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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Med Hist > Volume 29(3); 2020 > Article
중국 의학사 연구동향과 전망 - 융합·소통을 통한 의학사 연구의 다원화 -

Abstract

This study has focused on studying Chinese medical history for the past 10 years (2010-2019). There has been no overall introduction to how the study of Chinese medical history has been carried out so far in Korea. To understand the trend for the recent 10 years, understanding of the period before that is needed. This study had classified the study trend of Chinese medical history from the 1950s when the study of Chinese medical history started in full swing until the last 10 years into the following three periods:
  • First period: internal study period on Chinese medical history (the 1950s-1980s)

  • Second period: external study period on Chinese medical history (the 1980s-1990s)

  • Third period: diverse study period on Chinese medical history through integration and communication (2010-2019)

There can be an opinion that various studies by each period have not been adequately reflected, and the classification has been excessively simplified. For example, the internal study has been considerably performed in the second period, and the consciousness of conflict between the internal study and external study remains in the third period. Nonetheless, the keywords that connote each period’s characteristics for the past 70 years are considered the keywords presented above.
The study of Chinese medical history has mainly placed importance on the modern times. Indeed, no change has been present as well. However, the fact that the study on the Chinese pre-modern medical history in Korean academia for the past 10 years has quantitatively grown from just a comparison of the number of papers can be identified. Also, the researchers and study themes have been confirmed to be diversified. In the past, ancient Chinese medicine was understood as a connection between Taoism and medicine. The environmental history researchers dealt with the connection between natural disasters and diseases, and just a few studies in the fields of medicinal herb distribution and the viewpoint of the body were carried out. Meanwhile, studies from the pre-Qin Dynasty to the Han Dynasty were carried out based on new data such as the archaeological relics and bamboo and wooden slips in the Korean academia for the past 10 years. Discovering new data is undoubtedly a driving force to activate studies.
Studies on the Tang Dynasty Medical System and laws based on ‘Chunsungryeong(天聖令)’ are significant achievements connecting the Qin Dynasty & Han Dynasty and the Song Dynasty & Yuan Dynasty. Identification of each period’s medical system in medical history is the most essential thing, and the combination of environment and medical history is conducted. It is significant to examine medical history from the viewpoint of the academic disciplines’ integration. Approaching medical history from the female viewpoint has already started in the U.S., Europe, and Taiwan, and it is nice that such a study has been conducted in Korean academia.
There are not many researchers on Chinese medical history in Korean academia. As several researchers have led the study, the study’s concentration on specific periods or specific themes cannot be denied. The integration of systematic research achievements from the pre-Qin Dynasty until the Qing Dynasty is still minimal. Specifically, the study on pre-modern medical history targets a more extensive period than the study on modern medical history; therefore, researchers’ density is low. This is why the possibility of intersection is not high in the period, region, and theme between researchers. This can be the source of an evaluation that study on medical history chain is sparse. It is wistful that the study continuity or systematic research is lacking. To overcome such a limitation, existing researchers need to conduct collaborative joint planning and research centered on particular themes through cooperation. They need to complement the study’s sparse part in medical history through multidisciplinary co-research.
Beyond the research centered on country study history, attempts to understand history as global history are being carried out. Studies on the exchange and interrelations between Western medicine and Chinese medicine have been performed in Chinese medical history. Nonetheless, studies on the exchange and interrelations of medical knowledge, medical systems, medicinal herbs, medical books, medical workforce, and diseases (epidemics) from global history are insufficient.
Studies on a medical history that started from Chinese science and technology development history in the 1950s are developing to discuss one theme diversely. Plenty of studies on Chinese medical history need to be performed in various fields, including environmental history, the history of women, archeology, humanities, humanities therapy, integrated medical humanities, medical literature, medical theory, and medical system, which are the traditional fields.

1. 머리말

2010년에, 『의사학』이 창간된 1992년부터 2009년까지의 연구성과에 대하여, 동아시아 의학사 연구동향과 전망이 한 차례 정리되었다(신규환, 2010). 이에 따르면, 동 기간 한국학계에서 발표된 중국 의학사와 관련된 연구는 논문 34편, 저서 8편이다. 다만 신규환(2010)의 연구에서는 주로 한국학계의 연구성과만을 다루었으며, 중국과 대만 학계 등 해외의 동향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 글은 최근 10년간(2010-2019) 중국의학사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고 한계와 전망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지역적으로는 한국학계와 중국·대만학계의 연구성과를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다만, 2020년 2월에 국내에서 ‘중국 근·현대 의학사’에 대하여 자세한 연구사 분석이 발표되었다는 점에서(유연실, 2020; 신규환, 2020b), 이 글은 전근대 시기 연구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국내 연구성과는 『의사학』을 비롯하여 『연세의사학』, 그리고 최근에 창간된 『의료사회사연구』와 국내 동양사 관련 학술지를 참고하였다. 특히, 『동양사학연구』에서 매년 수록하고 있는 동양사 관련 논문 및 저서 목록을 참고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연구논문은 총 50여 편을 대상으로 삼았다[1]. 2010년대 이전의 국외의 연구성과는 리징웨이·장즈빈(李經緯·張志斌)(1996), 주젠핑(朱建平)(1996)과 대만에서 1990년부터 발행된 『신사학(新史學)』[2] 및 대만 ‘중앙연구원(中央硏究院) 역사어언연구소(歷史語言硏究所)’ 자료와 웹사이트를 참고하였다[3].
이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먼저, 중국·대만학계에서의 그간(1950년대-2000년대)의 중국의학사 연구 흐름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 전체적인 소개가 없었다는 점이 주요 이유일 것이며, 최근의 국내·외 중국의학사 연구 흐름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최근 10년간(2010-2019) 국내·외 연구 동향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였다. 먼저, 1950년대-1980년대를 제1기로 설정하였다. 이 시기는 중국에서 중의학연구소, 중의학자들이 주축이 되어서 이른바 ‘정통의료과기사(正統醫療科技史)’ 또는 ‘내사(內史)’로 불려지는 중국의학사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제2기는 1990년대-2000년대로 설정하였다. 이 기간에는 대만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를 중심으로 의료를 사회·문화사적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신사학(新史學)’이라는 의학사연구에서 새로운 조류가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앞에서 언급된 ‘내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른바 ‘외사(外史)’로 불려지기도 하는데, 중국의학사에 대한 외재적 접근이라고 부연할 수 있다. 주로 전근대 역사학 전공자가 주축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앞 시기와 차이점이 있다.
제3기로 설정한 2010년대(2010-2019)에 들어오면, 여러 의학사 연구자들이 이러한 내재적 연구와 외재적 연구의 상호융합, 상호보완 또는 의학사의 다원적 접근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환경사, 여성사, 고고학, 인류학, 인문치료분야 등과 통섭을 통하여 다양한 관점 그리고 한 주제에 대하여 다양한 층위에서 연구하는 중층적인 의학사 연구 이른바 ‘중층의학사’가 시도되고 또 요청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2. ‘정통의료과기사(正統醫療科技史)’와 ‘신사학(新史學)’

