의사들이 비슷하게 진단하고 비슷하게 치료할 수 있는 체계를 추구한다[19].

이러한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 병인론의 체계를 이루는 병인의 카테고리들이다. 병인론학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질병 원인의 카테고리는 칠정(七情), 식체(食滯), 노권(勞倦), 담음(痰飮), 신허(腎虛), 어혈(瘀血) 등이다. 병인론학회는 이들 범주를 가지고 『동의보감』을 재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20]. 예를 들면, 식체(혹은, 식적)와 관련된 원인을 모아서 재정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동의보감』 「외형편」 요문에 등장하는 식적요통, 「잡병편」 해수문에 나오는 식적수(食積嗽, 식적에 의한 기침), 그리고 「내경편」 기문에 있는 식적에 의한 기울(氣鬱, 기의 울체)이, 식적 병인의 카테고리 아래에 모여 있는 체계를 이룬다. 그 외 칠정, 노권, 담음, 신허의 카테고리도 이러한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또한, 병인론학회 소속 한의사들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각각의 병인에서 두드러진 증상을 제시하여 병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병인론은 구조화되어 있다. 예를 들면, 열이 오르는 것과 추워지는 것이 왔다갔다하는 한열 왕래를 칠정의 주 증상으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것을 신허의 주 증상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고 숨이 차는 것을 담음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본다.

병인론학회에서는 기저에 있는 원인을 찾고, 그 원인에 대해 의료적으로 개입을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그 근본 원인을 찾는 방식이다. 병인론에서는 병인을 찾기 위해서 망문문절의 사진 중 문(問)진을 강조한다. 김구영 선생은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해 두 종류의 질문을 물어야 한다고 하였다. 첫째는 언제부터 주 증상이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둘째는 어떠한 경우에 그 증상이 심해지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러한 문진들을 통해 병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김구영 선생의 저서 『병인론』(김구영, 2001)에 제시되어 있는 다양한 임상케이스들은 원인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윗입술이 심하게 가려운 피부병을 앓는 여성에 대한 케이스가 있다. 부은 부위가 빨갛고 심하게 부어 있어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의원을 내원한 중년의 환자는, 피부과에 한 달 다녔는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문진 끝에 한 달여 전에 특정 음식을 먹고 주 증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식적 관련 약인 평위산(平胃散)을 처방하였다. 피부 질환을 식적약으로 치료하는 케이스는 기저에 있는 병인을 확인하여 치료하는 병인론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필자가 현지조사에서 접한 케이스들은 이러한 병인론학회의 방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병인론학회 소속 한의사의 한의원을 72세 여성이 내원하였다[21]. 할머니는 맞벌이 하는 아들 부부를 위해 손자를 봐주고 있다. 환자의 주증상은 통증이다. 필자가 현지조사 하고 있을 당시는 겨울철이었는데, 환자는 특히 추울 때 전신의 통증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슴 아래쪽의 통증도 있다고 하였다. 붓기가 심하다는 문제도 있었다. 환자의 말로는 몸이 붓는 원인을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특별한 원인, 특별한 시기 없이 무단히 붓기가 생긴다고 하였다. 한의사는 이 환자의 문제를 습(濕)의 문제로 보았다. 습이 끼여 해결되지 않는 것이 통증의 원인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습이 과도하게 끼는 것은 식적이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처방은 위 피부병 질환과 같은 평위산을 처방하였다. 이와 같이 이 환자의 경우 통증의 증상을 호소하고, 위 피부과 질환 환자의 경우 입술 부위의 벌겋고 가려운 증상을 호소하고 있지만 모두 평위산을 처방하고 있다. 병인이 같기 때문이다.

병인론학회 소속 한의원에서의 참여관찰은 진료시간이 환자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것을 드러내어 주었다. 어떤 환자의 경우 5분 이내에 상담이 종료되는 경우도 있지만, 또 어떤 환자의 경우 20분 이상 소요될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기저에 있는 병인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을 때이다. 이러한 경우 다양한 병인을 염두에 두고 각각의 원인에 대해 문진을 하는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상담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병인론은 처방에 있어서도 각 병인에 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 처방들을 제시하고 있다. 즉, 식체의 대표 처방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평위산을 제시하고 있다. 노권에는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담음에는 이진탕(二陳湯), 신허에는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 그리고 어혈에는 당귀수산(當歸鬚散)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병인론은 “병인”을 중심으로 『동의보감』의 내용을 재구성한 진료의 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체계는 김구영 선생의 다년간의 임상경험과 『동의보감』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임상과 연구를 통해 『동의보감』을 새롭게 꿸 수 있는 방식을 목격하게 되었고, 그것을 체계화한 것이 병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병인론학회의 『동의보감』 독법은 앞의 현동학당의 그것과 차이가 나며, 이어질 형상학회의 경우와도 다르다. 이러한 차이들은 동아시아의학의 문서화된 의서와 실제 의료실천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본 논문은, 이어지는 부분에서 형상학회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고, 논문의 말미에서 이에 관한 구체적 논의를 하고자 한다.