1) ‘정통의료과기사’: 중국의학사연구의 내재적 접근

중국의학사는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는데, 연구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내재적 연구이며, 다른 하나는 외재적 연구이다. 전자는 주로 중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과학기술사 연구라는 관점에서 의학의 기원, 의학기술과 이론의 발전, 의학문헌, 의학자 등을 그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정통의료과기사연구’이다. 다른 하나는 대만·미국·일본 등지의 몇몇 연구소와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외재적 연구로서, 의학사를 사회사적인 혹은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1949년 이전까지 의학사 관련 연구성과가 저조하였으나 의학사가 하나의 학문분야로 자리잡고 있었다. 1949년 학제개혁 이후 의학사는 의학교육에서 필수 과목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중국의학의 발전과정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증가하였는데 이 중심에 중화의학회의사학회(中華醫學會醫史學會)가 있었다[4]. 중화의학회의사학회가 1947년에 『의사잡지(醫史雜誌)』 (1947-1952)를 창간하면서 학술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는데, 1949년에 한 차례 정간되었다가 1951년에 복간되어 1952년에 2권 8기를 출판하였다(통권 4권 13기). 『의사잡지』는 고대의학문헌과 질병사 및 의학사의 주요 문제에 대한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李經緯·張志斌, 1996; 朱建平, 1996).
1951년에 중국에서는 중앙위생연구원 중국의약연구소 산하에 의사연구실(醫史硏究室)이 설립되었는데, 이것이 중국의학사 전문연구기구의 효시격이다. 1953년 중화의학총회결의에 근거하여, 『의사잡지』를 5권부터 『중화의사잡지(中華醫史雜誌)』(1953-1955)로 개명하였는데, 3권 12기를 출간하였다. 『중화의사잡지』는 국외 의학사의 비율이 이전보다 늘었다. 이 시기의 잡지는 중국의학·소련의학·세계의학 등 3항목 분류되었으며 소련의학 부분이 두드러졌다.
1955년 12월, 의사연구실은 새로이 설립된 중의연구원에 통합되었다. 그리고 중의연구원은 편심실(編審室)을 설립하였으며, 이후에 문헌자료연구실로 개명되었다. 의사연구실의 주요 기능은 의학발전의 법칙성을 연구하는 것이며, 편심실에서는 중의약문헌을 정리 연구하고, 편찬하는 것 그리고 중의잡지 등 간행물의 편집 작업을 맡았다.
1957년부터 『중화의사잡지』를 『의학사여보건조직(醫學史與保健組織)』으로 개명하였다. 이 잡지는 2년만 간행되었는데(계간), 1959년에 『중화의학잡지』와 통합하여, 『인민보건(人民保健)』으로 개명하였다. 그렇지만 『인민보건』은 매 호에 의학사문헌과 관련된 것은 한두 편에 그쳤기에 1959년부터 의사잡지는 실제로 정간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1950년대 중국은 소련과 호의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조직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를 통하여 중의학 부흥을 꾀하였다. 특기할 것은 1950년대 초, 중의를 학습하는 서의 학습반을 조직하였으며 정책적으로 1955년부터 서양의학을 공부한 중의 인재들이 의학사연구에 종사하도록 강요되었다는 것이다. 1955년 12월, 중의연구원은 전국서의이직학습중의반(全國西醫離職學習中醫班)을 개설하였다. 즉, 서양 의학을 학습한 이들을 대상으로 중의를 배울 사람을 선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서양 의학을 공부한 사람들 일부를 의사연구실에 배치하였다. 예컨대, 리징웨이(李經緯)는 당시 서양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의학사연구에 종사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원래 서양 외과학을 공부하였는데, 그가 고대 중의외과에 대한 성과를 논한 졸업논문이 호평을 받았다. 이로 인해 천방셴(陳邦賢) 문하에 배치되어 의학사연구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10년 간, 중국의학사연구의 주요 특징은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의학사학회를 보존시켜 학술활동을 계속 발전시켰다. ② 의학사연구 전문기구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1951년 중앙위생연구원 내에 설립된 의사연구실이다. 후에 이 연구실은 중의연구원에 편입되었고, 중의연구원의 편심실과 더불어 현재의 중국의사문헌연구소(中國醫史文獻硏究所)의 전신이 되었다[5]. ③ 의학사 전문학자의 양성이다. 1956년 중의연구원 의학사연구실이 전국의사사자진수반(全國醫史師資進修班)을 주최하였는데, 그 학생들이 후에 의학사발전의 주역이 되었다. ④ 『의사잡지』를 계속 출판하여, 의학사연구를 촉진시켰다. ⑤ 의학사와 관련된 문물의 수집작업과 의학사 유적에 대한 야외조사연구를 발전시켰다. 왕지민(王吉民)의 지도 아래, 중화의사학회는 1950년대에 많은 양의 의약위생문물과 초기의 의학 정기간행물을 소장하였다. 여기에 기초하여, 1950년대 말 상해중의학원은 의학사박물관을 건립하였다. 더불어, 하북성 임구현(任丘縣)의 편작묘, 섬서성 요현(耀縣)의 손사막(孫思邈) 고향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의학사유적조사에서 중요한 성과를 얻었다.
1971년 의사연구실과 편심실이 통합되어, 의사문헌연구실(醫史文獻硏究室)이 되었다. 천방셴, 마지싱(馬繼興), 마칸원(馬堪溫), 딩젠탕(丁鑒塘) 등과, 1958년에 서의로서 중의반을 졸업한 후 의학사문헌연구에 종사한 리징웨이(李經緯), 차이징펑(蔡景峰), 위잉아오(余瀛鰲) 등도 모두 이 연구실의 구성원이었다. 이 연구실의 구성원인 마지싱의 1970년대 후기 저작 『중의문헌학기초』는 고대중의문헌의 전반적 현황과, 고대중의문헌을 어떻게 읽으며,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연구하는지에 대하여 기초자료로써 의미가 있다. 이 책은 1990년에 『중의문헌학』으로 정식 출판되었다.
1980년 『중화의사잡지』가 복간되었으며, 의학사 연구영역도 넓어졌고 연구자층도 두터워졌다. 내용상으로 중국고대의학을 제외하고, 근대의학사, 소수민족의학사, 세계의학사, 의학사이론연구, 의약직업사, 지방의학사연구 등의 분야의 글들이 증가하였다. 내용은 물론 관점에서도 이전과 비교하여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의 의학사연구는 의약 분야에 국한되었으며, 연구경향도 내재적 연구 중심으로 점점 기울었다. 그래서 일부 저작은 의학전공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르렀다. 신진연구자들 중에서 중의·서의 등 의학전공자 출신이 많았던 까닭에 의학을 사회사나 문화사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는 데 한계를 나타냈다.
중국의사문헌연구소(中國醫史文獻硏究所)는 1960년대 그 전신인 의사연구실과 편심실 시절부터 많은 성과를 남겼다. 『중국의학사』, 『상한잡병론어역(傷寒雜病論語譯)』, 『금궤요략어역(金櫃要略語譯)』 등의 책을 출판하는 등 당시 중의학교육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70·80년대, 마지싱이 중심이 된 『무위한대의간(武威漢代醫簡)』, 마왕퇴 출토 『오십이병방』, 『도인도(導引圖)』의 연구와 리징웨이 등이 중심이 된 『중의명사술어선석(中醫名詞術語選釋)』 『간명중의사전(簡明中醫詞典)』 등의 연구성과는 중국 중의연구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주편한 『중의대사전』, 『중의인물사전』, 『중국의학백과전서-의학사-』, 『마왕퇴고의서고석(馬王堆古醫書考釋)』, 『신농본초경집주』, 『돈황고의적고석(敦煌古醫籍考釋)』, 『중의문헌학』 등 여러 종의 의학사 저작은 모두 연구사적으로 가치가 있다(李經緯·張志斌, 1996; 朱建平, 1996).
주요 중국의학사 연구자들 중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은 이들을 중심으로 간단히 정리해 보면, 먼저 상즈쥔(尙志鈞)을 들 수 있겠다. 그는 본초사 연구에 집중하였는데, 『신농본초경교점』, 『명의별록』, 『신수본초』, 『본초도경』 등 여러 종류의 책 출판을 통하여 본초서를 수집하고 교정하였다. 자더다오(賈得道)의 저서 『중국의학사략(中國醫學史略)』은 의학사 입문자에게 유용한 학술서로서 역대 의적(醫籍)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賈得道, 1979). 자오푸산(趙璞珊)은 역사를 전공한 몇 안되는 의학사연구자 중 한 사람인데, 그의 『중국고대의학』은 상고시대 의료활동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명청시기까지의 중국의학을 다루었다(趙璞珊, 1983). 천신첸(陳新謙)은 『중국의약학잡지』의 편집장으로 약사(藥史)연구에 기여하였다. 셰중완(謝宗萬)과 왕샤오다오(王孝燾)는 중국 중의연구원 중약연구소(中藥硏究所)의 연구원이었다. 셰중완은 『중약재품종논술(中藥材品種論述)』, 『중약품종이론연구(中藥品種理論硏究)』를 통하여 약재 품종 변천사와 약품이론을 정리하였다. 왕샤오다오는 한약조제의 전문가이며, 그가 책임 편집한 『역대중약포제법회전(歷代中藥炮製法匯典)』은 조제사(調劑史)를 연구하는 데 주요 저작이다. 마지싱, 정진성(鄭金生), 왕톄처(王鐵策)는 일본 이바라키(茨城)대학 전류청(眞柳誠) 교수와 공동으로 일본에 흩어져 있는 중국 옛 의서류를 영인하여 중국으로 돌아와 고증을 거쳐, 의학사연구를 하는데 새로운 많은 사료를 제공하였다(馬繼興 外, 1997).
지금까지 1950년대-1980년대 중국의학사 연구흐름과 그 주요 특징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이 시기 중국에서는 주로(서의 출신이든 중의 출신이든 아니면 두 분야 모두 공부했던 간에) 중의 출신자들이 주축이 되어 중국의학사가 내재적 연구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와서 문호가 개방됨에 따라 중국학자들의 안목이 넓어졌고, 그로 인하여 일부 소장학자들은 이전과 다르게 다양한 관점과 층위에서 의학사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2) ‘신사학’의 등장: 중국의학사연구의 외재적 접근

1992년 7월에 대만에서 ‘중앙연구원(中央硏究院) 역사어언연구소(歷史語言硏究所)’가 건립되었는데, 그 산하에 ‘생명의료사연구실(生命醫療史硏究室)’이 조직되었다. 이곳에서는 기존 중국에서와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중국의학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를 두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정통의료과기사’ · ‘내사’ · ‘내재적 접근’ 과 비교하여 ‘외사’ 또는 ‘외재적 접근’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중국의 연구자들이 주로 의학전공자 출신이었던 데 비해 대만의 연구자들은 역사학을 비롯하여 대개가 인문 사회과학 전공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비록 중의학에 대한 전문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의학사료를 통하여 중국역사 속의 문화코드를 읽어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즉 기존과 달리 의학을 사회사·문화사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연구관점의 등장이라는 의미에서 ‘신사학’의 등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대만에서의 중국의학사연구는 본격화되었다. 그 중심에는 학술잡지로서 『신사학』과 연구기구로서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생명의료사연구실을 중심으로 중국의 ‘정통의료과기사’와는 달리 사회사 혹은 문화사의 관점에서 의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역사어언연구소의 의학사연구는 역사를 우선 고려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역사의 연구대상은 바로 사람 혹은 사회집단이다’는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의학사의 문제를 사회적 맥락에서 사람의 생명 역정을 중심으로 연구하여, 각 사회가 인간의 생로병사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였는가를 이해하려 한다. 중국은 의학사연구소에 종사하는 구성원 다수가 의학전공자(중의 혹은 서의) 출신이기 때문에 연구범위가 대개 두정성(杜正勝)이 말한 ‘정통의료과기사’에 속한다. 그러나 이 역사어언연구소의 학자들은 의학전공자 출신이 아니며, 의학이론의 원류 등의 문제를 직접 연구하지는 않았다.
두정성은 과거 역사연구가 정치·경제와 협의의 사회에 제한된 결과 역사학의 빈곤화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십여 년 간의 실증적 연구를 통하여 이러한 문제점을 반성하고, 점차 신사학(혹은 신사회사)의 몇몇 기본개념들을 정립하였다. 그리고 의학사 연구작업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첫째, 신체에 대한 인식과 문화적 의미 부여, 신체와 연관된 역사지식과 관념의 발전, 그리고 거기에 반영된 중국문화의 특색, 예컨대 해부의 문제와 인체의 신비한 작용이다. 둘째, 의학자그룹과 학술분류이다. 의(醫)와 무(巫), 의학과 도교, 의학과 유교의 관계에 대한 토론 그리고 고대시기의 무의(巫醫), 중세시기의 도의(道醫), 근세시기의 유의(儒醫)라는 세 그룹의 의자(醫者)들의 특색에 대한 서술이다. 셋째, 남녀·부부 그리고 어린이와 늙은이에 관계된 가족사이다. 유가학설은 가족을 중시하는데, 개인에게는 수신을 가족에게는 윤리를 중시하였다. 그러므로 생로병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어떤 관점도 제기하지 않았다. 의학사는 바로 이 부분의 부족을 보충하여 가족사연구를 충실하게 할 수 있다. 넷째, 의학에서 보이는 문화교류이다. 그는 인도의학이 중국의학에 영향을 주었다는 데 대하여 비교적 부정적이다. 반면, 중국의학이 고대일본문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아시아 중국의학사를 비교 연구하였다(杜正勝, 1993). 다섯째, 질병과 의료에 반영된 대중심리이다(杜正勝, 1995a).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대만에서는 1990년대 들어서 중국의학사 연구가 본격화되었는데, 그 연구의 두드러진 경향은 사회사 혹은 신문화사로서 의학사를 연구하였다는 것이다. 그간에 진행된 연구 동향을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
① 방중(房中): 이성 간의 결합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방중에 속하는데 선진·진한시기의 사상가들은 금욕주의를 제창하지 않았으며, 대체로 인간의 기본욕구를 긍정하였다. 다만 사회 예법으로서 규제하기도 하였지만, 이것은 개인의 건강이라는 각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송사(宋史)』 이후부터는 방중에 대한 기술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마왕퇴 의서의 출토는 이 분야 연구자들로 하여금 한나라 때의 사고방식으로 새로이 돌아가서, 수·당 이전의 의서 기록들을 재검토하게 하였는데, 방중의 범위가 양생 외에도 부부의 사랑과 임신에도 있으며 이것은 가족사의 맥락에서 고찰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였다(杜正勝, 1995a).
② 출산과 육아: 중국 문화에서 일관된 것은 출산은 여성의 일이며 그렇기때문에 임신과 피임 이 두 가지가 상반되는 상황이 부녀자의 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리전더(李貞德)는 한대에서 수대까지의 임신과 피임에 대한 지식과 방법에 관한 의서를 텍스트로 사회사적 해석을 통하여, 여성생활사연구의 깊이를 심화시켰다(李貞德, 1995). 더불어 한대에서 당대까지 임신과 분만에 대한 연구도 하였다(李貞德, 1996; 1997).
리젠민(李建民)은 마왕퇴에서 출토된 「우장매포도(禹藏埋胞圖)」의 주석을 통하여 포의(胞衣)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과 매포(埋胞) 문화에 대하여 연구하였다(李建民, 1994). 한편 신생아의 탯줄자르기, 청결, 보온, 유아에게 우유 먹이기, 음식 먹이기 및 생리변화와 생장발육과정의 보건에 대한 연구도 있는데, 근세 인구가 성장한 주요 배경으로서 의학의 발전이 있다고 보았다(熊秉眞, 1995).
③ 양생: 전국(戰國) 시기부터 양한(兩漢) 시기에 이르는 자료에서 장생을 추구하는 염원과 기예가 보이는데, 여기에 대하여 두정성은 도가의 정종양신파와 방사양형파의 구별을 해명함과 아울러 한나라 초기 이전 기의 운행과 도인의 방법과 기술을 연구하였고, 또 양생가의 궁극 목적이 늙음을 피하여 다시 젊어져서 백세천수를 누리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杜正勝, 1995b).
④ 질병: 문헌사료를 바탕으로 한대(漢代) 이래 중국 남방지역의 풍토병 연구와, 중국 남북 지방이 생활습속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이를 배경으로 북방통치자들의 남방에 대한 특수군정시책에 대한 연구가 있다(蕭璠, 1993). 린푸스(林富士)는 후한 말기의 질병에 대하여 고찰하였는데, 인구문제를 떠나서 전통 무축과 신흥 도교 그리고 외래 불교가 질병에 대처한 방법을 연구하였으며, 이러한 각도에서 각 교파의 성쇠를 살펴보았다(林富士, 1995). 그리고 질병이 인구증가를 제어한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천연두를 예로써 우두를 추진해 나가는 명청시대 사회상에 주목한 연구도 있다(梁其姿, 1987).
⑤ 의학사상: 중국의학에서 생명에 대한 인식은 사람들이 귀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에서 자신의 힘으로 제어하는 것으로 변화하는데, 이것은 중국 고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보편성이다.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예측 불가능에서 예측 가능한 사고체계로의 변화는 보편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예측 혹은 제어라고 하는 것은 합리적 실증성을 의미하며 또 현학적 체계를 일컫는다. 현학적이란 수치체계화를 의미한다. 수치체계화된 사고방식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생명해석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다(金仕起, 1994).
기화론(氣化論)적 사고에 따르면, 사람은 남녀의 기가 결합하여 태어나는 것이며, 죽은 후에는 육체가 자연으로 돌아가 기로 다시 변화한다. 사람이 살아 움직일 때 그 생명의 존재를 지탱하는 정신도 또한 기가 변화한 것으로 심지어 종교범주에 해당하는 혼백과 귀신도 기로써 해석하고 있다. 두정성은 이것을 ‘기일원론적 생명관’이라고 칭한다. 기로써 경맥체계를 건립하였으며 오장의 인식으로부터 오행을 배합하는, 이 두 종류의 사상은 중국전통의학의 기본이론을 구성하고 있으며, 기와 오행의 개념은 중국문화 속에 깊이 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杜正勝, 1991).
기존 역사학의 연구경향은 정치사·경제사·군사사·제도사·사상사가 중심이었는데, ‘거기에 과연 사람이 있는가’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의료와 사회의 상호관계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밀접하다. 역사는 인간을 떠나서 있을 수 없는데, 의료와 사회의 상호관계는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생명의 역정(歷程)을 담고 있다. 남녀의 결합으로 세대가 늘어나고 그로 인하여 사회가 있으며, 국가가 생겨나고 그래야 비로소 인류의 역사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 출산과 육아, 질병치료, 생명유지, 사람들로 하여금 연속적으로 의료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의료와 사회의 상호관계이며, 이 모든 것이 의학사의 연구과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1990년대-2000년대 의학사연구에서 기존과는 대비되는 새로운 흐름(신사학)이 등장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3. ‘중층의학사(重層醫學史)’: 융합·소통을 통한 의학사 연구의 다원화