<형상학회>

형상학회는 지산 박인규의 의술을 배우기 위해 제자들이 그의 한의원에 모이기 시작한 1970년대가 시작점이 되었다. 그 후 “전통의학회”를 창립하여 학회가 시작되었고, 이후 “형상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산 선생이 세상을 떠난(2000년) 후에는 그의 한의원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았던 제자들이 다시 스승의 역할을 하여 학회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형상학회는 한국의 동의보감학파 중 가장 규모가 큰 학파이다. 이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시기(2019년 초)를 기준으로, 대한한의학회 공식 웹사이트에 회원수가 1094명으로 기재되어 있다. 형상학회에서 발간한 책으로 『지산형상의안(芝山形象醫案)』(2004), 『지산선법(芝山仙法)』(2010), 『너와 나의 세계』(2000) 등이 있다[22].

형상학회의 스승인 지산 선생은 『동의보감』에 대한 창조적 해석으로 유명하다. 그의 창의적 경향은 형상학회에서 사용하는 사람의 분류에서 잘 드러난다. 지산 선생은 사람에 대한 다양한 분류를 진단의 중요한 근간으로 삼고 있다. 그 분류에는 담체/방광체[23,], 정과/기과/신과/혈과[24,], 태양형/태음형/소양형/소음형/양명형/궐음형[25,] 등의 분류에 의한 체질들이 있다. 이외에 오장육부에 의한 분류[26,], 어(魚)류/조(鳥)류/주(走)류/갑(甲)류)에[27] 의한 분류도 있다.

동의보감학파들은 각각의 방향성을 잡는 데 있어 주목한 『동의보감』의 내용들이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동학당은 “맥법”에, 그리고 병인론학회는 “원”과 “인”에 주목하였다. 형상학회는 『동의보감』의 첫 부분에 주목한다. 『동의보감』의 첫 편인 「내경편」의 첫 문이 신형문이다. 그리고 신형문 앞에 신형장부도가 그려져 있고 그 그림에 이어 당나라 때의 의가 손사막과 금원사대가 중 한 명인 주진형의 문구가 등장한다. 형상학회는 이 섹션의 마지막 문장인 “형색기수 장부역이 외증수동 치법형별(形色旣殊 藏府亦異 外證雖同 治法逈別, 사람마다 형색이 이미 다르면 장부 역시 다르기 때문에 외증이 비록 같더라도 치료법은 매우 다르다)”에 주목한다. 바깥의 형색이 다르면, 오장육부로 대표되는 내부의 상황이 같지 않으므로 증상이 같더라도 치료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형상학회는, 『동의보감』에서 이 문장을 본문의 맨 앞에 내세우는 것은 그러한 관점으로 『동의보감』 전체를 읽으라는 독법에 대한 제시라고 전제한다. 그러한 전제 위에서 형상학회의 이론과 실천을 체계화하고 있다. 학회의 명칭인 “형상”도 그러한 맥락에서 명명되었다. 즉, 외부로 드러난 것(즉, 형形)과 보이지 않는 내부의 상황(즉, 상象)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 『동의보감』의 문장에서 “형색”이 강조되는 것은, 형상학회에서의 진단의 강조점과 연관된다. 현동학당에서 맥진을 강조하고, 병인론학회에서는 문진을 강조한다면, 형상학회에서는 망진을 강조한다. 망진을 통해 형과 색을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몸 내부의 상황과 병증을 알아가는 것이 형상학회 진단의 방향성이다. 현동학당, 병인론학회와 마찬가지로 사진 중 강조하는 한 진단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형상학회에서는 형(形), 색(色), 맥(脈), 증(證)을 살펴서, 밖으로 드러난 모양(형), 색깔(색), 맥의 상태(맥), 그리고 환자가 말하는 증상(증)을 모두 진단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여전히 망진의 강조점은 유효하다. 앞에서 언급한 형상학회의 분류가 모두 망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망진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형상학회의 분류 중 정과, 기과, 신과, 혈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학파의 방향성이 잘 드러난다. 흥미로운 부분은, 정기신혈과라는 분류가 이전의 동아시아의학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지산 박인규에 의해 주창되었다. 지산 선생은 『동의보감』을 다 외우고 있었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동의보감』에 깊이 천착하였다.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와 임상에의 적용을 진행하면서 정기신혈과와 같은 분류가 탄생하게 된다. 형상학회에서 사용하는 지산 선생의 분류는 모두 『동의보감』에 바탕하지만, 정기신혈과 분류는 특히 『동의보감』의 영향이 가시적이다. 그 분류는 『동의보감』 「내경편」의 첫 부분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내경편」의 첫 문인 신형문에 이어지는 문들이 바로 정, 기, 신, 그리고 혈문이다. 신형문이 인간 몸-존재에 대한 전체적 논의를 한다면, 정문부터 신문까지는 인간의 몸-존재의 근간을 이루는 구성체들을 각각 논하고 있다. 지산 선생은 여기에 혈문을 합쳐서 정기신혈과의 카테고리를 제시한다. 지산 선생의 『동의보감』을 읽는 독창성은 정기신혈이 치우쳐서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드러난다. 모든 사람에게 정, 기, 신, 혈이 같은 비율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정이 강조되는 사람, 기가 강조되는 사람, 신이 강조되는 사람, 혈이 강조되는 사람이 각각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강조점은 얼굴의 형으로 드러나서, 정과는 원형의 얼굴을, 기과는 네모난 얼굴을, 신과는 역삼각형을, 그리고 혈과는 달갈형의 얼굴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정기신혈과의 분류가 정해지면 바로 진단과 연결된다. 정과는 정과 관련 병을 앓는 경향이 있고, 기과는 기와, 신과는 신과 그리고 혈과는 혈과 관련된 병을 앓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정기신혈과와 진단이 연결되는 방식이다.