1) ‘중층의학사’: 중국의학사의 새로운 모색

1990년대 대만에서 시작된 중국의학사의 새로운 조류인, 생명의료사 연구는 기존의 역사학이나 의학사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과 연구방법론을 추구하였다. 즉, 역사학이 정치·경제·군사·제도·사상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생명의료사 연구는 생명과 의료를 중심으로 역사의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을 추구하였다. 신사학이라 불리기도 하고 ‘대안[另類:Alternative]’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역사연구에서 범주와 방법론을 달리한다 하여도 역사연구의 기본은 사료이다. 그러므로 의학사 연구도 반드시 사료 해석에 기초해야 한다. 『한학연구(漢學硏究)』(李貞德 編, 2016)에는 리전더를 비롯하여 몇몇 학자들의 본초약방, 의학이론, 신체관과 신체감각 등에 관한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의학 고서를 당시 역사적 맥락에 기반하여 다른 문헌과 비교 연구를 하였다. 이를 통하여 여러 문화사적 과제와 질병, 그리고 의료의 해외 전파, 의약 교류의 효과, 의학 발전에 투영된 정치적 의미와 종교적 지향성, 질병과 의료에서의 성별 관점 등을 분석하였다. 또한 리전더는 당귀를 중심으로 의료와 젠더(Gender)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기도 했는데, 송대 이래 “여성은 혈(血)이 근본이다”라는 젠더화된 의료 관념이 형성되면서, 혈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는 당귀가 여성의 필수 약재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또한 19세기 말 독일의 제약회사가 당귀를 수입하여 생리불순 치료제인 ‘당귀침고(當歸浸膏: Eumenol)’를 제조하여, 이를 역으로 중국에 수출한 것을 발견하였다(유연실, 2020: 36-37). 량치쯔는 이러한 의학사연구를 지속함으로써 의학사가 중국 역사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학적 흐름의 변화까지 주도할 수 있다고 보았다(梁其姿, 2012: 13).
반면, 랴오위췬(廖育群)은 이러한 의학사 영역에서 외재적 연구 방법에 대해 비판하였다. 랴오위췬은 아류에서 출발하여 정통성을 다투려 하더라도 전통 의학사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 방법이 없다고 보았다. 그는 현재 신문화사의 연구방법과 자료처리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의학의 ‘내핵(內劾)’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성별,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의학을 운운하는 것은 마치 의료사회사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모방으로는 문제와 지식의 진정한 핵심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廖育群, 2015).
‘정통의료과기사’와 ‘신사학’ 즉, ‘내사’와 ‘외사’의 갈등과 대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위신중(余新忠)은 다원적 시각과 내사와 외사의 융합·소통을 제시하였다(余新忠, 2015). 피궈리(皮國立)는 학문상의 논쟁은 본래 자연스러운 것이며, 학자마다 연구의 출발점과 문제의식이 동일할 수 없고, 상호 보완적이면서 확장적 태도가 좋다고 보았다. 정통의학사 연구자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사회문화의 신사학적 서사방식을 수용하였고, 의료사회사학자들 역시 전통의학 이론과 전적을 많이 학습하면서 자신의 주제를 심화시키는 등 서로 간에 충돌하지 않는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중층의학사(multi-gradations of medical history research)’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중층’은 다양한 층위에서 특정 문제를 다루자는 의미이다. 하나의 의학사 주제에 대하여 내·외사를 겸비한 논술 체계를 갖추기 위하여 의학 발전과 의학 문헌의 내재적 이론 변화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과 문화 변천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皮國立, 2012: 26-37; 2019b: 458-459). 이러한 제안은 의학과 역사학이 기존의 경계를 뛰어넘어 의학사 연구가 보다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 발전가능성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젠민은 최근 중의 외과사연구에 매진하고 있는데, 전근대 중국의학사에서 내재적 연구와 외재적 연구의 통합을 시도한 대표적 예이다(李建民, 2011; 2013a; 2013b; 2014; 2015; 2016a; 2016b). 그는 명대 『외과정종(外科正宗)』을 집필한 진실공(陳實功)의 외과 수술사례를 통해서 중의의 치료법이 어떠한 사회·문화적 배경 하에서 봉합수술에서 약물요법으로 변천했는지를 탐구하였다(李建民, 2018). 또한 량치쯔는 송·원·명 시기의 의학을 가문과 스승을 중심으로 한 ‘학술전통’과 민간과 도교 의료를 중심으로 한 ‘비학술전통’으로 구분하여 ‘이중적 전통’에 입각한 중의학 지식의 확립과 전파에 대하여 연구하였다(梁其姿, 2012: 3-28; 유연실, 2020: 20-21 재인용). 진스치(金仕起)는 외과, 유옹(乳癰), 그리고 성별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전통 의서 문헌에 대한 정리작업을 진행하였다(金仕起, 2017).
린푸스의 경우 꾸준히 고대의 미신적 치료법과 빈랑(檳榔)문화,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종교사부터 식품위생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林富士, 2012; 2014; 2015; 2017). 그는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역사에 주목하였는데, 역사가는 반드시 사회 저층을 위해 목소리를 내어야 하며, 상위 엘리트층과 국가의 역사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林富士, 2018).
리전더는 그녀의 주된 관심 분야인 성별, 의료, 그리고 건강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중세시기에서 근대 중국과 대만으로 관심분야를 옮겼고, 서양의 생리학이 동아시아의 성별 지식체계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탐구하고 있다(李貞德, 2013a; 2013b). 브레이(Francesca Bray, 白馥蘭)는 성별과 기술의 측면을 통해 중국 역사의 변천을 분석하였다. 여성에 관한 의료적인 내용이 부족하고 또한 전통 의학의 의안(醫案) 문헌에 편중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지만, 성별의 시각에서 큰 역사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작은 부분을 이해하려 했다는 의의가 있다. 물론, 의료를 과학기술사의 변화의 맥락에서 바라보았다(白馥蘭, 2017: 184-204).
장저자(張哲嘉)는 최근 몇 년간 법의학사(張哲嘉, 2015), 청궁의료(清宮醫療)(Che-chia Chang, 2015: 63-92), 중·일 해부학 전문용어와 의학지식의 번역 등에 집중하고 있다(張哲嘉, 2012; 2013a; 2013b). 장자펑(張嘉鳳)은 고대유아 의학사의 영역을 개척하였으며(張嘉鳳, 2012; 2013b), 최근 몇 년간 『절굉만록(折肱漫錄)』의 저자 황승(黃承:1576-1650)의 기록을 토대로 환자, 문인, 그리고 의사의 의료 경험을 검토하였다. 명말 강남 사대부의 일상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이 나타나 있으며, 당시의 의료 환경과 의료 시장의 특색이 반영되어 있다(張嘉鳳, 2013a). 추중린(邱仲麟)은 오랜 기간 명대 사회·문화사 방면을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관심의 영역을 환경사 분야로 확대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의료와 질병의 관계, 의료사회사에 관한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邱仲麟, 2015; 2017).
장주산(蔣竹山)은 약품과 물질, 그리고 소비문화의 시각을 견지하면서 그의 연구 초년에 진행한 인삼사 연구를 수정하여 출판하였고, 신체, 습속, 그리고 물질문화 및 그 교류의 시각에 근거하여 명·청 사회문화의 발전을 탐구하였다(蔣竹山, 2015; 2016). 천슈펀(陳秀芬)은 고대의 정신질환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는데, 최근에는 금·원·명시기까지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陳秀芬, 2014; 2016) 『본초강목·인부(人部)』까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陳秀芬, 2017). 주핑이(祝平一)는 줄곧 청대 전통 중국 의학의 질병사와 생리학 분야의 여러 가지 논쟁을 연구하고 있다(祝平一, 2013b; 2015; 2016).
량치쯔의 명·청 시대에 한센병〔癩病〕에 대한 인식은 서양의 ‘예방’과 ‘격리’라는 개념과 기본적으로 상통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명·청시기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중국인 나름대로 이성적인 나병관리 방식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등, 중국의 의료와 질병을 바라봄에 있어 중국사의 발전 특색에 대한 자신만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위신중은 공공위생 관념과 행위가 청말 이전의 중국전통 사회 속에서 존재했으며, 이는 국가의 공권력이 아닌 개별적·집단적 지역 사회의 차원에서 운영되거나 관리되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그는 19세기 이전에 분뇨와 오수의 처리에 있어서도 당시의 생태환경에 기본적으로 상응하는 대응 기제가 갖추어져 있었으며, 이러한 전통적 요소가 근대 위생제도의 변천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고 주장하였다(유연실, 2020: 27).
위겅저(于𢉼哲)는 선진시기부터 당나라까지 부자(附子)에 대한 지식과 사용법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부자는 ‘독약’에서 ‘백약중 으뜸’ 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인식되었다. 그리고 부자의 약용 가치는 끊임없이 발견되었는데, 주류·농산물, 불교와 도교 축제 등에 널리 사용되기도 하는 등 점점 일상화되었다. 부자의 다양한 사용 과정을 통하여 한약재의 발전과 일반화 과정 등을 밝혔다(于𢉼哲, 2017). 또한 그는 중국인의 성병 인 식에 대한 변화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그에 따르면, 고대로부터 청루문화 (기생문화)가 있었는데 중국인들은 성병의 원인과 전염체계에 대하여 지식이 부족하여, 성병에 대한 치료와 예방은 오랫동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였다. 그리고 불결한 성관계에 대한 경계가 부족하여 청루문화가 오랜 세월 내려왔음에도 중국사회에서 성병에 대한 언급은 부재하였다. 그러다가 16세기 초 매독의 새로운 유형이 전해지면서 성병 감염 체계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특히 아편 전쟁 이후의 매독은 외국에서 온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하면서 청루문화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와 성병 검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보았다(于𢉼哲, 2019).
퍼스(Charlotte Furth, 费侠莉)는 과학기술사의 관점에서 중국의학사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등의 관점에서 중국 중세 젠더를 연구하였다. 기존의 전통적인 의학사적 접근방식에서 탈피하여 의학사와 관련된 주제를 사회, 가족, 성별에 걸쳐 탐구함으로써 의학사, 질병사, 신체사의 관점에서 접근하였다(费侠莉, 2006).
중국 고대 시기의 의학사는 대체로 종교와 의학 사이 관계에 대한 연구가 가장 많이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당·송 시기까지 이어졌다(陳明, 2018). 당·송 이래의 의학사는 대부분 의약교류사(陳明, 2013), 의료제도(韓 毅, 2014), 의서의 간행과 지식생산(范家偉, 2014), 질병(于𢉼哲, 2011; 韓毅, 2015) 등 몇 가지 중요한 주제에 집중되어 있다.
중국은 영토가 매우 넓기에 각 지방의 의학은 고유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영남(劉小斌, 2014), 온주(宮溫虹, 2016; 劉時覺, 2016), 절강(朱德明, 2013; 謝紅莉, 2016) 등의 지역 의료 위생사 연구와 북경(杜麗紅, 2015) 상해(張文 勇·童瑤·俞寶英, 2014) 천진(朱慧穎, 2015) 등 대도시의 의학사는 많이 진행된 상태이다. 이 저서들의 특색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전통적인 지역 중의약사를 기술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각 지역의 현대 공 공위생 변천사를 서구의 위생개념과 지식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고대 질병사(疾病史) 연구는 한정된 자료로 인해 심층적인 탐구와 문화사 측면에서의 세부적인 분석이 어려웠지만, 최근 새로운 자료의 출토와 여러 학문간의 연계가 활발해지면서 연구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예를 들어 산서성 (山西省)에서 발굴된 선진(先秦)시기의 고분 발굴에 참여한 연구인력들은 체질인류학(體質人類學), 해부학(解剖學), 병리학(病理學) 등의 연구 방법을 이용하여 분석을 진행하였고, 이를 통해 이들의 치과 질병 발병률이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비해 높다는 사실과 퇴화성(退化性), 화농(化膿), 괴사(壞 死) 등을 포함하는 골관절염(骨關節炎) 질병의 예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고대질병사와 사회생활의 변화에 대해 이해의 깊이를 더 해준다(賈瑩, 2010; 張林虎, 2016).
2012년 7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성도문물고고연구소(成都文物考古研究 所)와 형주문물보호센터(荊州文物保護中心)는 공동 발굴단을 구성하여 성도시(成都市) 금우구(金牛區) 천회진(天回鎮) 일대 노관산(老官山)의 서한 (西漢) 시기 고분에 대한 발굴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출토된 약 920 여 개의 의간(醫簡, 成都文物考古研究所, 2016)과 경(經)에 대한 분석과 정리를 진행하여 『맥진(脈診)』, 『십육병방(六十病方)』, 『제병(諸病)』, 『십이경맥 (十二經脈)』, 『별맥구경(別脈灸經)』, 『칙수(刺數)』, 『맥수(脈數)』 등 10여 종의 의서를 정리하였다. 편작(扁鵲)학파의 의학경전에 대한 해독은 아직 대부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는데,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고대 의학사 연구에 큰 진전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梁繁榮·王毅, 2016). 그리고 최근 몇 년간 많은 의료문헌의 출토와 해독작업이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신강출토의약문 헌집성(新疆出土醫藥文獻集成)』은 신강 지역의 고고 출토 자료 및 투르판 지역에서 출토된 문서, 대곡(大谷)문서, 영장(英藏), 아장(俄藏)의 둔황(敦煌)문헌 등의 자료에서 여러 의약(醫藥)문헌을 수집 및 정리하였는데(王興伊·段逸 山, 2016), 이는 고대 의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시기를 막론하고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정리는 의학사연구에 새로운 동력이 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자료 정리의 방면에서는 근대 의학사 연구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에, 많은 작업이 진행되었다. 대표적으로 최근 위신중(余新忠)은 도서와 간행물 백 권 이상을 포함하여 총 30권으로 이루어진 『중국근대의료위생자료휘편(中國近代醫療衛生資料彙編)』이라는 근대 의학 문헌의 정리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는 중국 근대 의학사 연구자료를 전반적으로 정리한 것이다(余新忠, 2018).
과거 대만의 중국의학사 연구는 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의 1세대 학 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연구토론회와 연구주제들이 이후 하나하나씩 성과를 냈다(皮國立, 2012). 다만 최근 몇 년의 연구 성과는 대부분이 학자들의 예전 저서들을 모아 논문집을 낸 것으로, 시기도 상이할 뿐더러 관심 주제가 서로 다른 논문들이 함께 수록되어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연구자들 간의 연구주제의 분업화와 체계화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中央研究院 史語所, 2015).

2) 근·현대 의학사: 제국주의·근대성, 지구사적·물질주의적 전환[6]

중국 근·현대사의 주요 주제는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제국주의와 근대성의 문제이다. 특히 의학사의 영역에서는 제국주의가 ‘의료’를 통해서 어떻게 식민지배를 관철시키고, ‘근대성’ 혹은 ‘현대성’이라는 명목으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가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주요하다. 둘째, 지구사적 전환 속에서 의학사는 어떠한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즉, 로컬리티와 세계의 연관성, 국제적 의학 지식과 물질의 교류 등에 관한 연구가 많아 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구사적 전망 속에서 의료·질병·위생의 문제는 중요하다. 셋째, 물질주의적 전환과 물질의 소비 및 유통에 관한 연구의 흥기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약재의 교류, 의약품 광고, 약품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연구 성과가 주요하다.
1980년대 이후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 의학사 연구가 발전하면서, 중국의 근·현대 의학사 연구자들도 제국주의·식민주의·탈식민주의 등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이 문제와 관련한 연구들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근대 의료와 위생 시스템이 단일한 제국주의 권력에 의해 구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스템이 경쟁하고 혼재되었다. 둘째, 서구 의료인의 활동과 서구 의료의 확산 과정에서 지방 정부와 민간단체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셋째, 중국의 서양 의료의 수용은 중의학적 지식 체계와 중의의 사회적 영향력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제국주의와 의료의 관계를 중국의 역사적·정치적 상황 속에서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해야하며, 중국을 제국의 주변이 아닌 중심에 놓고, 그 주체성과 내재적 발전의 의미를 탐색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지구화에 대한 역사학적 대응으로서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초월하는 지구사적 연구가 대두되었다. 역사학의 지구사적 전환 속에서 의학사 연구도 유럽과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탈중심화를 추구하였다. 지역 사회의 의료적 노력과 제국주의의 관계, 의료 지식과 물질의 세계적 전파·소비에 관해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영국 의학과 식민지 의학의 관계를 탐구한 연구가 있는데, 중국의 통상항구에서 거주하는 유럽 가정의 가사업무 분업 모델을 통하여, 세계와 로컬리티가 어떻게 연결되고 교류하는지를 보여주었다(李尙仁, 2012).
1990년대에 서구 역사학계는 물질적 전환을 맞이했는데, 이로 인해 역사학자들은 사회·경제적 요소의 작용을 심도 깊게 탐구하며, 물질문화와 소비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의학사 연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물질문화사적 시각에서 의료 지식의 형성과 전파, 대중의 일상생활, 의약품의 생산과 소비, 물질문화의 상징적 의미 등을 분석하는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 이를 통해 물질문화에 투영된 권력·문화적 상징·사회적 상호작용 등을 의학 사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근·현대사 영역에서, 프로테스탄트 의학사, 위생사, 서의동점(西醫東漸)과 중서의 회통, 젠더와 신체, 질병사, 의사와 환자의 관계, 의료소송과 갈등 등의 영역에서 괄목할만한 연구성과가 누적되었다. 첫째, 프로테스탄트 의학사 연구는 기독교가 중국 의료 근대화에 미친 영향에서 시작하여 의료선교사의 정체성, 의료 선교단체의 활동, 의료 선교사업의 토착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다(李傳斌, 2006: 33-38; 牛桂曉, 2014: 75-84; 趙曉陽, 2017: 5-15; 조정은, 2018: 59-90). 둘째, 위생사는 근대적 위생관념의 형성과 ‘위생’의 의미의 복잡성(雷祥麟, 2004: 17-59; 羅芙芸, 2007; 張仲 民, 2009; 2016; 祝平一, 2013a; 劉士永·皮國立, 2016), 국가 및 지역별 위생 제도의 확립(彭善民, 2007; 신규환, 2008; 路彩霞, 2010; Leung, 2011; 杜麗 紅, 2015; 朱慧穎, 2015; 吳章, 2016; 余新忠, 2016), 대중위생운동과 단체 (範鐵權, 2013; 雷祥麟, 2017a: 61-95; 2017b: 1-47) 등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다. 셋째, 서의동점과 중서의 회통에 관한 연구는 서구적 의료 교육제도의 확립과 의료기관 및 기구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慕景強, 2010; 夏媛媛, 2014; 瑪麗·布朗·布洛克, 2014; 甘穎軒, 2015; Barona, 2015). 또한 서구 의료의 영향 속에서 중의학의 사상적·이론적 변화와 더불 어 중의학 폐지론, 중의학의 과학화·현대화 문제에 대한 연구도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何小蓮, 2006; 皮國立, 2008; 2012; 2019a; Lei, 2014). 넷째, 젠더와 신체에 대한 연구는 여성의 근대적 생리 위생 지식의 형성, 서구적 분만 의료시스템의 확립, 조산사의 제도화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었다(李貞德·梁 其姿, 2008; 周春燕, 2010; 姚毅, 2011; 趙婧, 2015; Johnson, 2011; Leung and Nakayama, 2017). 이를 통해 의료 지식·기술·제도 속에 투영된 젠더 구조를 분석하고, 서구 의료의 도입이 여성의 신체와 출산 문화를 어떻게 변형시켰는지를 밝혔다(李貞德, 2013a: 65-125; 2013b: 101-155; 楊璐瑋, 2013; 유연실, 2018: 91-122). 다섯째, 질병사는 페스트·콜레라·장티프스·천연두 등 전염병에 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曹樹基·李玉尚, 2006; 焦潤明, 2011a; 2011b; 班凱樂, 2015; 飯島渉, 2000; 永島剛·市川智生·飯島渉, 2017; Summers, 2012). 그러나 최근에는 우울증·결핵·정신병·암 등 다양한 질병으로 연구가 확장되고 있다(戴志澄, 2013; 雷祥麟, 2013: 119-144; 王文基, 2017: 77-98; 王文基·巫毓荃, 2018; 姚霏·鞠茹, 2018: 68-79; Kleinman, 2008; Chiang, 2014). 여섯째, 근대적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의료소송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의사와 환자의 관계 분석을 비롯하여, 근대적 의사윤리의 형성, 위생과 의료 법규의 제정 및 그것이 현실적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雷祥麟, 2003; 龍偉, 2011; 馬金生, 2016; 曾宣靜·林昭庚·孫茂峰, 2018: 59-120; 姬淩輝, 2019: 37-76).