필자의 현지조사는 정기신혈과를 통한 진단과 치료의 예시를 제공해 주었다. 필자가 현지조사를 진행하던 형상학회 회원의 한의원에 20대 남성이 모친과 함께 내원하였다[28]. 환자는 며칠 전 군대를 제대하였다. 주로 호소하는 부분은 군대에서 손목뼈가 삐끗했는데 잘 낫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리가 안 좋을 것 같은데...’ 손목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의사는 맥락 없는 것 같은 질문을 던졌다. 환자는 ‘예’라고 대답하였다. 의사의 비약 같은 질문은, 정기신혈과 중 환자를 신과로 본 것과 관련이 있다. 신과는 상부의 신(神)의 활동이 과열될 수 있는 체질이기 때문에 반대로 하부의 허리와 신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지산 선생의 신과에 대한 관점이다. 한의학에서 신장은 뼈를 주관하기 때문에 손목뼈 문제가 잘 낫지 않는 것과도 연결된다. 한의사는 “신과” 분류를 통해 진단에서 감을 잡고 진료를 진행한다. 환자는 침치료와 약치료 모두를 원하였기 때문에, 신(腎)을 조절하는 침치료와 함께 약으로는 신기환(腎氣丸)이 처방되었다.

이와 같이 형상학회의 특징인 다양한 분류들은 진단과 치료가 연결되면서 의료실천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현동학당, 병인론학회와 차별화되는 형상학회의 『동의보감』 독법을 드러낸다.