3) 연구분야의 다양화와 양적 성장

그간 중국의학사연구는 주로 근·현대시대에 편중된 측면이 많았다. 물론 현재도 변함이 없지만, 지난 10년간 한국학계에서의 중국 전근대 의학사연구는 논문의 편 수만을 비교해 보아도 양적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뿐 만 아니라, 연구자 수와 연구 주제도 확대되고 다양화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기존에는 방사·도교와의 연관성 속에서 중국 고대의학의 접근이라든가, 환경사연구자들이 환경과 자연재해, 질병의 상관성을 다루었다든가, 약업·신체관 등의 분야에서 한 두 편 연구가 현실이었다. 반면 최근 10년간 한국학계에서는 고고유물과 간독 등 새로운 자료들을 바탕으로 선진시대부터 진한시기까지의 연구도 진행되었다. 새로운 자료의 발굴은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최근 10년간의 연구성과를 몇 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살펴 보았다.
① 제도사: 『天聖令(천성령)』 「의질령(醫疾令)」을 기본 사료로 하여 질병 치료를 위한 국가와 민간의 의료기구에 대한 논의 일환으로, 당대 중앙 의료 체계 특히 태의서, 상약국에 대하여 제도사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당대의 의료체계는 주변국인 고려와 일본의 의료체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동아시아 의료체계를 비교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당대 의관들의 입사 경로, 품계, 관직, 대우 등을 밝힘으로써 의료종사자 의 사회적 지위 및 타 관직과의 비교도 확인할 수 있었다(김호, 2012; 2013; 2014; 2015).
김상범은 수·당제국 성립이래, 정부의 주도하에 의료환경이 개선되었는데, 중앙과 지방의 의료교육체제가 확립되어 의료전문인재를 양성하였으며, 국가의료시스템이 구비되었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료사회 내에서는 무의(巫醫)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높아졌다. 사회적으로도 의술의 발전과 보급을 통하여 무의 사회적 기능이 약화되어 갔음을 밝히고 있다(김상범, 2014). 김대기는 송대 자선기구 중에서 안제방과 양제원의 기능과 변화 과정을 통하여 송대 사회가 빈민, 이재민을 대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의료구제활동을 펼쳤는지 살펴보았다. 이러한 국가의 의료시혜는 일반 백성뿐만이 아니라 죄수들에게까지 제도적으로 마련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몽골족이 지배하던 원대 의관의 신분과 입사 경로를 밝힘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김호 (2014)의 연구와 더불어 중국 고대 의료종사자의 관직진출과정과 사회적 지위의 시대적 변화를 비교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마련하였다(김대기, 2015; 2016; 2017).
김선민은 『성경삼무당안사료(盛京蔘務檔案史料)』를 중심으로 17-18세기 강희-옹정-건륭년간에 걸쳐 청대 인삼정책의 추이를 검토하였다(김선민, 2015). 인삼은 청조의 중요한 국가 재정 수입원이었기에 인삼 산지 관리부터 판매까지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인삼 고갈이 심각해지면서 산지를 통제할 능력을 상실한 청조는 결국 인삼업의 독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청조의 중요한 물질적 기반이었던 만주 인삼은 제국의 팽창과 반비례해 급속히 고갈되었고, 이는 청조의 재정고갈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② 신체관, 해부지식: 중국 전통의학에서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신체관 해부지식에 관한 연구이다. 정우진은 『황제내경』을 중심으로 초기 동아시아 신체관에서는 심장 중심의 신체관과 기를 중심으로 하는 신체관이 병존 한다고 주장하면서, 경맥체계를 포함하여 초기 동아시아에서는 다양한 신체관이 존재하였다고 보았다(정우진, 2019). 신규환은 중국 고대부터의 신체관 변화추이를 통시적으로 살펴봄과 더불어 근대라 불리는 청말에 이르러 기존의 전통적 신체관에서 해부학적 인식의 전환기까지 다루고 있다. 그는, 청말 의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서양의 ‘충격’에 대한 단순한 ‘반응’으로서 해부학 혁명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근대적 해부학의 내재적 발전 요소도 공히 존재한다고 보았다(신규환, 2012a; 2012b).
③ 질병과 의료: 김영현은 갑골문에 나타난 은대 신체 각 부위별 질병의 종 류와 치료법을 고찰하였다(김영현, 2014). 이는 고대 의학사 연구에 가장 중요한 사료의 발굴과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고대 시기 죽간 또는 갑골문에 기록된 의료관련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는 사료의 희소가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민후기는 1920년대에 출토된 거연한간(居延漢簡)과 돈황한 간(敦煌漢簡)을 통하여, 그간의 연구가 개별적 질병을 파악하는 단계였다면, 한대 서북 변경 지역에 배치되었던 사졸들의 전반적인 의료상황에 대하여 살 펴보았다. 사졸들이 어떠한 질병과 병증에 노출되었고, 어떤 치료수단을 썼는가, 이를 통하여 한 무제 이후 한 제국의 영역에 편입된 최일선 방어선이었던 서북 변경, 장액과 돈황 지역의 질병과 의료수준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 다. 1973년 마왕퇴 출토 사료를 통하여 14종의 의약 관련 간독과 백서 등은 기존의 『사기』, 『한서』, 『후한서』 등 사료에서 밝힐 수 없었던 질병, 처방, 치료법 등 구체적인 기록들이 출토된 것으로 고대 의학사 연구분야에서의 발전가 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민후기, 2015).
문정희는 『수호지진묘죽간』 일서(日書: 시일을 점치는 택일서)를 통하여 중국 고대사회에서 공동체 제사와 질병의 관념을 연구하였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대상과 질병의 구체적인 매개체 그리고 치병을 위한 제사의식 등을 분석하여 중국 고대인들의 질병 관념과 제사 습속의 일면을 분석하였다. 중국 고대인들은 질병이 기본적으로 각종 귀신의 빌미로 인한 것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음식물을 통해 야기되었다고 보았는데, 이는 고대 사회에서 제사 후 술과 고기를 공유하는 관습에 비추어볼 때 일종의 공중 위생개념에 대한 고대인들의 초보적인 인식의 결과로 보았다. 병이 생겼을 때 안팎을 청소하고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문정희, 2017). 한편, 조용준은 진·한시기 샤머니즘적 의료활동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선진시대부터 진·한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고대의술은 샤머니즘적 사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趙容俊, 2018a; 2018b; Cho, 2019).
이현숙은 당 고조 연간 전염률과 이환율 및 사망률이 높았던 골증병이 유행하였다는 사실과 수·당대 의학서를 통해서 당시 골증병에 대한 인식과 그 처방들을 살펴보았다. 골증이라 불리는 질병은 다양한 증세를 포괄하지만, 크게 두 계통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노채(勞瘵), 즉 결핵성 질병이고 다 른 하나는 『천금방』에서 태대열, 『외대비요』에서 골증전시라고 불렸던 질병이다. 무덕 연간에 유행했던 골증병은 태대열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태대열의 증상은 오늘날 인플루엔자였을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수말당초 인구 격감의 주요 요인을 역병의 유행일 가능성, 그 역병 즉 골증병이 인플루엔자였을 가능성, 그로 인하여 수나라가 단명하였을 가능성 등을 제기하였다. 전염병이 역사에 끼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 저자도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사료의 부족으로 실증적인 논거를 제시하는 데는 일부 한계가 있었다 (이현숙, 2017).
유강하는 『태평광기』 「의류(醫類)」에 담겨있는 중국 고대의 병인론, 약물치료법, 외과적 처치법, 위약반응, 종교·주술적 치유법 등을 고찰하였다. 특히, 손사막과 그의 의료윤리를 인문학적 의료인, 인문치유의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 독특한 점이다(유강하, 2016).
리젠민은 중국의 전통 의학 중에서 외과 의학이 바라본 몸의 물질성에 관한 글을 발표하였다(李建民, 2015). 18-19세기 중국 상해 인근에 거주했던 의가 주비원(朱費元)의 『양의탐원론(瘍醫探源論)』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아 명·청시대 외과 의학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중국의 전통 외과 의학은 내과 의학이 활용하던 맥진이나 처방과 다른 치료 방식을 취했으며, 몸을 바라보던 관점 역시 내과 의학과는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인 중국의 외과 의학은 몸이 힘줄과 살로 구성되어 있다고 여겼다. 썩어 들어가는 살이나 몸에 나타나는 또 다른 비정상적인 징후들을 수술을 통해 처치해야 했다. 중국의 전통적인 외과 의학의 대상은 물질적으로 실재하는 몸이었고, 의사들은 치료를 위해 외과적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수술적 중재를 활용할 것인지 아닌 지를 평가해야만 했다. 중국 전통 의서 중에 존재하는 물질적 신체에 대한 중 요 개념, 근육 및 진액 등에 주목하여 외과 수술사라는 관점에서 몸에 대하여 새롭게 조명하였다.
김현선은 환경사적 시각에서 명·청시대 양호(兩湖) 산악 지역에서의 전염병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김현선, 2019). 명·청시대 인구가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낙후지역이었던 산악지역으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산림남벌, 광산개발, 농경지개간 등으로 환경적 변화뿐만 아니라 전염병의 발병률도 증가하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④ 침구·의술: 강인욱·차웅석은 기원전 12-10세기 형성된 연길 소영자 석관묘에서 발견된 다수의 골침과 석침을 분석하였다(강인욱·차웅석, 2017). 소영자의 침구류는 대형(골제 송곳) 및 중형 골침, 바늘형 골침 등으로 세분된다. 침통과 환부를 문지르는 둥근 돌과 예리한 백두산제 흑요석 돌날 등이한 세트를 이루어서 시신의 한가운데에 소중하게 놓여있는 점 등을 근거로 의료용 침구류로 상정하였다. 이제까지 침구류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선사시대의 폄석, 또는 침술이 상당히 정비가 된 전국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시기의 청동제 침과 문헌자료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연길 소영자의 분석을 통하여 청동기시대에 사용된 의료용 석기와 골기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침구류의 등장에 대한 지리적, 생태적 요인을 고고학적인 자료로 분석해서 구체적인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정우진은 침술의 등장 시점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마왕퇴 문헌이 선진시기 침의 부재를 선언한다는 데 근거하여, 폄과 뜸의 경험의학적 지식이 전한기 이후 중첩적 발전 과정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정우진, 2011). 그는 기원전 3세기경 의사들은 경험의학지식을 체계적으로 이론화시키고자 한 것으로 보았는데, 그 결과물이 양생의 영역에서 성장한 경맥이론이라는 것이다. 경맥이론을 바탕으로 중국의 의학은 생리학과 병리학 그리고 진단학을 통일적으로 결합한 체계적인 이론의학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최초로 경맥과 결합한 의술은 뜸과 폄이었는데, 마왕퇴 시기에는 뜸과 폄만이 경맥과 결합되었다고 보았다. 