4. 동아시아 의서와 실천, 그리고 동아시아의학 지식

본 연구의 동의보감학파들에 대한 고찰은, 논의해 보아야 할 이슈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의학 텍스트와 의료실천의 관계에 연결하여 동아시아의학 지식의 구조에 대해 짚어보기를 촉구한다. 현동학당, 병인론학회, 형상학회는 모두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의료실천을 하지만 그 실천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동의보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가능성을 따라 학파“들”의 가능성도 열린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을 바탕으로, 동의보감학파들을 차별화시키는 세 가지 지점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강조점의 차이다. 현동학당은 맥을 강조한다. 병인론학회는 병인을 강조하고, 형상학회는 형상을 강조한다. 각 학파의 강조점은 각 학파들의 『동의보감』 독법을 지시한다. 각 학파는 이들 강조점을 키워드 삼아 17세기까지의 동아시아의학지식을 모아 놓은 『동의보감』을 횡단한다. 둘째, 세 학파는 각각의 강조점에 접근하는 방법론이 다르다. 망문문절을 병행하지만, 현동학당은 맥진을, 병인론학회는 문진을, 그리고 형상학회는 망진을 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셋째, 『동의보감』을 독해하는 경향성에서 차이가 난다. 현동학당은 『동의보감』에서 본래 만들어 놓은 체계를 구현하려고 한다. 『동의보감』은 17세기까지 동아시아의학 지식을 단지 나열해 놓은 텍스트가 아니다.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 체계는 다섯 편(篇)의 전개방식, 문(門)들의 구조에서 드러난다. 현동학당은 그 체계가 상정하는 실천방식을 구현하려고 한다. 이와 달리 병인론학회는 새로운 체계를 시도한다. 『동의보감』이라는 방대한 지식을 재조합하여, 특정 병인들의 틀을 통해 접근성이 용이한 체계로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형상학회는 『동의보감』을 창의적으로 읽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경향 위에서 정기신혈과나 담체·방광체와 같은 새로운 분류가 등장한다. 이 세 가지의 차별점들이 현동학당, 병인론학회, 형상학회를 각각 별도의 동의보감학파들로 구분하게 한다.

동의보감학파들의 상이한 강조점들은 동아시아의학지식이 인간존재의 다양한 측면에 열려있음을 보여준다. 현동학당이 맥진을 강조한다는 것은, 몸에서 드러나는 진동을 촉각을 통해 접수하여 그것을 몸 이해의 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동아시아의학에는 열려 있으며, 현동학당은 그 가능성을 강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인론학회에서 환자와의 문답이 드러내는 병인을 강조한다는 것은, 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또한 몸 이해의 틀로 역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동아시아의학에 열려있다는 것이다. 병인론학회는 이 가능성을 십분 활용한다. 형상학회에서는 형상(形象)을 통해 기 흐름의 변화와 치우침을 알아간다. 이는 외부에 드러난 모습[形]에 대한 인지가 내부의 현상[象]에 대한 앎으로 연결되는 가능성이 또한 동아시아의학에는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형상학회는 이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한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 의학에서는 몸의 진동, 언어적 발화, 외부에 드러난 모습 등 다양한 인간존재의 측면들이 의학적 실천의 바탕이 될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은 의료실천의 다양성으로 표현된다.

서양의학지식은 19세기 이후 몸의 다양한 측면 중 일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근대서양의학의 시선은 “어떤 [시각적] 현상을 인지하지마자 언어가 들리는 역설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Foucault, 1994: 108). 질병 현상에 대한 인지는 바로 의학적 언어라는 고정된 그릇에 담기는 인식의 표준화를 통해 근대서양의학은 탄생한다. 그래서 근대임상의학에서는 “드러난[인지된] 것은 이미 말하여진 것이다”라고 미셸 푸코는 단언한다(Foucault, 1994: 108). 찰스 로젠버그(Charles Rosenberg)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인지될 수 있는 대상 또한 근대 이후의 서양의학에서는 물질적 토대가 확실한 “질병독립체(disease entity)”로 국한된다. “확실하게 구체적인 질병 독립체들(disease entities)”을 확보하여 “[진료를] 조직하는 원칙을 구성”하는 것이 근현대 서양 의학의 방향성이라는 것이다(Rosenberg, 2007: 15). 병원균, 글루코스, 효소, DNA, 세로토닌, 베타아밀로이드 등이 이 질병독립체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근현대 서양의학은 전개되고 있다. 이와 같이 근현대 서양의학은 복잡다단한 생리, 병리 현상에서 “독립체”를 대상화하여, 확실한 의학적 언어로 기표하는 것을 통해 인간 존재의 다양한 측면 중 일부를 집중적으로 조직화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서양의학에서는 『해리슨 내과학』 학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29]. 인식의 표준화의 장 속에서 발간된 『해리슨 내과학』을 달리 읽을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푸코가 통찰하였듯이, 근현대 서양의학에서는 인식과 언어의 결합을 통해 의학텍스트와 그 텍스트를 접수하고 실천하는 존재들 사이 간극은 밀착된다. 이와 달리, 동아시아의학의 텍스트와 존재들 사이에는 가시적 간극이 있다. 그 간극 사이에서, 위 동의보감학파들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다양한 해석과 실천이 진행된다.