전한기에 접어들어, 고대 중국의 의사들은 폄의 기능, 즉 사혈이 그들의 생명관에 어울리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생명의 씨앗인 정(精)을 싣고 있는 혈을 빼내는 것은 생명의 유실을 뜻했다. 침술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경맥과 경맥을 따라 들어온 양생의 정신에 맞춰 미리 기혈을 조절하는 침술을 고안해냈다는 것이다. 침은 폄의 시대적 반응물이었지만, 폄의 역할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무게 중심이 옮겨갔을 뿐이다. 즉 전대의 것을 폐기하지 않고 병존시키는 발전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⑤ 의료윤리: 최지희는 청대 의료환경의 변화 속에서 용의 문제의 배경과 그 사회적 인식의 다양성에 대하여 논하였다(최지희, 2019). 주로 청말 매체에 나타난 용의에 대한 보도를 중심으로 하여 당시 매체가 대중에게 재현했던 용의 이미지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용의의 문제가 청대 사회의 의료 문제에 관한 대중들의 인식과 의사 정체성에 대한 복잡한 인식의 결과물이라고 보았다. 청말에 매체에서 용의 문제가 자주 등장했던 것은 실제 용의로 인한 사건이 증가했다는 의미보다는 사회여론에서 용의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만들어가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즉, 청말 중의사들의 무능함을 부각시켜 중의개혁의 필용성을 제기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용의 문제는 청대에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대기는 명 후기인 16-17세기에 편찬된 의서들 중에서 의료윤리를 언급한 서적이 많은 점에 착안하여 의료윤리가 중요시 된 배경을 분석하였다. 당시 의료수요의 증가·의료인의 증가·의약업의 발달·의서 출판업의 성장 등 의료 시장은 확대되었으나, 의사들의 전문성 저하, 빈부격차에 의한 의료혜택의 불평등, 의료 윤리 분야 등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고 보았다. 더불어 당시 의서들에서 강조된 의료윤리 덕목의 특징에 대하여 분석하였다(김대기, 2018).
⑥ 외래의학지식의 전파·변용: 여인석, 김성수, 박기수, 조정은은 외래 의학지식의 전파와 수용에 대하여 다루었다. 먼저 김성수는 동아시아 전통의학에서 생소한 분야인 안과학 분야를 다루었다는 데 의미가 남다르다. 동아시아 전통의학이 중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부분이 크지만, 중국의학 중에서는 인도의학에 영향을 받은 부분도 존재한다는 것을 『용수안론』을 통하여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김성수, 2013). 더불어 서로 다른 문명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의학지식의 교류와 융합을 통해 종교적인 신념체계와 함께 전래된 의학지식이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맥락 안에서 고급 지식체계의 일부로 수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여인석은 『주제군징(主制群徵)』을 통하여 서양의학의 개념들 특히 해부학, 생리학적 개념들이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들에 의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여인석, 2012). 박기수는 1800년대 초 영국의사 피어슨 (Alexander Pearson, 1780-1874)에 의하여 중국에 우두법이 도입·전파된 과정과 중국인들이 우두법을 수용하도록 하는데 어떻게 인식·사상의 측면에 기여했는지를 고찰했다. 특히 그 과정에서 광동지역의 행상들이 금전적, 물질적 지원을 통하여 기여하였음을 구체적 사례를 통하여 밝히고 있다(박기수, 2013). 박기수가 우두법의 중국수용과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면, 조정은은 의학지식의 수용과 변용, 즉 의학지식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인두법이 유럽과 일본에 전래되는 과정과 우두법이 중국 및 일본에 수용·변용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조정은, 2018a).
⑦ 환경과 의료: 김지수는 송·원시대 12-14세기 사이 한랭화와 온난화의 급격한 변화와 그로 인한 잦은 재해와 질병의 상관성에 주목하여, 그것이 당시 상한론, 화열론 등 의학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김지수, 2018). 김문기는 명청시대 환경사 분야에 많은 연구성과를 내었는데, 특히 17세기 소빙기 현상에 주목하여 명·청 왕조의 교체를 설명하고 있다. 명말 청초는 전지구적으로 소빙기라는 이상 기후 현상으로 인하여 자연재해와 기근이 빈번하였으며, 이는 자연히 전염병의 발병률을 증가시켰다. 이러한 재해에 사회(또는 국가권력)가 어떻게 대처하느냐[荒政]에 따라 왕조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김문기, 2011; 2014). 환경사가 ‘세계사적 동시성’을 매개로 지구사 서술 가능성을 열었듯이 의학사도 타 학문과의 융합 연구 방식 등을 통하여 지구사적 서술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⑧ 미시사: 위신중·왕위멍은 미시사 특집논문에서 중국의학사 연구에서 미시사 연구 동향을 발표하였다(Yu·Wang, 2015). 이 글에서는 개별 의사, 특정 의학 텍스트 또는 특정 전염병에 대한 사례 연구가 미시사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중요한 역사적 자료들을 아주 상세하고 깊이 있게 읽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감적 이해와 추론을 통해 역사적 맥락과 구체적인 역사적 시간과 장소에 있는 자료들을 조명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문자적 의미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배경과 제작 과정, 작가의 입장, 단어에 숨겨진 메시지에 주목해야 하며, 과거의 사건과 대상을 구체적인 삶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⑨ 젠더와 의료: 김지선은 명대 여성의 일상과 질병, 의료행위에 대하여 고찰하였다(金芝鮮, 2018). 명대(明代) 유의(儒醫) 담윤현(談允賢)이 생전에 자신이 치료한 사례들을 정리하여 쓴 책 『여의잡언(女醫雜言)』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다. 전통시대 남성 유의가 아닌 여성 유의가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한 사례를 기록한 의안으로 무엇보다 명대 여성의 신체와 질병, 그리고 생활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유연실은 1715년 출판된 청대 산과 의서 『달생편』에서 제시한 출산 담론은 어떠하며, 그것을 여성들이 어떻게 수용하고 실천했는지를 탐구하였다(유연실, 2015). 이를 통해 청대 여성의 출산에 대한 남성 의사의 기술적 지배가 점차 줄어든 상황에서 남성 의사가 출산 담론의 확립을 통해 여성의 신체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 나가는 성별정치의 일면을 조망하였다. 위의 두 연구는 여성사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특히 전근대 여성 의학사 분야에서 기존에 이렇다 할 연구가 없었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미가 크다.
⑩ 의료인: 최해별은 송대 사대부들 사이의 의학지식의 교류라든지(최해별, 2016a; 2018c; 2019), 송대 유의 연구에 대하여 그 출현 배경부터 개념과 전형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최해별, 2018b). 유의는 송대 의학사의한 특징이자, 동아시아 의학사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평가되는 만큼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황영원은 명·청시대 오중과 신안 등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의술의 전승과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하여 논하였다. 특히, 지식인들이 의업에 진출하는 이른바 유의 현상에 주목하였는데, 당시 유의 담론은 의사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켰다기보다는 의사 집단 내부의 구별 짓기 방식에 불과하였다는 해석이 인상적이다(황영원, 2017).
⑪ 법의학·검험: 최해별은 최근 10년간 중국 전근대의학사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연구성과를 냈다. 특히, 송대 검험지식과 제도 분야에 관하여 수년 동안 체계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검험은 오늘날 법의학분야에 해당한다. 살인사건 등 각종 사법사건에 대하여 법의학적 검증을 통하여 법적 판단의 객관적 근거를 제공하는 과정이다. 『세원집록』, 『무원록』 등 중국의 검험지식은 조선으로도 전해졌고 동아시아의 법의학에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하였다. 최해별은 송대 검험제도에서 결과보고의 절차와 내용, 그리고 검험격목의 시행 및 수정 보완 과정을 통해 남송시기 검험제도의 구체적 운영 양상 및 검험 업무의 실제집행 양상, 검험 관원들이 숙지해야 했던 구급의학 지식 등을 살펴보았다(최해별, 2013a; 2013b; 2016c). 중국에서 검험지식이 발전한 시기는 송·원시기이다. 최해별은 송·원시기 검험지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세원집록』과 『무원록』을 기본 사료로 분석하였다(최해별, 2014a; 2014b). 더 나아가 동아시아 전통 검험지식의 계보를 비교하였으며 (최해별, 2015), 송·원시대 검험지식의 계보가 18세기까지 어떠한 방식과 내용으로 전승과 변용이 일어났는지까지 연구를 진척시켰다(최해별, 2017). 사인(死因)을 밝혀내는 데 필요한 검험지식과 분류기준 등 이러한 관련 지식과 제도들이 실제 송사판례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최해별, 2016b; 2018a).
중국 현대 의료사 분야에서 대표적인 연구자는 신규환, 유연실, 조정은 등 으로 각각 한·중·일에서 의학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의학사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신규환은 국가건설론의 시각에서 베이징의 도시위생에 대한 일련의 연구를 진행했는데, 최근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지역의 의료, 질병 문제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콜레라와 페스트를 다루면서, 홍콩, 대만, 일본, 만주 지역의 전염병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 주목하였고 최근 저서에서 이를 정리하였다 [7].
이들 세 연구자의 중국 현대사연구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 특징은 위생행정을 통한 중국적 국가건설론, 출산과 우생학을 통한 중국적 정체성과 사회주의 체제, 서양의학의 토착화 등에 주목하면서 2000년대 초까지 중국 현대사연구자들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인 국가건설론과 중국중심적 시각에서 의학사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이러한 연구에 기초하여 질병, 도시, 의료인, 환자, 하층민, 가족, 신체, 젠더 등 의학사를 사회사의 다양한 영역으로 연구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그 밖에 정치사나 경제사 등 각자의 전공영역에서 의료분야로 관심을 확장한 경우로는 김지환의 민국시기 철도위생에 관한 연구, 전경선의 만주국의 페스트 유행에 관한 연구, 김민서의 홍콩 중의약정책 연구, 이현일의 대만 의학교육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이제 중국의학사연구는 전통적인 분야인 의학문헌, 의학이론, 의료제도에 대한 연구도 더욱 확장되어야겠지만, 다양한 주제, 예컨대 환경사·여성사·고고학·인류학·인문치료·통합인문의료 등에서도 중국의학사 연구가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4. 맺음말: 한계와 전망