『동의보감』에 대한 독법의 가능성은 다양하게 열려 있지만,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선생”은 『동의보감』을 횡단해본 사람이다. 맥으로, 병인으로, 형상으로 『동의보감』을 꿰어 본 사람이다. 선생은 그 꿰어 본 경험을 학파의 구성원들과 공유하려 한다. 『동의보감』을 꿰어 본 경험을, 지시적 언어만으로 전달할 수는 없다(Farquhar, 1994). 병인론학회의 『동의보감』재구성의 방식은 쉬운 체계를 상정하지만, 실제 환자를 대할 때 기저의 병인을 찾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생 혹은 그 학파가 꿰어 본 길을 따라가 봄으로써 병인론의 체계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현상에 대한 인식과 의학적 언어 사이 간극이 좁아져 있는 생의학과는 달리[30] 동아시아의학은 텍스트와 실천 사이에 여지의 공간이 있다. 선생, 학파, 그리고 경험의 공유가 그 공간을 메우면서 동아시아의학은 진행된다.

5. 나가며

현동학당, 병인론학회, 형상학회의 진료는, 17세기에 발간된 『동의보감』과 21세기 동의보감학파 사이 교감의 결과물이다. 그 교감을 통해 『동의보감』이라는 텍스트는 여전히 진행형의 역사로 존재한다. 본 연구에서는 동아시아의서의 진행형의 역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하여, 동아시아의학에 있어 텍스트와 실천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이를 위해 인류학적 현지조사 방법론을 인용하였다.

본 논문에서의 논의는, 『동의보감』과 지금 동의보감학파의 의료실천의 연결점으로 한정하였다. 『동의보감』을 통한 이전의 실천들과, 예를 들면 『역시만필』, 『경보신편』의 의안에 기록된 실천들과, 지금의 동의보감학파로 이어지는 “실천의 역사”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수행되기를 기대한다.

이와 같은 실천의 역사에 대한 연구들은 지금까지 주를 이룬 텍스트의 역사와 함께 쌍을 이루며 더 풍부한 의료사 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텍스트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는 의료실천의 경우에, 실천과 텍스트를 함께 연구함으로써 의료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금 동의보감학파의 실천에 대한 현장자료를, 문헌으로만 남아 있는 『역시만필』에 대한 논의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일제강점기 동의보감학파들의 연구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질병사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도, 예를 들면 지금 중풍 치료의 실천에 대한 자료를 고려·조선시대의 중풍 관련 연구에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본 연구 또한 그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이 되었다. 앞으로, 의료실천과 문자화된 텍스트가 결합된 동아시아 의료사 연구를 통해, 보다 풍부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고대한다.

Notes

1)

저자로 알려진 한나라 장중경의 생몰연대를 바탕으로 한 『상한론』의 편찬 시기 추정이다.

2)

주디스 파쿼(Judith Farquhar)는 동아시아의학에서, 특히 경지에 이른 의료실천은 말과 문자로 전달이 용이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Farquhar, 1994), (Kim, 2017) 참조.

3)

여기서 “구조”는 토마스 쿤(Thomas Kuhn)의 “Structure”를 염두에 두고 사용되었다.

4)

예를 들면, 동아시아의학의 진단과 변증의 접근법을 배제한 채, 『동의보감』을 처방을 찾는 색인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5)

동의보감학파 외의 학파 연구와 관련해서는 (김태우, 2013; 2018), (Kim, 2016) 참조.

6)

본 논문에서 “선생”은 경칭이라기보다는 한 학파를 이끄는 스승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지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7)

필자와의 인터뷰에서도 현동 선생은 풍수, 명리, 태극권을 배운 다양한 경험들을 언급하였다. 그러한 경험은 본인이 한의학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강조하였다. 모두 음양오행과 같은 동아시아의학의 근본 개념에 기초하고 그것을 땅과 미래의 가능성과 무술에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8)

현동학당의 교육 프로그램은 세 단계(초급, 중급, 고급)로 되어 있는 강의와 임상실습, 한의대생을 위한 방학특강, 전체회원이 참여하는 회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첫 번째의 강의와 임상실습 프로그램이 주된 지식 전달체계라고 할 수 있다. 초급, 중급, 고급의 각 단계는 1년씩 진행되어 현동학당을 수료하는데 총 3년이 소요된다.

9)

현동학당에서 발간한 서적들을 보면, 그 학파의 방향성이 드러난다. 앞으로 더욱 분명해지겠지만, 맥을 강조하는 현동학당의 경향은 허준의 맥학서(『찬도방론맥결집성』)에 대한 번역으로, 또한 『동의보감』 내용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한 노력은 『하늘기운을 닮아가는 우리 몸: 도인으로 풀어쓴 동의보감』, 『현동의감』(현동 선생의 동의보감 강의)의 출간으로 표현되고 있다.