이 글은 기획 단계에서 최근 10년간(2010-2019)의 중국의학사 연구동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금까지 중국의학사 전반에 대한 조망이 미흡한 상황에서 전체적인 연구사 흐름 속에서 최근 10년간의 그 의미를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다보니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당초부터 훨씬 광범위한 시간을 다루게 되었다. 지면상의 이유도 있지만 필자의 역량부족으로 국외는 중국과 대만을 중심으로 다룰 수밖에 없었고 서구와 일본의 연구는 포함시키지 못하였다. 더불어 연구대상에서 누락되었거나 미처 언급하지 못한 연구도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동 시기의 연구사 흐름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필자는 크게 세 시기로 분류하였다. 제1기: ‘정통의료과기사(正統醫療科技史)’- 중국의학사연구의 내재적 접근기(1950년대-1980년대), 제2기: ‘신사학(新史學)’- 중국의학사연구의 외재적 접근기(1980년대-1990년대), 제3기: ‘중층의학사(重層醫學史)’- 융합·소통을 통한 중국의학사 연구의 다원화기(2010-2019)가 그것이다. 이러한 분류에 대하여 각 시기별 다양한 연구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지나치게 단순화 되었다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예컨대, 제2기에서도 내재적 연구는 많이 진행되었으며, 제3기에서도 내재적 연구와 외재적 연구 사이 경계의식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철기시대에도 여전히 석기와 청동기가 사용되었다는 말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70년의 시간 속에서 각 시기별 특징을 가장 함축하는 어휘를 묻는다면 역시나 위의 제시어라고 생각한다.
그간 중국의학사연구는 주로 근·현대시대에 편중된 측면이 많았다. 물론 현재도 변함이 없지만, 지난 10년간 한국학계에서의 중국 전근대 의학사연구는 논문의 편 수만을 비교해보아도 양적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 수와 연구 주제도 증가하고 다양화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기존에는 방사·도교와의 연관성 속에서 중국 고대의학의 접근이라든가, 환경사연구자들이 환경과 자연재해, 질병의 상관성을 다루었다든가, 약업·신체관 등의 분야에서 몇 편의 연구가 전부였다. 반면 최근 10년간 한국학계에서는 고고유물과 간독 등 새로운 자료들을 바탕으로 선진시대부터 진·한시기까지의 연구도 진행되었다. 새로운 자료의 발굴은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천성령』을 바탕으로 당대 의료제도와 의료관련 법령에 대한 연구는 의학사적으로 진·한시대와 송·원시대를 연결하는 매우 의미있는 연구성과이다. 이와같이 의학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각 시대의 의료제도와 체제를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대, 송대, 원대까지 의료제도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더불어 환경과 의학사의 접목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 10여 년 전부터 몇몇 연구자에 의하여 중국사분야에서도 환경사적 관점에서 중국사를 조망하는 기류와 무관치 않다. 그렇다하더라도 의학사를 보다 융합학문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유의미하다. 여성사적 시각에서 의학사를 접근하는 것은 서구, 대만학계에서 일찍이 시작되었지만, 한국학계에서도 여성사 연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한국학계에서의 중국의학사 연구자 층은 매우 얇다. 몇몇 연구자에 의하여 주도되다보니 특정 시기, 특정 주제에 연구가 집중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보니 선진시대부터 명·청시대에 이르기까지 통시대적으로 체계적이고 계통적인 이론이나 연구성과의 집적이 아직은 미약하다. 특히, 전근대의학사 연구는 근·현대의학사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광범위한 시간을 그 대상으로 한다. 때문에 연구자의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는 연구자간 시기·지역·주제 등에서 교집합의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의학사의 연구 사슬이 성기다는 평가를 하는 근원이기도 하다. 더불어 연구 연속성의 부재라든가, 체계적 연구가 미흡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중국의학사 연구자들이 배출되면 좋겠으나,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기존의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특정주제를 중심으로 집단공동기획 연구를 한다거나, 다(多)학문간 공동연구·융합연구 등을 통하여 중국의학사 연구 사슬의 성긴 부분을 하나씩 메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최근 국가를 단위로 하는 일국사 중심의 연구를 넘어, 지구사로서 역사를 통찰하려는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중국의학사에서도 서의와 중의의 교류와 상호관계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그럼에도 특히,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의학 지식, 의료 제도, 약재, 의서, 의료인, 질병(전염병) 등의 교류와 상호 관계에 대하여 지구사적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향후 의미있는 과제가 아닐까 한다.
1950년대 중국과학기술사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출발한 중국의학사연구가 전통시대 중국의 왕조, 단대사 단위의 구조를 뛰어넘어 한 주제에 대하여 여러 층위에서 논의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중국의학사연구는 전통적인 분야인 의학문헌, 의학이론, 의료제도에 대한 연구도 더욱 확장되어야겠지만, 다양한 주제, 예컨대 환경사·여성사·고고학·인류학·인문치료·통합의료 인문분야 등에서도 중국의학사 연구가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금번 2020년 『의사학』에서 기획된 의학사 연구동향에서는 의학사를 매개로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도 포함되었다. 소통과 통합 그리고 다원화된 의학사연구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지않을까 내심 기대가 크다.

Notes

1) 신규환(2010)에서 중국 전근대의학사 분야에 해당하는 연구는 논문14편, 저서 5편이다.

2) 『新史學』은 1990년 3월에 창간호를 발간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간행되고 있는 학술지다. 여기에는 상당수의 의학사 관련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다.(http://saturn.ihp.sinica.edu.tw/~huangkc/nhist/. 검색일: 2020.05.30).

3) 中央硏究院 歷史語言硏究所(http://www2.ihp.sinica.edu.tw/. 검색일: 2020.5.30).

4) ‘중화의학회의사학회’는 중화의학회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전문학회이다. 1935년에 성립된 후 지금까지 그 발전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1935년-1952년으로 기초단계로 학술교류, 의학전문서적과 『醫史雜誌』의 출판, 그리고 박물관·도서관 건립 등의 방면에 주력하여 내실을 기함으로써 이 후 발전을 위한 기초를 다졌다. ② 1952년-1966년으로 발전지속단계이다. 이 기간은 학회의 일부가 상해에서 북경으로 옮겨감으로써 두 곳에서 활발한 학술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전국규모의 활동은 미약했다. ③ 1966년-1979년으로 발전정지단계이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이 기간 동안 학술활동이 정지되었다. ④ 부흥발전단계로 1979년-1995년이다. 이 기간 동안 8차례 전국학술회의와 1차례 국제학술회의를 치루었으며, 16개 전국지회를 설립하였고, 회원 500여 명 규모로 발전하였다(朱建平, 1996).

5) 현재 ‘중국중의과학원(원명: 중국중의연구원)’ 산하에 여러 연구 기구가 있는데, ‘중국의사문헌연구소’도 그 중 하나이다.

6) 이하 중국 근·현대의학사 부분은 ‘유연실(2020)’을 참고·인용하였다.

7) 이하 중국 현대 의료사와 관련한 논의는 신규환의 논문(신규환, 2020b)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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