10)

『동의보감』 각 문의 소제목에 대한 번역은 『대역동의보감』(윤석희 외 역, 2005)을 참조하였다.

11)

『동의보감』 편찬 체계가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접수하여 맥진을 강조하는 현동학당의 방식은 동의보감학파의 당연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의서에 대한 독법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게 보이는 현동학당의 독법이 그 학파의 특징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의 병인론학회와 형상학회에 대한 논의를 통해, 현동학당의 『동의보감』 독법의 “특징”은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12)

필자는 현동학당 회강에 두 번 참여하였다. 경기도의 한 펜션에서 진행된 회강에 2016년 7월과 2017년 1월에 각각 참여하여 현지조사를 진행하였다.

13)

동아시아의학에서는 부맥, 침맥, 지맥, 삭맥, 허맥, 실맥, 홍맥, 세맥... 등의 맥상이 있다. 의서에 따라 맥상의 이름과 수는 다소 차이가 있다. 『동의보감』은 27맥상을 바탕으로 한다.

14)

진료실의 장면들에서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맥진과 망진은 함께 진행된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면,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망진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현동학당에서는 망진에서 특히 색(色)을 강조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색맥합참(色脈合參)”이라고 하여, 색과 맥을 합해서 진단하는 것을 배우고 또한 실천한다.

15)

이 한의원은 서울 인근 경기도의 도시에 위치해 있고, 이 진료케이스는 2018년 5월에 접한 케이스이다. 진료 한의사는 30대 남성이다.

16)

십종요통이라고 하여, 신허요통, 담음요통, 식적요통, 좌섬요통, 어혈요통, 풍요통, 한요통, 습요통, 습열요통, 기요통의 열 가지 요통으로 분류하고 있다. 「외형편」 요문에 제시되어 있다.

17)

한국의 한의학 학파들은 통상 “학파”보다는 “학회”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다음에 논의할 형상학회, 황제내경학파인 소문학회, 사상의학학파인 체형사상학회, 상한론학파인 상한금궤학회 등 “학회”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18)

『병인론』과 『화론』은 모두 김구영 선생의 강의록을 정리한 책이다. “병인론”으로 바라보는 질병치료의 이론과 예시로 구성되어 있다.

19)

김구영 선생은 한의사들의 진단이 너무 다양하고, 한의사들 간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김정원, 2017).

20)

이들 범주들은 병인론학회의 관점을 드러낸다. 이 병인 목록에는 한의학의 주요 질병 원인인 외감(外感)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세기에 설립된 학파로서 현대인에게 중요한 병인을 주요 논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것이 특정 병인들에 대한 강조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병인론학회 소속 한의사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외감도 중요한 병인이지만, 김구영 선생은 다른 주요 병인에 비해 외감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21)

이 진료케이스는 2019년 1월 서울 인근의 경기도 도시에 위치한 병인론학회 소속 한의원에서 접한 케이스이다. 진료 한의사는 20대 여성이다.

22)

『지산형상의안』은 지산 선생의 진료케이스를 통해 형상의학의 관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지산선법』은 지산 선생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도인법에 관한 책이다. 『너와 나의 세계』는 한의학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본 지산 선생의 수필집이다.

23)

경락 중 각각 족소양“담”경과 족태양“방광”경이 발달하여, 호리호리 하거나(담체) 몸집이 있는(방광체) 체질을 가진다.

24)

『동의보감』에서 강조하는 인간 존재의 구성체인 정기신(精氣神)에 혈(血)을 더하여 구분한 형상학회의 체질 분류다. 뒷부분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25)

육경 경락의 발달에 따라 분류한 체질 유형이다.

26)

오장육부의 발달에 따라 분류한 체질 유형이다.

27)

사람의 성향을 동물에 비유한 분류체계이다.

28)

이 진료케이스는 2009년 12월에 서울에 위치한 형상학회 소속 한의원에서 접한 케이스이다. 진료를 한 형상학회 회원 한의사는 40대 남성이다.

29)

『해리슨 내과학』(대한내과학회, 2017)은 생의학의 전문의학서적 중 가장 인기 있는 책의 하나다. 현재 20번째 판이 나와 있다.

30)

푸코(Foucault, 1994)는 이러한 연결을 “언어화”라고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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